‘아름다운 약속, 어찌 오늘밤 뿐이러냐’

아무준비도 없이 김영삼 화백이 파초를 그리는 것을 보면서 윤진철 명창과 박정란 명창이 노래한다.

‘아름다운 약속, 어찌 오늘밤 뿐이러냐’

한국전통주연구소, 내외주가서 七夕풍류 개최

 

이날의 주제가 걸게 그림으로 걸려 있다.

우리 선조들은 날짜와 달의 숫자가 같은 중일(重日, 음력)도 명절로 여겨 즐겼다. 이를테면 3월3일(삼짇날), 5월5일(단오날), 7월7일(칠석), 9월9일 같이 홀수 곧 양수(陽數)가 겹치는 날을 절기 명절로 여기고 즐긴 것이다.

이 가운데 한 여름 명절이 칠석(七夕)이다. 이날은 전설 속의 견우와 직녀가 만나는 날로 한국·중국·일본 등에서 음력 7월7일(일본은 양력 7월7일)을 기해 각 나라의 전통적인 행사를 지낸다.

옛날에 견우와 직녀의 두 별이 사랑을 속삭이다가 옥황상제(玉皇上帝)의 노여움을 사서 1년에 1번씩 칠석 전날 밤에 은하수를 건너 만났다는 전설이 있다. 이때 까치와 까마귀가 날개를 펴서 다리를 놓아 견우와 직녀가 건너는데, 이 다리를 오작교(烏鵲橋)라고 한다. 칠석 때는 더위도 약간 줄어들고 장마도 대개 거친 시기이나, 이때 내리는 비를 칠석물이라고 한다.

특히 절기에 맞는 술과 안주로 자연의 변화와 더불어 술잔을 부딪치며 서로의 건강을 기원하는 아름다운 풍류문화를 가꾸어왔다.

이런 풍습 따라 절기명절을 지내는 곳이 점차 줄어들어 아쉬운 판에 지난 8월3일 오후 우리 술 문화공간인 내외주가(대표 박차원)에서 한국전통주연구소(소장 박록담) 주관으로 칠석풍류 행사인 ‘시·주·풍·류(詩·酒·風·流)’가 열렸다.

풍류 행사에는 허상만((許祥萬) 전 농림부 장관(순천대 석좌교수), 김종규(金宗圭) 문화유산국민신탁 이사장, 이대형 박사(경기도농업기술연구원), 김영종 종로구청장 등이 참석하여 칠석맞이 풍류를 함께 즐기고 덕담을 나눴다.

본격적인 풍류회에 앞서 박 소장이 인사말을 하고 있다.

‘아름다운 약속, 어찌 오늘밤 뿐이러냐’는 주제로 열린 풍류회에서 박록담 소장은 자작시인 <풍류>를 낭독했다.

젊어서 꾸던 꿈은/ 회문(迴文) 한편이 이뤘으면/ 매미울음 그친 자리/ 실솔시(蟋蟀詩)가 만권일세/ 지필묵 더럽힌다 한들/ 예주상합(禮酒相合) 이룰 건가….

개회사를 겸한 시낭독이 끝나자 ‘친구들의 술(대표 임숙주)’이 빚은 ‘지란지교’가 참석자들 술잔을 채웠다.

서울시 무형문화재 경기시조창 예능 보유자 변진심 씨가 평시조창을 하고 있다.

시가 있고, 술이 있는데 노래 한 자락 빠질 수 있겠는가. 서울시 무형문화재 경기시조창 예능 보유자 변진심 씨가 평시조창으로 ‘매아미 맵다울고 쓰르라미 쓰다우네/ 산채를 맵다더냐 박주(簿酒)를 쓰다더냐/ 우리도 초야에 묻혔으니 맵고 쓴 줄 몰라라’

이런 게 풍류인가. 맛있는 절기 음식이 가득하고 향기 나는 술잔이 오간다. 이날 ‘중원당’에서는 ‘청명주’를 ‘화양’은 ‘풍정사계’를 ‘좋은술’은 5양주 ‘천비향’을 ‘해월도가’에서는 ‘장성만리’를 협찬주로 제공하여 참석자들로부터 박수갈채를 받았다.

또 쉽게 만날 수 없는 ‘이화주(梨花酒)’를 국순당이 제공하여 흥을 돋구었다. 이화주는 떠먹는 술로 배꽃이 한창 피었을 때 담그는 술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흥이 날 때 쯤 윤진철 명창(광주시립극극단 예술감독)이 별주부전을 노래한다. 익히 다재다능한 명창이란 것을 알고는 있지만 때맞춤 창밖에서 내리는 칠석물(칠석날 내리는 비)과 잘도 어울린다.

윤진철 명창이 젊디젊은 고수(鼓手)에 맞춰 부르는 창에 신바람이 절로 난다. 예부터 ‘일고수이명창(一鼓手二名唱)’ 이란 말이 있다. 판소리 공연에서 고수의 구실이 명창 못지않게 중요함을 강조하는 말이다. 또 “소년 명창은 있어도, 소년 명고는 없다.”라고 했는데 이날 북채를 잡은 젊은 고수는 이런 고정관념을 깨고 당연 히어로(hero)로 주목받았다.

이 때 갤리그래퍼 강병인 씨가 박록담 시 ‘청산’을 써 내려간다. 예술이다. 하얀 종이 위에 듬뿍 묻힌 붓 하나로 저런 글이 써지다니 부럽기만 하다.

이어서 송영섭 씨가 가야금을 연주 하는 사이에 박록담 소장이 직접 담근 과하주(過夏酒)를 걸러서 마신다.

‘물에 가둔 불’이 바로 술인데 불기운이 불콰하게 오른다. 이 쯤 되면 풍류장 분위기는 달아오를 만큼 되었다.

칠석물 때문에 실내에서 치러진 풍류행사가 절정에 이를 지음 진향국악연구소 박정란 씨가 남도민요육자백이 흥타령을 부른다.

어깨춤이 절로 난다. 경기가 어렵고 힘들다고 하는데 이 처럼 흥을 돋구어 주는 행사를 벌린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삶과술’을 위해 멋진 그림 한 폭이 그려졌다. 좌로부터 삶과술 김원하 발행인, 강병인 멋글씨 작가, 김영삼 화가, 윤진철 명창.

이날 풍류행사가 끝나갈 쯤 ‘삶과술’을 위해 멋진 그림 한 폭이 그려졌다. 하얀 종이위에 윤진철 명창이 파초를 강병인 갤리그래피가 글을 김영삼 화가가 소나무를 그렸다. 순식간에 그린 그림이지만 문뜩 옛 선비들도 이렇게 풍류를 즐기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떠오른다.

풍류를 파 하기가 못내 아쉬워 변진심 씨 선창으로 ‘친구 이야기’를 합창한다.

“많진 않-아-도 그리고 자주 만날 순 없-어 도 나에게 친구가 있음은 얼마나 소중한 것입니까 ….”

참석자 모두가 소리 높여 친구를 노랬다. 아! 오늘 같은 풍류가 내일도 이어졌으면 얼마나 좋을까….

<글·사진 김원하 기자>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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