홉의 특성이 더욱 강조된 샐린저 호밀 IPA

장성민의 [삶과 맥주]

장성민의 삶과 맥주 3

홉의 특성이 더욱 강조된 샐린저 호밀 IPA

 

알맞게 열어 둔 와인처럼 향긋하고 달콤하게 목을 넘어 가면서도 쏘맥 담당자 박 팀장의 필살기처럼 깔끔하게 취하는 맥주가 있다. 처음 가 본 식당에서 김치 맛을 가지고 주방장의 손맛을 가늠하듯이 브루어리의 실력을 IPA를 가지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있을 정도로 수제맥주 업계에서는 보편화 된 맥주다. 독특한 향기를 강조한 것, 새콤함이나 쌉쌀함을 강조한 것 밝은 노란빛, 붉은빛을 내는 것 뿌옇게 흐린 것 등 여러 가지 스타일이 있지만 앞에 무슨 이름이 붙었건 IPA라는 글자로 끝나는 것을 고르면 그 대략적인 특징을 알 수 있다. 만약 한 모금을 깊이 들이켰는데도 보통의 라거맥주와 별 차이를 모르겠다면 그 브루어리가 망해가는 곳이거나 당신의 비염이 매우 심각한 상태이거나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만큼 독특한 맛을 가진 녀석이다.

내가 IPA를 처음 마셔 본 곳은 오래 전 상하이 뒷골목의 어두운 펍이었다. 동행인 독일친구에게 우울한 일이 있어서 위로 차 맥주를 마시러 그가 잘 안다는 펍을 따라갔다. 상하이에는 과거 유럽열강의 조차지였던 지역이 있어 당시의 시대상이 어느 정도 남아있는데 우리가 간 펍도 독일조차지였던 곳에 있었다. 칭따오로 대표되는 대중맥주보다 세 배 정도 가격이 매겨진 생맥주가 메뉴에 있기에 시켜보았다. IPA를 처음 마셨을 때의 느낌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기분 좋게 쌉쌀한 시원함을 내내 놓지 않으면서도 꽃과 과일의 향기가 입 안 가득 퍼지는 천상의 음료 같은 그 느낌을. 무심코 들이킨 그 첫 모금에 나는 펍의 묵직한 목재의자가 뒤로 넘어갈 정도로 깜짝 놀라고 말았다. 세상에 이런 맥주가 존재한다는 것을 내가 모르고 있었다니. 그동안 내가 최고라고 믿어왔던 아사히, 하이네켄, 뒤셀도르프를 저만치 뒤로 따돌리는 그리피스 조이너 같은 질주를 믿을 수 없었다.

인디아 페일 에일의 약자인 IPA의 유래에는 그럴듯한 스토리가 있다. 한 동안 유럽에서는 우리나라 막걸리처럼 걸쭉하고 뿌연 에일 맥주를 마셨다고 한다. 그러다가 양조기법이 달라지면서 동동주처럼 맑고 노란빛깔을 내는 에일이 유행하게 되었는데 그것을 페일에일이라고 불렀다. 페일에일이 영국을 비롯한 전 유럽으로 퍼져 크게 유행할 무렵 영국이 인도를 침공하여 식민지 시대를 연다. 그 제국주의적이며 폭력적인 어리석음에 대한 평가를 잠깐 뒤로 미루고 맥주의 관점에서만 본다면 그 정치적인 움직임은 결과적으로 현대 수제맥주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게 된다. 맥주는 보리, 물, 효모, 홉으로 만들어지는데 그 중 홉은 맥주에 풍미를 더하는 역할 이외에도 오래 보존할 수 있는 천연 방부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로 파견된 영국 식민지 관리, 군인, 경찰, 이런저런 사연을 가진 사업가, 여행자들도 분명 고향의 술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우리나라 장기여행자들이 동남아시아의 도시에서 구할 수만 있다면 다섯 배의 돈을 내더라도 소주나 막걸리를 사서 마시는 것처럼.

영국의 맥주양조자들은 배에 실어 인도로 보낸 그들의 페일에일이 장기간 항해를 거치며 시큼하게 변하는 것을 발견하고 대책마련에 고심한다. 그리하여 오랜 고민 끝에 천연방부제인 홉을 때려 넣어 새로운 페일에일을 만들었는데 비싼 재료를 많이 사용하더라도 더위에 지친 인도거주 영국인들에게 충분한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사업가다운 판단을 내린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인도 수출용 페일에일, 바로 인디아 페일 에일의 원조다. 일반적인 맥주보다 다섯에서 열 배의 홉을 투여해 오랜 항해를 견딜 수 있게 만든 맥주.

인도가 독립하고 수요가 끊긴 후 오랫동안 근근이 명맥만을 유지하던 IPA는 20여 년 전 미국서부에서 시작된 수제맥주 혁명의 시기에 홉의 화려한 향기와 풍미를 극도로 강조하는 방식으로 다시 화려하게 부활하여 한국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을 정도로 널리 퍼지게 된다.

고향을 떠나 고향의 맛을 그리워한 사람들의 외로움과 창의적인 맥주양조자들의 실험정신과 시대의 아픔이 버무려져 완전히 새로운 선물이 인류에게 주어진 것이다. 전쟁 기 미군부대 앞에서 시작되어 여전히 폭 넓게 사랑 받는 부대찌개처럼.

나름 흥미로운 이야기지만 물론 IPA의 포인트는 그런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시작과 발전과정이 어땠는지 별로 관심이 없는 사람이 우연히 입에 댄다고 해도 IPA의 독특한 매력은 조금도 떨어지지 않으니까. 내가 그랬듯이 오히려 더 기분 좋은 놀라움으로 남을 수도 있다.

오늘처럼 이렇게 더운 날, 늘 그저 그런 맥주와 소주의 조합에 싫증이 날 때, 근처 수제맥주 펍을 찾아 IPA 한 잔을 시켜보자. 쌉쌀한 첫맛이 온몸에 가득한 열기를 가라앉히고 향기로운 뒷맛이 하루의 마무리를 기분 좋게 끌어올리는 그 시원한 한 잔의 축복을 꼭 한번 맛보자.

어디에서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면 서울브루어리에서는 페일블루닷 IPA, 샐린저 호밀 IPA를 상시 판매하며 홉의 특성이 더욱 강조된 더블 IPA, 새콤한 사워 IPA, 붉은 빛깔의 레드 IPA를 시즈널 맥주로 판매하고 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지금 핸드폰을 열어 ‘서울브루어리’를 검색해 보시라. 분명히 당신은 언젠가 그 맥주에 대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누군가에게 말해주고 싶어질 것이다. IPA는 바로 그런 맥주다.

장성민 작가

필자 장성민:▴1975년생 약사▴서울브루어리 부대표▴2016년 여행에세이 ‘이렇게 일만 하다가는’ 출간▴2017년 아무튼 시리즈 3권 ‘아무튼 게스트하우스’ 출간▴현재 파주에서 아내와 두 딸과 함께 살며 통일이 되면 누구보다 먼저 북한을 여행할 예정(010-9645-67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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