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그리 머지않은 술 한 잔의 친구와 동행과의 교차를 위해서…
육정균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시인/부동산학박사>
지난 5월 한 달 간은 경영수지가 어려운 회사 구성원들에게 “힘들고 여건은 나쁘지만 전 직원이 똘똘 뭉쳐 한 번 새롭게 해보자. 그래서 위기를 탈출하고, 머지않은 장래에 정말 좋은 회사를 만들자”고 호소와 역설을 하기 위해서 전국 16개 시․도지부를 순회한 적이 있다. 충청권 등 중부지방까지는 당일치기 출장으로 일정을 잡아서 돌아봤지만, 호남과 영남지방은 도저히 하루코스로는 어려웠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1박2일 일정으로 순회를 했다. 우선 대구, 경북, 울산을 하루 코스로 마치고, 1박을 한 뒤에 그 다음날 부산과 경남을 다녀올 계획으로 움직였다. 그러나 “1박할 숙소를 예약해야 되지 않느냐?” 걱정하는 직원들에게 난 “걱정마라 일정 중에 자연스럽게 잡으면 더 좋을 수도 있다.”며 계획 속에 무계획을 말하였다. 자연스러움, 회사의 공식적인 일자리에서의 일은 자로 잰 듯 한 치의 오차와 예의에 어긋나지 않게 정해진 틀에서 움직이는 것이 정답이지만, 공식적인 회사 일을 마치고, 개인적인 일정으로 전환된 시간들까지 틀에 박힌 그저 어쩔 수 없는 현미경 속 삶 속에 넣고 나를, 아니 같이 움직이는 동료들을 가둬두기 싫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울산에서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은 가급적 동해바닷가를 끼고 가는 노선으로 운행하도록 했다. 부산으로 내려가는 길목에 기장군이 있을 것이다. 평생의 젊음을 바친 회사에서 전국을 수 없이 다녔던 나의 육신은 부산 가는 어느 길목에서 기장 바닷가를 더듬어가고 있었다. 어느덧 급히 물들어가던 바쁜 저녁 노을빛에 기장군의 지명이 거리안내판으로 나타났다.
“그래! 대변항!!!”서울에서 울산까지 강행군으로 일정을 소화한 우리의 저녁은 기장군 대변항에서 머물기로 했다. 우선, 그럴 듯해 보이는 숙소 2개를 찍어 내부를 같이 살펴보고 가격대비 깨끗하고 전망도 좋은 이른바 가성비 좋은 숙소에 여장을 풀었다. 그리고 저녁식사는 짚불 꼼장어와 멸치회로 먹기로 하고, 숙소를 잡고, 좀 늦은 시간에 인터넷에서 제일 유명한 짚불 꼼장어집을 찾아갔다. 그렇지만, 끝나갈 시간이라며 문전에서 문전박대를 당하고, 서운하게 인근 식당으로 옮겼는데 인간만사 새옹지마(人間萬事 塞翁之馬)라고, 그야말로 정통 짚불 꼼장어집을 찾았다. 인터넷에서 유명한 집은 사실 짚불을 피우는 장소나 도구도 없이, 주로 인터넷 광고로 손님을 집어(集魚)하는 배부른 식당이었던 것이다. 반면, 우리가 우연히 들른 꼼장어집은 무엇보다, 짚불을 피워 장어를 굽는 별도 건물에서 실제 짚불을 피워서 꼼장어를 굽는 별도시설이 있었고, 초벌구이 한 꼼장어를 우리 앞에서 발가벗긴 후 먹기 좋게 썰어서 불을 피운 프라이팬에 듬뿍 담아서 주셨다. 같이 시킨 멸치회무침도 짜지 않으면서 감칠맛이 났다.
“정말 오랜만에 먹어보는 기장 짚불 꼼장어 ㅡ 뭐라 말로 표현할 길이 없었다.” 이어서 시킨 멸치찌게, 담백하게 우거지를 듬뿍 넣고 끓인 국물과 잘 어울리는 멸치의 식감이 죽여주었다. 동료들은 얼큰하게 소주 한잔! 나는 독한 칠성주 한잔으로 밤바다 불빛 아르답게 녹아드는 바닷가에서 붉그레 얼굴 익혀가며 당연히 과식을 했다. 인천이 고향이라는 여주인은 결국, 바다를 떠나지 못하고 부산근처 동해 바닷가 대변항에서 향긋한 바다의 대변항을 늘 숨 쉬며 산단다. 몇 잔 잔술에 금방 친구가 되어버린 우리는 자리에서 일어서기 어렵다는 것을 알면서도 다음 날의 일정 때문에 과감하게 일어섰다. 대변항은 그 이름에서는 역한 똥냄새가 날 것 같았지만, 여인의 순수한 향수냄새처럼 연한 살색 바다 내음을 은은하게 들려주는 아름다운 산으로 폭 싸인 커다란 해변을 간직한 포구이다.

천천히 잘 정비된 둘레 길을 따라 대변항의 향기에 젖어보았다. 밤풍경이 마치 이탈리아 아드리아 해변의 잘 꾸며진 관광지보다도 더 포근하고 아늑한 멋진 포구이다. 아침에 기상을 해서 창가를 통해 대변항의 아침풍경을 보며, 문득 “언제든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 와야겠다”는 결심을 했었는데, 요즘 비를 동반한 폭염에 그저 달려가고 싶다. 인생이란 고행 길에서도 뜻하지 않게 포근한 삶을 예정되지 않은 선물로 선사받는 순간도 있는 것 같다. 그때의 행복했던 여정을 하느님께 감사드리며, 기도처럼 읊조린 詩,『대변항으로 오라!』를 소개드린다.
대변항으로 오라!
세상 어느 강산에서
이렇게 아침햇살 아름답고
향기로운 아기똥 냄새를 맡으랴!
이 경이로운 바닷물에
짭쪼름한 맛으로 절묘하게
잘 절여진 똥맛과 분향을 맛보려거든
지구인들이여
여기 외계인들이 몰래
몰려와서 춤추며 즐기는
대변항으로 어서 오라!
빛처럼 빠른 변화 속에, 지구상에서도 지구인들은 인류의 전통적 혈통을 통한《진짜인간》, 인간이 만든《로봇(AI)인간》, 인간이 줄기세포 등을 통해 만든 수많은《복제인간》들로 나뉠 것이고, 여기에 다른 은하계속에서 여행 온 외계인들과의 교류하고, 얽히고설킨 삶 속으로 달려갈 날도 머지않았다. 그리 머지않은, 광폭의 삶만큼은 우리가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그때는 우리의 삶과 사랑, 가족관계, 술 한 잔의 친구와 동행까지도 교차될 것이니….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