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관광공사는 ‘물맛 따라 술맛 따라, 한국의 전통주를 찾아서’라는 테마 아래 가볼만 한 양조장 몇 곳을 소개했다. 한 번에 여러 곳을 간접적으로나마 방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다. 여러 양조장 가운데 270년을 이어온 ‘송국주’와 붉은 눈물 방울방울 모아 술을 빚는 ‘진도홍주’, 3대째 막걸리맛을 이어오고 있는 ‘지평막걸리’를 소개한다.
270년을 이어온 양동청주의 맛, 송국주.
송국주(松菊酒). 말 그대로 소나무와 국화를 이용해 빚은 술이다.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하면 솔잎과 국화잎을 이용해 빚는다. 선비의 곧은 절개를 의미하는 소나무와 장수를 의미하는 국화를 이용하는 만큼, 이 송국주는 풍류를 아는 선비들이 즐기던 술이었다.
경주 양동마을에서 9대째 송국주를 빚고 있는 이는 이지휴 씨다. 조선시대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 선생의 17대손인 그는 8년 전 모친의 뒤를 이어 송국주를 빚기 시작했다. 도시에서 은행원 생활을 하던 그가 고향으로 돌아오게 된 건 80세가 넘은 노모의 손맛을 이대로 잊히게 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어머니의 어머니, 할머니의 할머니 때부터 입맛으로 전해오고 손끝으로 이어온 전통의 맛을 지켜야 한다는 의무감도 한몫 톡톡히 했다.
집에서 소량으로 담아 먹던 송국주의 역사는 송주(松)에서 시작됐다. 처음에는 이름처럼 솔잎만을 이용해 술을 빚었다는 얘기다. 송주에 국화잎을 더해 송국주를 선보인 건 이지휴 씨의 7대조 할아버지 때부터다. 그 이유에 대해 이씨는 “국화는 간에 좋고, 국화잎은 두통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선조들도 알고 있었던 게 아니겠느냐”고 되묻는다. 술은 먹되 건강도 함께 챙기라는 선조들의 지혜가 담긴 술이라는 것이다.
송국주가 270년 동안 꾸준히 사랑 받을 수 있었던 맛의 비밀은 어디에 있을까. 우선 물맛을 들 수 있다. 술맛은 물맛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술맛을 논함에 있어 물맛은 빼놓을 수 없다. 그러니 송국주 역시 그 맛의 비밀은 물에서 찾는 게 순서다. 송국주는 물 맛 좋기로 소문난 양동마을의 지하수로 술을 빚는다. 하지만 지하수를 그대로 사용하지 않고 별도의 술물을 만들어 사용하는 점이 특징이다. 국화잎, 감초, 조청이 들어가는 술물은 가마솥에서 2시간 정도 푹 끓여낸 뒤 상온에서 20시간 이상 천천히 식혀 사용한다. 술물에 이렇게 많은 시간을 들이는 것은 국화잎의 좋은 성분이 충분히 우러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다. 국화잎으로 끓여낸 찻물을 술물로 사용한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듯싶다. 끓이는데 2시간, 식히는데 20시간이 걸린다. 전통주는 정성이라고들 한다지만 송국주의 경우 술물을 만드는 데에만 꼬박 하루가 필요하니 시작부터 그 정성이 보통이 아니다. 술물에 들어가는 국화잎은 국화가 꽃망울을 맺는 봄에 채취한 것을 그늘에서 잘 말려두었다가 사용한다.
술물이 완성되면 고두밥을 짓는다. 가마솥에 적당량의 물을 채우고 그 위에 채반과 보자기를 얹은 후 수증기로 쌀을 찐다. 고두밥에 사용되는 찹쌀은 12시간 이상 물에 불려 놓은 것을 사용하고, 쌀 위에 솔잎을 고르게 펴서 듬뿍 올리는 것도 잊지 않는다. 밥을 찌는 동안 솔 향이 쌀에 자연스레 밸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솔 향 가득 머금은 고두밥은 평상에서 열을 식힌 후 누룩과 잘 버무린다. 이때 솔잎도 고두밥, 누룩과 함께 버무린다. 누룩과 버무려진 고두밥을 술물에 담으면 이제부터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하지만 고두밥과 누룩을 한 번에 달랑 들어 술물로 옮겨 담는 건 아니다. 발효가 잘 될 수 있도록 누룩과 섞은 고두밥에 술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반죽하듯 정성껏 비벼주는 과정을 잊어선 안 된다. 술물, 고두밥, 누룩이 그렇게 골고루 잘 섞인 뒤에야 비로소 옹기로 옮겨 담는데, 이때 술물에 들어있는 국화잎과 감초도 걷어내지 않고 함께 넣는다.
계절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송국주가 제 맛을 내기 위해서는 대략 일주일정도의 발효시간이 필요하다. 여기에서 한 가지 놓칠 수 없는 것이 구기자다. 화룡점정(畵龍點睛)처럼 술물로 가득 채운 옹기에 잘 말린 구기자를 넣는 이유는 숙취해소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송국주는 탁주, 청주, 소주 중 청주에 속한다. 그래서 도수나 맑기가 탁주와 소주의 중간쯤 된다. 18℃ 온도에서 일주일간 발효시킨 송곡주는 알코올도수 15도 내외의 옅은 갈색 청주로 세상과 만난다. 용수와 채로 꼼꼼히 걸러낸 송국주는 도수에 비해 목 넘김이 부드럽다.
송국주 제조과정에서 흥미로운 건, 술의 맛을 좌우하는 물과 쌀 그리고 국화잎과 솔잎 등 주요재료들이 각각 따로, 또는 같이 어우러져 가는 과정이다. 국화잎을 달여 술물을 만들고, 솔잎을 얹어 고두밥을 쪄내지만 결국 이들이 한데서 잘 어우러질 때 송곡주라는 새로운 맛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여 가족이 되고 더 나가 마을이라는 하나의 공동체를 형성해 나가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이치다.
송국주의 고향인 양동마을은 600여 년 동안 씨족마을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곳이다. 가장 한국적인 모습을 간직한 채 자자손손 대를 이어 살고 있는 이곳은 마을 자체가 중요민속자료 제189호로 지정돼 있을 뿐 아니라, 지난 7월 31일에는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도 했다.
☎ 우향다옥(이지휴) 054?762?8096.
붉은 눈물 방울방울 모아 술을 빚다, 진도 홍주
아주 옛날부터 나라를 통치하는 사람들은, 그들에게 반대하는 사람들을 멀리 보내곤 했다. 정치적 대립이 심할수록 그들이 보내는 곳도 멀었다. 한반도 남서쪽 끝자락에 자리한 진도에 굵직굵직한 선비들이 유배 간 까닭이다. 귀양 온 선비들은 그들이 왕도에서 누리던 수준 높은 문화를 유배지에 전했다. 진도사람들은 천리 먼 곳에 앉아서도 선비들의 문화인 문장, 글씨, 그림, 노래를 자연스레 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인지 진도에서는 만나는 사람마다 시인이고, 노래 한자락 장구 한가락은 기본으로 한다. 그들의 문화를 꽃피우는 데 술이 빠질 리 없다. 섬이지만 농사가 주업이었던 터라 술을 빚기 위한 쌀도 부족하지 않았다. 지금도 진도의 특산품은 흑미, 울금, 구기자 등 모두 농산품이다.
진도의 술은 고려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주인 ‘홍주’다. 발효된 밑술을 고소리로 증류해낸 홍주의 알코올 함유량은 40%로 도수가 꽤 높다. 그래서인지 이 술엔 이야기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홍주를 마신 후 어전회의에 참석하러 가다 말에서 떨어져 집으로 돌아온 허종의 이야기이다. 연산군의 어머니인 윤비를 폐출하기 위한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음으로써 연산군의 칼을 피할 수 있었다고 한다. 홍주가 생명을 구한 셈이다.
작은 술잔 안에서 풍류를 찾은 고산자 김정호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홍매화 떨어진 잔에 봄눈이 녹지 않았나 싶고, 술잔에 비친 홍색은 꽃구경 할 때 풍경이로다.” 아마도 그날 밤, 고산자는 홍주의 아름다움에 흠뻑 취한 듯하다. 돌아갈 때, 그의 손에 진도홍주가 들려져 흥선대원군에게 대동여지도와 함께 전했다고 하니 말이다.
고산자를 반하게 한 홍주의 붉은 빛은 지초에서 나온다. 고소리에서 증류돼 내려오는 술이 지초를 통과하면서 붉은 눈물 떨어지듯 방울방울 떨어지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홍주는 지초의 약효를 품게 된다. 지초는 예로부터 3대 선약(仙藥)이라 불렸다. 〈동의보감〉, 〈본초강목〉 등에서도 지초를 배앓이, 장염, 해열, 청혈에 좋은 약재라고 기록하고 있다. 현대에도 지초에 대한 연구가 꾸준히 이뤄지고 있다. 그 결과 경희대 동서의학대학원의 연구에서 항 당뇨, 항 비만효과가, 농촌진흥청의 연구에서 관절염 치료 효과가 밝혀지기도 했다. 우리 조상들은 이런 효과를 이미 알고 있었던 듯 지초를 만병통치약으로 사용했다. 진도의 민가에서는 지초를 상비약으로 준비해 두었을 정도다.
당시 진도의 야산에서 지초를 구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진도에서 야생으로 자라는 지초를 구하기 어렵다. 지초 재배도 그리 쉽지 않다. 물 빠짐이 좋고 서늘한 기후에서 잘 자라는 지초를 습기 많은 지금의 진도 땅에서 키우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도홍주는 지초와 찰떡궁합을 자랑한다. 40% 이상의 알코올에서만 녹아내리는 지초의 좋은 약효를 담을 수 있는 증류주인 까닭이다. 홍주의 역사를 고려 때부터로 보는 것도 증류주인 소주의 전래와 맥을 같이한다. 삼별초를 토벌하기 위해 진도까지 내려온 몽고군을 따라 소주가 들어왔고, 그 술에 당시 진도에 많았던 지초를 넣어 홍주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이다.
진도군은 가양주로 제각각 만들던 홍주를 균일하고 좋은 품질로 만들어 세계의 술과 경쟁하기 위해 오랜 기간 홍주 연구를 해왔다. 그 결과 진도군수품질인증 홍주인 ‘루비콘’이 탄생했다. 각 공장에서 홍주를 빚되, 진도군이 정한 기준대로 만들어 검사를 통과해야만 루비콘이라는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다. 친환경 쌀을 원료로 사용하고 2년 이상 숙성시켜, 알코올의 나쁜 성분을 모두 걸러내 부드럽게 만든 것이 특징이다.
대대로영농조합법인도 진도홍주를 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위스키, 코냑, 데킬라, 마오타이 등과 견줄 수 있는 우리의 전통주로 성장시키고자 노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물 공급부터 완성된 술의 병입까지 모두 첨단 컴퓨터로 관리하고, 알코올과 지초의 함유량을 표준화한 위생적인 술을 생산한다.
진도에는 볼거리가 많다. 군내면 용장리 17-1번지에 자리한 용장산성(사적 제126호)은 고려시대 때 몽고군에게 항쟁했던 배중손 장군의 삼별초군이 그들의 근거지로 삼았던 곳이다. 계단식 밭처럼 보이는 행궁 터는 한창 발굴이 진행 중이다. 그 위로 능선을 따라 산성의 성곽이 이어진다. 용장사 약사전에 모셔진 석불좌상(시도 유형문화재 제17호)도 살펴 볼 것.
임회면 삼막리 477-1번지 하미마을에 자리한 남진미술관은 장전 하남호 선생이 지은 사립미술관이다. 이곳에 장전 선생의 평생 수집품이 전시돼 있다. 역사서에서나 볼 수 있는 석봉 한호와 추사 김정희, 흥선대원군 이하응, 소치 허련을 비롯해 하위지, 정약용, 윤두서 등의 작품들과 남농 허건, 운보 김기창 등 현대작가의 작품도 만날 수 있다.
대대로영농조합법인 ☎ 061?542?3399.
3대째 가업으로 막걸리맛 잇는다
지평막걸리를 생산하는 지평주조는 지금의 자리에서 1925년부터 술을 만들고 있다. 창업 당시의 주인은 고 이종환 씨였다. 그 뒤 김교십(104)씨가 인수했고, 아들 김동교(64)씨를 거쳐 지금은 손자 김기환(29)씨가 양조장을 운영하고 있다. 막걸리 제조가 3대째 가업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김기환 실장이 지평양조장의 역사를 설명한다. 1925년에 세워진 양조장은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고 한다. 이 같은 건축물은 대부분 등록문화재로 지정되기 마련이다. 그러나 내부 수리나 시설 개조 등에 많은 불편이 따를 것 같아서 지평주조측은 근대문화유산 등록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이 양조장은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프랑스대대의 지휘소로 사용되기도 했다. 그 사실을 뒷받침하는 사진 한 장을 양조장 전시실 안내패널에서 찾아볼 수 있다. 프랑스의 몽콜라르 장군 부대가 어떤 기념식을 하고 있는데 배경에 양조장 건물이 보인다. 양조장 건물 앞의 버드나무 역시 양조장과 역사를 같이 해왔지만, 안타깝게도 올 여름 태풍 때 가지가 부러지고 말았다.
방효연 공장장은 “지평주조는 쌀막걸리 제조로 출발했다”고 들려줬다. 한국전쟁이 끝나고 원조 물자로 옥수수와 밀가루가 들어오자 재료에 변화가 생기면서 옥수수막걸리, 밀막걸리도 만들기 시작했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노풍’이라는 다수확 벼 품종이 생겨나자 1960년대 중반부터 쌀막걸리가 부활됐다. 그러다가 밀막걸리 생산을 병행한 것이 1998년의 일이다. 쌀이 미질 위주로 생산되면서 부족해진 탓이다. 현재 지평주조는 쌀막걸리와 밀막걸리를 동시에 만들고 있다.
지평막걸리를 마셔본 사람들은 머리가 아프지 않고 숙취가 없어서 좋다는 평을 한다. 아스파탐이라는 감미료를 쓰긴 하지만 기타 첨가물은 일체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그 같은 말해주는 것 같다고 방씨는 말한다.
김기환 실장은 지평막걸리의 고유한 맛을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두 가지는 바로 물맛과 손맛이라고 알려줬다. “지평막걸리는 지하수를 사용하는데 그 맛과 성분이 막걸리를 빚기에 매우 적합하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는 “그 덕에 오랜 단골들이 많다”고 자랑한다.
지평막걸리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먼저 증미실에서 술밥 만들기가 이뤄진다. 막걸리 재료를 물과 함께 반죽하고 증기로 쪄서 냉각시킨다. 다음은 종국실 순서가 기다린다. 냉각시킨 재료의 30%를 수작업으로 오동나무에 넣어 종균을 배양한다. 그 옆에는 보쌈실이 있다. 이곳 역시 종국균 배양을 위한 장소다. 이런 과정을 거친 다음 사입실로 넘어간다. 종균 배양한 재료에 물을 넣고 희석시킨 후 나머지 재료 70%를 넣고 전통 항아리에서 발효시킨다. 마지막 과정은 재성실에서 진행된다. 발효된 막걸리를 걸러내 전문 유통업체로 보낸다.
1.7ℓ와 0.75ℓ 두 가지 용량으로 출하되는 지평막걸리는 주로 양평과 인근 지방, 그리고 서울에서 소비된다. 전국으로 택배가 가능하기 때문에 주문만 하면 어느 곳에서든 지평막걸리의 깔끔한 맛을 즐길 수 있다.
지평주조는 최근 막걸리 열풍이 뜨겁게 번져나가자 진막걸리, 선동동주, 미막걸리라는 브랜드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진막걸리는 오랜 전통의 묵직한 손맛을 자랑하는 정통 생막걸리다. 선동동주는 생효모와 유산균, 식이섬유가 풍부해서 여성들의 다이어트에 좋은 생동동주이고, 미막걸리는 순 우리 쌀로 만들어 부드럽고 깔끔한 맛을 동시에 느낄 수 있는 생막걸리다.
우리 민족의 애환, 서민들의 사연이 고스란히 담긴 지평막걸리를 맛본 다음에는 양평의 여행지들을 차례차례 만나본다.
서종면으로 가면 황순원문학촌인 소나기마을에서 문학의 향기에 흠뻑 취해볼 수 있다. 소설가 황순원 선생의 발자취를 만날 수 있는 소나기마을은 단편 소설의 백미인 ‘소나기’ 작품을 테마로 한 문화마을이다.
사찰 답사에 관심이 많은 여행객들은 용문사와 사나사를 답사해보면 좋다. 웅자한 용문산 자락에 자리잡은 용문사는 신라 신덕왕 2년(913)에 대경대사가 창건했다는 설과 신라 마지막 왕 경순왕이 직접 창사했다는 설 등이 따라다닌다. 조선 세종 29년(1447)에는 수양대군이 소헌왕후 심씨를 위해 보전을 다시 짓기도 했다. 불교를 적극 보호했던 세조는 왕명으로 절을 다시 짓게 해 용문사는 한때 3백여 칸의 건물에 승려 수만 300여 명에 달했다고 전해진다. 용문사 앞 은행나무는 천연기념물 제30호로 지정돼 있으며, 늦가을 노랗게 물든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지평주조 ☎ 031?773?7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