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주(飯酒)는 술이 아니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끼니 때 피로를 풀고 식욕을 돋우기 위하여 마시는 술을 가리켜 반주(飯酒)라 한다. 과거 술 내력이 있는 집안은 웃어른들이 끼니때마다 반주를 드시는 것을 보고 자란 사람도 많다.
그러나 반주는 대체로 저녁밥상에 오르기 마련이다. 반주는 대부분 가양주(家釀酒)로서 가정에서 계절에 맞추어 여러 종류의 술을 빚었는데 봄?가을?겨울에는 약주(藥酒)류가 쓰이고, 여름에는 약소주(藥燒酒)류가 쓰였다.

술을 사서 마시기가 힘들었던 시절 시집온 새댁은 시어머니로부터 대대로 내려오는 술 담그는 비법을 전수 받아 몇 년을 두고두고 술빚는 법을 익혀나갔다.
특히 초복 직후에 길일(吉日)인 신미(辛未)?을미(乙未)?경자(庚子)일을 골라 누룩을 빚어 두고 추석에 햇곡식으로 신도주(新稻酒)를 빚고, 중구(重九)에 대비하여 국향주(菊香酒)를 빚어 가을?겨울 동안의 반주로 올렸다.

이런 정성과 정감이 배여 있는 반주 한 잔이면 하루의 피로가 풀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식사 때 술을 마시는 습관이 있는데 이는 식욕을 돋우게 하는 역할을 한다. 술이 우리 몸에 유익한 점은 음식으로서 식사의 일부로 이용될 때 나타난다. 식사 때 포도주 1~2잔, 또는 맥주 몇 잔 정도를 마시면 알코올은 지방이나 당질과 마찬가지로 신진대사에 공헌을 하게 된다.
서양에서도 식사 전에 애피타이저로 마시는 아페리티프(ap?ritif), 즉 식전주(食前酒)의 역사는 우리보다 훨씬 길다. 최근 들어 젊은 사람들까지도 점심에 반주를 즐기고 있는데 이는 여행의 자유화에서 묻어온 습관이 아닐까.

시간이 상당히 흐른 이야기다. 서울 중부경찰서에 정 아무개라고 하는 서장이 부임했다. 정 서장은 주변에서 알아주는 애주가. 그가 부임하고 나서 들은 이야기는 관내 경찰관들이 반주가 심해 업무에 지장이 많다는 이야기를 듣고 점심시간이 바로 지난 후 관내 전 경찰관을 강당으로 비상 소집시켰다. 그리고 점심 때 술 마신사람 앞으로 나오라고 일갈 했다. 그런데 4백여 명이나 되는 경찰관 중에 한 사람도 나오지 않자 정 서장은 직접 단상 아래로 내려가 경찰관 얼굴에 코를 들이대며 검사(?)를 해보니 술 냄새가 나는 사람이 많았다. 술 냄새풍기는 당사자 보고 왜 술 마시고 안 마셨느냐고 다그치자 그 사람이 하는 말이 “술 안 마셨습니다. 반주 했습니다.”

정 서장은 난감했다. 정 서장이 술꾼이었기에 반주를 이해한 것이다. 같은 술인데도 반주에 대해 너그러운 것은 반주를 음식의 하나로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약주(藥酒)란 말이 나오지 않았는가.
“건강하게 살려면 반주를 즐겨라.”

미국 하버드대 보건대학팀이 술 종류에 관계없이 한두 잔의 술을 매주 3일 이상 마시면 심장병 위험이 낮아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었다. 이 문제를 놓고 왈가불가 한 적이 있었다.
술은 물론 체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중국의 덩샤오핑은 시골 출신답게 평생 채식 위주의 식사를 했으며 끼니때마다 반주를 곁들였다고 한다. 그래도 그는 90을 넘게 살았다.

일제 강점기에도 금주와 절주에 관한 계몽운동이 심했던 모양이다. 이런 포스터가 있었다. “유시(酉時?오후 5시부터 7시까지의 시간)가 되기 전에 술 마시지 마라” 점심에 반주를 곁들이면 밤에 마시는 술에 비해 유난히 취기가 오래간다. 경제적으로도 손해가 클 것이다.
술은 우리 몸에 해롭지만, 그렇지만 하루 1~2잔의 반주 정도는 몸

에 이롭다는 것이 정설이다. 문제는 지나친 반주가 문제다. 예부터 조상들이 한두 잔의 술을 즐긴 것은 ‘반주’의 뜻 그대로 “끼니때 피로를 풀고 식욕을 돋우기” 위한 삶의 지혜였다. 실제 적정량의 술은 식욕 증진뿐 아니라 피로 회복과 스트레스 해소, 혈액순환 개선 등에 도움을 준다는 사실이 속속 밝혀지고 있지 않은가.
반주로 마시는 술은 알코올 도수가 20도가 넘지 않는 것이 좋다고 한다. 그래서 소주메이커들이 저도수의 술을 만들고 있는 것일까.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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