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탄주 어른들만의 專有物 아니다

김원하의 취중진담

폭탄주 어른들만의 專有物 아니다

술자리에서도 유행에 민감하다. 2005년 경 백세주가 한창 인기 있을 때 백세주만 마시기엔 가격이 부담스러워 백세주에 소주를 타서 마시는 ‘50세주’가 유행했었다. 가격도 가격이지만 12.5도인 백세주에 소주를 타서 마시면 14~15도로 도수가 올라가 목넘김이 좋고, 향도 좋아 주당들 세계에서는 인기가 대단했었다.

그 당시 ‘오이 소주’(주전자에 오이를 채 썰어 넣고 소주를 붓는다), ‘땡초 소주’(매운 고추를 소주에 넣어 마신다)가 유행했었다. 오이 소주는 향긋한 오이향이 올라와 인기를 끌었고, 땡초 소주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매운 고추와 소주가 잘 버무려져 독특한 향과 맛을 내면서 식욕을 한층 더 돋우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방송에선가 오이와 고추 농사를 지을 때 농약을 가장 많이 친다는 기사가 나갔다. 이 때문에 오이와 땡초 소주는 결국 농약성분이 우러난 소주가 될 것이란 이유에서 주당사회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게 된다.

주당사회에서 변함없이 사랑받고 있는 술은 역시 폭탄주(爆彈酒, bomb shot)일 것이다.

폭탄주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네이버 지식백과가 정의한 기원은 ‘제정러시아 때 시베리아로 유형 간 벌목 노동자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보드카를 맥주와 함께 섞어 마신 것’이라고 정의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폭탄주가 알려진 것은 1960~1970년대 미국에 유학 간 군인들이 들여와 확산되었다. 이후 1980년대 초 정치에 나선 군인들이 정치계와 법조계, 언론계 인사들과의 술자리에서 제조해 마시면서 음주문화의 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1980년대 중반부터는 접대문화가 활성화되면서 종류도 다양해졌다.

폭탄주의 기본은 양주와 맥주 또는 여러 종류의 술을 함께 섞은 술이다. 보통 맥주를 따른 컵에 양주를 담은 잔을 넣어 만든다.

그러나 유흥업소가 아닌 식당이나 대폿집에서 양주를 접하기가 쉽지 않아 맥주에 소주를 타서 마시는 소맥으로 주당들은 만족한다.

우리에게 소맥이 있다면 영국엔 보일러메이커, 아일랜드의 아이리시 카밤, 독일의 예거밤 등 전 세계적으로 발견되는 보편적인 음주문화다.

이상일(63) 작가가 현직 기자일 때인 2001년에 펴낸 <폭탄주 그거 왜 마시는데>에는 폭탄주에 얽힌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실려 있다. 한국 엘리트들의 폭탄주문화 실체는 무엇인지, 손님 서비스를 위해 알아두어야 할 폭탄주를 마시는 이유와 폭탄주 제조법 등을 알기 쉽게 실었다. 아울러 유명 인사들의 폭탄주 체험기를 담았다.

이 책에 실린 폭탄주의 기본은 ▴원자폭탄주(맥주를 채운 잔에 양주 한 잔 분량을 떨어뜨려 단번에 마신다.)▴수소폭탄주(원자폭탄과 반대로 맥주 컵에 양주를 따르고 작은 잔에 맥주를 넣어 섞는 방법)▴중성자탄주(250cc 맥주잔에 양주를 넣고 양주잔에 맥주를 넣어 마시는 것)이라고 했다.

그 밖에도 벤처 폭탄주(전통술과 양주), 테러주, 소방주, 난지도주(테이블에 놓여 있는 각종 음료수와 안주 등을 섞어 만든다), 용가리주 등 이루 열거 할 수 없을 정도로 폭탄주도 다양하게 발전(?)하고 있음을 밝혔다.

청명한 가을 하늘, 주당들에게는 술 마시기에 딱 어울리는 날씨다. 또 머지않아 연말이 다가온다. 그 만큼 술 마실 기회가 늘어난다. 그런데 그놈의 ‘폭탄주’ 때문에 모임에 빠지겠다는 사람도 많다는 것을 주당들은 알아야 한다. 나 좋다고 억지로 폭탄주 돌리고 강권하면 찍힌다는 것은 이제 상식이다.

그런데 10대 청소년 중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알코올중독으로 병원을 찾은 총인원이 9천명에 달하고, 이 기간 33% 가까이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우리를 놀라게 한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김광수 의원(민주평화당)이 건강보험심사평가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전체 알코올 중독 환자는 2014년 7만3천992명에서 2018년 7만1천719명으로 3.07% 줄었다.

반면 10~19세 알코올 중독 환자는 2014년 1천588명, 2015년 1천726명, 2016년 1천767명, 2017년 1천968명, 2018년 2천106명으로 꾸준히 늘어 5년간 총 9천155명이었다. 이 기간 증가율은 32.6%에 달한다.

특히 청소년 중에서도 여성 청소년의 알코올 중독 환자 증가율이 65.8%로 남성 청소년(13.1%)보다 높다는데 다시 한 번 놀라게 한다.

더욱 놀라운 것은 알코올 중독으로 병원을 찾은 10대 여성 청소년은 2014년 588명이었으나 2018년 975명으로 늘어났다. 같은 기간 10대 남성 청소년은 1천명에서 1천131명으로 증가했다. 또 청소년의 첫 음주 경험은 2018년 기준 13.3세였고, 30.1%는 폭탄주를 마신 적이 있다고 답했다.

중장년들이 즐겨 마시는 폭탄주마저 어린 사람들에게 양보를 해야 하는 세상이 되어 가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삶과술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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