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 시대정신의 변화와 2019년 세제 개편안에 대한 검토

주류산업과 정책이야기(27)

주류 시대정신의 변화와 2019년 세제 개편안에 대한 검토

조 성기(趙 聖基,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아우르연구소, 대표

 

금년 뜨거운 여름, 정부의 ‘세제발전심의위원회’가 있었다. 이번 위원회는 과거와는 아주 다른 의미를 가진다. 그 위원회에서는 맥주와 탁주 주세 개편안이 발표되었다. 내년부터 그 개편안대로 실행될 것이라 한다.

위원회의 명칭대로 과연 이번 개편으로 주류 세제가 전보다 발전하게 되는 것일까? 아니면, 퇴보하는 것일까? 둘 다일까?향후에는 또 어찌해야 할까?평가하고, 변화 방향을 찾아봐야 한다.

이번 주류 세제 개편을 볼 때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이 ‘시대정신’에 대한 논의가 아닐까. 그런데 다짜고짜 왜 시대정신일까?

시대정신은 19세기 독일을 중심으로 등장한 ‘한 시대를 지배하는 정신적 경향’을 말한다. 주류 세제가 종가세제 중심으로 운영된 지 반세기가 지났다. 1968년 이후의 일이었다. 가끔 일부 업계의 대표자들이나 몇몇 전문가들이 종량세를 주장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주세의 주무부처가 종량세제를 명시적으로 내건 개편은 이번이 처음인 듯싶다.

이제 주류 세제를 종가세제에서 벗어나 종량세제 중심으로 운영하겠다는 것이다. 믿어지지 않는 이들도 많아 서로 꼬집어 볼 듯싶다. 획기적인 전환이기 때문이다. 종량세제는 한마디로 무엇일까? 건강중심 세제다. 부정할 이가 드물 것이다. 게다가 글로벌 표준세제다.

20456568 – concept of the dangers of drinking and driving

주세를 국세청 중심으로 운영할 때인 1990년대 후반에 정책 당국자들이 알코올 건강이 중요하다고 외쳤었다. 그때도 종량세 체계를 주장하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세제는 그대로 두고 소주와 맥주 한 병 당 2원씩 주류소비자보호사업 회비를 걷자는 주장이 나왔었다. 비용이니 소비자가 내는 셈인 데 처음에는 한해에 200억 원이 넘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그 사업은 10여년 이상 추진되다가 중단되었다. 중단 이유는 그 자금이 주세도 기금도 아닌 주류업체들의 비용으로 처리되었기 때문이었다. 비용으로는 지속성을 담보하기 어려웠다.

안타깝게도 그 돈으로 추진되던 알코올 문제 예방과 치료사업이 사라졌다. 그러자 국내 알코올에 관한 담론이 거의 사라졌다. 하지만 국세청을 중심으로 알코올 문제에 대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확인할 수 있었던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술 문제와 건강에 대한 인식이 정부 내에 싹텄지만 제도화에는 실패했던 것이다.

보건복지부 중심으로 지난 20여 년간 건강증진기금을 술에 부과하자는 주장이 끊임없이 계속되었다. 기금 주장도 술 건강에 대한 인식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하지만 기금은 한 부처의 뒷주머니라는 인식이 커 주류 소비자들이 저항 했고, 당시 재정경제부 등 행정관리부처들도 반대했다. 문제의 시급성에 대해 등한시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시간이 지나도 진전이 조금도 없었다. 지금 까지도 건강기금은 담배에 대해서만 걷고 있다. 담배는 백해 무익성이 입증되었지만 술은 적정음주가 심혈관계 질환이나 사회적 관계에 유익성 등이 인정되어 기금갹출에는 실패하고 있다.

알코올 건강에 대해 정부 부처들이 공감대를 형성하지 못하면 종량세제를 정부가 공식 견해로 채택하기 어려운 일이 된다. 이번에 기획재정부가 종량세 중심의 세제개편을 한다고 선언적 추진을 한 일은 그런 의미에서 획기적인 변화다. 오히려 ‘과연 부처 간 합의가 실제 있었을까?’ 하는 의문까지 들 정도다.

정부가 종량세 선언을 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종가세제를 주창했을 때와 무엇이 다를까?

지난 반세기를 이어온 종가세제를 보자. 종가세 시대에는 과연 어떤 필요와 어떤 정신이 주류산업과 시장과 정책을 관철해 온 것일까? 청와대에 올린 한 청원문을 보자. ‘우리나라만 조선시대보다도 못한 저급 술을 마시고 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종가세 제도’때문이라고 했다. 거기서 저급의 평가 기준이 무엇일까? 저급=낮은 품질이라면 품질평가의 객관적 기준으로 고객만족도(customer satisfaction)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고객만족도 평가지표로 측정한 소주와 맥주의 점수는 75-76점 정도다. 전자제품, 자동차, 백화점, 은행 등 다른 제품과 서비스 품질수준과 비슷한 수준이다. 소주와 맥주가 저급이라는 평가는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지기 어려운 일부의 의견이 된다.

종가세 방식은 ‘고가주=고세율, 저가주=저세율’ 구조를 유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 것이었다. ‘저가주=저세율’ 원칙은 소주가격을 낮춰 서민들의 표를 얻기 위한 정치가들의 대안이 아니라 경제성장 재원을 확보하기 위한 시대적 의사결정이었던 것이다. 주류산업이 주요산업이던 시대였기 때문이다.

저가 소주의 세율은 고가 위스키 세율과 같은 72%다. 저세율이 아니다. 저가 맥주도 고가 맥주와 같은 세율 72%다. 단연 국내 최고의 세율이다. 고세율인데도 저가로 판매된 것이므로 저가인 이유가 다른 데 있음을 알 수 있다. 저가로 판매되는 이유는 낮은 생산원가와 고효율 생산방식 때문일 것이다.

세율 혜택을 주어서 저가를 유지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전체 주류든 일부 주류에든 종가세제를 채용하고 있는 국가의 경우 시장점유율이 큰 술 가격이 낮지 않다. 터키의 라키주, 멕시코의 데킬라들은 결코 싸지 않다. 종가세제가 반드시 가격을 낮추는 제도는 아닌 것이다.

종가세제는 고도성장이 국책의 중핵이었던 시대의 산물이었다. 그 시대 주류 소비자들의 소득수준은 지금 보다 크게 낮았었다. 위생 및 품질관리가 된 술을 값싸게 다량 공급하면서 수요가 폭증했던 것이다. 비싸게 취하는 일이 사치였던 시대였다. 물론 그 대가는 주류 다양성의 소실이었다.

이제 국민소득 3만 불이 넘어선 시대가 되었다. 곧 5만 불에 다가갈 것이다. 시대가 바뀐 것이다. 이때 종가세제가 역적이라는 지적들은 세제에서 비롯된 문제도 있지만 소비자 선호가 바뀌고 주머니가 두툼해진 데에서 기인한 측면이 더 크다.

주세제도의 공과를 논할 때 인과관계를 명확히 해야 하고 평가의 객관성도 중요하다. 종가세제와 종량세제는 장단점이 다른 세제라는 것을 인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성장시대의 정책적 선택이었으므로 저급 주류를 다량 생산한 주범이 종가세제라는 돌팔매는 적합하지 않다.

소득이 늘자 생산비가 비싸더라도 다양한 원료를 사용하는 제조자들이 늘었다. 예쁜 포장의 제품을 구매하고픈 소비자도 나타났다. 국산 곡물을 원료로 소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비용생산성이 높은 희석식 주류 보다 장기간 숙성된 술을 마시고자 하는 욕구도 커졌다. 게다가 알코올이 국민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정부의 책임성이 강조되었고, 주류의 지역적 이동이 편해지고 거래비용이 줄면서 글로벌 경쟁도 격화되었다.

소비자가 싼 술을 즐겨 마시던 시대, 전자 자동차 제품 등 다른 제품의 수출량을 늘리기 위해 국가 간 협상에서 주류제품을 양보하던 시대, 일정 부분 손해를 보더라도 해외 주류에게 보다 좋은 수입조건을 주던 시대가 지나간 것이다. 소비자의 선호가 다양해지고 안전에 대한 욕구수준도 높아지고, 산업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제도 전환과 합리화, 구조조정이 필요해진 것이다.

국민들의 새로운 가치관으로 대응하기 시작하자 정부가 종가세제를 버리고 종량세 체계라는 새 패러다임을 선택했다고 보는 해석이 틀리지 않을 것이다.

새 시대에는 또 다른 문제가 전개될 수 있다. 그러니 저급 술에 대한 논의는 그만 두는 게 나을 것이다. 술이 다양해지는 것이지 어떤 술은 고급이고 어떤 술은 저급이라는 평가는 사회적으로 유해할 것이다. 소득불평등이 더 커지고 저소득층이 더 광범위하게 형성되고 있다. ‘지하철냄새가 나는 사람들이 싼 맥주를 마신다’는 슬픔은 생기지 않는 편이 낫다.

‘라거맥주’와 ‘희석식 소주’에 대한 적대적 평가도 버리자. 대기업의 라거맥주는 싼 원료를 사용했고, 희석식 소주는 ‘숙성’공정이 빠졌다고 비판한다. 종가세 시대를 풍미해온 술인 라거맥주와 희석식 소주가 국민주로 사회적 윤활유로 기여한 측면을 과소평가해서는 안 될 것이다.

특정 주류는 특정 생산방식을 가질 뿐이다. 누구나 언제든지 마실 수 있는 술을 저급 주류로 폄하하는 것은 옳지 않다. 서로 다른 술일뿐이다. 평가와 선택은 선호하는 소비자들의 몫이다.

술의 역사 속에서의 종가세제는 서민의 표를 얻기 위해 정치가들이 선택한 세제가 아니라 ‘국가 성장재원을 술에서 얻자’는 시대적 상황이 선택한 정책이므로 잘못되었다는 혐의를 벗겨주어야 한다. 그래서 세제 개편이후 누군가 피해를 최소화 되도록 ‘행정의 책임성’에도 관심을 가질 이유가 있는 것이다.

이제 종량세제를 전면 추진할 때 발생할 중장기 대책이 즉각적으로 필요하다. 종량세제로 바뀔 때 분명한 것은 도수 높은 술의 가격이 오른다는 진실이다. 통상 고가 맥주, 고가 막걸리, 고가 와인, 고가 위스키 등 높은 가격의 술은 가격이 낮아지기 마련이다. 이는 고가의 술 구매자인 고소득층에게 유익한 세제가 될 수 있다. 이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종량세 전환에 대한 당위성이 주류다양성 확보 보다 국민의 건강강화가 핵심이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 기획재정부의 발표를 보면 오히려 주류다양성에 주목하고 있어 걱정이다. 환경개선에 대한 방향성도 역주행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종량세 체계를 잘 추진하면서도 그 본령에서 벗어나게 되고 필요한 시대정신과도 부응하지 못하는 내용이 전진 배치되게 된다. 주무부처의 ‘생각이 다른데 가 있지 않은가?’ 하고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다.

개편안에 따르면, 기존 출고가에 따라 개별적으로 매겨지던 주세가 주종 내에서 종별로 단일 세율에 적용된다. ‘종가세 체계에서는 다양하고 고급화된 수제 맥주를 개발하기 어려웠다’는 정부의 판단은 종량세 선택이 건강에 있지 않았다는 평가를 받게 된다. 부수적 성과가 앞장서서는 안 된다.

병맥주 가격이 오르고 캔 맥주 가격이 낮아지는 방향은 환경보로에 역행하는 것이다. 캔 사용을 줄이고 병사용을 늘리는 것이 지구환경 보호를 위해 필요한 시대다. 이번 개편안은 보다 더 촘촘히 재고해야할 점이 산적하다. 정부는 종량세 전환으로 소비자 후생이 높아질 수 있을 것을 기대한다고 했다.

고품질 맥주와 막걸리 출시 확대 등으로 주류산업 경쟁력이 강화하고 주류 다양성 확보로 소비자의 선택권 확대한다는 발표가 전부여서는 국격 상 위상이 지적될 수 있는 일이다. 발표문 전면에는 건강과 환경이 배치되어야 옳다.

기획재정부나 국책연구기관의 자료에서 알코올문제 악화를 공표하고 있는 시점에 더욱 그러하다. 10대의 알코올중독 치료자 수가 최근 5년간 33% 가까이 증가했다. 청년층 알코올 중독 환자가 늘고 있는 것이다. 술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도 10조원으로 발표했다. 절대액이 늘고 있음이다. 술로 인한 사망자가 하루 평균 13명이고. 알코올은 담배 성분인 비소, 카드뮴과 같이 1군 발암물질이자 중독물질이라고 발표했다. 정부기관의 자료다.

성인의 고위험음주율이 14.2%로 늘고, 음주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흡연이나 비만 보다 많았다. 음주 운전도 적지 않고 살인과 강도, 강간 등 강력 흉악범죄의 30% 이상이 음주 상태에서 발생한다. 구급대원 폭행자의 92%가 주취 폭력이고, 자살·자해 손상 환자의 42.0%는 음주와 관련성이 있다. 정부가 술 문제를 적극 발표하며 주류산업진흥과 술의 다양성 확보가 정책의 실적이라고 한다면 앞뒤가 맞지 않는다.

게다가 이 문제들을 줄이기 위한 예방과 치료예산은 너무 적다. 예방, 치료·재활 인프라가 크게 미흡한 것이다. 주세를 걷는 데에만 신경 쓸 일이 아니라 어떻게 쓰는 가에 대해서 더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 분명하다.

이번 개편안이 반쪽의 개편이라는 측면도 언급하자. 기획재정부는 종합청사진을 개편안과 동시에 내놓아야 했다. 반쪽뿐이라면 ‘임시 변통적(ad hoc) 문제해결 방안이 아닌가?’ 하는 의혹을 살만하지 않겠는가. ‘당정 협의를 열고 개편안을 확정할 때 시대정신의 변화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가 있었을까?’ 의문이 이는 것은 당연지사다. 주류 제조, 유통, 소비, 소비 후 문제, 제조 이후 포장재 재활용이나 원료 폐기물 등에 대한 종합적 대책도 함께 검토되었어야 했다. 과연 그랬을까?

물론 맥주와 막걸리만의 개편에 그치지 않을 것도 천명했다. 정부는 희석식 소주와 증류주, 약주·청주 등에 대해서도 향후 종량세 전환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업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어 반발이 예상되는 주종에 대해서는 미루었고, 당장 큰 반발이 없는 맥주와 탁주에 대해서만 시행한다는 것이다. 해외맥주에 대한 역차별 문제 해소나 고급 주류의 개발이라는 눈앞의 과제해결에만 목표를 두고 단기 구조혁신에 치중했을 뿐 중장기 청사진이 안 보이는 플랜이라는 비판에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

주세제도 개편은 원료, 제조, 기술, 유통, 환경, 수출입, 알코올문제, 전통주 등 모든 분야에 영향력을 가진다. 술은 제례와 만남, 관계 등 우리 생활 곳곳에서 빠지지 않고 과할 때 어김없이 문제가 발생하는 묘한 물질이다. 술은 일반재화가 아니고, 특별한 물질이라는 데에 공감대를 가진다. 그러니 주세의 변화는 주류정책 전반에 대해 촘촘한 검토를 한 결과를 함께 내놓아야 맞다.

‘사회적 저항을 덜한 부분만 먼저 하고 나머지를 나중에 할 것입니다.’라고 미루어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언제가 될지 모르는 미래는 소비자나 업계를 불안하게 한다. 한꺼번에 다 바꾸자는 것이 아니라 방향성과 단계를 논하고 그 세부 복안을 꺼내 놓고 추진하자는 것이다. 술에 대한 정의, 정책관, 원료부터 산업, 건강, 문화와 쓰레기에 이르는 역사 철학 생태적 관점까지도 모두 펼쳐놓고 협의해야 한다는 것이다. 지금 그것들이 안 보인다.

종가세와 종량세가 엉켜있는 상황, 서민 주류의 가격들이 오르는 상황, 그 시점도 불명확한 상황, 업계의 상대적 피해에 대한 공감대도 보이지 않는 상황, 국민건강이나 환경 보다 주류 다양성이 치중하고 있는 상황들을 더 검토하고, 주세의 활용방안까지도 치밀하게 준비해서 추가 개편안을 발표해야 할 것이다.

국책연구기관의 보고서대로 “궁극적으로 전 주종을 종량세로 전환”하는 그림을 완성할 때에는 그 모든 것이 함께 협의되어 정상적으로 추진할 것을 모두가 바라고 있다. 믿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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