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 축제장의 술 시음 행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술의 축제나 박람회장을 찾아갈 때마다 드는 고민이다. 술의 행사는 대체로 양조장별 개별 부스가 마련되고, 시음술을 제공하면서 술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전개된다. 신상품을 내놓고 홍보하려는 업체에서는 그 대상이 유통업자거나 구매 고객이면 좋고, 그냥 시음만하는 사람이라도 잠재적인 고객이 될 수 있으니 좋을 것이다.
그런데 시음하려는 이들이 한꺼번에 몰려오면 문제가 생긴다. 술을 소개하거나 홍보할 겨를이 없다. 술 주인은 손을 쭉 뻗어 내민 술잔에 술을 따르기 바쁘고, 술을 맛본 사람은 뒷사람에 밀려나기 바쁘다. 이렇게 되면 술을 맛보기 위해서 길게 늘어선 줄이 결코 기쁘지만은 않다. 손님은 술맛을 감지하기 어렵고, 주인은 술을 소개하기도 어렵다. 거리나 광장에서 술 축제를 했을 때 이런 경우는 허다하게 벌어진다.
어느 주말 술 행사장엘 찾아갔을 때의 일이다. 오전 10시부터 11시까지는 유통상과 관계자들만 입장할 수 있는 시간이 있어서, 비즈니스 상담이 이뤄졌다. 11시가 지나서부터 일반인 입장이 이뤄졌다. 입장료 3천원을 내면 시음 술잔 1개를 주고, 그 술잔으로 시음할 수 있었다. 술에 관심있는 사람들이 밀려들기 시작하는데, 부스마다 길게 줄을 서서 시음하느라 야단법석이었다. 시음하려는 이들이 너무 많아, 술 따라주기에 지친 주인들은 아예 시음이 끝났다는 안내문을 내걸거나, 부스를 비워놓고 자리를 떠버렸다. 어떤 이는 공공연하게 내년에는 행사장에 나오지 않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일이 해마다 반복되다보니, 행사에 참여하지 않는 업체가 늘어났다. 그래서 주최측에서는 양조장들이나 유통업자들의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서, 부스 참가비를 받지 않고, 숙소도 제공하고 있었다. 부스비와 숙소비는 지자체의 예산으로 충당되고 있었다. 이를 두고 어떤 이는 도시가 주민들을 대상으로 술 잔치를 벌이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이와 유사한 일은 음식을 주제로 한 행사장에서 흔히 벌어지는 일이다. 그런데 술은 다른 음식들과 달리 ‘사람을 혼미하게 음식’이라 조심스럽다.
막걸리학교를 운영하는 우리 또한 이런 고민을 안고 2013년 남양주 슬로푸드 국제 행사에 참여하게 되었다. 슬로푸드 중에 발효 음식이 있고, 발효 음식 중에 막걸리가 있기에, 막걸리를 통해서 시민과 소통하고자 했다. 우리는 술 교육기관이라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중간지대에서 다양한 술을 소개할 수 있는 장점이 있었다. 행사를 준비하면서 우리가 고민한 것은 ‘경계‘였다. 술을 제공하는 사람이나 마시는 사람이나 경계가 있어야 했다. 그 경계는 누구에게, 어떤 술을, 어떻게, 얼마나 줄 것이냐였다. 그렇지 않고서는 술만 따르다가, 행사가 끝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도대체 왜 무엇을 위해서 술 행사를 했는지 후회하게 되고, 다시는 행사장에 나오지 않겠다는 각오만 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술의 특징을 분류하여, 시민들에게 맛보이기로 했다. 막걸리를 쌀막걸리, 밀막걸리, 탄산막걸리, 허브막걸리, 전통누룩막걸리, 프리미엄막걸리로 나눴다.
① 쌀 막걸리는 쌀을 원료의 50% 이상 사용하여 빚은 막걸리다. 술맛이 깔끔하고 경쾌하면서 부드럽다. 한국은 쌀농사를 많이 짓는 곳에서는 쌀막걸리, 보리 농사를 짓는 곳에서는 보리막걸리, 좁쌀 농사를 짓는 곳에서는 좁쌀막걸리를 빚어왔다. 1990년에 쌀로 다시 술을 빚게 되면서 점증적으로 쌀막걸리가 많아졌다.
② 밀 막걸리는 밀을 원료의 50% 이상 사용하여 빚은 막걸리다. 술맛이 구수하고 텁텁하면서 묵직하다. 1960년대 중반 양곡정책에 따라 생산되기 시작하여, 1970~80년대에 주도적으로 소비된 막걸리로, 현재는 농촌에서 많이 빚고 있다.
③ 탄산 막걸리는 완전 발효시킨 뒤에 안정되고 청량한 맛을 위해 탄산을 주입한 막걸리다. 199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기간이 길어서 전국과 해외에 유통하기 좋다.
④ 허브 막걸리는 약초나 열매를 넣어서 빚어 기능성을 강화시킨 막걸리다. 막걸리에 많이 사용하고 있는 기능성 재료로 인삼, 오미자, 솔잎, 구기자, 울금 등이 있다. 국화, 오디, 곤드레나물을 넣는 막걸리도 있다. 약주의 전통이 강한 한국술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⑤ 누룩 막걸리는 한국의 전통 발효제인 누룩을 사용하여 빚은 막걸리다. 전통 누룩은 통밀을 빻아서 단단하게 디뎌 만드는데, 2개월 정도 걸린다. 누룩을 사용하면 구수하고 감칠맛나고 농익은 과일향이 돈다.
⑥ 프리미엄 막걸리는 알코올 도수가 10%가 넘거나, 찹쌀이나 유기농쌀 등의 특별한 재료를 쓰거나, 제조방법 다르고 숙성 기간이 길어, 고가에 팔리고 있는 막걸리다. 막걸리의 다양한 맛을 추구하기 위해서 소량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위와 같이 막걸리를 6가지로 분류하여, 그 특징을 설명하면서 술을 따라주기로 했다. 시음장이 넓고 시음하는 사람이 많으면 6명이 각기 한 개씩 맡아 소개하고, 조금 한산하면 3명이 2종류씩 소개하는 것으로 했다. 술은 전국에서 고루 구매하기로 했다.
그 다음에는 누구에게 어떤 잔을 써서 얼마나 줄 것인지?를 결정해야 했다. 우리는 무료로 술을 따라 주는 것은 지양하기로 했다. 일단 최소한의 비용이라도 받고 술을 제공하기로 했다. 그래야 공짜라면 무언지도 모르고 마시려드는 사람들을 배제할 수 있고, 댓가를 지불한 만큼 무엇인가 귀담아들으려는 사람들도 늘어날 것이라고 보았다. 대신에 시음하는 행위가 상업적인 행위로 비춰지지 않도록 배려했다. 술을 홍보하면서 돈까지 받으려고 해? 라는 불쾌한 느낌이 들지 않도록 했다. 그래서 우리는 전국에서 20여종의 술을 구하는 것 말고도, 행사용 전용 유리 술잔을 1천개를 준비하고, 시음 쿠폰을 만들었다. 그리고 시음료를 3천원으로 책정했다. 3천원을 술값으로 치면 술잔이 공짜고, 술잔 값으로 치면 술이 공짜였다.
우리는 “쿠폰을 사시면 5종류의 술을 시음할 수 있습니다!”라고 홍보했다. 그리고 쿠폰을 3천원에 산 이들에게 술잔을 덤으로 제공했다. 술과 술잔은 물질이지만, 쿠폰은 종이장에 적힌 약속에 불과했다. 술과 술잔은 제품이지만, 쿠폰은 문화 상품이었다. 그러자 술을 시음하는 것은 상거래 행위가 아니라, 문화 소통 행위가 되었다.
행사를 진행하면서 술을 5잔 제공하는 것을 3잔으로 줄였다. 한 잔에 100㎖ 정도씩 따라주니 술량이 많았고, 시음하는데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시음하는 동선이 일직선이라 한 사람당 시음 시간이 길어지니 기다리는 사람도 많아졌다. 그래서 시음 횟수를 3잔으로 줄였다. 하지만 나중에는 시음하는 술의 종류에 제한을 두지 않았다. 술을 반 컵(100㎖)씩 제공하지 않고, 소주 반잔(25㎖)이나 한잔(50㎖) 정도 제공하여 술의 분량과 시간 문제를 해결했다.
하지만 아쉬운 점은 시음하는 부스의 공간 구성이었다. 시음장의 입구가 분명하게 존재하는 독립된 공간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스를 일직선상으로 구성하지 않고 정방형이나 원형으로 구성하여 시음장에 들어온 사람들이 좀더 자유스럽게 살펴보고 맛볼 수 있게 만들 필요가 있었다. 술 마시는 양은 쿠폰의 숫자나 토큰으로 계산하게 만들면 될 것이다.
2013년 남양주 슬로푸드 국제대회의 막걸리시음장을 운영하면서 우리가 느낀 점은 여럿 있었다. 술 시음장의 공간 구성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느꼈다. 그 공간 구성 속에 행사 기획자의 모든 의도를 담아낼 수가 있다. 그리고 행사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기표들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행사 공간의 입구를 만들어서 안팎을 구분하거나, 쿠폰이나 전용잔을 만드는 것들이 새로운 기표에 해당된다. 그렇게 해서 시음하는 이들이 새로운 의미, 즉 “내가 어떤 술을 맛보고 있는가” 하는 의미를 느낄 수 있게 해야 한다.
술 축제장은 양조장이나 유통회사의 일방적인 홍보의 장이 아니요, 시민들이 술을 맘껏 마셔대는 해방 공간도 아니다. 술을 매개로 서로가 소통하는 자리다. 술은 한 고장의 곡물과 물과 미생물을 이용하여, 그 고장 사람들이 만들고 소비하는 기호식품이다. 술 축제를 하고 시음을 하는 것은 우리가 잠시 잊고 있었던 술의 요소들, 땅과 곡식과 미생물과 생산자와 소비자 들에 고마움을 표시하는 잔치로 이어져야 한다.
사진설명
1. 2013년 슬로푸드 국제대회의 막걸리 시음장에서 시음하는 사람들
2. 막걸리를 6가지 주제로 분류하여, 시음했다.
3. 시음장에서는 지역의 다양한 막걸리를 팔기도 했다.
4. 시음용으로 제작한 수제 막걸리잔. 용량은 150~200ml다.
5. 유료 시음을 안내하는 게시판.
6. 막걸리 시음행사의 의미를 부여하기 위한 시음 쿠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