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은 가을인데 기온이 갑자기 떨어졌다. 서늘한 가을바람이 옷깃을 여미게 하는 계절이다. 연말이 다가옴이 전화를 받아보면 안다. 벌써부터 해 넘기기 전에 얼굴 한 번 보자는 연락이 오는 것을 보면 바야흐러 술독에 빠져야 할 날들이 밀물처럼 다가오고 있음을 느낌으로 안다.
술이란 참으로 묘한 것. 어제 그렇게 마셨으면 오늘은 참아야 하는 것인데도 해질 무렵이면 또 생각나는 것이 술인 것 같다.
연말 회식자리에는 대개 지체 높은 분들이 참석하기 쉬운데 이런 술자리에서 처신을 잘못하여 일 년 동안 공들여 쌓아 놓은 실적이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으니 월급쟁이들은 각별히 신경써야하는 계절이기도 하다.
필자가 알고 지내는 어느 지인은 술잔을 부딪칠 때(건배) 손아래 사람이 자기보다 잔을 높이 부딪치면 술자리에서 나와 버린다고 한다. 주도가 없는 사람과 술을 마시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는 하지만 지나친 감도 없지 않다. 어쨌거나 자기보다 지체가 높은 사람한테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는 것은 손해 볼 일은 아니다.
직장인들이 사장이나 자기보다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들과 술자리를 할 경우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덕목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만 술이 약하면 가급적 높은 사람이 앉은 자리에서 멀리 떨어져라. 반대로 술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자신을 알릴 절호의 기회이니 가급적 가까이에 앉아 대작을 한다.
지체 높은 분이 술잔을 비우면 따라 드리고, 술잔을 부딪칠 때 상대방 보다 술잔을 밑으로 부딪친다. 또 고개를 살짝 돌려 마신다. 이런 행동은 상대방에게 최소한의 예의를 갖추는 것으로 절대로 손해 볼 일은 없다.
특히 회식자리에서 상급자가 술이 취했을 때 집까지 바래다준다면 금상첨화다. 다음날 자기를 집까지 데려다 준 사람이 누구란 것을 알면 그 상사마음속에는 각인 돼 남아 있을 것이다.
“이거 아부하라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각박한 세상에서 월급쟁이로 살아남으려면 그 정도는 할 줄 알아야 한다.
동료나 동창회 같은 평범한 술자리에서도 자리(席)는 매우 중요하다. 평소엔 얌전하다가 술만 마시면 꼭 옆 사람과 시비 거는 사람, 술에 취해 소리를 지르거나 언성을 높이는 사람, 자기는 안마시고 상대방에게만 억지로 술 권하는 사람 등등 모두가 술자리에서 기피인물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은 자신은 술매너가 좋다고 자신한다.
또 있다. 술값도 안내면서(거의 평생) 2차 3차 가자며 도무지 끝을 모르고 “한잔만 더 하고 가자~”고 생떼를 쓰는 사람도 있고, 반대로 계산도 안하고 일찍 도망가는 사람, 술 취해 우는 사람도 술자리에선 피해야 할 인물들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 할 것 없이 술자리의 상석 위치는 비슷하다. 일반적으로 입구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안쪽에서 벽을 등지고 앉아 출입문을 바라볼 수 있는 중앙좌석을 상석으로 간주한다.
그런데 이런 자리에 턱 앉아 있거나, 상사가 참석하기 전 음식이 나왔다고 먹고 마시기를 시작한다면 상사의 기분은 망쳐버린다.
“술은 기호식품이니까 마시고 싶을 때만 마시고 싶지 않을 때는 마시지 않겠다”고 한다면, “참 잘하는 짓”이라고 상이라도 받을까?
술이 약한 사람이 연말을 잘 견디어 내려면 회식자리에서 물을 많이 마셔둔다. 이는 그 어떤 보약보다 났다. 물을 많이 마셔 술을 최대한 희석시켜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후래자(後來者) 3배’ 안 마시려면 회식자리에 지각 하지 말고, 최대한 눈치껏 적게 마시는 것만이 연말연시를 슬기롭게 잘 넘겨 내년을 기약할 수 있다.
주당들에게 드리는 tip: 술자리에 참석하기 전 홍시 2개 정도를 먹고 참석한다. 이유는 술이 덜 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