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 화백 문하생 출신
포털 다음에 水마다 연재
청강大 만화창작과 출강
꽤 오랜 시간 동안 허영만 화백의 문하생(門下生)이었다고 했다. ‘아스팔트 위의 사나이’(1992), ‘비트’, ‘미스터 Q’(1994) 등 굵직한 히트작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고도 했다. 아무렴 어떨까. 이력(履歷)은 열정(熱情)에 한참을 못 미친다. 그도 그렇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도 그렇게 생각한다. 내 소중한 경험은 대중에게 소중한 작품으로 승화시키면 그뿐이다. 아직도 식지 않은 열정은 그걸 가능하게 한다.
김용회(41) 작가를 지하철 건대입구역 바로 앞에서 만났다. 이미 구면(舊面)이었다. 지난 5월 술 평론가 허시명 씨가 교장으로 있는 ‘막걸리학교’ 동문회에서 잠깐 인사를 나눈 적이 있다. 그때 허시명 씨가 “포털사이트에 막걸리 만화를 연재하는 작가”라며 중간에서 명함을 주고받도록 해줬다. 인터뷰 한 번 하자 했더니 “아직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라고 머뭇거렸다. “때 되면 연락드리겠다”며 그땐 물러섰다가, 얼마 전 만나자고 했더니 흔쾌히 수락했다.
커피 한 잔을 마시며 흔히 묻듯 어떻게 시작했냐고 물었다. 운명이었다고 무겁게 답했다. “실업계 고교를 졸업하고, 무조건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서른 즈음에 소기업 사장을 꿈꾸며 자격증도 따면서 열심히 일했죠. 헌데 6개월 주기로 머릿속이 복잡해지더라고요. 한없이 방황하다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걸 하지 못해서 그런 줄 알게 됐죠. 내가 잊고 있었던 게 무언지 한참을 고민한 끝에, 학창시절 공책에 수없이 그려댔던 만화가 내 꿈이자 현실임을 알게 된 거예요.”
만화 같은 얘기, 현실에도 있음을 알게 됐다. 그나저나 김 작가가 한 달 반 동안 만화학원에서 걸레질 하며 느낀 점 하나. “만화는 문하생을 해야 빨리, 제대로 배우는 거구나.” 그렇게 그는 허영만 화백의 품으로 들어갔다.
김용회 작가는 현재 막걸리를 주제로 한 만화 ‘대작(對酌)’을 포털사이트 ‘다음’에 연재 중이다. 매주 수요일에 한 회씩 업데이트하며, 11월 10일자까지 39화가 소개되고 있다.
김용회 작가와 만화 ‘대작’과의 조우(遭遇). 말 그대로 정말 우연이었다. 지난해 9월 난데없이 만화를 연재해보지 않겠느냐는 의뢰를 받았다. 현재 ‘대작’을 함께 만들고 있는 이종규 작가에게서다. 한 출판사에서 막걸리를 소재로 한 만화를 기획중인데, 그에 걸맞은 작가를 찾는 중이라고 했다. 김 작가와 이 작가는 청강문화산업대학에서 강의를 맡고 있다. 김 작가의 경우 2006년부터 만화창작과에 출강(出講) 중이다. 빡빡한 일정이 눈에 보이는 듯 뻔했지만 일단 수락했다.
“출판사에 처음 찾아갔는데, 당시 이 만화에 대한 로드 맵(road map)이 전혀 없었어요. 앞이 캄캄했죠. 일단 해보기로 마음먹었으니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해나가기로 했습니다.”
사실, 허영만 화백의 ‘식객’은 여러모로 큰 반향을 일으켰다. 그 영향은 만화업계에도 고스란히 미쳤다. 만화라는 분야 역시 신문이나 잡지 등의 매체와 마찬가지로 사전 취재작업을 한다. 그러나 ‘식객’ 이전엔 만화업계에서 ‘취재’라는 단어는 생소했다. ‘식객’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취재와 상상의 비율이 50대 50으로 맞춰졌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시각이다.
김 작가는 바로 취재계획을 짜고, 이를 바탕으로 드라마적인 요소를 가미했다. 마침 막걸리 붐이 본격적으로 일기 시작했다. 그런 만큼 전국의 막걸리 장인들을 만날 길이 열렸고, 유명 막걸리 양조장도 조금은 비집고 들어갈 틈이 보였다. 내친 김에 한 무료 일간지에 연락했다. 그리곤 포털사이트 다음에도 연락했다. 연재를 부탁하기 위해서였다. 때가 좋았는지 두 군데에서 모두 연락이 왔다. 온?오프라인에서 동시에 만화가 연재된 건 그때까지 허영만 화백뿐이라고 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10월 말부터 본격적인 취재가 시작됐다. 처음 만난 사람이 우리술 전문가 류인수 씨다. 그에게서 전통방식의 막걸리 원주(原酒)를 마셔볼 기회를 얻었다. 이를 통해 전통누룩과 입국의 개념에 대해서도 알게 됐다. 이후 만난 사람이 서울탁주의 성기욱 전무다.(김용회 작가가 취재할 당시 성기욱 전무는 서울탁주 소속이었으며, 현재 충남 당진에 ㈜성광주조를 설립했음을 밝혀둡니다) 성 전무를 통해선 가공식품으로서의 막걸리의 맛과 역사에 대해 차근차근 배웠다. 김 작가는 “운 좋게도 과거와 현재의 막걸리를 한꺼번에 배울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고 했다. 전통방식으로 누룩을 빚는다는 부산의 금정산성막걸리도 찾았다. 일단 찾고 보니 꽤 유명한 막걸리임에도 오히려 부산사람들은 잘 모르는 게 신기했다. 송명섭막걸리와 지평막걸리를 만난 것도 큰 힘이 됐다.
“취재를 하다 보니 느끼는 것이 있는데, 이젠 주질(酒質)시대라는 거예요. 웬만큼 만들어선 소비자의 입맛을 움직이기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큰 업체도 당연히 주질을 높여야 하죠. 그리고 유통업체에 깔린 맛없는 막걸리들도 조만간 정리될 것 같습니다.”
김 작가는 일주일이 빠듯하다. 월?화요일엔 출강이 있고, 나머지 요일을 쪼개 만화작업과 취재로 시간을 보낸다. 매주 수요일이 연재이니 마감 스트레스도 이만저만 아니다. 대략 훑어봐도 강행군이다. 그래도 그에겐 이 일이 즐겁다. 생계수단의 이유도 있지만, 소망했던 것을 열정으로 채우니 이보다 좋을 순 없는 것이다.
만화 ‘대작’은 현재 2권까지 시중에 나와 있다. 한창 편집?수정작업 중인 3권도 곧 선보일 예정이다. 그 인기를 반영하듯 지난여름엔 드라마화(化) 하기로 결정됐다. 내년 초쯤이면 TV 드라마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영화화 문제는 현재 교섭 중이다.
김 작가는 기회가 되면 전국 곳곳에 숨겨져 있는 비주(秘酒)들을 발굴해 내 이를 소개하고픈 마음도 갖고 있다.
사실, 만화 대작(對酌)은 ‘대작(大作)’이 되길 원치 않는다. 확 타오르다 금방 꺼질 것 같으면 시작조차 않는 게 낫다. 조금씩, 서서히, 그러나 꾸준하게 이 만화에 대한 관심이 이어지길 바랄 뿐이며, 그렇게 앞으로 5년쯤은 계속 연재됐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