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거봉포도를 고급술로 개발 한 (주)두레양조 권혁준 대표
지역농업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가는 6차산업의 선두주자 ‘두레앙’
“맛과 향이 탁월한 거봉 포도 주산지에서 만들어내는 두레양조”
포도(葡萄)는 우리 인간이 가장 오래전부터 재배한 식물 중 하나다. 종교학대사전에 의하면 『창세기』9장 20절에 노아가 방주를 나와서 포도밭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그것은 일반적으로 생명과 풍요, 환락과 축제를 상징한다. 또한 성서에서 포도는 신의 자비의 상징으로 생각되며, 모세는 이스라엘인에게, 따다 남기거나 지상에 떨어뜨린 포도 열매는 방치해서 빈자에게 주라고 하였다.
그래서 포도의 꽃말이 기쁨, 박애, 자선이 되었는지 모른다. 성당에서 성찬례, 교회에서 성찬식 때 성찬용 포도주를 사용하고 있는 것도 이 같은 이유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어쨌거나 포도가 열리지 않는 한 겨울에 와이너리를 찾는다는 것은 재미가 없어 보일 것 같기도 하지만 와이너리를 찾는 것만으로도 이미 마음 속 가득 포도송이가 주렁주렁 열리고 있었다. 거기엔 맛 좋은 와인이 있기 때문이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거봉포도로 노제와인과 브랜디를 생산하고 있는 농업회사법인 (주)두레양조(대표 권혁준, 58)는 천안시 입장면에 위치해 있는 와이너리다. 한가한 농촌이었던 이곳도 개발의 바람을 타고 크고 작은 공장들이 들어서서 도농형태로 변해가고 있다. 목가적인 전원 풍경을 기대했었는데…. 다소 아쉬운 감은 없지 않지만 아직 남아 있는 논이며 포도밭들이 도시인들이 보기엔 부족함이 없다.
와인은 살아 있는 생명이다
김준철 와인스쿨 원장은 그의 저서 <와인, 어떻게 즐길까>에서 ‘와인은 생명의 술’이라고 했다. 처음 담글 때는 야성적인 맛을 풍기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맛이 성숙해지는 매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아름다운 숙성의 변화 못지않게 매력 있는 음료로서 오랜 역사와 함께 지내온 뿌리 깊은 술이기 때문에 와인을 마신다는 것은 그 오랜 역사와 문화를 접촉한다는 뜻도 된다고 했다.
특히 유럽에서 와인 산업이 일찍이 발달한 것은 식수가 귀한 나라에서는 물대신 와인을 마셔왔다. 물이 귀한 이스라엘에서 물 대신 포도주를 주는 것도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다.
때문이었을까. 십자가에 못 박혀 있던 예수가 “목마르다.” 하셨을 때 사람들은 해융(海絨)에 포도주를 적셔 예수의 입에 대주었다.
남성일 경우 몸속에 평균 60% 이상이 수분이다. 때문에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물은 필수 조건이다. 물이 귀해 와인을 마신다는 것, 그래서 와인은 생명이라고 하는 것은 과장된 표현이 아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그들이 제사지내는 신전은 포도덩굴로 장식되며, 성소에 불가결한 장식이 되었다. 또한 포도주에 취하는 것이 사람들에게 고통을 잊게 했기 때문에, 포도덩굴이 무성한 장소가 <도피의 장>을 의미하게 되며, 고대 로마에서는 무화과와 함께 <가정의 위안>을 표현하는 식물이 되었다.
이런 이유를 들어 생각해 보면 와인을 생산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신적인 존재라고나 할까.
우루과이라운드 때문에 지역농업의 성공사례를 만들어 보고자 청춘을 불사른 사람
현재 (주)두레양조를 운영하고 있는 권혁준 대표는 한국포도가공연구회를 모태로 발전한 (사)한국와인생산협회의 회장을 역임했고, 한국와인 산업 발전을 위해 전국와인생산업체와 함께 연대하고 또한 한국증류주협회 출범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가 와인산업과 인연을 맺은 것은 중 3때라고 했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신 바람에 얼떨결에 가업을 이어 받고, 포도재배에 눈을 뜨게 되었다는 것. 그래서 농과대학을 다니게 되었다. 무엇이 농업을 발전하지 못하도록 제약하는지 알아야 했기 때문이다.
권 사장은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 등으로 포도수입이 개방되면 큰 타격을 받겠다는 생각으로 일본을 비롯, 프랑스, 독일, 이태리, 스위스, 그리스, 미국, 캐나다 등지의 와이너리를 찾아다니며 선진국의 와이너리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포도는 비타민과 유기산이 풍부하여 과일의 여왕이라고도 불리지만 30여 년 전 한국에서는 와인에 대해 이렇다 할 기술 개발이나 품종개발이 덜 된 상태라 권 대표는 기회가 닿는 대로 와인 선진국에 나가서 와인을 공부했다고 한다. 일본이 주지 않는 와인에 관한 책도 인맥을 동원하여 구해다가 번역해서 책도 발간했다. 이 책을 이웃 포도농가에 나눠주며 보다 과학적이고 맛있는 포도주를 만들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고 한다.
한 때는 농촌의 어려운 사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지인들과 뜻을 모아 ‘천안신문’ 이란 지역 신문도 발행한 적도 있었다.
관세 및 무역에 관한 일반 협정인 ‘우루과이라운드’가 1993년 12월에 체결되고, 1995년부터 발효되자 미국을 비롯한 유럽 등지에서 농산물이 물밀듯 들어왔다.
“1997년 1월 1일부터 포도가공식품이 완전 개방되었습니다. 그 이전까지 정부는 농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음료수를 생산하는 국내 대기업에게 농민들에게 수매하는 과실 양에 따라 가공식품 생산량을 할당해줬습니다. 그런데 이 규정이 사라지자 대기업들은 수입 과실보다 비싼 국내산 과실을 수매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도매시장에서 4㎏ 한 상자에 3천 원 하던 포도가 500원으로 떨어지는 겁니다. 농사를 짓는 농민들은 어디에 대고 하소연도 못하고 정부는 나 몰라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농민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권 대표가 현재 한국와인생산협회장을 맡게 된 동기다.
‘Duraean Wine’은 ‘두레安’의 불어식 표현
“처음에는 막막하더라고요, 정부에 대고 대책도 호소하고 일본 등지의 포도농가를 찾아가서 그들이 걸어온 길을 배우기도 했습니다.”
일본 역시 식용 포도로만 판매해서는 안 되고 와인으로 가공하여 판매하는 길을 택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권 대표는 전국거봉 생산량의 40%를 차지하고 있는 천안지역의 특산품인 거봉포도로 와인을 생산해야 겠다는 생각을 굳히고 6명의 주주로 2000년 2월 양조장 문을 열어 현재 자본금 10억, 70명의 주주로 천안시 대표 농식품 기업으로 성장 했다.
2,127평 공장부지에 와인 생산설비와 지하저장고, 창고 등을 갖춘 와이너리다. 또한 와인시음과 판매, 술 전시장을 겸하는 다목적 공간인 ‘천안 WINE 성’도 마련했다. 이곳에는 식당, 와인시음코너가 마련되어 있는데 2층에는 두레양조의 보물창고이라고 할 수 있는 각종 주류에 관한 자료들이 전시되어 있는 박물관이 있다. 다른 주류 박물관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북한산 술이 100여개나 수집돼 있어 북한의 주류연구에 많은 도움이 되고 있다.
이 가운데 레슬링 선수인 ‘역도산’의 이름을 딴 소주를 보고 생각해 낸 것이 천안 배를 주원료로 한 이봉원(梨峯元)소주. 마침 연예인 이봉원 씨가 이곳에서 식당을 운영 한다. 발음만 같지 연예인 이봉원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술이다.
회사명을 ‘두레양조’로 지은 것은 ‘농민들이 농번기에 농사일을 공동으로 하기 위하여 부락이나 마을 단위로 만든 조직’을 두레라고 한데서 따왔다고 했다.
회사의 대표 브랜드인 ‘두레앙’와인은 ‘두레安’ 을 프랑스 발음으로 표기 한 것인데 썩 잘 어울리는 것 같다. 천안은 우리나라에서 거봉포도 주산지로 손꼽히는 지역으로 입장면과 성거읍 일대에서 1,000여 가구가 거봉포도를 재배하고 있다. 거봉포도는 알이 굵고 단맛이 강한 특징을 갖고 있다. 거봉은 일본에서 1942년에 개발한 포도품종으로 우리나라에서는 1968년부터 입장에서 재배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국내·외 주류품평회에서 ‘두레앙’이 많은 상을 수상
2004년 거봉와인이 처음 출시되었을 때 그렇게 좋은 평판을 받지 못했다. 기술 부족으로 후 발효가 일어나 병마개가 튀어나가기도 했다.
“많은 연구를 거듭했습니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을 곱씹으며 개발도 하고 거봉와인을 증류하여 브랜디도 만들었습니다.”
이런 결과는 2007 대한민국 주류품평회에서 두레앙 와인이 처음으로 입선한 이래 2009 증류주 은상 수상, 2011 일반증류주 부분 대상, 2014년에는 결국 대한민국 우리 술 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거머쥐었다.
국내 대회에 만족하지 못한 두레앙은 2015년 센프란시스코 스피릿경연대회에서 동상, 몽드셀렉션(벨기에)에서 금상의 영광을 차지한다. 이후에도 주류품평회에서 우수상과 최우수상 그리고 대상을 수상하는 이변을 연출한다. 때문에 이제 ‘두레앙’은 모두에게 주목 받는 술이 되어가고 있다. 두레양조에서는 연간 평균 150여t의 거봉포도를 이웃 농가로부터 수매한다. 포도농가에서는 이 때문에 안정적으로 포도농사를 지을 수 있다.
권 대표는 “포도소주가 본격적으로 출시되면 이 보다 많은 포도가 필요할 것”이라면서 “양조장이 잘되면 농부가 웃게 되는 일석삼조의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이라고 말한다.
권 대표는 일본 와이너리를 방문했을 때 “일본에서는 포도 농사를 10차 산업”이라고 했습니다. 그만큼 포도가 가장 높은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1990년대 말에 10차 산업이라니, 앞서 가도 너무 많이 나간 것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면서 “우리도 현재 농업과 관련, 6차 산업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앞으로 우리 농촌이 나아갈 방향이 6차 산업이라 이웃 농가에 적극 권장하고 있습니다.”
6차 산업 이야기는 많이 들어봤는데요. 10차 산업은 어떤 산업인가요? “생산이 1차 산업이죠. 가공이 2차 산업, 3차는 유통과 서비스 산업, 4차는 지식산업이죠. 4차 산업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를 활용해서 돈을 버는 겁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지식을 다른 나라에 컨설팅을 해주는 겁니다. 포도밭을 만들어주고, 양조장 만들어주면서 양조 시설 팔고 컨설팅을 해주는 거죠. 이게 4차 산업입니다. 1차, 2차, 3차, 4차를 전부 더하면 10차가 나오죠? 이게 10차 산업인 건데, 포도가 그렇다는 겁니다.”
지하 숙성 실엔 180여개의 브랜디 오크통이 잠자고 있다
거봉로제와인(12%)은 한국인에게 친숙한 거봉포도의 향이 은은하게 퍼져 나와 코를 자극하며, 적절한 산도, 가벼운 바디감을 지니고 있어 식욕을 돋워주는 와인이다. 색깔이 참 곱다.
‘두레앙’은 연어 등의 생선요리, 맵지 않은 볶음요리, 양념이 강하지 않은 닭갈비, 순대볶음 등의 요리와 잘 어울린다.
750㎖에 17,000원, 그만한 가치가 있는 와인이다.두레앙 브랜디(35%)는 거봉와인을 증류해 오크통에서 5년~7년 이상 숙성한 브랜디이다. 오크향이 일품이다. 스트레이트로 마시면 오크에서 우러난 은은한 바닐라와 캐러멜 향이 조화를 이룬 맛을 느낄 수 있다. 온더 록으로 마시면 천천히 변화하며 피어나는 브랜디의 향을 즐길 수 있다. 750㎖에 70,000원.
‘두레앙 22’는 포도증류 소주다. 알코올 도수가 22%로 시중 일반소주에 비하면 알코올 도수가 높지만 주당들에겐 엄지척, 가격은 375㎖에 5천원 이다.
현재 두레양조 지하 창고에는 220ℓ의 브랜디가 들어있는 오코통 180개가 저장되어 있다. 가격으로 치면 20억 원이 넘는다고 했다.
막걸리 양조장처럼 술 냄새가 확 올라오지는 않지만 은은한 오크향이 기자의 발길을 잡는다. 사실 지하 저장고는 외지인에게 공개를 잘하지 않아 관광객들은 사정을 해야 볼 수 있는 비밀스러운 공간이다. 술이 깊은 잠을 자고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 10년 정도 지나면 지금의 가치 보다 최소 3배 정도는 뛸 것이라고 한다.
천안의 명물 소주, 이봉원/ 이봉주 소주 나온다
권 대표는 현재 국내 최초로 거봉포도를 가공하여 증류주(브랜디)제조 양조장에 만족하지 않고 천안을 대표 하는 술 개발에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 대표적인 술이 ‘아우내 소주’다. 소주 이름은 수출용으로 중화권은 ‘병천(竝川)’소주, 영어권은 ‘아우내(AUNE’소주 다.
내수용 소주는 천안북부특산물인 배, 쌀, 포도를 발효한 증류주인데 천안 포도에 양봉 꿀을 희석한 ‘봉봉주(峰峰酎)’, 천안 배와 포도 증류주를 브랜딩 한 ‘이봉원(梨峯元)’, 천안 쌀과 배 그리고 포도를 혼합한 ‘삼봉주(三峰酎)’, 천안배 증류주에 거봉증류주를 회석하여 알코올도수를 낮춘 ‘이봉주(梨峰酎)’를 개발해 놓고 있다.
이 술들로 일본이 산토리 위스키+일본 전통 음식으로 일본 술 사케의 고정관념을 깬 것을 벤치마키팅 하여 삼겹살엔 소주라는 문화를 바꿔 볼 생각이다.
또 천안포도주+천안향토요리를 패키지화하고 투박한 소주 잔 대신 아우내 소주잔을 제작 하여 소주를 고급화한다는 전략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20억 원의 소요자금이 필요한데 권 대표는 함께 할 좋은 분을 만나 사업을 성공시켰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말한다.
또한 6차 산업을 완성하기 위해 현 공장부지 옆에 포도시험포 부지를 마련, 정지 작업까지 마친 상태다.
앞으로 증류식 소주가 대세를 이룰 것이란 전망을 하고 있는데 기존 막걸리로 증류한 소주에서 포도나 배 같은 과일로 술을 담가 증류를 하면 술에서 독특한 과일향이 올라와 주당들에게 확실하게 환영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앙대에서 와인소믈리에를 공부한 권 대표는 천안이라는 지역 특성상 머무는 관광이 아닌 지나는 관광으로 인식되고 있는데 앞으로 와이너리를 더욱 발전시켜 천안의 체류형 대표관광지로 개발한다는 원대한 포부가 가지고 있다. 그 꿈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사진·글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