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 칼럼
이백의 권주가
박정근(대진대 교수, 윌더니스 문학 주간, 소설가, 시인)
이백(701-762, 자: 태백, 호: 청련거사)은 동양의 주선으로 추앙을 받는 시인이다. 주선이란 그저 술을 양적으로 많이 마시는 자를 의미하지 않는다. 술을 마심에 있어서 인간적 또는 미학적 가치를 구현하는 자를 일컫는 것이다. 요즘 술은 인간의 건강을 해치거나 술로 인해 도덕성과 이성을 상실하게 하는 위험한 것으로 평가절하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게다가 애주가들이 음주 운전으로 사고를 치거나 범법행위로 몰려 반사회적 존재로 몰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래서 술이 신이 창조한 최고의 음식이라는 정의가 무색할 정도이다. 어떻게 하면 술을 주선 이백의 수준으로 명예회복을 할 수 있을까.
우선 주선 이백이 술과 어떤 관계를 설정하며 살았을까 생각해보자. 우선 이백은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술을 마셨다. 그리고 행복한 분위기를 창출하기 위해 친구와 술을 마시는 것을 즐겼다. 이백은 권주가의 첫 행에서 “둘이서 마주 앉아 술 마시니 산에 꽃이 피네”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친구를 초대해서 술상을 차리고 마주 앉아서 술을 마시기 시작한다. 두어 배 술이 들어가자 그는 눈앞에 펼쳐지는 산의 전경을 바라보며 산에 꽃이 피어나는 장면을 노래한다.
취해가는 그의 눈에 산에서 피어나는 꽃들이 들어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이백이 꽃을 인식하는 것은 미처 알아차리지 못했던 꽃들이 음주를 통해서 비로소 눈에 들어온다는 의미일 수 있다. 이백은 술을 마심으로써 실제로 산에서 피어나는 꽃들을 볼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더 멋진 문학적 발상은 실제 꽃과는 무관하게 술을 마심으로 문학적 상상력이 발동했다는 분석이다. 친구와 술을 대작하니 기분이 좋아져서 앞산에 상상의 꽃들을 피울 수 있다는 낭만적 사고라고 본다. 결국 이백은 친구와 술을 나눔으로써 꽃을 즐기며 최고의 행복감에 젖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 순간에 주선 이백은 친구와 공유하는 행복감을 놓치고 싶지 않다. 그것은 친구에게 술을 권하고 친구가 그에게 술을 따르는 지속적 행위에 의해서 가능해진다. 그는 권주가 2행에서 “한 잔 한 잔 또 한 잔 마시세그려”라고 노래하며 친구와 술을 거나하게 마시는 행위를 묘사한다. 이백이 친구에게 술을 지속적으로 마시자고 권하는 것은 술에 도취해서 자신이 느끼는 행복감을 함께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서 발원하는 것이리라. 사실 인간이 행복을 누리는 시간은 통상적으로 순간이라고 한다면 이백의 행위는 술을 마시는 행위의 반복이라는 퍼포먼스를 통해서 심리적으로 행복의 영속성을 염원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아무리 주선이라고 한들 생물학적 인간이라는 한계를 가진 이백은 취하지 않을 수 없다. 이백은 권주가의 삼행에서 “나는 취해 졸리나니 그대는 우선 가게나”라고 노래한다. 그는 술을 함께 마시며 행복을 나눈 친구와 헤어지는 상황을 연출한다. 아마 신체적으로 견딜 수 있다면 그는 친구와 긴 시간 술을 마시기를 원하리라. 그러나 인간이기에 다량의 술을 마시면 취해서 쓰러지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그는 친구에게 당일의 술자리를 정리하자고 제안한다. 이것은 술을 마시다 좋은 기분에서 헤어질 수 있도록 친구에게 배려하는 것일지 모른다. 이백 자신이 취하면 함께 줄곧 마셔온 친구도 취할 수밖에 없다. 주선이란 당일 하루만 술을 마시는 자가 아니지 않은가. 오늘의 행복이 정점에 다다랐으면 그걸로 만족하면 되는 것이다.
이백은 역시 대단한 주선이다. 술자리에서 친구를 배웅하면서 내일의 술자리를 기약한다. 하지만 오늘의 술자리가 똑같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다. 멋진 주선이라면 오늘보다 더 행복한 술자리를 창조적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제 그는 술자리에 음악과 더불어 더 깊은 행복을 창조하리라. 그는 권주가 4행에서 “내일 아침 (술) 생각나거든 거문고 안고 오시게”라고 주문한다. 주선 이백은 술과 음악의 조화를 통해 한 단계 높은 행복감을 창출할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친구에게 술 생각이 나면 거문고를 꼭 들고 오라고 부탁한다. 아마도 이백은 술이 거나해지면 친구의 거문고 연주를 청하리라. 그는 거문고 연주를 들으며 또 다른 권주가를 작시할지 모른다. 그리고 술에 취해 시를 짓다가 행복한 잠에 빠질 수 있다. 이렇게 친구와 술과 음악이 어우러진 삶에 빠진 이백은 무릉도원을 걷고 있는 듯한 행복감을 무한히 느낄 수 있었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