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④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④

 

그러나 가장 강력한 흔적을 보이며 살아남은 것은 바로 과학 분야에서이다. 우선 백악기(白堊紀, Cretaceous period) 수장룡(首長龍, Plesiosauria) 중 ‘크로노사우루스(Kronosaurus)’가 그의 이름을 이어받은 대표적인 생물이다. 그리고 하늘을 쳐다보면, 황토색으로 빛나는 ‘토성(Saturn)’ 역시 그의 이름을 이어받고 있다.

시간의 신과 티탄족의 신화적 인물인 두 ‘크로노스’를 혼동한 것은 사람들의 예술적 영감을 자극하였고, 서양 전설에 저승사자의 이미지를 제공함으로써 서양 판타지 문화에 한 가지 기여를 했다는 점에서, 두 신을 혼동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고 볼 수 있겠다. 그 둘을 딱히 ‘부정적인 신’ 혹은, ‘긍정적인 신’으로 딱 잘라 평가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그리스 창세 신화에서 그들이 끼치는 영향이 매우 컸듯이 그들의 흔적은 거의 3천년이 지난 지금에도 면면히 살아남아 이어져 오고 있다는 점에서 두 신에 대해 정확히 알아둘 필요는 있지 않을까 싶다.

크로노스는 자기 자식에게 지배권을 빼앗긴다는 신탁 때문에 태어난 자식을 차례로 삼켜버렸는데, 마지막 제우스가 태어났을 때는 레아가 크로노스를 속여 돌을 삼키게 함으로써 살아남아 마침내 아버지를 추방하게 되었다. 로마 신화에서는 농업신 사투르누스와 동일시되고 있다. 크로노스(Kronos)는 씨 뿌리는 자이며 자연을 생성한 시(時)로서, 그가 다스릴 때 세계는 결백과 순결의 황금시대였다.

그런데 그는 자식을 낳으면 마구 잡아 먹어버렸기 때문에, 크로노스는 시간 혹은 세월이라는 뜻이다. 크로노스가 모래시계를 들고 있는 노인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크로노스가 자식을 삼킨다는 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시간에 의해 소멸되어 버린다는 냉혹한 자연의 섭리를 상징한다. 또한 크로노스는 생명이 있는 모든 것의 명줄을 끊어버리는 존재임을 나타내기 위해서 낫을 든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한다.

자식을 삼켜버린 크로노스

“네가 나를 죽이고 왕위를 빼앗았지만, 그 벌로 너도 네 자식들 손에 죽으리라”

하늘의 신 우라노스 신전에선 여섯째 사내아이 탄생을 기뻐하고 있었다.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방금 태어난 아기의 열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보았다. 아기는 어머니의 손을 힘껏 쥐었다. 아버지 우라노스는 새로 태어난 아기의 이름을 ‘크로노스(Cronos)’라고 지었다. 맏이 대양의 신, 바로 바다의 신 오케아노스(Ōkeanós), 둘째는 지성의 신이며 하늘의 축을 상징하는 코이오스(Koios), 셋째는 ‘높은 곳을 달리는 자’란 뜻의 휘페리온(Hyperion)은 원래 ‘빛의 신’이며, 넷째는 크리오스(Krios) 또는 크레이오스인 데, ‘숫양’ 또는 ‘통치자’라는 뜻이다. 다섯째는 ‘꿰뚫는 자’라는 이아페토스(Iapetos)를 데리고 동생의 탄생을 축하하러 우라노스 신전으로 우르르 몰려왔다.

가장 키가 작은 다섯째 이아페토스가, “아버님, 큰형은 바다 신이고, 둘째 형은 하늘 덮개, 셋째 형은 높은 곳을 달리는 자 따위의 일을 맡기셨습니다. 제 동생 ‘크로노스(Krónos)’에겐 무엇을 맡길 생각이세요?” 하고 물었다. “맞아. 막내 ‘크로노스’에겐 말이다. ‘시간’을 맡도록 해야겠는걸.” 우라노스가 이아페토스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이는 카오스에서 코스모스로 이동함을 의미한다.

<신들의 계보>에 나타난 이름과 순서대로 나열하면, 12명의 티탄(Titan)은 다음 리스트와 같다. 전통적인 그리스 신화 용어를 따르자면, 이들 중 6명의 남신들을 통칭하여 티타네스(Τιτᾶνες Titanes)라고 하고 6명의 여신들을 통칭하여 티타니데스(Titanides)라고 한다.

▴오케아노스(Ὠκεανός Ōkeanós)-티타네스(남신)

▴코이오스(Κοῖος Koios)-티타네스(남신)

▴크리오스(κρῑός Krios)-티타네스(남신)

▴히페리온(Ὑπερίων Hyperion)-티타네스(남신)

▴이아페토스(Ἰαπετός Iapetos)-티타네스(남신)

▴테이아(Θεία Theia)-티타니데스(여신)

▴레아(Ῥέα Rhea)-티타니데스(여신)

▴테미스(θέμις Themis)-티타니데스(여신)

▴므네모시네(Mνημοσύνη Mnemosyne) -티타니데스(여신)

▴포이베(φοίβη Phoibe)-티타니데스(여신)

▴테티스(Τηθύς Thetys)-티타니데스(여신)

▴크로노스(Κρόνος Krónos)-티타네스(남신)

헤시오도스는 이들을 나열하면서 크로노스에 대해 “가이아의 자녀들 중 교활하며, 막내이며,가장 무시무시한 자식으로, 그는 자신의 ‘탐욕스러운 아비’를 싫어하였다(the wily, youngest and most terrible of her children, and he hated his lusty sire)”고 말하고 있다.

한편, 헤시오도스는 <신들의 계보>에서 이들 12자녀들, 그 중에서도 특히 남신들을 ‘티탄(Titans)’이라고 부르게 된 이유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이 명칭은 우라노스가 나중에 폐위된 후 자신의 아들들 즉 티타네스들을 비난하여 부른 이름이다

‘거신 우라노스(거대한 하늘)’는 ‘크로노스에 의해 거세되어 폐위당한 후’ 자신의 자식들인 이 아들들을 비난하는 어투로 티탄(세게 잡아당기는 자)이라 부르곤 했는데, 이들은 주제넘게도 두려운 행위, ‘즉, 우라노스 자신을 폐위시키는 행위’를 세게 잡아당겨서 행하였고 이 행위에 대한 앙갚음이 나중에 올 것이기 때문이라고, ‘즉, 행위에 대한 앙갚음을 세게 잡아당기게 될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하였다는 데서 기원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막내둥이 크로노스는 잔병치레도 없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그는 첫째 누나 테이아(Theia)를 비롯해 ‘동물의 안주인’ 레아(Rhea), ‘기억’을 담당하는 신 므네모시네(Mnemosyne), 금빛 왕관을 쓴 달의 여신 포이베(Phoibe), 바다와 강의 어머니 테티스(Tethys), 그리고 ‘이치’의 여신 테미스(Themis) 따위의 누이들과 소꿉놀이도 즐겨하였다. 장성한 크로노스는 한 손에는 모래시계, 다른 한 손에는 낫을 들고 다녔다. 그는 어머니 가이아의 신전에서 항상 머물렀다.

하루는 어머니 가이아가 막내 ‘크로노스’에게 마음에 담고 있는 고통을 털어놓았다. “크로노스, 이 어미에게 가슴을 도려내는 한이 있다.” 그녀는 깊게 한숨을 토해내며 말을 이었다. “너희들의 아버지가 내가 바라지도 않던 자식을 낳게 했지…. 너희들에게도 종종 행패를 부리는 외눈박이 거인 3형제와 백수 거인 3형제가 바로 그들이야. 이 아이들이 지금 내 뱃속에 갇혀있는데, 이놈들이 소동을 부리는 통에 내가 한시도 편할 날이 없구나.” 그렇다고 하늘의 신이 죽으면 하늘이 없어지기 때문에 우라노스를 죽일 수도 없었다.

한쪽 구석에 말없이 앉아있던 막내 크로노스가 고개를 쳐들더니만, “어머니, 저에게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어머니의 신전을 물러 나온 크로노스는 낮이 저물고 밤이 오기를 기다렸다. 밤을 틈타 크로노스는 아버지 우라노스를 기다렸다. 그리고 어머니와 낮에 한 약속을 지켰다. 크로노스는 우라노스의 가장 중요한 일부를 떼어내는 데 성공했다.

가이아는 이 사건이 있은 뒤부터 더욱 막내아들 크로노스를 곁에 두기를 좋아했다. 커다란 낫을 들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크로노스는 누이 레아와 성대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하데스, 포세이돈, 헤스티아, 데메테르, 헤라 따위의 5남매를 차례로 낳았다.

그러나 여섯째 아이를 임신 중인 레아는 항상 비통한 슬픔에 빠져 있었다. 남편이 그녀가 낳은 아이들마다 족족 다 삼켜버리는 못된 버릇이 있어 한 아이도 손에 안아보기조차 할 수 없었다. 그녀는 고민 끝에 어머니이자 시어머니 가이아를 찾아갔다. “대지의 여신인 어머니, 저는 지금 여섯 번째 아이를 임신 중입니다. 산달은 얼마 안 남았는데, 너무 걱정이 되어서 견딜 수가 없어요.” 계속 말했다. “제 남편 크로노스가 아이들을 모두 삼켜버린 통에 자식이라곤 구경도 할 수 없어요. 크로노스의 이상한 병을 고칠 방법은 없을까요?”

가이아의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네 얼굴에 수심이 가득한 이유를 이제야 알겠구나.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바윗덩어리 하나를 강보에 싸 놓았다가 이 바윗덩어리와 아기를 바꿔치기를 하는 거야. 절대 눈치 채지 못하게 해야 한다.”

시어머니는 자기 딸이자 며느리에게 모든 일을 은밀히 할 것을 당부하였다. 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자 크로노스가 레아의 신전으로 달려왔다. “저것이 무엇이오?” 크로노스는 레아 곁에 있는 강보에 쌓인 것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대지의 속살입니다.” 방금 아기를 낳은 레아가 대답했다. 크로노스는 더 이상 물어보지 않고 강보에 싸인 것을 꿀꺽 삼켜버렸다.

아버지 우라노스를 거세하는 크로노스/ 조르지오 바사리(16세기)

가이아의 계책에 따라 레아는 크레타섬의 도시인 릭토스(Lyctus)로 갔고 크레타섬의 어느 곳에서 제우스를 출산하였다. 그러자 가이아는 제우스를 받아서 [크로노스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 칠흑 같은 밤(즉, 닉스)을 통해 재빨리 먼저 릭토스로 갔다. 그런 후 다시 제우스를 안고 숲이 우거진 아이가이온 산(Αἰγαίῳ Aigaio, Mount Aegeum)의 은밀한 장소 아래에 있는 한 외진 동굴로 가서 그곳에 제우스를 숨겼다. 한편 레아는 커다란 돌덩이를 강보에 싸서 크로노스에게 건네고, 크로노스는 이것을 삼켰다.

위에 기술된 바와 같이 아이가이온 산의 한 동굴은 제우스가 탄생한 후 숨겨진 장소로, 문맥상 제우스가 양육된 장소로 해석될 수 있는 여지를 준다. 또한, 위에 기술된 바와 같이 헤시오도스는 제우스의 정확한 탄생지에 대하여도 말하고 있지 않은데, 그는 제우스의 탄생의 순간과 관련된 언급으로, “넓은 크레타섬에서 광대한 가이아(땅)는 그를 (즉 제우스를) 레아로부터 받아서, [그런 후] 젖을 먹이고 양육하였다(Him did vast Earth receive from Rhea in wide Crete to nourish and to bring up)”라고 말하고 있을 뿐이다. 즉, 크레타 섬의 어딘가에서 탄생하였다고 진술하고 있을 뿐이다.

한편, 아폴로도로스(Apollodoros)의 <비블리오테케(Bibliotheke(The Library of Greek Mythology)> 1.1.6절에 따르면, 레아는 크레타섬의 딕테 동굴에서 제우스를 낳았으며, 또한 제우스는 이 동굴에서 양육되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디오도로스 시켈로스(Diodoros Sikeliotes)는 <비블리오테카 히스토리카(Bibliotheca historica)>의 5.70절에서 제우스가 딕테 동굴에서 태어났다는 신화가 있다고 말하고 있으며, 그의 양육지는 크레타섬의 이디 산(Mount Ida)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남태우 교수:중앙대학교(교수)▸중앙대학교 대학원 문헌정보학과 박사▸2011.07~2013.07 한국도서관협회 회장 ▸2009.07 한국도서관협회 부회장▸2007.06~2009.06 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2004.01~2006.12 한국정보관리학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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