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술, 우리말, 우리얘기…술집여인

소설가 이봉구는 주석(酒蓆)에서는 정치얘기는 하지 말 것이며, 돈 빌리자는 말도 말아야 하고, 좌석에 없는 사람을 흉보지 말라는 주석삼불(酒蓆三不)을 늘 강조했다고 한다. 요즘 신세대는 여기에 술자리에서 쓸데없는 휴대전화 사용금지를 덧 붙여서 ‘酒蓆四不’을 강조하기도 한다. 그러면 주당들은 주석에서 어떤 얘기로 단골 메뉴를 삼을까. 모르긴 해도 당연히 여자얘기가 아닐까. 남태우 교수(중앙대, 문학박사)가 펴낸 ‘홀수배 飮酒法의 의식과 허식’에서 주당들의 잡담인 술집 여자들의 얘기를 발췌했다.

 

술집 여인 감별법

 

프랑스의 속담에 ‘마누라가 죽으면 술맛이 난다’는 말이 있으며, ‘여자가 예쁘면 술맛이 난다’라는 고대 이집트의 속담도 있다. 시저와 안티니우스는 저마다 클레오파트라가 따라주는 한 잔 술 수밀도에 취했고, 당나라 현종은 양귀비의 술잔에 나라가 기울어지는 것도 몰랐다.

여자가 없으면 술 맛이 나지 않는다는 남자들의 편견은 고금동서를 막론하고 여일하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그 것은 술꾼을 술꾼으로 만드는 가장 자연스러운 절차인지도 모른다. 고대 그리스 이래 남신에게 술을 바치는 일은 여자들이 도맡아 왔다.

술집에는 으레 주모와 기생이 있듯이 여자와 술은 영원한 동지관계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자고로 주(酒)와 색(色)이라고 선후가 정하여진 것이 아닐는지?

술집에서 만난 여인의 감별법은 여인과 술을 동시에 평가하는 것이다. 술잔을 기울이는 모습, 또는 행위, 버릇 그리고 언행 등이 종합적으로 작용하여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

 

▶ 자기 머리를 쓰다듬고 쓸어 올리는 버릇이 있는 사람은 언제나 욕구불만에 차 있는 여성들에게 많다. 무의식적으로 유혹하고 싶어 하는 심리의 반영인지도 모른다.

▶ 스커트자락을 자꾸만 아래로 끌어내리는 형은 남성의 시선을 아래쪽으로 끌려는 행위이므로 “나는 당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어요”하는 신호이다.

▶ 남자가 가만있으면 좀처럼 술을 마시려 하지 않다가 마시라고 권하거나 잔을 가볍게 부딪치며 건배하는 포즈를 취하면 단숨에 쭉 들이키는 버릇 있는 여성은 “당신이 좋아 못 견디지만 차마 그런 내색을 하기가 부끄러워서”라는 유형이다.

▶ 혼자 앉아 자꾸만 손톱을 깨무는 버릇은 남자친구가 하나도 없어 속상해하는 듯 한 제스처이다. 하지만 달콤한 말 한 마디만 던지면 만사 오케이.

▶ 의자에 걸터앉으면 한쪽 구두를 벗는 버릇의 유형은 정조관념이 희박하여 섹스를 기대하는 제스처. 한 때의 즐기는 상대로는 좋으나 결혼상대로는 곤란한 형이다.

▶ 자수나 편물에 정신이 팔리는 버릇의 유형은 겉으로 보기에는 외롭고 청초해 보이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연극에 불과하다. 한 번 관계를 맺으면 꼼짝 못하고 당한다. 그것도 농염한 멋이 있는 게 아니라 담박하기 짝이 없는 수가 많으니 손을 내밀지 않는 게 상책이다.

 

주당들 사이에 퍼져있는 이야기 중 1도(一盜), 2기(二妓), 3과(三寡), 4랑(四娘), 5처(五妻)론은 술자리에서의 최고의 안주거리이다. 이는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술자리와 가장 맛없는 술자리를 빗대어 읊어 대는 잡소리이다. 그러나 이유가 있어서 한 잔, 이유가 없어서 한 잔, 그래서 오늘도 또 한 잔이라는 주변(酒辨)에 비유하면 이 것 또한 주요한 주변이 될 수 있다.

 

1도(一盜)란 몰래 훔쳐 먹는 술로서 다섯 가지 술중에 가장 맛있어 주당들 사이에는 가장 선호하는 술이다. 훔쳐 먹는 술, 술집에서 술값 계산하지 않고 도망치는 술, 그리고 공짜 술, 이 세 가지는 술 맛 나는 3대 명주이다. 그리고 술중에 으뜸 술이다.

 

2기(二妓)란 기생이 있는 호젓한 방석집에 가서 젓가락 장단 두들기며 호쾌한 노랫가락이라도 부르며 마시는 술이란 또 그만이다. 옆에 앉은 미희는 Y담, S담을 척척 잘 받아 넘기는 애교 있는 품새란 가히 주당들을 설설 녹인다.

옛날부터 풍객(風客)들의 입으로부터 전해오는 기방잡담(妓房雜談)에 의하면 뭇 남성들이 탐내는 여자의 유형을 보면 일도(一盜), 이승(二僧), 삼낭(三娘), 사과(四寡), 오기(五妓), 육창(六娼), 칠처(七妻)라고 했단다.

 

一盜:첫째가 유부녀 훔쳐 정 통하며 스릴 느끼는 재미고,

二僧:둘째가 여승만나 법당 뒤서 짜릿한 맛보는 재미고,

三娘:셋째가 처녀 꾀어내서 영계 맛보는 재미고,

四寡:넷째가 과부와 운우의 정을 나누는 재미고,

五妓:다섯째가 기생 끌어안고 황홀경에 빠지는 재미고,

六娼:여섯째가 창녀의 요분질에 빠져보는 재미고,

七妻:일곱째가 자기 아내와 노는 재미라고 한다.

 

3과(三寡)란 과부 집에서 과부와 더불어 신세한탄하며 부어라 마셔라 하면서 술 마시는 품이란 걱정 근심이 없어 또한 술 마시기에는 제격이다.

 

4랑(四娘)은 처녀와 마시는 술이다. 전술한 삼과의 술좌석이 우아하고 화려한(?) 술좌석이라면 4랑은 청초함과 신선함이 있는 술좌석이다. 그야 말로 개발되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처럼 청순함, 수줍음 등이 흐르는 분위기로 멋진 술자리이다. 그러나 어떻게 할 것인가를 고민하니 근심 또한 만만치가 않다.

 

10대 여성은 미개발 상태인 아프리카 대륙과 같고,

20대 여성은 개발도상국인 아시아 대륙과 같고,

30대 여성은 개발이 바야흐로 황금기를 맞은 아메리카 대륙과 같고,

40대 여성은 우아하고 문명에 꽃이 찬란하게 핀 유럽과 같고,

50대는 누님 같고 어머니 같아 펄 벅의 대지가 생각나게 해서 좋다나!

 

다섯 번째로 가장 술 맛이 없는 좌석이 5처(五妻)인데 집에서 아내와 함께 하는 술자리를 지칭한다. 이는 주와 색이라는 관점에서 풀이한 술자리의 정서를 말함이다. 대개는 주당들은 밖에서 주종불사, 안주불사, 주야불사, 생사불문 하면서 잘도 마시는데 집에서는 아무리 맛있는 술이라도 안 마시는 것이다.

그래서 5처가 술 맛 안 나게 하는 데에는 1등이 된단다. 그래서 술집에서 독작을 즐기는 남정네가 호주머니의 아내의 사진이 애인으로 보일 때 술집을 나서 집을 찾는단다. 아내의 사진을 보고 또 보고 하면서 이미 주당은 명정(酩酊)의 세계에 빠져버린 것이다. 명정의 세계에서 어느 여인인들 예쁘게 보이지 않겠는가.

*명정(酩酊):술에 잔뜩 취한 상태를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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