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며느리밑씻개를 아시나요
촛자 기자 시절인 1970년 대 초로 기억된다. 전해들은 이야기로 H일보 전 직원이 창업주 장기영 회장으로부터 혼 줄이 났다는 것이다.
얘긴 즉, 장 회장이 화장실에 들어갔다가 휴지통에 자사 신문으로 뒷처리를 한 것을 발견하고는 “신문은 종합예술이다. 힘들게 만든 신문으로 밋씻게를 하면 되느냐”고 야단을 쳤다는 것이다.
당시 지금과 같은 화장지가 없던 시절, 대게는 화장실에 갈 때 신문을 들고 들어간다. 읽던 신문을 쭈~욱 찢어 꾸겨서 처리하는 것이 일반화 되던 시절이다.
요즘은 나아진 것 같은데 코로나19가 급속한 확산을 할 때 이른바 선진국이라고 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호주, 홍콩 등 세계 각국의 슈퍼마다 화장지 진열대가 텅텅 비어있는 풍경, 화장지 몇 롤을 사려고 싸움질 하는 모습을 보면서 얼른 이해가 안 갔다. 심지어 영국 대형마트 테스코는 한 사람이 화장지를 너무 많이 사가지 못하도록 ‘1인 5롤’로 판매를 제한했다는 뉴스를 접하고 ‘마스크’도 아닌 화장지를 제한하다니 ‘선진국 맞아’ 하는 소리가 절로 나온다.
먹고 싸고 잠자는 것이 인간의 일상이고 보면 뒷처리를 하는 것도 큰일은 맞다. 그러나 우리는 그 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지 못하며 산다.
우리나라 마트에는 화장지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데 왜 저 난리들을 치는 것일까?
추후에 안 이야기지만 일부 선진국에서는 화장지를 생산 하는 공장이 없고, 전량 외국에서 수입 해다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게다가 마스크를 생산 하는 원료의 일부가 화장지도 만들어 앞으로 화장지를 앞으로 구일할 수 없을 수도 있다는 강박관념이 화장지 싹쓰리열풍을 몰고 온 모양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전국 어느 공중화장실엘 가봐도 화장지는 풍족하게 사용할 수 있다. 화장실에 걸려 있는 화장지를 가져가거나 하는 사람도 없다.
특히나 필자가 지난 해 초겨울 이사를 했더니 친지들이 이사 선물로 사온 화장지가 거실 한켠에 쌓여 있는 것을 보면서 부자 같다는 생각을 했다. 이사 간 집에 화장지나 세제를 선물로 하는 것은 화장지처럼 술술 잘 풀리라고, 비누 거품처럼 잘 일어나라는 뜻이 담겨 있다.
고속도로 공중화장실이 호텔 급이라 평하는 사람들이 많다. 유료도 아니면서 항상 깨끗한 우리나라 화장실을 보고 놀란 외국인들도 많은 모양이다. 유럽 쪽으로 여행을 하다보면 고속도로 휴게소 화장실이 유료인 곳이 많다. 이런 나라 사람들은 우리나라 휴게소 화장실을 사용하면서 놀라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역설적으로 우리의 화장실문화가 세계 제일을 자랑하게 된 것은 그만큼 우리의 화장실문화는 한 때는 열악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60년대만 해도 우리의 화장실은 푸세식이 대부분이었다. 골목에 “똥 퍼~”를 외치며 화장실 청소하라고 외치던 직업도 있었다.
공중실에 가려면 우리도 입장료를 받았고, 화장지가 없을 때는 양말을 벗어 처리하던지 아니면 손수건 그도 저도 없으면 염치불구하고 옆칸을 두드려 종이 몇 장을 구해 사용하기도 했었다.
화장지 발달사를 보면 1393년까지는 쌀로 만든 화장지가 중국 황실용으로 대량 생산되고 있었다고 한다. 서양에서는 1857년에 이르러서야 화장지가 대량 생산되게 되었다. 이 해 발명가 조지프 가예티가 신문과 옥수수심 같은 임시방편으로 엉덩이를 편안하게 하는 시도로 수세식 화장실용 J C 가예티의 의료용지를 소개했다.
이런 화장지가 개발 되기 전에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뒤처리를 하는데 비슷한 양상을 보였던 것 같다.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것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며느리밑씻개라는 풀이 있다. 한해살이로 덩굴성이다. 사각으로 모가 진 능선을 따라 예리한 갈고리형 가시(逆刺)가 거꾸로 나 있는 풀인데 며느리 구박용으로 며느리에게 이것으로 뒤처리를 하도록 했다고 한다. 이런 아픈 과거를 안고 살아온 민족이지만 우리나라 화장실은 세계 최고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또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무이 한 ‘화장실박물관’이 수원에 있다. 이름하여 ‘해우재’다. 세계인들이 와서 보면 깜짝놀란만도 할 것 같다. 이래저래 이번 코로나19 사태로 우리의 위생문제가 크게 부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