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박록담의 복원전통주 스토리텔링/75번째 이야기
전승 가양주(家釀酒)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청화주’
‘청화주’라는 주품은 최근 발굴되어 세상에 나온 <禹飮諸方>이라는 문헌에 수록되어 있는 몇 안 되는 주품 가운데 하나로, 다른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禹飮諸方>이 대전지방의 은율 송 씨 가문에 전승되어 온 문헌이라는 사실과 다른 문헌에서는 목격되지 않는 주품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청화주’는 은율 송 씨 가문의 술 빚는 대모에 의해서 개발되고 정착되어 가양주로서의 명맥을 이어 온 몇 안 되는 주품 가운데 속한다고 하는 관점에서 조선시대 전승 가양주(家釀酒)의 일단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가 된다. 그런 측면에서 ‘청화주’를 주목하였는데, 다음과 같은 몇 가지 특징을 엿볼 수 있다.
첫째, 필요에 따라 멥쌀로만 빚는데 필요에 따라서는 찹쌀로도 빚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대개의 경우, 멥쌀술이 찹쌀술로 바뀌면 술 빚는 방법도 조금씩 달라지는 것이 상례로 되어 있는데, ‘청화주’에서는 찹쌀로 빚는 법에 대한 특별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미루어, 주원료만 바꾸고 주방문은 그대로 가져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둘째, ‘청화주’는 누룩의 양이 매우 많이 사용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반적으로 양주 관련 옛 문헌들에 수록된 주품에서 ‘청화주’처럼 많은 양의 누룩을 사용한 경우는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청화주’에 사용되는 누룩 양은 쌀 양 대비 47%가 넘기 때문이다. 때문에 반생반숙법의 밑술 발효기간이 4~5일에 그치고, 더운 계절에도 3~4일이면 덧술을 할 수 있다고 한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덧술에서도 누룩을 사용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넣지 않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다.
‘청화주’처럼 밑술에 많은 양의 누룩을 사용하는 경우, 덧술의 누룩 사용은 오히려 누룩냄새가 강하고 술 색깔도 검어지므로, 결과적으로는 주질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되기 때문이다.
셋째, ‘청화주’는 밑술과 덧술 두 과정에 사용되는 쌀 양과 물의 양이 동량이다. 누룩의 양이 47%에 이르고 쌀 양과 물의 양이 동이하다는 것은, 결국 보다 많은 양의 술을 얻기 위한 목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주품명은 ‘청화주’라는 점에서 서로 배치되는 것을 알 수 있다.
필자의 경험으로는 지나친 누룩냄새와 보리차 같이 짙은 술 색깔은 심한 거부감을 불러일으켰는데, 나이 많으신 어른들은 “감칠맛이 있어서 좋다.”는 평이었다. 소위 “누룩으로 빚는 ‘진짜 술맛’이다.”고 하였으나, 개인적으로는 공감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청화주’라는 주품명의 의미를 찾을 수 없었다는 점에서 유감이 많이 남았다.
◈ 청화주 <禹飮諸方>
◇술 재료▴밑술:멥쌀 1말 5되, 누룩가루 2말 2되, 밀가루 1되, 끓는 물 1말 5되
▴덧술:멥쌀 4말, 누룩가루 1되, 끓여 식힌 물 4말
◇술 빚는 법▴밑술:①멥쌀 1말 5되를 백세 하여(물에 백번 씻어 새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말갛게 헹궈서 물기를 뺀 후) 작말하여(가루로 빻아) 그릇에 담아 놓는다. ②물 1말 5되를 팔팔 끓여 쌀가루에 붓고, 주걱으로 고루 개어 (반생반숙/범벅을 만들어 뚜껑을 덮고)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차게 식힌 범벅에 누룩가루 2말 2되와 밀가루 1되를 합하고, 매우 힘껏 치대어 술밑을 빚는다. ④술독에 술밑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서늘한 곳에 두고) 7일간 발효시킨다.
▴덧술①멥쌀 4말을 백세 하여 (새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 ②솥에 물 4말을 팔팔 끓여 식히고, 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고두밥에 밑술과 끓여 식힌 물 4말을 한데 합하여 고루 섞고, 다시 누룩가루 1되를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독에 술밑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14일간 발효시킨다.
◈ 청화주 <禹飮諸方> -점미로 빚는 법-
◇술 재료▴밑술:멥쌀 1말 5되, 누룩가루 2말 2되, 밀가루 1되, 끓는 물 1말 5되
▴덧술:찹쌀 4말, 누룩가루 1되, 끓여 식힌 물 4말
◇술 빚는 법▴밑술①멥쌀 1말 5되를 백세 하여(물에 백번 씻어 새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말갛게 헹궈서 물기를 뺀 후) 작말하여(가루로 빻아) 그릇에 담아 놓는다. ②물 1말 5되를 팔팔 끓여 쌀가루에 붓고, 주걱으로 고루 개어 반생반숙(범벅)을 만들고 (그릇에 뚜껑을 덮어)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차게 식힌 반생반숙(범벅)에 누룩가루 2말 2되와 밀가루 1되를 합하고, 매우 힘껏 치대어 술밑을 빚는다. ④술독에 술밑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서늘한 곳에서) 3~4일 또는 4~5일간 발효시킨다.
▴덧술①찹쌀 4말을 백세 하여 (새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 ②솥에 물 4말을 팔팔 끓여 식히고, 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③고두밥에 밑술과 끓여 식힌 물 4말을 한데 합하여 고루 섞고, 다시 누룩가루 1되를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 ④술독에 술밑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14일간 발효시킨다.
* 방문에 “본방은 백미로되, 점미로 덧하면 더 수이 되고 웃국이 많고, 탕수 아니라도 조금도 해롭지 아니하고, 날이 더운 때도 술밑 하여 사오일, 삼사일만 하여도 덧하느니라.”고 하였다.
박록담의 복원전통주 스토리텔링/76번째 이야기
술빚는 일 못지않게 술독관리도 중요하다 ‘찹쌀청주’
정확히 25년 전의 일이다.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술은 희석식소주와 맥주를 제외하고는 몇 안 되는 민속주와 ‘막걸리’, ‘동동주’가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수효도 적었고, 일반인들은 민속주나 전통주에 대한 개념이 없었던 때라, 그간의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러한 때 시골을 돌아다니면서 가장 많이 접하게 된 술이 ‘동동주’였고, 이 ‘동동주’가 ‘부의주(浮蟻酒)’의 별명이었다는 사실도 알게 되면서, ‘동동주’의 원형이라고 할 수 있는 ‘부의주’ 빚는 법을 찾게 된 것이 <飮食方文>과 <술 만드는 법> 등 한글로 쓰여진 문헌들이었다.
<飮食方文>과 <술 만드는 법>의 ‘부의주’를 복원해 놓고, 그 결과물을 바탕으로 ‘부의주’가 지금까지 세간에서 얘기하는 탁주(濁酒)가 아닌, 청주(淸酒)라는 주장을 처음으로 피력한 바 있었는데, 그때 소위 ‘동동주’를 상품화하고 있던 양주업자들로부터 모멸에 가까운 항의를 받은 적이 있었다.
지금이야 대부분의 사람들이 ‘부의주’는 청주라는 인식을 갖게 되었지만, 그때 ‘부의주’가 탁주가 아닌 청주라는 확신을 갖게 해준 주품이 <金承旨宅廚方文>의 ‘찹쌀청주법’이다. ‘부의주’가 <山林經濟> 등 수 많은 문헌에 등장하는 것과는 달리 ‘찹쌀청주법’은 <金承旨宅廚方文>에만 수록되어 있는데, ‘부의주’도 함께 수록되어 있다는 점에 주목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더 중요한 한 가지 사실은 <金承旨宅廚方文>의 ‘부의주’ 보다 ‘찹쌀청주법’이 <飮食方文> 등의 ‘부의주’ 주방문과 더 가깝고, 복원했던 술맛이나 향기 또한 너무나 닮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때문이었다.
<金承旨宅廚方文>의 ‘찹쌀청주법’은 술빚기에 사용되는 물의 양에서 ‘부의주’와 차이가 있을 뿐, 술 빚는 방법은 동일한 과정으로 이루어진다. 그러면서도 다른 문헌과는 달리 ‘찹쌀’로 빚는 청주(淸酒)라고 강조한 데서, 고두밥을 지어 빚는 술에서 ‘청주’를얻을 수 있다는 단초를 얻게 되었던 것이다.
<金承旨宅廚方文>의 ‘찹쌀청주법’ 역시 고두밥을 잘 짓는 것은 물론이고, 물 누룩을 만들어 사용하는데, 계절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찹쌀을 씻어 불리기 전에 솥에 물을 끓여서 차게 식힌 후, 누룩을 풀어서 물 누룩(水麯)을 만들어 두었다가, 사용한다는 것이다. 그러자면 누룩을 만들어 불리는 시간을 쌀을 씻는 시점부터 고두밥이 익어서 차게 식을 때까지 대략 6시간 정도가 되어야 한다.
‘찹쌀청주법’이라는 주품명과 관련 지어 보다 맑고 깨끗한 청주를 얻고자 한다면, 누룩물을 체에 걸러 누룩찌꺼기를 제거한 후에 사용하는 것이 좋고, 특히 찹쌀은 쌀알이 고르고 충실하게 잘 여문 것으로 골라서 가능한 백세를 많이 하고, 뜨물이 남지 않게 헹구되, 쌀눈이 남아있지 않도록 깨끗하게 헹궈서 물기를 뺀 후에 시루에 안쳐야 한다.
또 쌀을 불리는 시간이 짧을수록 살수를 많이 하여 센 불로 뜸을 잘 들이도록 하고, 쪄 낸 고두밥은 날씨가 더운 때일수록 가능한 차디차게 식혀서 사용해야 실수가 없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주방문 말미에도 언급하였듯이 ‘찹쌀청주법’은 끓인 물을 차게 식혀서 사용하는 만큼, 모든 준비과정은 물론이고 술을 빚기 시작하여 끝마칠 때까지 일체의 날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해야 실패가 없다.
발효시킬 때에는 겨울철은 술독을 이불로 덮어주고, 봄·가을은 차지도 덥지도 않은 넓은 마루에 놓고, 더운 여름철에는 ‘청서주’나 ‘수중양법’과 같이 술독을 찬물에 담가두라고 한 것을 볼 수 있는데, 이는 술을 빚는 일 못지않게 발효 중인 술독을 관리하는 일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부의주’가 조선 민중의 술로 우뚝하게 뿌리를 내린 반면, <金承旨宅廚方文>의 ‘찹쌀청주법’은 대중화되지 못한 것 같다. ‘찹쌀청주법’을 다른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이다. 이러한 사실과 관련하여 그 원인을 추측하건데, ‘부의주’와의 차별성을 찾기 힘들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부의주’에 흡수되었을 것으로 여겨진다.
술이란 기호식품이다. 그만큼 개성적이고 특징을 살려야 살아남는다는 뜻이다. 이러한 현상은 과거에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현대사회에서는 더욱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 지나치게 표준화·균질화를 강조하는 현대의 산업화는 자칫 획일화로 치닫기 쉽고, 그 획일화는 점점 개성화·다양화로 반영되는 현대인들의 기호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결국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특히 그것이 술일 때에는.
◈ 찹쌀청주법 <金承旨宅廚方文>
◇술 재료▴찹쌀 1말, 좋은 누룩 1되, 끓여 식힌 물 10~12복자
◇술 빚는 법①솥에 많이 차가운 냉수를 넉넉히 붓고, 많이 끓여 10~12복자를 퍼서 차게 식혀 놓는다. ②누룩 1되를 식힌 물 10~12복자에 풀어, 물 누룩을 만들어 놓는다. ③가장 좋은 찹쌀 1말을 백세 하여 물에 잠깐 담가 불렸다가, (다시 고쳐 씻어 헹궈서 물기를 뺀 후,) 시루에 안쳐서 고두밥을 짓는다. ④고두밥이 익었으면, 시루에서 퍼내어 고루 펼쳐서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 ⑤고두밥에 물 누룩을 섞고, 고루 주물러 덩어리 없는 술밑을 빚는다. ⑥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물기 없이하여 발효시키되, 겨울은 술독을 덮어두고, 봄·가을은 넓은 마루에 놓고, 극열(여름)은 찬물에 담가두고, 익는 대로 채주한다.
박록담은
* 현재 : 시인, 사)한국전통주연구소장, 숙명여대 전통문화예술대학원 객원교수, 중요무형문화재 인증심의위원, 한국문인협회원, 우리술교육기관협의회장 활동 중이며, 국내의 가양주 조사발굴활동과 850여종의 전통주 복원작업을 마쳤으며, 국내 최초의 전통주교육기관인 ‘박록담의 전통주교실’을 개설, 후진양성과 가양주문화가꾸기운동을 전개하여 전통주 대중화를 주도해왔다.
* 전통주 관련 저서 : <韓國의 傳統民俗酒>, <名家名酒>, <우리의 부엌살림(공저)>, <우리 술 빚는 법>, <우리술 103가지(공저)>, <다시 쓰는 酒方文>, <釀酒集(공저)>, <전통주비법 211가지>, <버선발로 디딘 누룩(공저)>, <꽃으로 빚는 가향주 101가지(공저)>, <전통주>, <문배주>, <면천두견주>, 영문판 <Sul> 등이 있으며,
* 시집 : <겸손한 사랑 그대 항시 나를 앞지르고>, <그대 속의 확실한 나>, <사는 동안이 사랑이고만 싶다>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