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⑤

(유피테르의 양육(1635-1637)/ 푸생 Ⅰ Jupiter enfant nourri par la chèvre Amalthée/ Jacob Jordaens>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酒神)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⑤

제우스를 받은 가이아는 크로노스가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칠흑 같은 밤을 이용해 숲이 우거진 아다산의 외진 동굴로가 그를 숨겼다. 다른 버전에서는 뒷문으로 빠져나간 가이아는 레아의 막내아들을 안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 동굴에 살고 있는 요정 아말테이아(Amalthea)에게 아기를 맡긴 것으로 전하고 있다. “이 아이의 이름은 제우스요. 아이가 자라서 청년이 될 때까지 이곳에서 맡아주시길 간곡히 부탁하오.”

할머니의 팔에서 내린 아기의 울음소리는 천지를 뒤흔들었다. 아말테이아가 아기에게 젖을 물리며 말하였다. “산신들은 귀담아 들으세요. 아기의 울음소리가 크로노스의 귀에 들리지 않도록 일분일초도 빠짐없이 방패를 두들기도록 하세요.” “예, 아무리 귀 밝은 크로노스지만 저희들의 난장소리에 아기의 울음소리를 엿듣진 못할 것입니다.” 가장 힘이 센 산신이 대답하였다. 남매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아기 울음소리를 감추기 위해 찰과 청동방패를 두드리며 소란을 떠는 아말테이아라는 요정들과 함께 크레타 섬에서 자라 청년이 되었다.

어린 제우스를 보호하는 쿠레테스. The Infant Jipiter Nurtured by the Goat Amalthes/ Nicolas Poussin

이 사실을 감지한 크로노스가 추격하자 제우스는 뱀으로 양육자들은 곰으로 둔갑하여 화를 모면하기도 하였다. 이 이야기에서 연유하여 생긴 별자리가 뱀과 곰 자리이다. 이 신화를 바탕으로 해서 크레타 섬에서는 쿠레테스(Couretes)를 청춘의 신으로 모시게 되었으며, 크레타 섬에는 어린 제우스를 위한 축제를 벌릴 때 젊은이들이 농기구를 두들기는 행사의 기원이 되었다.

제우스가 태어난 곳이라는 구멍과 제우스를 목욕시켰다고 전해지는 물웅덩이

크레타 사람들에게 제우스는 턱수염이 없고 긴 머리를 한 젊은이로서 ‘산어머니(mountain mother)’의 아들로 기억됐다고 했다. 즉 ‘아버지 제우스’가 아니라 ‘어머니의 아들 제우스’였다는 것이다. 그녀는 딕티 동굴에 처음 바쳐진 공물이 음식과 액체가 담긴 토기들이란 점에서 그곳이 원래(최소한 BC. 2200년경) ‘산어머니’를 숭배하던 곳이었을 거라고 추정한다.

기원전 1,700년 이후에는 청동 양날 도끼나 칼 등이 봉헌됐는데 칼은 아들 제우스에게, 양날도끼는 어머니에게 바쳐진 것임을 알 수 있다고 한다.

“크레타 제우스는 아마도 그 이름을 그리스인들이 이 섬에 들어온 이후 그들에게서 얻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성격은 달랐죠. 매년 죽었다 다시 살아나는 그린 맨 같은 존재였습니다. 그의 어머니 레아도 크레타의 산어머니같은 존재로 여겨졌다고 봐야 할 거예요”

이 같은 견해는 희박한 추정이 아니라 관련 학자들의 연구를 통해 이미 많이 제기된 것이다. ‘쿠로스(Kouros)’로 불렸던 젊은 남신 ‘크레타 제우스’에 대한 연구 자료는 이미 적지 않게 나와 있다. 멀린 스톤(Merlin Stone)은 <하느님이 여자였던 시절(When God Was a Woman)>(1978)에서 크레타 인들이 미노아 문명이 멸망한 이후인 고전시대에도 인도유럽계 제우스를 갓난아기로, 일차적으로 그의 어머니 레아의 아들로 섬겼다고 주장한다.

한 전설에 따르면 레아는 자신의 아들 제우스에게 성적 공격을 당했다고 하는데 이것은 아마도 여신과 아들 사이에 신성한 성적 결합이 이뤄졌다는 그 이전 이야기의 흔적일 것이다. 크레타에서 제우스는 죽어가는 아들로 생각됐으나 본토의 인도유럽계 그리스인들은 그가 불멸의 신이라고 주장하며 이런 생각에 몹시 화를 냈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좌) 나무에 앉아있는 크레타 제우스를 묘사하고 있는 고대 크레타 동전들(우)

아버지 크로노스에게 삼켜지지 않고 살아남은 제우스는 빠르게 성장하였다. 제우스가 성인이 되자 레아는 제우스에게 사자를 보내 지난날의 사정을 전하고 형제들을 구하라고 당부했다. 자신의 내력을 알게 된 그는 테미스 여신을 찾아갔다. “아버지가 삼킨 제 형들과 누나들을 되살려낼 방도는 없을까요?” 테미스 여신은 제우스에게 형들과 누나들을 되찾을 방법을 일러주었다. 그녀는 제우스의 두 번째 연인이다.

제우스는 곧바로 산을 내려와 어머니 레아를 찾아가 크로노스의 시중꾼으로 써 달라고 간청했다. 레아는 제우스의 정체를 알아보았으나, 크로노스가 삼키려 들까 봐 모르는 체 했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에게 신찬(神饌)인 암브로시아와 신들이 마시는 술 넥타르를 시중드는 일을 자청하였다.

제우스는 크로노스에게 음식을 올릴 때마다 구토제를 넣었다. 이것은 지헤의 여신 테미스가 처방해 준 방법이었다. 처음에는 끄덕도 하지 않던 크로노스도 신찬과 넥타르를 먹을 때마다 약을 먹이자 삼킨 것들을 토해내기 시작했다. ‘저승의 신’ 하데스, ‘바다의 신’ 포세이돈, ‘부엌의 여신’ 헤스티아, ‘곡식의 여신’ 데메테르, ‘화덕의 여신’ 헤라를 토해내고 마지막으로 바윗덩어리를 차례대로 토해내었다. 크로노스가 삼켰던 순서와는 반대로 돌덩이부터 먼저 나왔으며 제우스의 형제자매들이 삼킨 순서의 역순으로 차례대로 나왔다.

또한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제우스는 크로노스가 토해낸 돌덩이를 파르나소스 산의 협곡 아래에 있는 상당한 규모의 ‘퓌토(Pytho, 델포이의 옛 이름)’의 ‘넓은 길이 있는 땅(wide-pathed earth: 즉 가이아)’ 속에 그 돌덩이를 단단히 고정시켜 세워두었는데, 이것은 제우스의 성장과 형제자매들을 구해낸 이 활약을 나타내는 ‘[성장과 극복의] 징표(sign)’가 되었으며 필멸의 인간들에게는 하나의 경이가 되었다.

한편, 아폴로도로스의 <비블리오테케> 1.2.1절에 따르면 삼킨 돌덩이와 자식들을 토해내게 된 원인이 <신들의 계보>의 설명과는 다른데, 제우스는 지혜의 여신인 메티스에게 도움을 받아 크로노스에게 구토를 일으키는 약을 먹이는 데에 성공하여 그 결과 크로노스가 돌덩이와 자식들을 토해내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돌덩이는 후대의 그리스 신화와 종교 그리고 관련 문학 등에서 옴팔로스(ὀμφαλός Omphalos)와 동일시되기도 한다.

마침내 크로노스는 제우스의 정체를 끝내 알게 되었다. “내가 어리석었구나. ‘대지의 속살’이 바윗덩어리란 사실을 알지 못했구나. 삼킨 것을 다 토해냈으니, 나는 이제 시간의 신이 아니다. 네 마음대로 처분하여도 좋다.” 제우스를 비롯해 하데스, 포세이돈은 며칠 동안에 걸친 열띤 토론 끝에 아버지 크로노스를 추방하기로 결정하였다. 세 아들에게 추방당한 크로노스는 인간세계로 내려와 이탈리아로 발길을 돌렸다. 천국에서 벌인 자신의 행동을 뉘우치고 선정을 베풀 것을 속으로 약속했다.

<신들의 계보>에 따르면, 시간이 흘러가, “교활한 거신 크로노스는 가이아의 깊은 암시에 의해 최면이 걸려서(great Cronos the wily was beguiled by the deep suggestions of Earth)” 제우스를 알아보지 못하고, 그가 제우스를 양육하게 되었으며, 이렇게 하여 성장한 제우스의 기예와 힘에 의해 마침내 크로노스는 완파를 당하였고, 그동안 삼킨 자식들과 돌덩이를 토해내었다. 크로노스가 삼켰던 순서와는 반대로 돌덩이부터 먼저 나왔으며 제우스의 형제자매들이 삼킨 순서의 역순으로 차례대로 나왔다.

제우스(Zeus)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최고의 권력을 자랑하는 신들의 제왕이다. 그런데 이 신의 유래가 흥미롭다. 기원전 20세기경, 발칸 반도 북쪽으로부터 오늘날 그리스인들의 뿌리가 된 인도유럽어 계통의 종족들이 침입해 들어왔는데, 제우스는 바로 이들이 섬기던 ‘하늘의 아버지’ 혹은 ‘빛나는 하늘의 신’이었다는 것이다. 이 새로운 이방신은 점차 크레타 섬을 중심으로 한 이 지역 원주민의 신과 결합되어 마침내 하나의 신으로 여겨지게 되었다.

이후 제우스에 관한 수많은 전설은 호메로스(Homeros)와 헤시오도스(Hēsiodos)와 같은 고대 그리스의 서사 시인들과 역사가들을 통해 기록으로 남겨져 전해졌다. 그리고 로마 시대에 와서는 로마신 유피테르(Jupiter)와 동일시되어 시인 오비디우스(Publius Ovidius Naso)의 <변신이야기(Metamorphoses)>에는 자유자재로 모습을 바꾸는 이 신의 흥미로운 모험담이 그려져 있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고대 그리스 로마의 제우스 신화는 바로 이러한 문헌들을 근거로 한 것이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 필자 남태우 교수 경력:▴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오픈엑세스포럼회장▴한국 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장▴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한국도서관협회장▴중앙대학교 명예교수(현재)▴현재 건전한 음주문화 선도자로 활동하고 있음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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