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같이 있어 행복한 사람의 미소
육 정 균(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시인/부동산학박사)
비가 그친 주말에 친구들과 산정호수가 유명한 포천에 들렀다. 일행의 점심상에는 예외 없이 포천 이동막걸리가 넙죽 걸터앉는다. 포천엔 백운산과 백운계곡을 흐르는 맑은 물이 넘쳐 예부터 막걸리 양조장이 많았다. 점심부터 술 좋아하는 내 친구는 막걸리 통에 코를 박고 신이 나서 행복해 있다.
난 막걸리 너머 먼 산이 아름다워 넋 잃고 바라보다, 흰머리를 스치는 바람에게 물어본다. 산다는 것은 무엇이고, 즐거움이나 참 행복은 무엇인지? 이왕이면 같이 있으면 행복한 사람, 비가 억수로 오는 날 한 우산 아래 머리만 젖지 않아도 너무 행복해서 함께 박장대소할 수 있는 사람, 아무리 바쁘더라도 자주 만나고 싶은 사람, 같이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고 행복해지는 사람, 너만 있으면 행복하다는 그런 사람은 누구일지.
사람들은 기쁘거나 행복했던 경험보다는 분노나 두려움과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더 많이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편안하거나 행복한 좋은 감정이 훨씬 많을 수도 있다. 더러워진 몸을 깨끗한 물로 씻어 낼 때 느끼는 쾌감이나 대변을 보면서 느끼는 쾌감부터 친구와의 만남, 맛있는 음식, 멋진 여행, 사랑하는 사람과의 섹스, 자식 탄생, 경기 우승 등 다양한 행복이 있다.
그림을 보거나 음악을 듣는 예술 감상에서도 섹스 못지않은 기쁨을 느낀다. 슬픔이 뭔가를 잃어버렸을 때의 감정이라면, 기쁨이란 뭔가를 얻었을 때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생존이나 사회생활에 도움이 되는 상황일 것이다. 이러한 즐거움은 누군가와 함께 경험할 때 더욱 커진다.
생존에는 직접 도움이 되지 않는 듯 보이는 예술 감상의 즐거움도 누군가와 가치를 공유할 때 더욱 커지고, 혼자 그림을 보는 것보다는 동행과 같이 비평하는 것이 재미있고, 그만큼 가치가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늘 느끼고 싶어 하는 기쁨에는 정신적인 기쁨과 감각적인 기쁨 두 가지가 있다. 감각적인 기쁨은 육체적 쾌락으로 정신적인 기쁨보다 한 차원 낮은 형이하학적인 것이다. 흔히 육체적인 쾌락이란 한순간 느꼈다가 지나가는 감정이고, 정신적인 쾌감은 지속될 수 있다.
그런데 음식에 대한 기쁨은 맛 자체보다는 어릴 때 먹었던 어머니의 음식과 같은 맛에서 더욱 큰 기쁨을 느끼고, 섹스의 쾌락은 부부의 사랑을 더욱 깊게 해 준다. 그래서 대부분의 즐거움은 정신과 육체가 결합된 상태에서 완벽하게 된다.
한편, 자신과 세계가 하나가 되는 종교체험에서도 순간적인 평화를 느낄 수도 있고, 황홀감이나 자아가 없어지는 환각을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진리를 깨닫는 순간에는 어떤 권력을 얻는 것보다도 더 큰 기쁨을 느끼게 된다.
인간은 슬픔이나 고통을 극복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덕분에 즐거울 수 있다. 즐거움은 슬픔이나 고통이 있기에 가능하다. 우리가 진정으로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것은 기쁨을 얻을 때까지의 힘든 과정이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고통이나 슬픔이 내일의 즐거움을 반드시 보장하는 것은 아니지만, 즐거움을 느끼기 위한 전제 조건인 것만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나 동물의 특정 행동을 강화하는 보상은 대부분 즐거움을 준다. 음식·물·술·섹스 등이 대표적으로 즐거움을 느끼게 하는 보상이다.
우리는 대개의 삶에서 쾌락을 원하고, 쾌락을 주는 대상을 얻으려 노력한다. 또한, 사람들은 행복하거나 즐거울 때 보통 미소 짓는다. 웃음이 실제로 행복 때문인지, 사회적인 관계를 위한 인위적인 웃음인지, 그 미소의 의미도 다양하지만, 웃음은 행복을 낳고, 행복을 증폭시킬 수 있어 억지웃음까지도 건강에는 최고라서 다방면의 질병과 암까지 웃음으로 치료하고 있다. 활짝 웃는 사람들이 더 행복한 삶을 살고, 사회적으로 더 활동적인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진정한 행복은 무엇일까?
행복(happiness)은 ‘주관적 안녕감(subjective well-being)’이라는 말에 동의하고 싶다. 안녕(安寧)이란 “평안하다는 의미인데, 즐거움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특별한 사건이 없는 편안한 상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직장, 건강, 가족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자기 삶에 대한 만족도가 중요하다. 물론 슬프고 괴로운 사람이 자기 인생에 만족할 리는 없고, 만족감에는 기쁨과 같은 긍정적인 감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행복이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만족과 즐거움을 느끼는 상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대개의 현대인에겐 행복의 조건이 돈이라고 하지만, 과연 행복을 돈으로 살 수 있을까? 그러나, 경제적인 수준은 행복에 많은 영향을 미치고, 복권 당첨마저도 행복을 증가시킬 수 있다. 그러므로 경제인으로 열심히 성실하게 살아갈 필요는 분명하다.
즐거움과 행복에는 돈이나 타고난 성향 외에도 건강, 종교, 가족, 친구, 사회관계 등 많은 요인이 영향을 미친다. 또한, 행복한 사람일수록 돈도 많이 벌고 건강하며, 친구나 사회관계도 좋은 편이다. 이러한 요인들은 서로 상승 작용을 일으키면서 행복에 영향을 미친다. 그러면 행복할수록 좋기만 할까?
갑자기 서울시장이 홀로 폭염 속 푸른 산으로 떠났다. 나름 여유 있는 가정을 이룬 것은 물론,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시장이라는 명성과 권력을 구가하던 그도 행복한 사람 중의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과연 같이 있던 주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면서도 자신도 진정 행복한 사람이었을까? 푸른 산 녹음에게 묻고 싶다. 그에게서도 “행복과 안녕이란, 성공한 사람으로서의 자랑이나 즐거움보다는 오히려 특별한 사건이 없는 편안한 상태”였을 것이나, 자칫 방심했거나 과욕을 부리는 자신을 경계하지 못했으리라.
그래서 “여보게 친구! 같이 있어 행복한 당신에게서 언제나 편안한 미소를 보고 싶네.”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