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獨酌 보다 酬酌이 그립다
왁작 지껄한 대폿집 풍광이 그립다. 지지~직 전부치는 소리, 고기 굽는 구수한 냄새, 가마솥에서는 술국이 뭉근하게 끓고, 목청 높여 “여기 술 주세요!”하면 “예~, 갑니다” 하는 왁작 지껄한 소리가 뒤범벅이 되어 북적대는 대폿집.
샐러리맨들이 하루의 스트레스를 걸쭉한 입담으로 날리며 하루를 마감 할 수 있는 그런 대폿집이 그립다.
이 테이블 저 테이블에서 오가는 술잔들, 술병이 쌓여 갈수록 술꾼들의 얼굴은 불콰해지고 혀는 꼬부라져 간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도 못할 말들이 제각각인데도 웃고 떠든다.
앞으로 이런 대폿집 풍광을 다시 볼수 있을까. 코로나19 때문에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지례 걱정이 앞선다.
코로나19로 이런 대폿집의 풍광이 사라져 가고 있다. 아마 앞으로 이런 광경은 술박물관에서나 찾아봐야 될지 모르겠다.
홈술, 혼술이 대폿집의 왁작 지껄한 모습을 밀어내고 있던 차에 코로나19가 결정타를 날렸다. 또한 거리두기가 일상화 되면서 식당에서도 떨어져 앉는 것이 예의가 되어 가고 있다. 다닥다닥 붙어 앉아서 술 잔 돌리며 술 마시던 시대는 언제였던가. 코로나19예방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조치라곤 하지만 주당들에게는 아쉬움이 길게 남는다.
홈술, 혼술은 이미 수년 전부터 생겨난 풍조로 주류업계에선 이 때문에 매출감소로 어려움을 겪어 오고 있는 마당에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이다.
혼술은 단지 주류업계의 매출감소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뿐 아니라 알코올 중독자가 급증하고 있다는데서 새로운 사회문제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휴직자나 실직자가 증가하면서 혼술 족이 증가하고 있는데 혼자서 술을 마시다 보면 이를 제어해 줄 사람이 없다는 데 심각성이 커지고 있다.
과거 조선시대에는 가정에서 술을 마실 때 가장의 허가 없이는 마시지 못했었다. 이는 어른들 앞에서 음주를 하도록 한 것은 술이 주는 해학을 방지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음주문화는 오래 전부터 혼자서 술을 마시는 독작(獨酌)음주가 아니라 술잔을 서로 주고받는 수작(酬酌)문화가 대세였다.
세종대왕은 한 때 술을 삼가라는 계주문(戒酒文)을 팔도에 공포하면서 ‘신라는 포석정에서 망하고 백제는 낙화암에서 멸했다’는 글귀를 넣었다고 한다. 이로 미루어 보아 아주 오래전부터 수작문화가 번성하고 있었음을 엿 볼 수 있다.
보부상들(지금의 직장인들이라고 봐도 좋다)이 같은 보부상을 말할 때는 흔히 대포지교(大匏之交)라고 했다고 한다. 대포로 술을 나누어 마신 사이는 이미 그러한 정신적, 정서적 결속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지금처럼 다양한 술잔이 개발되기 전 과거에는 어떻게 술을 마셨을까? 역사적인 자료에 의하면 짐승의 뿔을 이용해 만든 ‘각배(角杯)’를 사용했음을 알 수 있다.
각배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중국이나 일본, 또는 유럽의 여러 나라에서도 사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각배는 아래가 뾰족하여 내려놓기가 어려워 술을 마신 후 상대방에게 술잔을 건넸을 것이다. 수작문화의 시작은 이렇게 시작되었을 것이다.
자기 술잔에 먹고 싶은 만큼 따라 마시는 음주 문화를 자작문화, 중국이나 러시아ㆍ동구처럼 잔을 맞대고 건배를 하고 마시는 것을 대작문화라 한다면, 우리가 술잔을 주고받으며 마시는 음주문화는 수작문화다. 자작문화와 독작문화는 엄연히 차이가 있다.
우리의 전통음주문화인 술잔 돌리기 즉, 수작은 비염감염이 전염된다하여 금지해야 된다는 주장들이 확산되어 우리도 어느 결에 자작문화가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아직까지 술잔을 돌려서 비염감염이 생겼다는 이야기는 들어 보지 못했다. 남이 마시던 잔이니까 비위생적이지 않겠느냐는 선입견이 수작문화를 밀어내고 있는 것 같다.
우리의 조상들은 큰 술잔(바가지 같은 것)에 술을 가득 부어 돌려가며 마셨다. 결속을 다짐하는 의미가 컸을 것이다.
소슬한 가을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태백(李太白)의 장진주(將進酒:권주가)가 생각나는 시절이 다가 오고 있다. 친구 불러내 “여보게! 내 술 한잔 받으시게” 하며 수작을 부리고 싶은데 코로나19가 발목을 잡는다.
오늘도 대작(對酌)할 상대가 없이 독작(獨酌)을 해야 하는가. 이럴 줄 알았으면 일찍이 집사람한테라도 술을 배우게 할 것을… 아쉽다.
<삶과술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