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밭에 홀로 앉아 한 잔 술을 마시노라. 잔을 들어 달에게 권하니 달과 나 그리고 그림자가 하나 돼 벗이 되누나.’(花間一壺酒, 獨酌無相親. 擧杯邀明月, 對影成三人)
당(唐)나라 이백(李白?701~762)의 시 ‘월하독작(月下獨酌)’의 첫 구절이다. 술은 이렇듯 많은 문인의 친구였고, 예술의 원천이다.
“중국의 인문을 알려면 술을 보라”는 말이 있듯이 중국에는 주종(酒種)도 많고 생산량도 엄청나다. 두주불사(斗酒不辭)란 말도 그래서 나온 말이 아닐까 여겨진다.
《사기(史記)》 항우본기(項羽本紀)에 항우가 번쾌에게 “더 마실 수 있겠는가?” 하고 묻자, 번쾌가 대답했다. “신은 죽음도 피하지 않는 사람인데 어찌 술 한 잔을 사양하오리까.” 이렇듯 두주불사는 본래 장수들의 기개를 표현하던 것이었으나, 뜻이 변하여 주량이 센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요즘 두주불사 형은 사회에서 대접 받지 못한다. 약게 마셔야 몸에 좋다고 하기 때문에 가급적이면 적게 마시려 한다. 술을 빚어 판매하는 사람 입장에서 보면 두주불사 형이 많이 나와야 술장사가 잘 될 텐데…. 사회에서는 자꾸 건강을 강조하며 술 마시는 분위기를 깨고 있다. 그렇다고 이를 반대하고 나설 수도 없으니 답답한 마음뿐일 것이다.
요즈음 마트에는 갖가지 술이 쏟아져 나와 눈요기로는 그만이다. 어쩌다가 새로운 술이라도 발견하면 횡재를 한 것처럼 손길이 간다. “어떤 맛일까, 순한 맛일까, 아니면 독한 맛일까….” 별 생각을 다하게 되는 즐거움은 주당들의 권리(?)다. 살펴보면 메이저급 소주나 맥주 회사들에 비해 영세하기 짝이 없는 전통주 술도가들이 빚어내는 것이지만 그 정성이나 기능면에서는 나무랄 데 없는 술도 꽤 많다. 그런데도 얼마 안가서 마트에서 사라진다. 팔리지 않기 때문이란다. 상인(商人) 속성상 팔리지 않는 물건을 오래 끼고 있어봤자 자리만 차지하니 어쩔 수 없는 노릇이겠지만 술 빚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속이 타들어간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세계 어디엘 내놓아도 도전정신이 강한 민족이란 소리를 듣는다. 스포츠건 과학이건 경제건 그야말로 전천후 도전정신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그리고 두각을 나타낸다.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는 것을 보라. 얼마나 장한 모습인가.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남녀 직장인 114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직장인이 꼭 해야 할 것으로 ‘10년 후 계획 세우기’가 전체 71.8% 응답률로 1위에 올랐다. 이어 ‘취미생활 갖기’(58.0%), ‘새로운 것에 도전하기’(50.6%), ‘외국어 공부하기’(50.2%), ‘승진하기’(48.0%) 순이었다.
우리의 핏속에는 그만큼 도전정신이 깃들여 있는데도 유독 술에 대한 도전만은 약하다. 마트뿐만 아니라 밥집이나 술집에는 새로 나온 술 관련 포스터가 붙어있다. 아름다운 모델들이 신상품의 술병을 들고 있지만 술을 주문할 때는 잘 알려진 ○○소주나 ◇◇맥주를 주문하는 것이 보통이다. 새로 나온 술이라야 값으로 불과 몇 천원이 보통인데도 선뜻 시키지 못하는 것은 새로운 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일 것이다.
소주나 맥주를 마시지 말고 새로운 전통술만 마시라는 것이 결코 아니다. 이왕 마시는 술이니 한 번 새로운 술에 도전하여 색다른 풍미를 맛보는 것 또한 풍류를 즐기는 또 다른 방법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삼겹살엔 소주가 최고고 통닭엔 호프가, 생선회에는 청주가 좋다는 고정관념도 전근대적이다. 삼겹살 구워놓고 와인을 마시면 어디 탈이라도 난단 말인가. 이는 TV에서 와인을 마시는 장소로 멋있는 레스토랑만 비춰주니 그렇게 된 모양이다. 이제 멋있는 레스토랑에서 막걸리 마시는 장면도 나오고, 바(bar)에 앉은 손님이 “언더락 글라스에 소주 한 잔!” 하는 장면도 나와야 한다. 왜냐하면 그래야 우리 술이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당들이 새로운 술에 도전하는 것, 그것이 곧 애국(愛麴)하는 길이며 전통주를 살리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