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코냑 브랜드 ‘레미 마틴(Remy Martin)’의 북동아시아·태평양 담당 문고 길크리스트(48·Mungo Gilchrist) 총괄이사가 최근 내한했다.
그는 “한국에선 ‘골드미스’들이 다양한 주류문화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며 “최근 이들을 중심으로 ‘레미 마틴 XO’ 등 프리미엄급 코냑을 찾는 경우가 늘고 있어, 당분간 한국시장에 코냑을 알리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한국시장을 주목했다.
그는 또 “레미 마틴이 까다로운 원칙을 고수하면서까지 품질을 최우선 가치로 여겼기 때문에 지난 3세기 동안 다른 코냑 브랜드와 차별화하면서도 맛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자랑도 빼놓지 않았다.
레미 마틴은 현재 전 세계에서 193만 상자가 팔리고 있는 세계 2대 코냑 브랜드다. ‘코냑의 심장(The Heart of Cognac)’이라는 슬로건이 말해주듯 프랑스 코냑지방 중에서도 ‘심장’ 지역에서 1724년 처음 만들어졌다.
다음은 그와의 일문일답이다.
레미 마틴이라는 브랜드의 기본 철학과 이 코냑만의 강점은 무엇인가.
레미마틴이 지난 3세기 동안 다른 코냑 브랜드와 차별화되면서도 맛의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요인은 바로 품질이다. 가장 기본적인 내용이지만 일관성을 지키기 쉽지 않은 게 바로 품질이다. 품질에 있어서만큼은 까다로운 원칙을 고수하고 있는 레미 마틴은 최고의 원료를 생산하는 코냑지방의 심장, 그랑 샹파뉴(Grande Champagne)와 프티 샹파뉴(Petite Champagne) 지역의 최고급 포도만을 사용한다.
레미 마틴이 다른 코냑 브랜드와 가장 차별화된 것이 있다면 어떤 것인가.
레미 마틴은 코냑 중에서도 최상급 코냑을 일컫는 핀 상파뉴 코냑(Fine Champagne Cognac)이다. 1738년부터 프랑스 정부는 가장 좋은 코냑용 포도를 생산해, 코냑의 심장부라 부르는 그랑 샹파뉴 지방(샴페인을 만드는 샹파뉴 지방과는 다른 곳)의 와인 증류 원액을 50% 이상 함유한 코냑에 핀 상파뉴 코냑이라고 분류, 표기토록 해왔다. 레미 마틴의 VSOP는 50% 이상, XO급은 85% 이상이 그랑 상파뉴 지방의 와인 증류 원액을 사용한다. ‘루이 13세’는 그랑 상파뉴 지방의 와인 증류 원액 100%로 만든다. 루이 13세의 경우 100년 이상 숙성시키기 때문에 한 병을 만드는데 3대(代)에 이르는 *셀러 마스터의 손을 거치니 그 노력과 정성이 남다르다. ‘생명의 물’이라 불릴 만큼 귀한 *오드비는 놀랍게도 척박한 토양이 만들어낸다. 코냑지방의 땅은 석회질이 많아 매우 건조하고 척박하다. 아무것도 뿌리 내리지 못하는 이 메마른 땅에서 자라는 것이 바로 코냑에 사용되는 포도품종인 ‘유니 블랑(Ugni Blanc)’이다. 이 포도 자체는 무척 시고 떫어 과일로서 빛을 발하지 못하지만, 황무지를 이기고 자라는 강한 생존력은 100년을 숙성시켜도 맛과 향이 사라지지 않는 코냑의 비결이 된다. 석회질이 많은 땅은 오랜 시간 물을 간직하는 습성이 있는데, 포도나무가 그 물을 찾아내기 위해 깊게 뿌리를 내려 미네랄 성분을 다량 함유한다.
*셀러 마스터(Cellar Master)_ 코냑의 제조부터 숙성까지 모든 과정을 책임지는 코냑 전문가.
*오드비(Eaux-de-vie)_ 와인을 증류해 얻은 원액.
품질과 제품에 집중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도 많은 경쟁사 브랜드들은 시장 내에서 무척 다양한 마케팅 방법들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접근하고 있다. 이를 그냥 보고만 있을 순 없지 않은가.
품질력 있는 제품만이 시장을 주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레어 캐스크의 런칭과 관련해서 그런 질문을 많이 받았다. 레미 마틴 하우스에서 내가 정말 관심을 갖고 집중하는 부분은 우리 제품들과 숙성 과정, 셀러 마스터 피에레트 트리셰의 능력과 그녀가 최고의 오드비로 어떤 것을 선택하는지 등 제품의 품질에 대한 부분이다. 나는 레미 마틴 하우스의 모든 인재들이 지금까지 그랬듯이 앞으로도 철저하게 뛰어난 품질의 제품들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 앞서나갈 것이라 확신한다. 마케팅은 그 다음의 문제다. 마케팅적인 측면과 유통 공급의 측면에서 경쟁 제품들을 벤치마킹해 새로운 혁신을 일으킬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레미 마틴은 코냑업계에선 최초로 여성 셀러 마스터를 등용해 많은 화제를 낳기도 했다.
그녀가 레미 마틴의 셀러 마스터가 된 것은 단 하나, 그녀의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다. 그녀가 여성이라는 점은 그 다음의 일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여성이기 때문에 특별한 장점을 가진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것은 그녀가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뛰어난 인재이기 때문이다. 아무도 그녀에게 어떤 선택을 하거나 하지 말라고 강요하고 조언할 수 없다. 그녀의 모든 선택은 전적으로 그녀의 생각과 감각에 달려있다. 레미 마틴 하우스의 모든 사람들은 그녀의 그런 점을 높이 평가하며 전적으로 신뢰한다.
레미 마틴만의 특별한 마케팅 기법이 있는가.
레미 마틴은 코냑 한 병에 특별한 가치를 담는 만큼 소수만을 위한 마케팅을 고집한다. 레미 마틴은 ‘퍼스널 터치(personal touch)’를 중요하게 여긴다. VVIP 고객을 대상으로 코냑 리더십 클래스를 열어 코냑의 제조과정을 리더십과 비교해 비즈니스적으로 접근한다거나, 소규모 파티를 지원하기도 한다. 다양한 마케팅이 동원되는 시대에 품질 하나만으로 3세기 동안 승부하고 있으니 무척 용기 있는 브랜드라 생각하며, 그것은 곧 브랜드의 자랑이기도 하다.
한국에서의 코냑 시장은 어떻게 보고 있는가.
‘루이 13세’는 코냑으로 여기지 않고 높은 가치를 지닌 럭셔리 제품으로 생각한다. 한국 소비자들은 명품을 알아보는 안목을 가졌다. 럭셔리 아이템과 명품에 대한 관심이 커서 앞으로 한국시장에서 루이 13세가 성장할 수 있는, 굉장히 잠재력이 큰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술인 루이 13세가 한국 소비시장에서 톱(Top) 5 안에 드는 건 매우 기쁜 일이지만, 코냑의 올드(old)한 이미지가 강해 다양하게 즐기지 못하는 건 아쉽기도 하다. 루이 13세나 오드비를 85% 이상 함유한 XO급은 그 자체의 맛과 향을 즐기는 것이 좋지만, 스탠더드급인 VSOP는 칵테일로 활용할 수 있다. VSOP에 오렌지 리큐어인 쿠앵트로(Cointreau)와 오렌지주스를 섞어 만든 ‘사이드 카(Side Car)’는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칵테일 중 하나다. 하루의 피로를 푸는 칵테일로, 또는 모임에서 친구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칵테일로 손색없다. 손쉽게 만들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VSOP를 냉동실에 넣어두면 코냑이 질퍽해지면서 상온에 놔둔 것보다 마시기 훨씬 편한 상태가 돼 여성들이 즐기기에도 좋다. 한국시장에선 이른 바 ‘골드미스’들이 다양한 주류문화를 통해 새로운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들의 특징 중 하나는 소주나 위스키 외에 코냑이나 샴페인 같은 새로운 술도 거부감 없이 즐긴다는 점이다. 일본시장을 예를 들면, 15년 전만 해도 20도 이상 고도주(高度酒) 시장의 90%를 소주가 차지했지만, 이제는 코냑이나 위스키 등 다른 주종의 비율이 40% 가까이 되고 있다. 최근 한국과 일본시장에선 골드미스 등을 중심으로 레미 마틴 XO 등 프리미엄급 코냑을 찾는 이들이 늘고 있다. 때문에 당분간 한국시장에서 코냑을 알리는 활동에 집중할 계획이다. 앞서 말했던 코냑 클래스, 코냑 리더십 클래스 등을 통해 직접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 코냑에 대한 의미와 가치를 전달하고자 노력할 것이다.
코냑은 먼저 코를 위해 마시고, 다음으로 입을 위해 마시며, 마지막으로 기쁜 영혼을 위해 마신다고 한다. 레미 마틴의 매력을 화려한 수식어로 표현한다면.
오크통에서 오랜 시간을 기다린 은은한 호박빛깔의 코냑, 그 향에는 바닐라, 계피, 아이리스, 헤이즐넛, 감초, 자두, 감귤 등 1200가지 꽃과 열매의 향기가 다채롭게 어우러져 있다. 달콤하다고 느끼는 것은 정제되고 응축된 강렬한 풍미 때문인데, 한 모금 마시면 입속에서 1시간 이상 지속적으로 여운을 느낄 수 있을 정도다.
말한 김에 레미 마틴을 맛있게 즐기는 방법에 대해 소개 바란다.
와인이 음식의 일부인 것처럼 화이트와인을 증류한 코냑 역시 음식 맛을 돋우는 식전주나 훌륭한 디너의 화룡점정을 찍는 식후주로 사랑받고 있다. 일반적으로 코냑에 잘 어울리는 음식은 푸아그라, 쇠고기 스테이크, 생선회, 과일, 초콜릿 등이다. 한국음식 중에선 갈비가 코냑과 잘 어울린다. 양념에 재워 숯불에 구운 갈비의 향과 숙성된 코냑의 오크 향이 조화롭다. VSOP는 온더록스 잔에 따라 얼음이나 약간의 물을 섞어 오렌지, 초콜릿 같은 디저트와 함께 마시면 좋다. 내 경우 VSOP와 레몬주스, 오렌지 리큐어 쿠앵트로를 같은 비율로 섞어 마시는 것을 즐긴다.
‘코냑에 어울리는 최고 안주는 시가’라는 말이 있다. 시가와 코냑의 상관관계에 대한 견해는 어떤가. 또 코냑 애호가는 음악 없이 코냑의 제맛을 알기란 불가능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향과 맛이 강한 시가는 코냑과 잘 어울린다. 하지만 시가의 향이 워낙 강해 코냑의 오크 향이 묻힐 수 있으니, 시가와 함께 코냑을 즐기려면 루이 13세 정도는 돼야 하지 않을까? 음악 얘기를 하는 것은 코냑이 단지 마시기 위한 술이 아니라 즐기는 술이기 때문이다. 레미 마틴은 코냑 애호가를 위해 홈페이지(www.remy.co.kr)에서 감미로운 라운지 음악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 코냑과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는 재즈다. 세계적인 재즈 가수 패트리샤 바버(Patricia Barber)는 공연 전 코냑 한 잔으로 음악적 영감을 북돋운다고 한다.
코냑을 가장 클래식하게 마시는 방법이 따로 있을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코냑은 마시기 어려운 술, 격식을 갖춰야 하는 술로 알고 있다. 미국의 한 유명 배우는 루이 13세를 마시기 전에 그 전통과 기품에 경의를 표한다고도 하지만, 사실 코냑은 그 어떤 술보다 편안하게 마음을 열고 즐길 수 있다. 퍼프 대디(Puff Daddy), 제이지(Jay-Z) 같은 힙합 가수들이 무대 위에 올라가기 전, 긴장을 풀기 위해 마시는 술이기도 하고, 재즈 싱어 패트리샤 바버는 성공적인 공연을 위해 대기실에 언제나 ‘레미 마틴 1738’을 준비해 둔다고 한다. 이렇듯 코냑은 자신만의 스타일로 자신만의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술이다. 개인적으로는 편안하게 기댈 수 있는 의자에 앉아 재즈를 즐기며 마시는 것을 좋아한다. 물론 가슴이 따뜻한 사람과 함께 나눌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코냑은 마시는 사람의 개성에 따라 해석할 수 있는 맛과 향을 품고 있기 때문에 어떤 자리, 어떤 상황에도 잘 녹아 들어간다. 곁들여 먹는 음식으로는 간단한 *핑거푸드류(類)를 선호한다. 상큼한 포도나 치즈 등은 코냑의 향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준다. 코냑의 가장 친한 친구 중 하나인 시가와 곁들여도 좋다. 또 달지 않은 다크 초콜릿과 함께 마시면 코냑의 풍미가 더욱 깊어진다.
*핑거 푸드(finger food)_ 나이프나 포크, 젓가락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만 먹는 음식.
그럼, 가장 럭셔리하고 스타일리시하게 코냑을 즐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코냑을 가장 럭셔리하게 즐기는 방법은 매우 간단하다. 좋은 자리에서 좋은 사람들과 좋은 추억을 나누며 순수한 코냑 그 자체를 즐기면 된다. 튤립 모양으로 수줍게 오므라지는 크리스털 코냑 잔과 잘 보관돼 향이 살아있는 쿠바산(産) 시가, 잔잔하게 흐르는 음악이 있다면 더욱 분위기가 좋을 것이다. 스타일리시하게 즐기는 방법 또한 간단하다.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약간의 상상력을 발휘하기만 하면 된다. 즐겨 마시는 칵테일의 풍미를 더하기 위해 코냑을 믹싱해도 좋고, 더운 여름날 냉동실에 보관해두었다가 즐겨도 좋다. 코냑은 일생을 살며 많은 경험을 한, 통이 크고 품이 넓은 사람과 같아서 모든 사람들의 개성을 받아 안을 수 있는 넉넉한 가슴을 가졌기 때문에,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보길 권한다.
코냑과 관련된 재밌는 일화도 있을 것 같다.
프랑스 본사에서 루이 13세를 총괄 담당하고 있는 드 파르동 이사에게 들은 얘기로 대신할까 한다. 윌 스미스(Will Smith), 쿠엔틴 타란티노(Quentin Tarantino) 같은 할리우드 스타들은 루이 13세를 마실 때 정장을 갖춰 입고 전통과 맛에 경의를 표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걸 듣고 나서 그 사람들과 함께 코냑을 마셔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웃음)
마지막 질문 한 가지. 도대체 코냑의 매력이 무엇인가.
코냑의 친구는 시간이라는 말이 있다. 오랜 숙성기간을 거쳐 자신만의 매력을 발산하기 때문에 그 가치를 느끼며 여유롭게 즐기는 술이다. 어떤 자리에서든 코냑과 함께 하면 그 시간을 의미 있고 향기롭게 채울 수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자리, 어떤 장소에서든 변화가 가능한 술이기도 하다. 자신의 기호에 맞게, 팔색조 같은 모습으로 변화하는 코냑의 다양한 맛을 한국에서도 자주 접할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