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시명 sultour@naver.com 여행작가, 술평론가
당신은 봄을 어떻게 맞이하고 있습니까? ‘입춘대길(立春大吉)’, ‘건양다경(建陽多慶)’이라고 아파트 철문에 글귀라도 써 붙였다면 그래도 여유 있는 편이다. 하지만 집안 대청소에 베란다 화분 분갈이만으로 봄을 맞이하기에는 아쉬움이 남는다. 남도 땅으로 매화를 보러 가거나, 가까운 산수유 마을이라도 다녀온 이라면 그래도 다행이다.
옛사람들은 봄이 오면 봄마중을 나섰다. 대표적인 봄맞이 행사가 삼월 삼짇날(음력 3월 3일)에 이뤄졌다. 바다 건너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는 날이다. 노랑나비나 호랑나비를 먼저 보면 소망이 이뤄진다는 날이기도 하다. 마을 뒷동산에 올라 진달래꽃을 따서 반죽한 쌀가루에 붙여 참기름에 지져 꽃지짐(花煎)을 해 먹기도 했다. 녹두가루를 반죽하여 익힌 뒤에, 가늘게 썰어 꿀을 타고 잣을 넣어서 별미로 화면(花?)을 만들어 먹기도 했다.
삼짇날에 거론되는 술로는 ‘두견주’가 있다. 두견주는 진달래를 두견화라고 부른 데서 생겨난 진달래술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삼짇날 두견주를 빚었던 것인지, 마셨던 것인지는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다. 꽃지짐이야 꽃을 딴 그 자리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지만, 두견주는 발효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굳이 따지자면, 삼짇날에 진달래술을 담았지, 마시기는 어려웠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삼짇날에 맞춰 거를 수 있는 술이 있다면, 거르기 하루 이틀 전에 진달래꽃을 넣어 삼짇날 마셨을 수는 있겠다.
봄에 진달래, 가을에 국화 그리고 사계절 푸른 소나무는 한국의 산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 이들 모두가 술의 재료로 많이 사용되었다. 주변에서 구하기 편하고, 약효도 있어서 쉽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진달래술로 명성을 얻은 동네는 충청남도 당진군 면천이다. 면천에서 빚어지는 두견주는 경주교동법주, 문배주와 더불어 3대 국가지정 문화재로 지정된 귀한 술이다.
면천두견주는 우리 술 가운데 유래가 분명한 가장 오래된 술이다. 면천 출신으로 일찍이 이름을 얻은 사람으로는 고려의 개국공신으로 꼽히는 복지겸과 박술희가 있다. 복지겸은 궁예 밑에서 마군장군(馬軍將軍)으로 있다가 궁예가 민심을 잃자 신숭겸, 배현경, 홍유와 더불어 왕건을 새로운 왕으로 추대한 인물이다. 그 공을 인정받아 면천의 밭 300경을 하사받았고, 면천 복씨의 시조가 되어 그 후손들이 대대로 면천에 터를 잡고 살 수 있었다. 박술희는 왕건 사후에 왕건의 뜻을 받들어 왕권 강화에 기여한 인물로, 면천 박씨의 시조가 되었다. 면천두견주는 복지겸과 연관되어 있다. 복지겸이 큰 병을 얻어서 몸져눕게 되었을 때의 일이다. 아무리 좋다는 명약을 써도 병세는 차도가 없었다. 복지겸에게는 그 무렵 17살 된 딸 영랑이 있었는데, 영랑은 아버지의 병을 낫게 해달라고 마을 뒷산인 아미산에 올라 매일같이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100일 기도를 드리던 마지막 날 밤, 영랑의 꿈에 산신이 나타나 “아미산 진달래꽃을 따서 술을 빚되 반드시 안샘물로 빚어 아버지께 드리고, 안샘 곁에 은행나무 두 그루를 심어서 정성껏 기도하면 아버지의 병이 나을 것이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영랑은 꿈에 들은 산신령의 말대로 술을 빚어 아버지께 드리고, 나무를 심어 기도드렸더니 아버지의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이때부터 면천에서 두견주를 빚게 되었고, 두견주 술맛을 제대로 내려면 안샘물로 빚어야 한다는 말도 함께 전해지게 되었다고 한다.
지금도 면천에는 영랑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가 있고, 안샘 우물도 잘 보존되어 있다. 진달래 필 무렵이면 두견주에 얽힌 이야기에 따라 진달래 축제도 연다. 축제날에는 영랑이 심었다는 은행나무 두 그루와 안샘 앞에서 절을 올리고, 행사장에서는 면천두견주 시음회와 면천두견주 빚기를 한다.
면천두견주는 면천 주민들로 구성된 면천두견주보존회에서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1986년 국가지정 문화재가 될 당시에는 면천에서 3대째 술을 빚어오던 박승규씨가 두견주를 빚었는데, 박승규씨가 작고하고 난 뒤에는 마을 주민들이 승계하였다.
면천 두견주는 찹쌀과 누룩, 진달래꽃으로 빚는다. 진달래꽃은 꽃잎에서 암술과 수술을 골라낸다. 꽃의 꼭지를 따서 채반에 넣고 흔들면 꽃술을 쉽게 골라낼 수 있다. 꽃술 끝에 있는 꽃가루가 마르면 삭지 않고 검어지기 때문에 골라낸다. 꽃술은 술 위에 둥둥 떠서 보기 싫기 때문에 골라낸다. 꽃은 그늘에서 1주일 정도 말리는데 마지막에는 햇볕이 약간 드는 곳에서 3일 정도 바짝 말린다. 진달래꽃은 술의 색과 향을 좋게 한다. 꽃을 너무 많이 넣으면 빨개지므로 빛깔을 맞추는 정도에서 적당한 양을 넣는다.
술 빚는 법은 먼저 고두밥과 누룩가루, 안샘물로 밑술을 만든다. 밑술은 5일이면 완성되는데, 여기에 찹쌀 1말, 누룩 2되, 물 5되, 진달래꽃 1되3홉의 비율로 넣고 치대서 덧술을 만든다. 덧술은 50일 가량 발효시킨 뒤 용수를 박아 떠내든지, 자루에 넣어 걸러낸다. 두견주는 익으면 담황색 붉은 기운이 돈다. 맛이 진한 약주로, 술맛은 달착지근하고 누룩내가 강한 편이다.
두견주를 맛보면서 드는 생각은 “두견주를 맛보던 우리 조상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다. 봄이면 새 기운을 얻기 위해 들판을 나갔을 터이고, 그 들판에서 꽃지짐을 해먹었는데 이때 술 한 잔이 빠질 수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봄날 꽃지짐은 남녀가 함께 하는 자리였을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불을 피워 번철을 올려놓고 꽃지짐을 하는 사람은 대개가 여자들이다. 삼짇날에는 남녀노소가 함께 봄날을 즐긴다. 우리에게는 이런 봄날이 있던가? 황사먼지에 휩싸여 방진마스크를 쓰고 다녀야 하고, 꽃구경 나선 주말길이 차들로 가득해 괜히 나왔다고 푸념하기 일쑤다. 이웃과 함께 하는 전통축제는 대보름과 몇몇 동네에 남은 단오뿐이다. 자연을 찾고, 꽃을 찾고, 나비를 찾던 삼짇날의 놀이가 두견주와 함께 봄날 잔치로 되살아나기를 소망해본다.
1 면천두견주의 유래가 얽힌 안샘과 은행나무 두 그루.
2 진달래가 들어간 술덧.
3 고두밥에 누룩과 진달래를 넣고 비비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