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술 칼럼
아! 테스 형이여
임재철 칼럼니스트
코로나 확산세가 장기화되고 있는 시점이지만, 다시 12월이다. 2020년 최대의 화제는 무엇이었을까. 코로나를 빼고는 단연 트로트 열풍과 그 가운데서도 나훈아이라 할 것이다.
누구나 자신의 노래 취향이 있고 가수에 대한 호불호도 있지만, 그렇게 판단된다. 그는 지난 9월말 방송된 ‘2020 한가위 대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에서 그는 2시간 30분 동안 약 30곡의 노래를 불러 국민들을 열광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었다.
그날 시청률이 40%라는 보도가 있었다. 사람들은 왜 이토록 그의 노래에 열광했던 것일까? 그가 부른 노래 중에서 가장 많은 갈채를 받은 것은 ‘테스 형’이다. 이 노래가 사람들의 심금을 울린 데에는 그의 가창력에 기인한 바가 크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그가 쓴 노랫말도 중요한 몫을 차지했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 그리고는 아픔을 그 웃음에 묻는다.”로 시작되는 이 노래의 주제는 시대적 ‘아픔’이다.
이어지는 “아! 테스 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사랑은 또 왜 이래”에서 이 아픔의 정체가 드러난다. 그의 아픔은 세상에 대한 아픔이고 사랑에 대한 아픔이다.
그리고 마지막의 “아! 테스 형 소크라테스 형/ 세월은 또 왜 저래/ 먼저가본 저 세상 어떤 가요 테스 형/ 가보니까 천국은 있던 가요 테스 형”에서 이 아픔은 가는 세월에 대한 아픔까지 품는다.
말하자면 그는 세상이 아프고 사랑이 아프고 세월이 아픈 이유를 ‘테스 형’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즉 나훈아는 개인의 정서를 넘어서 어지러운 세상, 덧없는 인생에 대한 깊은 고뇌를 노랫말 속에 담았다고나 할까.
분명 ‘테스 형’의 가사는 잘 짜여진 한 편의 시와 같다. 아픔-세상-사랑-세월로 이어지는 가사의 맥락도 그렇거니와 “그저 와준 오늘이 고맙기는 하여도/ 죽어도 오고 마는 또 내일이 두렵다”라든가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 형”과 같은 가사 또한 반짝이는 훌륭한 시의 한 구절이라 할 수 있다.
다시 그의 공연 얘기로 돌아가면 공연이 끝나갈 무렵 나온 “국민 위해 목숨 걸었다는 왕이나 대통령을 본 적이 없다”는 말은 세간의 결정적인 키워드가 됐다. 필자로서는 나훈아의 의중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노상 나뉘어 싸우는 정치권은 말할 필요도 없는 대목이었다.
당시 야권에서는 나훈아 말을 정부 비판으로 해석하며 “오죽 답답했으면 저런 말을 했겠냐”고 비아냥거렸다. 여권은 또 이를 “정쟁의 도구로 이용하려는 아전인수”라고 했다.
지금에 와서도 역시 나훈아의 생각이 무엇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그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는 분명 우리 사회 폐부의 정곡을 찌른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거의 공자말씀이다. 공자 말씀이 다른 게 아니잖은가. “어떻게 하면 정치를 잘할 수 있느냐”는 제경공의 질문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임금은 임금답고 신하는 신하다우며 아비는 아비답고 자식은 자식다워야 한다(君君臣臣父父子子).”
그런데 그렇지 못한 사람이 너무 많아서 문제인 거다. 제 할 일은 안 하면서 남 탓만 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이 사회가 갈등하며 엇나가고 있는 거란 말일 것이다.
어쩌다 ‘대한민국 어게인’이란 콘서트에서까지 이 지경에 이르렀을까. 정권실세라는 사람들의 꼴값…육갑떠는 행보, 무능, 거짓과 위선은 기본이고 처음부터 깜이 안 되는 사람들이 장관으로 임명되고 그들이 추진하는 말 많은 최저 임금제와 주 52시간 근무제, 돈 풀어 현금복지 등 졸속한데다 어설프기 짝이 없는 정책들, 촛불이 국민세금을 맘대로 쓰라는 면허가 아니었는데도 네 돈이냐 내 돈이냐 나라를 거덜 낼 것 같은 거친 세금 씀씀이를 보면서 과연 이 나라가 제대로 가고 있는지, 이대로 가도 되는 것인지를 국민은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중론이라 하겠다.
그렇기 때문에 나훈아는 부모 찬스 자식, 불법 행위 장관, 권력 하수 검찰, 권력 대변 국회의원, 유체 이탈 대통령, 특권 향유 야당 의원… 이런 사람들이 득실대고 득세하는 우리 사회에 안타까움을 느낀 것이고, 그래서 경종을 울린 것이란 지적이다.
그렇다면 언제든 여야 좌우 모두 제 할 일을 하면 된다. 공직자는 선공후사(先公後私) 자세가 필요하다.
또 공직자는 때를 가늠하는 지혜와 함께 ‘말’도 중요하다. 순자(荀子)는 ‘군자필변(君子必辯)’이라 했다. “묶은 포대자루처럼 입을 다물면 허물도 없지만, 영예도 없다.”고 했다. 다만 국민을 위한 논변이라야 할 것이다. 궤변은 난세를 부르고, 사람다운 사람의 말이 없어지면 나라가 망하는 법 아니겠는가.
지금은 어떨까. 한마디로 거대 여당의 폭주가 점입가경이다. 힘을 앞세운 여당의 독주, 절차와 과정이 그야말로 막무가내다. 타협이 없다. 오만과 독선으로 일관하고 있다.
이렇듯 한해가 갈무리되는 연말, 주위를 보면 온통 뒤숭숭하다. “천하만사 모든 일에 때가 있다.” 조 바이든 미국 제46대 대통령 당선자는 승리연설에서 이러한 성경의 구절을 인용했다. “세울 때가 있고, 수확할 때가 있으며, 씨 뿌릴 때가 있고, 치유할 때가 있다. 지금 미국은 치유할 때이다.”라고 했다.
지혜의 왕으로 일컬어지는 솔로몬이 썼다고 알려진 ‘전도서’ 구절이다.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경구로 유명한 바로 그 성경이다. 바이든은 선거기간 동안 첨예하게 찢기고 갈라진 미국의 민심을 추스르기 위해, 자신에게 제기됐던 신앙심 의혹을 해소하려 성경을 이용해 ‘치유’를 강조했다.
내년에도 코로나가 확산 지속된다는 전문가들의 예상이고, 연말 분위기가 심각한 상황이지만 정말 전염병을 비롯, 우리 삶의 모든 것들이 ‘치유’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한 가지 더. 온 사회가치유의 큰 역사적 흐름 속에 일개인의 선과 악, 즉 사람이란 도의와 양식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다. 그래서 앞으로는 나라 안팎의 뉴스를 장식하는 모든 분야가 하나둘 치유의 실체들로 지배되었으면 좋겠다.
아, 테스형! 그래야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