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산업과 정책이야기(35)
독일의 음주문화와 알코올 정책(下)
조성기 (趙聖基,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원주한살림, 이사장
살림농산, 대표이사
아우르연구소, 대표연구원
독일 음주문화의 명암과 과제
독일의 음주문화는 그야말로 ‘대폭 개선되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펍에서 서로 소리를 지르기는 하지만 격렬한 싸움까지 벌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1800년대 초기의 노동자들의 음주형태와 비교해 보면 많은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 당시 독일의 펍에 대해 기술한 자료를 보면 ‘술집에서 싸우는 것이 오히려 정상적인 일이었다’고 적혀있다.
오늘날에는 싸움이 벌어지는 경우가 예외적이다. 바로 뮌헨의 맥주축제(Octoberfest)나, 추수감사절, 크리스마스(Weinachtsbock Bier)와 같은 축제, 그리고 대규모 행사가 음주와 함께 벌어지는 경우가 그렇다. 세계적인 축구경기가 벌어지는 날도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옥토버페스트 맥주축제에서는 놀라운 광경들이 연출된다. 낮에는 가족들이 공원에 모여 술 마시며 오락을 즐긴다. 밤에도 끝없이 술을 마시고 취한 광경이 계속된다. 그 축제를 즐기기 위해 독일 사람들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람들이 몰려든다.
그야말로 최선을 다해 술에 취해가는 모습을 그 축제에서 볼 수 있게 된다. 그 날은 모든 규율이 사라진다. 경찰마저도 그러한 상황에 동조한다고 보아야 한다. 술이 주는 마력에 대해 참여한 독일인들이 모두 함몰되어 가는 축제라고도 볼 수 있다. 절제로 유명한 독일인들이 그러한 상황을 진정 원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다. 물론 모든 것이 그날은 술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그 결과는 누구나 상상하는 그대로가 된다. 싸움, 상처, 급성 알코올 중독, 보통 때와는 아주 다른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그것이다. 만취의 결과는 옥토버페스트에서도 예외가 없다.
오늘날 독일의 음주문화에 대체로 문제가 없지만 술을 통해 독일인들의 야성이 특별한 날을 정해서 규칙적으로 반복적으로 나타난다. 그 현실이 어김없는 독일인들의 술사랑(Deutsche Liebe)이다.
과연 “모든 과거의 좋지 않은 음주문화란 그렇게 완전히 변하거나 사라지기가 어려운 것인가?”라는 의문은 독일의 음주문화를 검토하면서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화두가 된다. 우리의 상고사에 관해 ‘삼국지위서동이전(三國志魏書東夷傳)’에 적힌 글은 다음과 같았다. “부여의 오랑캐들은 만나면 마시고 취하면 싸우고 다음날 다시 만나면 웃는다.” 그 또한 변함이 없듯이 말이다.
음주문화 변화를 위한 노력을 누가 어떻게 하고 있을까?
사실 독일인들처럼 술과 일상생활이 밀접한 관계를 맺어왔고 지금도 맺고 있는 나라에서 음주에 대한 강력한 제재는 기대하기 어렵다. ‘삶의 통제’에 대한 인간들의 저항은 자유를 향한 오랜 역사 속의 실재다.
오히려 독일 사람들은 ‘문제 있는 음주자’들 때문에 ‘정상적인 음주자’들을 통제하는 알코올 정책과 제도가 운영되는 것에 대해 의아해 하고 있다. 즉, 정부가 정책적으로 규제를 가하는 방식보다는 민간에서 또는 개인 차원에서 음주문제를 다루는 방식을 선택 선호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독일의 음주문화 변화는 오히려 사회의 발전에 따른 생활양식의 변화나 의식 있는 민간단체와 개인들의 노력, 주류업계나 술집 종사자들의 활동들로 인해 이루어진 것이 아닌가 한다.
정부가 국가약물남용 통제계획(National Program on Drug Abuse Control)을 수립한 것은 1990년에 와서 가능했다. 그 전에는 오히려 순수 맥주법(Pure Beer Law)과 세입의 원천과 품질의 개선을 통해 문제를 예방하는 인식정도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 법이 발효된 것은 1516년이었다.
부활절 전 금요일이나 일부 지역에서의 주요 성인의 날을 제외하고는 술을 금지하는 경우가 없다고 보는 것이 맞다. 2009년까지는 심지어 직장 공장에서도 음주를 금지하지 않았었다. 민간 철도회사 메트로놈도 2009년까지는 기차 내 음주를 막지 않았었다. 축구장도 사고가 워낙 심하게 나타나기 전까지는 과음자를 제외하고는 용인했었다.
특정 도시의 거리에서 토요일 일요일 12시에서 8시까지 새벽의 음주를 막았었지만 2011년에 풀어버리고 말았다. 민원이 심각했기 때문이다.
최근의 정책상황도 마찬가지다. 2016년 세계보건기구가 독일에 대해 조사한 자료를 보면, 문헌으로 만들어진 국가정책은 있지만 행동계획은 구체적으로 없다고 한다. 와인에 대해 주세가 없고, 맥주나 증류주에 대한 주세는 있다. 주세 자체가 중요한 통제수단인 것만은 분명한데, 국가운영자금을 충당하고자 하는 의도도 분명히 있다.
술집 안이나 밖의 음주에 대한 시간 장소 규제가 없고, 각종 이벤트에서도 규제가 없다. 다만 술 취한 사람에 대한 제재는 법적으로 정해져 있다. 하지만 음주운전 규제는 다른 국가 수준은 된다.
일반인들은 0.05%에서 규제되고, 청소년이나 전문 직종 종사자들은 운전할 때 한 방울도 마셔서는 안 된다. 즉 혈중알코올농도 규제치가 0.00%이다. 판촉이나 광고 규제는 있다. 그렇지만 스폰서십에 대한 규제는 없다. 술병에 건강경고 표시문구도 없다. “병에 써넣은 경고를 보고 술을 안 마실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하는 투다. 국가적인 문제 음주 모니터링 시스템은 있다.
즉 종합적으로 볼 때 음주허용 연령도 낮고 강도 높은 규제는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보다도 더 허용적인 법적 정책적 음주환경을 독일이 갖고 있는 상황이다.
민간에서 19세기에 절주운동이 일어난 것은 수세기 동안 계속되었던 독일의 악명 높은 음주문화를 고려할 때 당연한 일이다. 더욱이 19세기에는 미국을 비롯하여 서구사회에서 절주운동이 유행이 되다시피 한 시기였다.
그러나 미국과 같이 청교도적인 종교 규범을 가지고 시작한 국가와 전통적으로 술을 오래 많이 마셔온 나라에서 의 예방활동은 차이가 크다. 독일에서는 1930년대에 도덕재무장 활동이 있었지만 민간부문에서 체계적으로 음주문제 예방활동을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이라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주종별 협회에서 알코올문제 예방활동을 위해 일정한 범위 내에서 필요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증류주협회에서는 정기적으로 캠페인 활동을 벌이고 있다. 증류주협회의 주된 예방 메시지는 “알코올문제를 가진 음주자들이 어떻게 도움을 받을 것인가?”에 대한 것이었다.
맥주협회는 주로 문제가 많이 발생하는 이벤트 시기인 맥주페스티벌 등에서 음주운전을 막고자 노력하는 행사에 주력하고 있다. 최근의 메시지는 “우리의 맥주, 현명하게 마시자!”라는 정도였다.
독일에서는 주류의 판매시간 장소규제는 거의 없고, 광고나 판촉에 대한 통제도 있더라도 약하다. 정부의 정책은 최소한도로 유지하고 자율적인 규범에 맡기고 시민들이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1996년에 알코올음료 판매시간을 자유화하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1976년에 독일 보건성과 주류업계가 자율적인 광고규약으로 광고가 청소년에 미치는 영향이 없도록 하자는 데에 의견을 함께 한 적이 있다. 정부와 민간 주류업체의 예방광고 협약은 요즘 우리나라에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일이다. 과거에는 우리나라도 국세청이 주류정책을 실질적으로 관장하고, 주류산업의 활동을 통제했지만 요즘은 자율규제로 변하고 있고, 주류산업에 대한 규제완화가 일반적 상황이다. 광고규제는 주로 보건복지부가 담당하는데 파랑새플랜의 협의장소에서 주류업계를 축출한 지 오래다. 보건당국과 업계는 대화를 통로가 없는 상황이다.
독일의 주류 판매업소 수가 우유를 판매하는 곳만큼 많다고 한다. 이 상황은 바로 우리나라의 소매업을 보는 것과 같다. 우리나라 주류소매업은 신고제로 누구나 술을 팔 수 있다. 소위 편의점에 가면 얼마든지 언제든지 술을 팔고 살 수가 있는 현실이다. 허용적인 음주문화와 과음과 폭음의 전통을 가진 국가에서 “음주문제에 대해 어떻게 대처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필요한 답변을 얻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렇지만 ‘음주운전에 대한 규제’이외에 강력한 규제를 찾아보기 어려운 독일에서 건전한 음주문화가 이루어지고 있다는 상황을 과연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 국가의 음주문화는 다양한 요인에 의해서 결정된다. 독일의 경험을 볼 때 종교, 사회규범, 법, 제도, 소득수준, 가격, 교육, 스트레스 해소 기전 등 어느 하나 빠뜨릴 수 없는 요인이다.
독일은 통제정책, 학교교육, 직장음주예방, 불법거래 예방 등의 규제에서 유럽국가 중 거의 꼴찌에 가깝다. 하이델베르크의 독일 암연구센터장인 우테 몬스(Ute Mons)박사가 분명히 말한바 있다. 주류 마케팅 규제나 해로운 음주를 줄이기 위한 조치도 사실 대충 대충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산업정책에서 독일정부가 노력하는 것을 보면 알코올 정책은 실제로 대충 얼버무리고 있다고 보는 것이 옳은 해석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세계보건기구도 독일이 지금처럼 해서는 안 된다고 계속 지적하고 있는 상황이다. 주세도 올리고, 음주허용연령도 16세를 18세로 일치시키고, 독한 술을 덜 마시도록 교육도 하고, 통제도 강화하자는 것이었다.
어쨌든 독일국민들은 음주량을 볼 때 술을 더 줄여야 하는 것이 옳다. 2016년 과음자가 남성은 51.9%, 여성은 17.3%이고 평균적으로도 34.1%나 되었다. 15세-19세의 청소년들도 남성 문제음주자가 58%, 여성이 20.1%, 평균 39.5%로 더 많다. 청소년 음주는 독일의 미래가 더 나빠 질 것을 예고하고 있다. 간질환도 10만 명당 남성이 18.9명, 여성은 7.8명이다. 교통사고도 남성 6.0명, 여성 2.4명, 술로 인한 암 발생자도 남성이 198.9명, 여성이 131명 수준이다. 음주로 인한 문제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음주 분위기가 좋다고 해서, 술을 즐겁게 마신다고 해서 전보다 싸움을 하는 숫자가 줄어들었다고 해서 음주문화가 나아졌다고 판단하지 말자고 보건당국은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독일의 중독문제를 다루는 연구기관 DHS(Deutsche Hauptstelle für Suchtfragen)자료를 다시 보자. 중독연구기관은 긍정적인 문화 보다는 부정적인 질병과 사고를 더 강조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매년 술로 인해 74,000명이 죽는다. 어린이나 10살-20살 사이의 청소년도 중독문제로 병원을 찾는다. 범죄는 231,300명, 모든 범죄의 11%가 술 취해서 저지르는 것이다. 폭력도 40,007명, 모든 폭력의 27.3%다. 도로 자동차 사고는 13.403건, 16,770명이 다치고, 225명이 죽었다. 술로 인한 직간접적인 피해액은 매년 400억 유로다. 게다가 그들의 주장은 술은 술꾼들뿐이 아니라 가족이나 친지들에게 큰 문제를 전파한다는 것이다. 독일도 이 모든 문제에서 예외가 아닌 것이 사실인 것이다.
무엇보다 독일은 유럽에서 많이 마시는 국가이다. 전문가들이 의심하고 있는 것은 통제를 막는 정책에 대한 주류업계의 로비다. 보수적 정당과 업계가 힘을 합쳐서 통제를 막고 자유주의 정책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는 자유로운 음주분위기와 음주자들의 속병이라는 것이다. 속병의 원인은 결국 술값이 싸다는 것이다.
독일에서 알코올이 없는 음료의 가격이 1991년에서 2017년까지 26년간 46%가 증가했지만 술은 36.8%가 올랐다. 지난 40년 동안 다른 물가에 비해 30%가 더 싸게 유지된 것이다. 소비자 가격은 심지어 그 기간 동안 30%가 낮아졌다는 통계도 있다. 와인은 38%, 증류주는 33%, 맥주는 26%가 낮아졌다고 한다.
독일에서도 다른 나라와 같이 주세는 30억 유로인데 술로 인한 사회경제적 피해액은 400억 유로라는 비교 치로 업계가 사회적 비용을 제대로 내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우리나라도 주세가 3조원 정도인데, 사회적 비용은 10조원은 된다고 보건학계가 주장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 상황인 것이다. 독일정부는 그러한 증거주의 알코올 정책에서 실패하고 있는 것인가? 정부의 상세 알코올 문제 실천대책이 없으니 정책의 실패 보다 정책자체의 부재가 문제라는 지적도 남의 일이 아니다.
마무리하자. 술 문제에 관한한 정답을 찾기 어렵다. 인류의 삶 속에서 면면히 유지되어온 물질이 술이기 때문이다. 독일인이 술을 마시지 않는 장면은 공상과학영화에서도 다루기 어려운 일일 것이다.
독일의 음주문화는 분명히 과거 보다 개선되었다. 하지만 음주량은 다른 인근 국가들보다 많다. 음주문화의 개선도 국가보다는 음주자들이 스스로 이룬 성과라고 볼 수밖에 없는 자료가 많다. 그렇지만 술로 인한 사회경제적 비용이 적지 않기 때문에 국가의 개입을 줄이자고 할 수는 없다. 술로 인한 피해는 그 증거를 확보하고 해당 문제를 없애도록 국가와 산업, 음주자가 모두 함께 해야 할 일이다. 음주문화 개선 사례는 독일이 좋은 사례인 것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해로운 음주를 막기 위한 정책적 노력 또한 합리적 대안으로 끝임 없이 추구해야 할 과제가 분명할 것이다.
<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