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술병
술 한 잔 마음대로 마실 자유로움
육정균 (전국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시인/부동산학박사)
직장 OB들의 단톡방에 전 대통령 경제수석비서관, 건설부장관, 그리고 한국은행총재를 지낸 청도(靑稻) 박승(84세) 교수님의 미담과 경제적 고견을 담은 국민일보 기사가 올라왔다. “전 재산 25억 원 기부, 부유층 재산 절반만 상속하자! 사후 안구 기증 서약” 등으로 시작하는 인터뷰 글에서 유독 눈에 띄는 것은 최근의 주택문제와 증세를 주장한 부분이었다.
“다주택자들이 가지고 있는 주택수가 전체의 60% 이상이에요. 다주택자들이 집을 사는 이유는 이재 목적이라고 보는데, 주택의 보유 비용이 낮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의 보유세는 대개 부동산 가격의 1~3%예요.”
“보유세 인상을 말씀하시는군요.” “가령 10억 원짜리 집을 가지고 있으면 미국 휴스턴에서는 연간 보유세가 3,000만 원쯤 됩니다. 그보다 싼 뉴저지는 약 1,500만원 됩니다. 1가구 1주택도 예외가 아니에요. 그런데 우리나라는 보통 300만~500만원, 선진국의 3분의 1도 안 됩니다. 우리가 뉴저지만큼만 1.5%로 해서 1,500만원을 부과한다고 합시다. 웬일이냐고 야단일 거예요.”
“보유세를 그렇게 매기면 웬만한 직장인 월급으로는 집을 가질 수 없을 텐데요.” “그렇기 때문에 선진국에는 집을 사서 그 비용을 내려는 사람이 많지 않아요. 그래서 월세가 보편적입니다. 그리고 대개 대도시에서는 정부가 월세를 통제합니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 월세를 부분 규제하려 하니까 왜 정부가 시장에 간섭하냐고 야단인데, 모르는 소리입니다. 경제학에서도 토지는 재생산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일반 상품과 다르게 취급합니다. 이번에 다주택자 보유세를 많이 올렸지만 앞으로 두 배 가까이 선진국 수준으로 점진적으로 더 인상해야 한다고 봅니다. 향후, 양극화 문제가 더 커질 것이므로 정부가 소득을 세금으로 흡수해서 저소득층에게 나눠주는 재분배 정책을 계속 강화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이글을 보고, 우리나라도 미국이나 유럽 등 선진국에 비해 부동산 관련 세금이 낮지 않고, 지나친 증세(增稅)는 생존권에 문제가 있다는 글이 올라왔다.
“존경스러운 분이고 생각도 대체적으로 공감이 갑니다만, 미국의 재산세가 10억 주택의 경우 3,000만원이고, 이것이 정상적이라는 말이 우리나라의 경우와 맞는지? 적정하게 검증된 이야기인지? 의문입니다. 제 소유 아파트도 요즘 제 허락도 없이 10억대 이상으로 올랐는데 퇴직 이후 확정 수입은 퇴직연금수입 매달 300만원으로 1년 치 전부 합쳐도 3,000만 원 정도의 수입인데, 재산세로 모든 수입을 다 내면 어찌 사나요? 우리나라는 현재 보유세로서 재산세와 종합부동산세(富裕稅)가 있고, 이전(移轉) 과세로 고율의 양도소득세와 취등록세가 있습니다. 미국이든 유럽이든 하나가 월등히 비싸면 다른 세금은 없거나 경미합니다. 따라서 외국과의 비교도 반드시 비교의 준거틀(객관적 기준)에 의해 형평성 있게 비교하고, 각종 세금도 국민 하나하나의 생존권에 지장이 없는 선에서 부담시키는 것이 선정(善政)이라 사료됩니다. 무릇, 경제민주화든 기부든 다 좋은데 증세는 국민 하나하나가 형편껏 먹고 살면서 보편적으로 낼 수 있는 적정선이 되도록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즉 과유불급이지요.”
며칠의 침묵이 흐른 후, 비중 있는 분이 조선일보 최윤정 땅집고 기자
choiyj90@chosun.com가 조정근 서경대 교수와 인터뷰한 글을 올렸다. 미국은 취득세·종부세 없다. 재산세는 낸 만큼 소득 공제되어, 미국에서는 연방소득세를 내는 납세자에게는 사실상 재산세 부담이 없다. 미국과 비교해 우리나라 보유세가 낮다고 말하는 것은 장님이 코끼리를 만지는 격이다. 미국 세법에서 보유세 항목은 재산세뿐이다. 이는 지방세로 우리나라 종부세처럼 국세는 없다.
따라서 미국 재산세는 50개 주는 물론 수십개 카운티(구)마다 과세 표준과 세율이 천차만별이다. 미국의 주별 주택 중위가격 대비 재산세 비율은 ▲하와이 0.27% ▲워싱턴D.C. 0.55% ▲뉴욕 1.71% ▲텍사스 1.81% ▲뉴저지 2.47% 등이다. 포브스에 따르면 올 2월 기준 실효세율이 가장 높은 뉴저지주(2.47%)의 경우 2019년 가구당 평균 재산세는 8104달러(약 963만원)였다.
반면 실효세율이 가장 낮은 하와이(0.27%)는 평균 1607달러(약 191만원)에 그쳤다. 이렇게 보면 보유세 부담이 우리나라보다 낮은 주도 있고 높은 주도 있는 것처럼 보인다. 미국은 재산세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대신 거래세 부담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낮다.
조 교수는 “미국에서는 집을 살 때 취득세가 없다. “뉴욕시만 100만 달러 이상 고가 주택에 ‘맨션택스(Mansion Tax)’로 취득가액의 1~2.5%를 부과하며, 소유권 이전등기에 필요한 행정 수수료 100~300달러만 지불하면 된다. 양도소득세 부담도 미국이 더 적다. 우리나라 개정세법은 다주택자의 양도차익에 최대 75%까지 세율을 부과할 예정인 반면, 미국은 1년 이상 장기보유 자산에 대해 15~20% 세율을 적용한다.
주택을 여러 채 보유해도 2년 이상 실거주한 메인 홈(Main Home) 한 채를 부부 공동명의로 신고하면 부부합산 양도 차익 50만 달러(약 5억9000만원)까지는 비과세한다. 양도차익 100만 달러가 발생했다면 50만 달러에만 15% 양도세를 부과하는 것이다. 다주택 보유에 따른 양도세 중과는 아예 없다.”는 것이다. 원로 경제학자인 박승 교수의 주장엔 분명한 시대적 함의(含意)가 있다. 그러나 외국과의 비교와 사실관계엔 나름의 차이가 있고, 이 땅에 사는 사람 대부분 여유가 없다.
코로나 한파가 더 추운 겨울이다. 날씨는 점점 추워지는 데, 코로나로 경제마저 더욱 얼어붙는다. 그러한 겨울, 마지막 잎새처럼 삭풍과 추위에 떨며 펄럭이는 달력 한 장, 술 한 잔, 사랑 한 잔, 건강 한 잔, 이럴 땐 마음을 편히 터놓고 허름한 식당 구석에서라도 앉아 아무 거리낌 없이 술 한 잔 마음대로 마실 자유로움이 몹시 그립다.
* 육정균 : 충남 당진 出生, 2000년 작가넷 공모시 당선, 2002년 현대시문학 신인상(詩), 2004년 개인시집 「아름다운 귀향」 출간, 2005년 현대인 신인상(小說), 부동산학박사, (전) 국토교통부(39년 근무) 대전지방국토관리청 관리국장(부이사관). 현 개인택시공제조합이사장, 단국대학교 부동산건설대학원 겸임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