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원하의 취중진담
솔직하지 못한 것은 주당으로 충분하다
주당들이라면 히죽 웃을만한 글을 어느 누리 꾼이 올렸다.
‘술꾼들의 일상’이란 제목의 글이다.
오늘도 술에 취해 얼굴이 엉망진창으로 여기저기에 상처가 나 있다. 아무리 취했어도 치료를 해야겠다고 생각한 남편은 욕실에 가서 빨간약과 소독약을 바르고 반창고를 붙였다.
다음날 아침 와이프가 말하길 “또 술 마셨네?”…“내가 못 살아!”
“나 어제는 안 취했었어!”…“조금밖에 안마시구 멀쩡했다고!”
그러자 와이프가 하는 말이~
“술 안 취하고 멀쩡한 사람이, 거울에다가 빨간약 바르고 밴드를 덕지덕지 붙여놓니! 어이구 이 화상아!”
술꾼들이 “나 술 취했다”고 자백하는 사람 있나. 남에게 뒤질세라 퍼마시고도 “어제 모임에서 딱 한잔 했다”는 새빨간 거짓말을 입에 달고 사는 사람들이 주당들의 일상이다.
술을 입에 대는 순간 딱 한 잔만 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술자리에선 거의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최소한 석 잔은 해야 한다.
우리는 삼족오(三足烏) 민족의 후예(後裔)이니까. ‘죽어서도 석잔 술을 받아먹으려면 살았을 때 석잔 술을 마셔야 한다’는 불문율이 있을 만큼 삼(三)이란 숫자를 주당들은 좋아한다. 삼신 할매, 삼세번처럼 3을 숭배(?)하는 민족인데 술자리에서 한 잔으로 끝낸다는 것은 주당들을 모욕하는 처사라고 하는데 이의 없다. 석 잔이 들어가면 다음은 홀 수배(杯) 의식에 따라, 5잔, 7잔 등으로 이어진다. 그런데도 솔직하지 못하고 딱 한잔만 마셨다는 것은 웬일일까.
시인 조지훈은 1956년 발표한 ‘술은 인정이라’는 글에서 “제 돈 써가면서 제 술 안 먹어준다고 화내는 것이 술뿐이요, 아무리 과장하고 거짓말해도 밉지 않은 것은 술 마시는 자랑뿐이다.”고 했다. 요즘 세태와는 약간의 거리가 있을 수 있지만 군대 이야기를 뻥치는 것처럼 들으면 될 것 같다.
조지훈은 같은 해 술꾼의 등급을 바둑에 비유한 글을 썼다. 이른바 ‘주도유단(酒道有段)’이다. 9급은 불주(不酒)라 해서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초단은 애주(愛酒)라 해서 ‘술의 취미를 맛보는 사람’이다. 필자는 자칭 7단인 낙주(樂酒), 즉,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인 주성(酒聖)의 반열에 올랐다고 우기지만 인정해주는 사람이 적다.
『이 땅은 나를 술 마시게 한다』의 저자 권일송(權逸松1933. 10-1995. 11)시인은 ‘술 마시는 人生’이란 글에서 역시 술이란 엄숙한 동기요 결과였다. 좋게 말해서 인생의 동반자요, 나쁘게 말한다면 ‘도깨비 국물’이다. 그 것은 필요악이다. 어떻게 보면 있어선 안 될 것이 생겨난 것이요, 또 어찌 보면 이 메마른 세상에서 없어선 안 될 것 같기도 한 ‘묘한 흥분제’-라고 일갈 했다.
요즘 화두(話頭)가 ‘솔직’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탄로나 큰 충격을 주었기 때문이다.
김 대법원장은 국회에서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와 이른바 ‘탄핵’ 발언을 두고 진실 공방을 벌였다.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임 부장판사가 사의를 표명했을 당시 “탄핵 관련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지만, 임 부장판사 측이 2월 4일 당시 대화 녹음 파일을 공개하면서 김 대법원장의 답변은 거짓말이라는 것이 만천하에 들어났다.
이 같은 상황에 대해 국민의 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거짓말쟁이 대법원장은 사법부 수장으로서 권위와 자격을 완전히 상실했다”며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라고 촉구했다.
이번 일로 국민들이 분노하고 있는 것은 법관이란 거짓과 진실을 가려내는 사람인데 대법원장이 금방 들통날일을 두고 솔직하지 못한 처사를 했기 때문이다.
주당들의 거짓말이야 애교로 봐줄 수 있지만 법관의 거짓말은 차원이 다르다.
이스라엘의 솔로몬 왕과 같은 지혜로운 판결을 하지 못해 21년 억울한 옥살이를 한 ‘낙동강변 살인사건’을 보라. 21년 옥살이를 시킨 최종판결자는 법관이다.
정직하지 못한 정치인이나 판·검사들을 주당들과 동급으로 취급할 수는 없지만 이번 김명수 대법원장의 처사를 두고두고 기억에 남을 것이다.
옳고 그름을 가리는 사법 최종 판결자인 대법원장이 ‘거짓의 명수(名手)’라는 것은 국가적 재앙이자 미래세대에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딱! 한잔 했습니다.”고 해도 거짓말인 거 알아요. 당신은 술 찐팬이니까요.
<삶과술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