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別酸’막걸리 빚는 양주도가 金起甲 대표
막걸리가 식초를 만나는 것은 적과의 동침, 옥동자가 태어났다
국내 최초로 막걸리 발효과정에 식초균 삽입으로 청량감 끌어 올려
계절은 겨울의 끝자락이다. 아직은 옷깃을 여며야 할 만큼 찬기가 돌고 응달진 산기슭에는 녹지 않은 눈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파주시와 양주시의 경계를 이루고 있는 곳에 발랑 저수지가 자리 잡고 있다. 저수지는 빙어 낚시를 할 만큼 얼음이 녹지 않고 있지만 이웃해 있는 노고산 계곡에서 흘러내리는 실개천의 여울물 소리는 봄을 알리는 전주곡 같다. 앞산 뒷산의 잡목들은 벌써 봄채비를 하는지 초록빛이 감돈다.
발랑저수지변에 위치해 있는 비암장수마을회관을 끼고 300여m 쯤 들어가면 지난 해 이곳에 터 잡은 양주도가(대표 金起甲, 52)를 만난다. 아직은 이곳에 양조장이 있음을 알리는 간판도 걸려 있지 않지만 직감으로 체험장 안에 양조장이 있을 것 같아 문을 노크했다.
김기갑 대표와 김민지 부대표가 기자를 맞이했다. 두 사람은 과거 한 직장에서 상하관계였다가 이제는 부부가 된 커플이라고 했다. 김민지 부대표는 직장 생활 할 때 김 대표로부터 눈물이 날만큼 혼난 적도 많았지만 이제는 역전이 됐다는 부부다.
청출어람(靑出於藍). 식초의 고향은 본디 막걸리다
최근 양조업계에서 관심을 끌고 있는 술이 양주도가가 출시하고 있는 ‘별산’이다. 김기갑 대표의 명함에 적혀 있는 별산의 뜻풀이대로라면 첫째, 별산(別酸)은특별한 신맛이 나고 둘째, 별산은 별이 내려앉은 산이고 셋째, 별산은 양주에서 제일 자랑할 수 있는 양주별산대(楊洲別山臺)의 별산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했다.
기자가 주목하여 양주도가를 찾은 것은 바로 산(酸) 즉, 식초를 막걸리 양조과정에 첨가하여 막걸리를 빚고 있다는 데 의문점이 생겼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논리라면 막걸리 양조와 식초제조장은 거리가 멀어야 된다. 부산의 금정산성 막걸리 양조장이 대표적이다. 유청길 대표가 식초공장도 함께 운영하고 있는데 양조장과 식초제조장은 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같은 회사 직원끼리인데도 식초를 제조하는 직원들은 양조장 근처에도 얼씬거리지 못하게 하고 있다. 혹 초산균이 막걸리 양조에 지장을 주고 있을까봐서 그렇단다.
그런데 막걸리를 빚는데 식초를 넣는다. 말이 되는 이야긴가.
막걸리 유산균과 식초의 초산균은 한 마디로 상극이다. 막걸리를 상온(25도 이상)에서 숙성시키면 막걸리식초가 된다.
따라서 식초의 고향은 막걸리다. 청출어람(靑出於藍)이라고 할까. ‘푸른색은 본디 쪽에서 나왔지만 쪽빛보다 더 푸르다’는 것처럼 식초는 막걸리보다 강하다.
때문에 막걸리 양조장에선 미생물인 식초균의 침입(공기 중 유통)을 가장 경계한다. 막걸리 양조과정에 식초균이 침입하면 막걸리가 식초로 변질될 수 있어서다.
식초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일본에서는 오래 전부터 식초를 꾸준히 마셔왔고 중국에서도 식초는 생활 깊숙이 자리하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식초가 다이어트와 피로 회복에 도움이 될 뿐만 아니라 혈압을 낮추고 노화를 지연시키는 효과까지 있다는 것으로 알려져 많이 애용하는 조미료다
그런데 한 때 막걸리에 식초(홍초)를 타서 마시는 것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이 때 개발되어 수출한 것이 유산균 막걸리였다.
김 대표는 바로 이 점에 착안하여 막걸리 빚는 과정에 식초를 넣을 생각을 하게 된다.
모르긴 해도 요리사가 복어 회를 칠 때 일류 요리사는 칼끝에 약간의 복어의 독(피나 알 등에 있음)을 묻혀서 복어요리를 해야 맛이 더 좋아지는 원리와 같은 이치일 것이다.
운전도 해야 되고 한낮도 되기 전이라 ‘별산(6.5%)’을 병아리 눈물만큼 맛을 본다.
확실히 여느 막걸리와는 맛이 다르다. 산뜻하다. 누룩냄세가 전혀 올라오지 않는다. 청량감이 입안의 잡내를 씻어내는 느낌이다. 저녁에 반주로 ‘별산’을 마셨다. 숙취가 전혀 없다. 식초의 효과 때문일 것 같다.
26년간 양조장의 직장 경험 살려 양주도가 설립
김기갑 대표는 양조업계의 숨은 실력자로 알려져 있다. 그가 양조업계에 투신하여 술빚기의 외길을 걸어온 지도 26년의 세월이 흘렀기 때문이다.
첫 직장으로 택한 곳이 이동막걸리양조장이다. 여기서 1995년부터 10여 년간 연구실장을 지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양조장이지만 김 대표가 보기엔 모든 것이 과학적이지 못했다.
“‘술은 과학이다’라고 할 만큼 제조과정에서 철저한 관리를 해야 맛좋은 술이 빚어지는데 대부분의 양조과정이 주먹구구식이다 보니 술맛이 들쑥날쑥하기도 하고 발효가 잘되지 않는 것을 보고 이를 체계화 시켜 나가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라고 되돌아 봤다.
과거 양조장들은 위생관념이 엉망인 데가 많아 술 빚는 과정에서 잡균들이 들어가 술맛을 버렸고, 발효도 되지 않았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부정을 타서 그렇다고 치부해 버리기 일쑤였다. 전근대적인 사고방식이 술을 망치고 있었다. 굿판을 벌린다고 망가진 막걸리가 살아나겠는가.
어느 날 보니까 공장장이 막걸리가 안 된다고 소금을 넣는 것을 보고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어 과학적인 토대로 술을 빚어 나갔다.
김 대표는 보다 체계적인 술을 빚기 위해서는 과학적 지식이 필요했다. 그래서 고려대 대학원 식품공학과에서 미생물을 공부했다.
그리고 나서 두 번째로 잡은 직장이 양주탁주였다. 여기서 불곡산 막걸리를 개발해 냈다. 소비자들로부터 인기도 끌었다. 8년여 동안 공장장으로 일하다가 다시 자리를 옮긴 곳이 포천일동막걸리다.
여기서도 공장장이면서 관리, 제조, 개발 등을 담당했다고 한다. 8년여 세월을 보내고 나서 진짜로 내가 만들고 싶은 막걸리를 빚기 위해서는 내 공장을 가져야 겠다는 생각이 깊어지자 김 대표의 동반자인 김민지 부대표가 “우리 공장을 갖자”고 제안했다.
그래서 26년의 직장생활을 청산하고 지난 해 7월 정식으로 이곳에 작은 양조장을 차렸다고 한다.
식초균 넣는 시기와 양을 알아내는데 많은 시간 보내
김 대표는 후발주자가 앞서가기 위해선 차별화된 막걸리를 생산해야 한다는 생각이 깊었다. 그래서 그 동안 늘 생각했던 식초막걸리를 떠 올렸다.
그 비결은 막걸리에 신맛을 적용해 차별화한 막걸리를 빚는 일. 국내 최초로 6년 된 천연 감식초에서 추출한 식초균을 막걸리 발효시 첨가 하는 일이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별산’은 이양주 기법으로 양조한다. 첫 발효가 시작되고 덧술을 하는 사이 적당한 시점을 택해 소량의 초산균을 투입한다.
투입시점과 식초 균의 양을 측정하는데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 내용만큼은 밝힐 수 없음을 양해 바란다고 했다.
이술로 ‘2020 대한민국주류대상’ 우리술 부문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이런 것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양조장을 설립하게 되었다고 김민지 부대표가 설명했다.
어쨌거나 보통 막걸리가 쌀, 누룩, 물로 이루어지는 데 별산에는 초산균이 들어가는 특이한 조합이다.
양조문헌에 식초 막걸리는 없다. 그렇다고 누가 빚고 있어 배울 데도 없다. 오로지 혼자서 연구하고 실패를 거듭하면서 식초막걸리를 개발해 냈다.
별산을 개발하면서 가장 큰 문제점이 어디에 있었느냐는 질문에 “식초균을 많이 넣거나, 발효 초기에 넣으면 식초화(산화)가 너무 빨리 진행되어 신맛이 강해져 막걸리를 상하게 했고, 또, 어떤 때는 반대로 단맛은 있으나 신맛이 적은 일반적인 막걸리 맛이 났다. 시행착오는 셀 수 없을 정도였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수십 포대의 쌀이 날아갔고, 막걸리 빚기를 수도 없이 해야 했다. 1년 이상 연구개발에 집중한 끝에야 적절한 식초균 투입량과 투입 시기를 알아냈다. 또한 발효 후에 15~20일 정도 숙성을 하면 맛이 더 섬세해진다는 것도 알게 됐다.
막걸리 양조과정에 식초균을 삽입하는 것은 이른바 ‘적과의 동침’이나 매한가지다. 그래서 태어난 것이 ‘별산’이라니 이 정도면 옥동자가 아닌가.
양주산 오디로 빚은 ‘별산 오디 스파클링’도 일품
일반 막걸리는 단맛이 신맛에 비해 강하다. 별산 막걸리는 신맛과 단맛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고 있다.
김 대표는 “별산막걸리를 마시면 처음에는 단맛이 먼저 느껴진 후 잔향에는 기분 좋은 신맛이 느껴집니다. 이는 식초가 단맛을 만나서 내는 ‘상생의 효과’입니다. 그래서 청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고 한다.
김 대표가 이 같은 청량감을 더욱 극대화할 수 있는 술로 개발한 것이 ‘별산오디 스파클링(6.5%)’ 막걸리다.
양주도가에서 주문한 술을 받으면 제일 먼저 눈에 띠는 것이 -별산 오디 스파클링 이력서-라는 손 편지를 받는다.
손 편지 내용은 이렇다.
-뽕나무에서 주렁 열린 오디를 따먹으며 검게 물든 입술을 보고 서로 웃던 그 추억의 순간을 귀하게 막걸리 한 병에 소환하려 합니다.
그 때를 담기위해 사용되는 원료와 재료는 순수함에 기준을 두어 양주 지역에서 생산되는 가장 우수한 쌀과 오디를 사용하였고, 발산 하고픈 꿈을 담아 풍부한 탄산 오름이 가득한 스파클링 막걸리로 결정하고 많은 연구 끝에 ‘별산 오디 스파클링’이 태어났습니다.-
그러면서 별산 스파클링 음용 법을 안내하고 있다.
이 오디 스파클링은 샴페인 대체 술로도 충분할 것 같다. 어찌 보면 샴페인보다도 훨씬 났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갖게 된다. 술이 약한 여성들이 좋아할 것 같은 술이다.
아직 개발단계라면서 보여준 ‘별산 약주술’도 천연탄산으로 인한 청량감이 풍부했다.
양주도가를 취재하면서 구약성경의 욥기 8장 7절에 나오는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Your beginnings will seem humble, so prosperous will your future be’는 성경 구절이 떠올랐다. 느낌이 그렇다는 것이다.
김 대표는 미생물을 이용한 다양한 술 빚기를 시도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많은 곰팡이 균에서 좋은 균을 찾아내서 영양가 높은 막걸리를 더욱 발전시켜 세계적인 술로 개발하겠다는
것이 김 대표의 꿈이다.
그리고 좀 더 정진하여 주류업계의 허준이 되어 술병(제조과정에서)을 고쳐주는 의사가 되어 보겠다고 했다. 그런 날이 하루빨리 오기를 기대한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 tinews@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