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酒流)가 비주류(非酒流)로부터 비난 받는 경우는 저질 음주문화 때문일 때가 많다. 평소엔 얌전하기가 첫날밤 새색시 같던 사람도 술 몇 잔만 들어가면 풀어놓은 망아지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소리 안 할 소리를 마구 해댄다. 술에 취하면 교양이란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고, 아래위턱도 없어진다. 술만 입에 대면 모두가 제세상이 되는 사람이 있어 얌전한 주류파까지 주정뱅이로 매도된다. 이런 모습들이 비주류 입장에서 좋아 보이겠는가. 어느 인터넷에 올라온 글을 보자.
“참 궁금하군요.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데 술 취한 놈이 계산도 안하고 우유를 마시더군요. 뭐라고 했더니 다짜고짜 욕질이네요. 그런 인간이 술을 왜 그렇게 마셔대는지. 참고로 밤도, 새벽도 아닌 ‘아침 9시정도’였습니다.”
인간이 짐승과 3가지 다른 점이 있는데, 그 중 하나가 술을 마시는 것이다. 희랍 신화(神話)에는 제우스를 비롯한 여러 신들이 올림포스 산에서 술을 마신 것으로 돼 있다. 당시의 술은 신들만의 전유물이었지만, 훗날 인간들도 술을 마실 수 있도록 허용했다.
술은 ‘문화의 신’이며,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보급했다. 술의 신이 곧 문화의 신인 것이다. 술이란 정신에 작용하는 식품이기 때문에 예로부터 신성시 돼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배고파서 음식을 먹는 일은 짐승이나 벌레도 하는 일이지만 술만은 오직 인간만이 마신다. 인간의 뇌에는 술을 받아들이기 위한 수용제도 있다. 술이란 애당초 인간이 만들어질 때부터 마시게 돼 있었던 것이다.
술이란 분명 위험하고 어려운 것이다. 불(火)도 위험하지만 이것을 잘 사용하면서 문명을 꽃피웠던 것처럼, 술도 조심스럽게 잘 다루면 인간의 격이 높아지고 문화와 정신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을 것이다.
대승불교의 경전가운데 하나인 ‘대지도론(大智度論)’ 제13권에는 “술은 추위를 없애고 몸을 이롭게 하며 마음을 즐겁게 하거늘 어찌하여 마시지 못하게 하는가? 몸을 이롭게 하는 것은 극히 적은데 해롭게 하는 것은 매우 많다. 그러므로 마시지 말아야 한다. 비유하건대 마치 보기 좋은 음료수에 독이 섞인 것과 같다”고 했다.
중국 문헌에 ‘주봉지기천종소(酒逢知己千鍾小)’라는 말이 있다. “술은 서로 잘 아는 지기지우(知己之友)를 만나면 천 잔의 술을 마셔도 오히려 부족하다”는 말이다.
이처럼 술은 서로가 흉금을 터놓고 진실을 말할 때 서로를 이해하게 하고 용서해주고 때로는 좀 더 친밀하게 해주는 명약이 될 수 있다.
술을 교양 있게 잘 마시는 사람들마저 부정적으로 대접받는 것은 술의 역기능이 지나치게 부각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주장이다. 잘못된 음주문화가 대중문화에 단골로 등장하다보면 술에 대한 인식이 나빠질 수밖에 없다. 특히, 저질 음주장면을 시청한 후에 청소년들은 모방과 음주 욕구 심리가 생기는 만큼 영화와 드라마 속 음주장면은 되도록 자제해야 하며, 규제도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나카르시스는 “술 한 잔은 건강을 위해, 두 잔은 즐거움을 위해, 석 잔은 방종을 위해, 넉 잔은 광란을 위해”라고 했다. 술을 어떻게 마셔야 할지를 가늠케 하는 대목이다.
영국은 술에 취해 상습적으로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에게 음주는 물론 술집 출입을 금지하는 ‘음주금지명령제’(Drinking Banning Order)가 시행되고 있다. 이 제도는 경찰이나 지방자치 정부가 술에 취해 범죄를 저지르거나 반사회적 행동을 한 16세 이상의 음주자에 대해 치안법원에 신청하면 판사가 ‘음주금지’를 명령하는 것이다. 판사는 2개월에서 최장 2년까지 펍(Pub)이나 바, 공공장소에서의 음주는 물론 출입까지 금지할 수 있다. 명령을 어기면 2500파운드(한화 약 500만원)의 벌금에 처해지고, 120~250파운드의 비용을 내고 관련 교육까지 이수해야 한다.
우리도 저질스럽게 술을 마시는 주정뱅이들을 처벌할 수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