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함부로 차리지 마라

2002년부터 2003년까지 나는 전주한옥마을의 전통술박물관에서 근무 했다. 그때는 지금보다 외지인이 훨씬 드물었지만 종종 술박물관을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700여 채의 한옥마을이 전주에 있다는 전주시의 홍보를 보고 찾아온 관광객들인데, 대개는 그 한옥들을 보며 실망하고 돌아갔다. 전통한옥도 아닐뿐더러 거의 일제 강점기 말부터 근현대에 지어진 한옥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보존상태도 좋지 못했는데, 한옥마을에서 제일 높은 리베라호텔 꼭대기에서 한옥마을을 조망하면 파란 비닐 커버로 지붕을 임시로 가린 한옥들을 꽤 볼 수 있었다.

그 후로 한옥마을을 떠나 10년간 서울에서 생활하다가 다시 전주로 내려왔다.

한옥마을은 10년 전 내가 있었던 곳과는 전혀 다른 곳으로 변해 있었다. 하루가 다르게 근사한 레스토랑과 예쁜 카페가 생기며,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였다. 어떤 카페는 오전 10시경부터 수십 명의 사람들이 줄을 서 있기도 했다.

참으로 경이로운 광경이었다. 인구가 훨씬 많은 서울 삼청동의 카페들도 줄을 서 있는 모습을 보거나 이렇게 많은 관광객들이 몰리지는 않으니 말이다.

한옥마을에서 나와 함께 일했던 몇몇은 한옥마을에 카페만 생기고 있으며, 상업화된 공간으로 너무 빨리 변했다고 개탄을 하기도 했다.

 

최근 6차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다. 6차 산업이란 1차 농업+2차 제조업+3차 관광산업을 더해서 만든 조어다.

그 6차 산업을 생각하며 한옥마을을 지날 때마다 한 번씩 바라보는 것이 있다. 카페 안에 있는 커피 로스팅 기계다. 알다시피 커피 로스팅이란 원두를 볶아내는 것이다. 그리고 나는 그 기계를 대할 때마다 최근의 한옥마을에서 느끼는 경탄만큼의 감탄을 하게 된다. 비록 농업이 빠져 있지만 그 로스팅 기계는 커피를 가공하는 훌륭한 2차 산업의 도구이다. 거기에 더해 그 로스팅 기계로 교육사업을 파생시킬 수 있다. 또한 근사하게 생긴 로스팅 기계는 카페를 찾는 사람들의 훌륭한 볼거리와 인테리어 소품이기도 하다. 농업이라는 1차 산업이 빠져 있지만 이 작은 카페에서 제조와 교육 그리고 관광이라는 2차, 3차 산업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커피뿐만 아니라 맥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는 대부분 천편일률적인 대량생산 공장표 맥주뿐이지만 유럽을 여행해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동네마다 커피 로스팅 기계처럼 번쩍거리는 발효통이 있는 카페에서 부드러운 거품과 향이 풍부한 동네표 맥주를 맛 보았을 것이다.

맥주도 커피처럼 로스팅이 무척 중요한 식품이다. 좀
많이 태우면 흑맥주가 되고 갈색으로 볶으면 황금빛 먹음직스러운 맥주가 된다. 이러한 맥주 양조장은 도심 혹은 관광지에 많이 자리하고 있다. 그리하여 현지인뿐만 아니라 양조장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무척 기억에 남는 장소가 된다. 그곳에서 맥아(엿기름)를 볶는 향긋함을 맡으며, 맥주가 발효되는 소리를 듣고, 신선한 거품이 흐르는 방금 생산한 맥주를 맛볼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양조장들은 도시에 있는 경우가 드물다. 변두리에서 술을 만들어 도심에 공급한다. 그러나 막걸리의 전성기였던 1970년~80년 중후반까지 양조장은 도심에 자리하며 수많은 추억들과 콘텐츠를 만들었다. 전주만 해도 지금의 공예품 전시관 자리와 서학동 천변에 막걸리 양조장이 있었다고 한다.

이 시절 어른들의 심부름으로 막걸리를 받아오던 아이들은 누구나 한번쯤은 어른들 몰래 막걸리를 마셔보았을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은 술 짜고 남은 술지게미로 요기를 하기도 하였다. 당시의 양조장은 지금 한옥마을의 카페처럼 이야기를 생산했고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였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많은 사람들이 있는 곳에 자리했기 때문이다. 떡집이나 방앗간이 동네에 있는 것처럼 양조장도 하나둘 시장이 가까운 도시로 올 것으로 본다. 전주처럼 한옥마을이라는 전국에 이름난 관광지가 있는 곳은 더 말해 무엇 하랴.

 

막걸리 열풍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드세다가 2011년을 기점으로 가라앉았다. 막걸리를 새롭게 해석한 곳도 많았는데, 가운데 주목해야 할 것은 도시에 막걸리 공장을 만든 곳이라 생각한다. 도시에 막걸리 공장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설비를 경량화해야 한다. 설비를 경량화하다 보면 장비에 대한 과학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소비자들에게 보일 거리도 필요하기에 미관도 고려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이 장비에서 생산되는 막걸리도 팔게 되지만 장비도 팔 수 있게 된다. 막걸리 한류가 흐르는 일본이나 혹은 중국, 동남아시아, 미국 등 막걸리에 대한 수요가 있는 곳은 당연스레 장비의 수요도 따르게 된다.

서울에 있을 때 종종 소규모 맥주양조장을 가서 맥주를 마셨다. 여기서는 필스너, 바이젠, 둥켈 이라는 좀 생소한 이름을 가진 맥주를 생산하여 소비자에게 공급한다. 이 맥주에 소요되는 원료인 맥아는 거의 수입이다. 그뿐 아니라 그 맥주를 만드는 장비도 고가에 수입하고 있다. 특히 독일산 장비는 다른 나라 장비에 비해 몇 배가 비싸도 맥주를 양조하는 사람들은 꼭 독일산 장비를 갖고 싶어 한다. 그 맥주를 마시며 입은 한없이 행복했지만 부러움과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한옥마을이 생기면서 전주에는 기존에 없던 거대한 규모의 시장이 생겼다. 그것도 전국 경향각지의 사람들과 드문드문 보이는 외국인으로 이루어진 전국화 된 시장이다.

최근 한옥마을과 인근지역을 지나며 몇 가지 흥미로운 것들을 보았다. 먼저 남부시장의 청년몰이다. 남부시장 청년몰은 젊은 청년사업가들이 모여 다양한 문화적 실험과 차별화된 상품을 가지고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두 번째는 한옥마을 인근의 서학동에 자리한 서학예술마을이다. 마지막으로 전주전통술박물관의 양조장 사업이다.

빈 상가에 자리를 잡은 이 양조장은 도심 관광지에 위치하고 있으며, 잃어버린 동네 양조장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다시 우리에게 돌려 줄 것이다.

이 세 가지 사업의 공통점은 모두 단시일에 얻어진 결과물이 아니라는 점이다. 오랫동안 그러한 사업들을 구상했고 그 지역에서 뿌리 내리고 있으며, 더러는 집이나 작업공간을 구입하여 삶의 터전을 확실하게 일구고 있다.

또 다른 공통점은 한옥마을이라는 시장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간다는 점이다. 이들은 모여살기와 함께하기 등으로 시장을 헤쳐가기도 하고 즐기기도 한다.

 

무엇이든 세계에서 경쟁할 수 있는 명품이 나오려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수입되었을 저 카페의 커피 로스팅 기계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듯 말이다.

세월이 흘러 전주전통술박물관의 양조장과 그 시스템이 우리나라를 넘어 양조 한류(韓流)가 되는 날을 꿈꿔본다.

◈ 글쓴이 유상우는

전라북도 막걸리 해설사 1호. 혹은 전라북도 주(酒)당의 도당위원장 쯤 된다. 한옥마을 인근의 동문거리에서 양조장과 술집(시)을 겸업하고 있으며, 2014년에는 전북의 막걸리 발전을 위해 막걸리해설사를 양성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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