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의 음주문화와 알코올 정책(下)

주류산업과 정책이야기(38)

이탈리아의 음주문화와 알코올 정책(下)

조성기(아우르연구소 대표/경제학박사)

급격히 줄어든 이탈리아인들의 음주량과 그 이유

1970년대의 이탈리아인들의 음주량은 무려 16.1리터나 된다. 세계보건기구의 자료로는 20리터에 육박한다. 대단하다. 그 이후 음주량이 급격히 감소한다. 수요가 감소한 주류는 와인이다. 맥주가 약간 늘고 증류주가 약간 줄었다. 하지만 와인 음주의 감소추세가 급격하다.

1990년에는 순알코올 소비량이 9.8리터였다.일부 자료에 12.4리터라는 보고도 있다. 아무튼 그 감소량이 매우 컸다. 20년 동안에 거의 40%-50%가 넘게 줄어들은 것이다. 2005년의 자료에는 다시 30%가 줄어 6.9리터가 된다. 주당인 이탈리아인들이 자존심이 상할 수 있겠다. 하지만 음주량 감소에 관한한 엄청난 모범국이 되어 건강을 챙겼다.

연 도

증류주

맥주

와인

전체

1990년

1.0

1.3

7.5

9.8(12.4)

1995년

0.7

1.3

6.9

8.9

2000년

0.5

1.4

6.1

8.0

2005년

0.4

1.5

5.0

6.9

2010년

0.4

1.6

5.0

7.0

2016년

0.4

1.7

5.4

7.5

◇이탈리아의 1인당 순알코올 음주량(1990-2016) (단위:ℓ)

Sources:WHO Health for All Database 2009, 2016 and Osservatorio Permanente sui Giovani e l’Alcool 2007.

이탈리아의 와인 소비량 감소는 이유가 분명했다. 이탈리아인들의 급격한 대오각성 보다 정치사회 경제의 구조적 변화가 주요인이었다. 요약하면 노동조건의 변화, 가족구조의 변화, 라이프스타일와 소비패턴의 변화, 산업화와 도시로의 이동 등과 함께 소득증가와 함께 나타난 건강인식의 제고 등이 이유였다. 복합적이다. 게다가 수출과 유럽연합의 농업정책도 그 감소의 이유에 한몫했다.

1950년-60년대에 산업화로 농업 중심의 이탈리아에 도시산업의 몫이 커져 갔다. 전통적으로 와인은 힘든 농사다. 농업이 주업이었던 이탈리아인들에게 영양분을 주고 노동의 피로를 해소해 주는 치료제가 와인이었다. 밭에서 마시는 과로를 부추기며 농업생산성을 높이는 농주였다.

그래서 와인을 많이들 마셨다. 산업노동자가 힘들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공장의 기업주들은 생산성향상을 위해 과도한 음주를 통제했다. 마냥 마시도록 그냥 놔두질 않았다.

1980년-90년대에 이르러 공업 이탈리아에 서비스산업의 비중이 늘기 시작한다. 이미 도시로의 이동이 늦춰졌고, 교육수준이 높아지고 여성의 역할도 중요해졌다. 가족구조가 변하자 음주인식과 환경도 크게 변했다. 이 또한 와인음주 수요를 줄이는 데 기여했다. 그 방향으로 사회가 변해갔다.

다른 하나는 유럽연합의 영향력이다. 내수가 줄면서 저가의 와인이 해외에서 경쟁력이 있다는 것을 알자 와인생산자들은 수출에 총력을 기하게 되었다. 프랑스에 수출액의 40%, 독일에 25%로 총수출의 2/3가 유럽의 다른 지역이 되었다.

와인이 유럽으로 이동한 것이다. 이른바 프랑스와는 와인전쟁이 벌어졌다고 할 정도였다. 1976년-79년 사이에 유럽 전체의 불황이 발발하자, 유럽연합이 개입했다. 이탈리아도 와인 생산을 줄이는 농업정책에 동의하게 되었다. 와인의 절대적 생산과 소비가 줄어드는 계기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음주공급량이 체계적으로 줄어들고 있다. 이는 건강인식의 제고도 이유가 되겠지만 라이프스타일, 가족구조, 소비체계 등이 종합적으로 변하면서 나타난 현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존의 저가 소주와 맥주 중심의 술 소비체제가 유지될 수 있는 조건 자체가 달라지고 있다고 보아야 맞다. 이탈리아 와인이 상당기간 꾸준히 수요가 줄어든 이유와 조건을 연구한다면 우리의 산업과 시장변화에 주는 알맞은 시사점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근년 들어 와인생산이 더 줄어드는 것을 볼 수 있다. 바로 기후위기가 큰 영향을 미친 것이다. 바이러스도 그와 함께 왔다. 2019년에도 전년대비 1.3%의 생산 감소 발표가 있었다. 이는 순전히 기후변화로 와인 농장에 어려움이 닥쳤다는 보고였다.

심지어 ‘포도가 워낙 기후에 민감하기 때문에 와인 수확이 기후위기로 700년이나 후퇴했다’고까지 발표하고 있다. 2020년에 코로나 19 바이러스의 습격으로 레스토랑 외식의 감소, 관광업의 전면 위축 등이 발생했다. 와인의 극심한 수요 감소는 더 심각하게 되고 있다.

이탈리아인들은 통상 우리나라와 달리 증류주나 맥주를 많이 마시지 않는다. 음주량의 60-70%가 와인이다. 맥주는 20-30%정도이고, 나머지 10%이하가 증류주다.

우리나라도 70년대 이전에 순한 발효주인 막걸리가 대세였다. 30년 정도의 세월 속에서 맥주가 음용 량이 가장 많게 되었고 소주가 뒤를 잇고 있다. 막걸리는 소주나 맥주에게 왕좌를 내준 지 오래다. 소주를 중심으로 한 한국인의 증류주 사랑이 여전하지만 아무래도 저도인 맥주와 와인의 기세를 당해낼 수는 없다고 봐야 할 상황이다. 라이프스타일과 소득수준변화, 일하는 방식과 소통체계의 변화 등이 그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이탈리아도 변하고 있다. 적더라도 맥주수요가 꾸준히 증가하고 전통주인 와인의 생산 소비가 주는 것이 꾸준한 추세로 관찰된다. 이탈리아의 맥주소비량 비중의 증가를 눈여겨보자. 20여년 만에 2배다. 35년간의 통계를 보면 3배가 증가했다. 총량은 적다.

하지만 변화추세는 남다르다. 더 시간이 지나면 이탈리아에서 맥주의 위치가 지금과 또 다르게 변할 것이 분명하다. 저도 탄산주류에 대한 청년층의 선호도 증가는 무시할 수 없다. 고도 증류주 수요의 하락은 이미 전 세계적인 추세이고 이탈리아도 다르지 않다.

1990년대에 이탈리아인 들은 와인을 한해에 평균 60리터나 마셨다. 학자들은 2000년까지는 45리터로 줄어들 것이라 예측했었다. 결과는 그대로였다. 이미 순알코올량을 기준으로한 음주총량도 크게 줄었다.

현재 7리터 정도이고 그 수준에서 정체되고 있다. 인식, 태도, 행동 등의 상황을 감안할 때 당분간은 이 수준이 유지될 조짐이다. 물론 감염병의 진전 상황에 따라 모든 것은 더 변할 것이다. 바이러스의 위상을 제외하고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코로나 바이러스 이전에 이탈리아인들의 일상생활에서 바(Bar)가 중요했다. 술집은 전처럼 정치적인 활동을 하는 곳이 아니고 직업을 구하는 곳도 아니다. 술집은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음악을 듣거나 TV를 보거나 카드를 하거나 전자게임을 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리 된 지 아주 오랬다. 미국의 살롱이나 프랑스의 카바레와 같이 이탈리아의 펍은 남성들의 전유물이었다. 하지만 오늘날은 남성과 여성 모두로 구성된 단골손님들의 사교장소가 되고 있었다. 물론 바이러스 시대가 오자 텅텅 비었다.

지역별, 여성과 청소년, 직업별 음주 상황의 차이

이탈리아를 중부, 북동부, 북서부, 남부 등 4군데로 나누어 보면 북동부 지역의 사람들이 가장 많이 마신다. 지역마다 음주의 전통이 차이가 있다. 그 전통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베네토, 프리우리, 베네치아 등의 지역은 전통적으로 많이 마시는 곳이다. 남부지방과 도서지방은 항상 평균 이하로 마시는 것으로 집계된다.

남부지방은 이탈리아 최고의 포도산지가 있는 지방인데도 음주량은 적다. 그 이유 중 하나가 생산성 향상과 농업 생산방식의 변화 등이다. 덜 피로해진 것이다.

또한 음주량과 인구와의 관계를 볼 때 인구 20,000명 이하의 중소도시에서 술 소비량이 많다. 역시 문화적 수단이 대도시 보다 적은 곳에서는 술이 대안이었던 것이다. 남부에서 생산된 와인은 알코올 농도가 높다. 이는 도수가 매일 마시기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남부에서는 여성들의 음주에 대해서 전통적으로 엄격하였다.

즉, 산업화의 정도, 생산방식의 변화, 술의 도수, 여가생활의 상태, 음주 규범 등이 술 소비량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성, 나이별 음주량의 변화

1890년대에 이탈리아의 한 정신과 의사는 “여성이 남성보다 덜 마신다. 여성은 가족과의 관계에 생활의 중심을 두고 있고, 행동의 제약이 있으며, 수줍음을 많이 타고. 그래서 남용을 잘 하지 않는다.”고 했다. 전 세계 다른 여성과 이탈리아 여성이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여성들이 거의 다 변하고 있고 이탈리아 여성들도 예외가 아니다. 남성들이 세워놓은 장벽을 극복하고 자유로워지고 있다. 우선 술 소비에서 성차별이 사라진 것이다. 아직 남성보다 덜 마시는 것이 분명하지만 분위기는 크게 달라졌다.

이탈리아 전통사회에서는 음주에 성차별이 분명히 있었다. 여성들은 혼례식과 같이 특별한 때를 빼고 일상에서 술을 마실 수 없었다. 취한 여성은 취한 남성 보다 아주 나쁘게 평가되었다. 여성이 취하는 상황은 자연스럽지 못한 일이었다.

농사일을 하는 여성이나 높은 계층의 여성들도 마찬가지였다. 여성들은 모두 술에서 격리되었다. 술 자체가 남성의 전유물이었던 것이다. 여성을 술로부터 격리시켰고 남성들이 절대적인 권력을 유지하였다. 남성들은 배고플 때나 갈증이 날 때나 상관없이 술을 마셨다. 만취하게 되면 여성을 남성이 성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한편 여성들은 노동을 할 경우에도가족을 돌보아야 할 책임이 있었다. 남성들과 달랐다. 노동은 물론 가사일도 동시에 돌보아야 하므로 술 마실 시간 자체가 없었다.

즉, 이탈리아는 여성들은 두려움과 체념의 감정을 동시에 갖고 술과 만나게 되었다. 농촌에서는 더했다. 남성들이 술을 마시고 여성들에게 정신적 심리적 폭력을 휘두르는 경우도 많았다. 이탈리아 사회에서 남성은 그래도 되었다.

남성의 주량은 사내다움을 과시하는 것이었지만 여성들의 주량은 여성다움을 과시할 수 없었다. 오히려 문제가 되었다. 이탈리아 남성들이 여성들에게는 술을 많이 마실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 옳다. 이제 여성 스스로 그 기회를 찾아가고 있다.

산업사회 이전에는 육체노동자들이 술을 많이 마셨다. 미숙련 노동자들이나 일용직 노동자들은 그럴 수 없었다. 직업별로 음주패턴이 차이가 났다. 술집의 일반 술 손님은 상인들이나 판매직 노동자들이었다. 그들은 대부분이 과음자여서 악명이 높았다. 축제날이나 특별한 날을 제외하고 농업종사자들은 술집에 잘 가지 않았다. 과거에는 그렇게 달랐다.

오늘날에는 직업 간 음주습관의 차이가 뚜렷하지 않다. 최근에는 바텐더, 부동산 중개업자들, 영업직 종사자들이 평균 이상의 술을 마시고 있다. 세계 어디를 가나 영업직과 상거래가 직업인 사람들은 술을 많이 마시는 습관을 가지고 있다. 이탈리아에 청소년 음주에 대한 자료가 많지 않다. 그러니 청소년 음주문제가 과거에 어떠했던가에 대한 정보를 찾을 수 없다.

1992년에 와서야 15세-24세의 청소년 음주에 대한 전국조사가 실시되었다. 그 이후에는 1994년, 1998년, 2000년, 20007년 등 계속 조사 자료가 발견된다. 1992년 자료를 보면 지난 3개월간의 음주경험을 묻는 질문에 26%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대답하고 있다. 최근에는 청소년도 주요 선호 주종이 와인이었고 맥주 소비를 늘리고 있다고 답하고 있다. 나이가 더 들수록 술을 더 많이 마시고 있었다. 18세 이후가 되면 음주량이 양이 급증하고 있다. 가장 음주량이 많은 연령은 24-34세 사이였다.

<다음호 계속>

조성기(趙聖基,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원주한살림, 이사장

살림농산, 대표이사

아우르연구소, 대표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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