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루즈 여행은 젊은이에게는 꿈과 도전을 길러주는 계기가 될 것이며 나이든 이들에게는 최고의 낭만적인 여행이 될 것.
지난 4월16일 세월호 침몰사고만 아니었어도 지금쯤 관광업계에서는 5월의 황금연휴 때문에 정신없었을 텐데… 세월호 침몰로 애석하게 유명을 달리한 많은 학생들을 애도하는 물결이 이어지고 있어 각종 축제가 모두 취소되고, 여행도 축소 또는 취소돼 썰렁한 분위기다. 이런 분위기에 배를 타야 하는 크루즈 여행은 더욱 그렇다. 그렇지만 언제까지 슬픔을 껴안고 살 수만은 없는 노릇 아닌가. 여행업계는 나름대로 묘책을 찾기에 열심이지만 뚜렷한 대안이 없는 모양이다.
우리는 숱하게 ‘위기는 기회’란 말을 들으며 살아왔다. 이번 세월호가 바다에서 발생한 대형 사고란 점에서 다시 한 번 바다로의 도전이 필요한 때다. 사실 우리는 삼면이 바다인 나라에 살면서 바다에 대한 도전이 미흡했고, 이 때문에 배의 안전문제가 소홀했던 것이 큰 화를 불러 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사고를 계기로 다시 한 번 바다로의 도전이 필요한 때다. 그런 의미에서 망망한 바다를 가로지르는 크루즈 여행은 젊은이에게는 꿈과 도전을 길러주는 계기가 될 것이며 나이든 이들에게는 최고의 낭만적인 여행이 될 것이다.
국내 굴지의 여행사들은 크루즈 팀을 별도로 만들만큼 크루즈 상품에 관심을 보이다가 세월호 사건으로 주춤하고 있지만 이번 여름휴가를 계기로 본격적인 크루즈 붐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설렘 가득한 크루즈 여행
국 내·외를 막론하고 여행을 떠날 때는 설렘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크루즈 여행을 떠나는 마음은 두말할 나위가 있겠는가.
4월 26일 오전 8시 일본항공(JAL) 090편이 김포공항을 박차고 하늘 높이 솟는다. 이번 여행에 JAL이 많은 협조를 해준 덕분에 그 나마 여행경비를 줄일 수 있어 고맙게 생각하면서 말이다. 크루즈 여행은 크루즈가 기항으로 삼고 있는 항구까지 가야 하기 때문에 항공편은 필수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2시간 남짓 시간이 걸렸을까. 비행기는 일본 하네다 공항에 내려앉는다. 오래 전에 와본 공항인데 많은 변화가 있었던 것 같다. 깨끗하다. 친절하게도 한글로 된 안내판이 많고 공항직원들 가운데는 간단한 한국어를 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을 보니 모두가 한류덕분이겠지 하는 마음이 들었다.
하네다에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가 정박해 있는 요코하마 항구까지는 40여분 거리다. 크루즈 터미널은 바다를 메워 만든 인공 섬으로 터미널 지붕은 공원으로 만들어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어 일본인들의 세심함이 부럽다.
◇ 모든 것을 프린세스호에 맡기다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의 첫 런칭인데도 일본 각지에서 온 755명 승객 말고도 미국 477명, 호주 197명, 캐나다 107명, 영국 41명, 러시아 88명, 홍콩 28명, 아르헨티나 2명 등 43개국에서 온 1,100여명의 승객과 승무원 등 2,145명이 승선했다.
1천여 명이 승선 수속을 받는데 꽤 많은 시간이 걸린다. 여행 가방에 꼬리표를 붙여 짐을 붙인 상태지만 아직 크루즈 선상카드를 발급 받아야 승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선상카드는 배 안에서 신용카드 역할은 물론 배정 받은 방 키 역할도 하고 있어 항상 휴대해야 한다. 이런 저런 수속을 마치고 프린세스호에 첫발을 내 딛는 순간 지금부터 모든 것을 프린세스호에 맡기기로 했다.
B735호, 프린세스 11층 우현에 위치해 있는 기자의 방이다. 테라스가 달린 방이어서 밖을 내다 볼 수 있어 좋았다.
크루즈 여행 요금은 객실 등급에 좌우 된다. 제일 고급스럽고 가격도 비싼 스위트룸, 다음이 미니스위트, 발코니가 달린 룸, 오션부, 인사이드(창문이 없는 내측) 등으로 구분 된다. 크루즈 여행을 보다 편하게 하기 위해서는 방 배정이 중요한데 6개월 전 쯤 예약을 하면 자기가 원하는 방 배정을 받을 수 있어 크루즈 여행은 사전 예약이 필수다.
◇ 구명동의는 이렇게 착용하세요
크루즈 여행의 시작은 구명동의(救命胴衣, life jacket)를 입는 교육부터가 시작이다. 어느 크루즈를 타던 이 교육은 매 한가지다. 룸 안에 있는 구명동의를 가지고 지정된 교육장으로 가서 강의를 듣고 만약의 비상시 구명동의를 입는 요령을 배운다. 이를 테면 비상상태가 발생했을 경우 구명동의는 룸 안에서부터 입으면 안 되고 밖으로 나와서 입어야 된다는 것 등이다.
이 안전교육은 승객 전원이 받아야 한다. 선상카드로 일일이 체크하기 때문에 빠질 수도 없고, 빠져서도 안 된다.
구명동의는 케이폭(kapok)을 부력(浮力)재료로 하여 면포(綿布)로 싸서 조끼 모양으로 만든 옷인데 구명조끼라고도 한다. 비상시에는 이것을 착용하여 구명정·뗏목에 갈아타고 구조되기를 기다린다. 구명정·뗏목을 타지 못했을 때도 구명동의를 입고 있으면 그 부력에 의하여 머리를 물 위로 내놓고 물에 떠 있을 수 있다.
◇ 프린세스 호는 일본서 건조된 배
이번에 승선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호는 사파이어 호와 함께 2004년 일본에서 건조된 두 척 중 하나로 일본 요코하마를 모항으로 일본 주요 일정들을 운항 하는 크루즈다. 올해 이노베이션을 통해 편리한 시설들과 다양한 음식들이 추가 되었다. 이 때문에 다양하고 맛있는 음식들의 향연, 지루할 틈이 없는 흥미로운 프로그램 제공, 라스베이거스 수준의 쇼 관람, 새롭게 업그레이드 된 온천스타일의 자쿠지와 일본식 레스토랑, 카지노 등 시설이 훌륭하다.
17,18층은 스카이 데크(deck), 16층은 농구 같은 스포츠를 즐길 수 있는 스포츠 데크, 15층은 선 데크로 수영을 즐기거나 일광욕을 할 수 있으며 야간에는 야외극장으로 변해 영화를 감상할 수도 있다. 14층은 뷔페식당과 실내수영장이 설치돼 있다. 13층이란 숫자가 없는 것으로 봐 우리의 4자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다.
12층부터 8층까지는 주로 객실이며 7층은 대극장, 각종 레스토랑, 면세점 등이 운영되고 있다. 6층에도 역시 대극장이 있으며 레스토랑과 전시회가 열린다. 6-7 층에서는 깜짝 세일도 하고 있어 질 좋은 상품을 시중가의 절반 가격으로 구입이 가능하다. 정보를 잘 알아야 한다. 5층은 그랜드 플라자로 메인 홀과 정찬 식당이 있다. 4층은 외부로 통하는 관문 역할을 한다. 4층을 통해서만 외부로 나갈 수 있으며 이 때 반드시 선상카드가 필요하다.
특히 프린세스의 직원들은 승무원 그 이상이다. 객실을 관리하고 여행 전반에 걸쳐 신뢰할 수 있는 조력자 역할을 잘 해주고 있어 트집 잡을 만한 것이 없다. 이는 반세기 이상 크루즈 업계를 선도해 온 그 긴 역사만으로도 신뢰할 수 있어서다.
◇ 뱃고동 소리 울리며 요코하마를 떠나다
오후 6시 요코하마 항구에 노을이 깃드는 시각. 프린세스는 붕 붕 뱃고동소리를 길게 내뿜는다. “나 다녀올 깨요” 하는 소리일까. 11일이 지나면 이 배는 여기 이 자리로 다시 오니까 말이다.
모두가 밖을 내다보기에 바쁘다. 세계 미항중 하나인 요코하마(橫浜) 항구는 일본 도쿄에서 남쪽으로 30㎞ 거리에 있다. 일본의 쇄국시기였던 에도(江戶)시대 말기까지 한적한 어촌에 불과했지만 1859년 역사적인 첫 개항지가 됐고, 이후 일본의 대표 무역항으로 발전해 지금은 도쿄에 버금가는 일본의 주요도시로 성장했다.
개항장답게 많은 외국인이 터를 잡고 살았고, 당시 형성된 외인 거류지가 여전히 남아 있어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낸다. 볼거리가 많으며 특히 저녁이 되면 색색의 불빛으로 물드는 항구의 야경이 환상적이다.
프린세스가 떠나는 것이 못내 아쉬워서일까. 크루즈 터미널에는 많은 인파들이 떠나는 배에 손을 흔든다. Goodbye~ 요코하마!
◇ 搖籃에서 자는 기분이 이런 기분일까
어린아이를 잠재울 때 요람(搖籃)에서 재우면 잘 잔다. 평소 잠자리가 바뀌면 잠을 잘 못자는 사람들도 크루즈에서는 잠을 잔다. 미동이나마 약간씩 흔들리는 것이 원인 일듯 싶다. 그래서 숙면을 취할 수 있는 것도 크루즈 여행의 묘미다.
테라스에 나가 칠흑 같은 밤하늘을 바라본다. 별들이 영롱한 체 배를 따라온다. 바다갈매기들도 뱃전에 붙어 따라온다. 선명하게 보였던 수평선은 어느 순간 바다와 하나가 되어있었다.
◇ 크루즈의 白眉는 일출 감상
크루즈 여행의 백미(白眉) 가운데 하나가 일출을 감상하는 것. 4월 27일 이른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눈을 떴다. 4시45분 수평선에서 그동안 보아왔던 일출과는 전혀 다른 일출의 장관(壯觀)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그동안 일출사진을 찍느라 여러 곳에서 해님을 기다렸건만 오늘 같은 일출을 맞이하는 것은 처음이다. 이른바 오메가 형상을 한 붉은 태양이 푸른바다를 벌겋게 물들이고 있다. 경이롭다. 마치 바다 속에서 불끈 솟는 그런 느낌이다.
푸른 하늘 아래 펼쳐진 바다는 잔잔했다. 갑판위에 올라서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한 바퀴 돌아봐도 수평선 그대로다. 360도를 이어지는 수평선. 어리석은 생각이지만 진짜 지구는 둥그네….
◇ 당신이 미식가라면 크루즈를 타라
자칫 크루즈 여행이 지루하게 느낄 수 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배 안에서의 일정을 잘 챙겨야 한다. 매일 아침 객실로 그 날의 다양한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프린세스 패터(Patter,선상신문)가 배달되는데 이 신문에서 정보를 얻어 자유롭게 선택하면 된다. 아니면 개인적인 휴식을 취해도 된다. 프로그램 중 원하는 일정에 참여하거나 관람하고, 정박하는 기항지의 기항지 상품을(본인 부담) 선택하여 관광을 할 수도 있다.
혹시 다양한 요리를 즐기는 미식가라면 당연 크루즈 여행이 최고다. 이탈리아 요리부터 일본의 스시, 이름도 잘 모르는 다양한 양식, 스테이크 하우스 등 거의 모든 음식이 망라되어 있는데 아쉽게도 한식은 준비가 덜 된 모양이다. 이는 그동안 한국 사람들이 크루즈 여행을 많이 하지 않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뷔페식당을 제외하고 여타 레스토랑은 사전 예약이 필수며, 식당에 따라 1인당 25달러의 챠지(charge)를 내야 한다. 이는 요리가격이 아니고 예약비용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이탈리아 식당에서 랍스타를 주문했는데 양이 적다고 생각하면 파스타를 더 시켜도 된다. 먹성이 좋으면 몇 가지를 더 주문해도 OK. 맥주나 와인은 별도 챠지를 해야 한다. 이런 때 선상카드로 결재하면 된다. 웨이터가 서비스를 잘했다고 생각되면 5달라정도 얹어서 결재하면 thank you 소리를 몇 번이고 들으면서 식당을 나온다. 그래서 기분 좋은 밤이 시작되는 것이다.
◇ 기항지 관광은 요령이 필요하다
요코하마를 출항 한 다이아몬드 프린세스 크루즈는 첫 기항지로 37시간 만인 28일 오전 7시에 아오모리(靑森)항에 닻을 내렸다.
아오모리는 일본 혼슈(本州) 최북단에 위치해 있어 예로부터 항구로서 교통의 중심지이며, 근해ㆍ원양 어업의 근거지이다. 현청 소재지이기도 하다. 북위 40°49′21″에 위치해서인가. 그늘진 산허리에는 잔설이 남아있고, 이제야 벚꽃이 만개해 진해 벚꽃 축제 같은 것을 하고 있었다.
이날 오후 다시 도야마(富山)를 향해 출항한다. 부두에서는 대형스피커로 오스트리아 태생 소프라노 가수인 미루시아 루베르세(Mirusia Louwerse)가 부른 Time to Say Goodbye가 흘러나온다. 어쩌면 이렇게도 딱 어울리는 노래가 있을까. 불꽃놀이가 하늘을 불들이고 있었다.
29일 오전 도야마 항에 기항했다. 이곳은 도야마 항을 중심으로 알루미늄·조선·화학·펄프 등의 공장과 화력발전소·석유회사가 있다. 에도시대(江戶時代)부터 제약공업이 발달해 전통적인 약제조업자가 세운 중소 규모의 제약공장이 많은 것이 특징이다.
30일 교토(京都)현 마이주르(舞鶴)항에 도착했다. 틈을 내서 선내의 각가지 시설을 돌아볼 수 있었다. 레스토랑 주방이며 새로 개설했다는 선내 온천장인 이즈미(泉の湯), 마사지 룸, 스위트 룸 등을 돌아보고, 5월1일에는 특별히 캡틴이 틈을 내서 선장실로 초청하여 정말 보기 힘든 선장실도 돌아봤다.
선장실이 이렇게 넓고 멋이 있다면 일찍이 크루즈 선장이나 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동경을 해본다. 아직 철이 덜 들었나.
기항지 여행 Tip:대부분 기항지에서는 시내까지 또는 기착 역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무료로 운행한다. 이를 이용하면 적은 돈으로 기항지 여행을 할 수 있다.
◇ 아쉬움을 뒤로 하고 부산에 내리다
5월 2일 아침 7시 부산 크루즈터미널에 닿았다. 일본을 반 바퀴나 돌아 한국 땅에 발을 딛는 순간 크루즈 여행의 아쉬움도 남았지만 그리움이 왈칵 다가온다. 그래서 나는 한국인이다.
크루즈 여행에서는 각 객실마다 담당 승무원이 있으며, 모든 여정이 끝나면 팁을 주는 것이 필수다. 하루 팁은 한 명당 11.50 달러다. 숙박(宿泊) 수대로 계산하며, 객실 수가 아닌 투숙객 수(1 명당)로 하는 것이 일반 호텔과 다르다. 이 역시 마지막 날 카운터에서 일괄 지불하면 된다.
<글·사진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