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일이면 어떤 과일이든 좋아하지만 필자는 아직 두리안을 먹어보지 못했다. 비타민 C와 A가 풍부한 두리안을 가리켜 ‘천국의 맛 지옥의 냄새’ 라는 표현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먹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태국을 여행할 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때 도전하지 못한 것을 지금껏 후회한다.
그래서인가 술에 대해선 기회가 닿는 대로 마셔본다. 그러다 보니 酒種不辭형이 되었다. 마트나 또는 시음회 등에서 처음 만나는 술에 대해선 호기심이 발동하여 한 병 사들고 온다. 덩달아 안주거리도 장만한 날은 속된 말로 기분 짱이다. 인생 산다는 게 뭐 별다른 게 있겠는가. 다 이런 맛이겠지.
일전에는 마트에서 와인을 세일하기에 잘 알지도 못하는 와인을 사들고 왔다. 그런데 와인과 어울릴 수 있는 안주거리가 마땅치 않아 김치찌개를 안주로 와인을 마셨다.
아마 이런 광경을 와인애호가들이 엿본다면 흉을 볼지 모르지만 필자의 생각은 좀 다르다. 와인을 대량 생산하는 나라에서는 그 나라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음식과 와인을 마셔왔기 때문에 우리의 대표 음식이랄 수 있는 김치찌개를 안주 삼아 와인을 마실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특권(?)이라고 생각된다.
흔히 육류를 먹을 때는 레드와인을 생선을 먹을 때는 화이트와인이 잘 어울린다고 하지만 이는 갖가지 와인을 산더미처럼 쌓아 놓고 있을 때 말이지 고기를 먹으면서 화이트와인 밖에 없으면 어쩔 것인가.
최근 윤화영 씨(부산 레스토랑 ‘메르씨엘’ 오너셰프)가 조선일보에 기고 한 ‘와인의 파트너 찾기’ 글에서 “홍어 삼합에 막걸리, 파전에 동동주, 감자탕에 소주, 치킨에 생맥주, 어묵 탕에 사케(일본 청주)처럼 음식에는 저만의 짝이 있다. 이 궁합이 맞지 않으면 같은 돈을 내고도 만족스럽지 않은 식사를 해야 한다. 치킨이 동동주를 ‘내연녀’로 만나는 경우다. 이건 ‘불륜’이지 ‘로맨스’가 아니다.”라고 했다.
물론 격식이란 것이 있긴 하다. 그렇지만 한국 사람들 특히 주당들에게는 격식 따지기에 앞서 있는 대로 마시는 것이 격식이요 성찬인 것이다.
와인이 상륙하면서 영화나 TV화면에서 와인 마시는 장면이 연출될 때는 호텔 같은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와인 마시는 장면이 나오다보니 와인은 그렇게 멋있는 분위기에서 마셔야 되는 것으로 오해가 되었지
만 실상은 어디 그런가.
며칠 전 칠레 대사관 상무관실 주최로 와인 ‘테이스팅 세미나’가 열렸을 때 디에고 마르띠네스 상무관은 가끔 와인을 들고 이웃해 있는 코리안 바비큐(삼겹살집을 뜻함)집을 찾다보니 그 식당에 온 손님들은 이제 삼겹살에 와인 마시는 것이 자연스럽게 되었다고 했다.
물론 와인을 마케팅하기 위해서 그가 택한 방법이라 여겨지지만 윤화영 씨의 치킨 안주에 동동주를 마시는 것은 ‘불륜’이란 표현에는 동의하기가 힘들다.
치킨 집에 가보면 생맥주가 아닌 소주를 마시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막걸리를 사다가 먹는 사람도 있다.
대부분 서구 사람들은 비늘이 없는 생선은 기피한다. 우리가 최고의 영양식으로 꼽는 뱀장어라든가 문어나 낙지 같은 생선은 싫어한다. 특히 해삼이나 멍게 같은 것은 처다 보는 것도 싫어할 정도다.
이런 사람들에게 낙지회를 먹어보라면 기겁을 할 것이다. 지쳐 쓰러진 소에게 낙지를 먹이면 벌떡~일어난다고 할 만큼 낙지는 조혈강장, 원기회복에 좋고, 주당들에게는 술안주로 일등 대접을 받는 어류다. 잘나가는 TV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낙지 안주에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나온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그래서 이번 호 표지에 낙지회 한 접시를 올렸다.
이쯤 되면 와인을 모독하는 처사라고 항의가 올지 모르지만 새로운 시도는 필요한 것 아닌가. 새로운 도전이 발전을 가져온다지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