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근 칼럼
〈귀거래사〉에서
도연명이 노래하는 술과 도교적 무릉도원
박정근(문학박사, 소설가, 시인, 대진대 교수 역임)

귀거래사는 도연명의 대표작으로 6세기 초 남조 양(梁)의 소명태자가 편찬한 시문선집인 <문선>과 송나라 말 원나라 초에 편찬한 <고문진보)>에 수록되어있는 작품으로 한문학을 대표하는 명작으로 평가되고 있다.
도연명의 기념비적인 시〈귀거래사〉를 읽다보니 술의 황홀경을 노래하고 있다. 이 시는 시인이 41살에 관직을 떠나 귀향하며 느끼는 감정을 토로하고 있다. 제목이 시사하고 있듯이 고향집으로 돌아가는 심경을 일장에서 적은 시인은 고향집에 도착한 환희를 이장에서 노래한다. 삼장과 사장에서는 고향집에서의 삶의 철학과 자연 속에서 안식하려는 마음을 적고 있다.
나이가 사십을 넘어선 도연명은 도회와 관직생활에 염증을 느낀다. 우주와 자연의 관점에서 본다면 무의미한 권력과 물욕에 매달려 살아온 인생의 무의미를 인식한다. 무엇보다 권력에 추종해야 하는 관직생활은 육체에 치중한 나머지 정신을 부패하게 만들었다고 진단한다.
자연을 버리고 문명의 물질적 쾌락에 빠져서 살고 있는 현대인들이 집어보아야 할 대목이다. 시인은 지난 세월이 후회막급이지만 결코 실망하지 않는다. 마치 후회하는 그 순간이 적기라고 파악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실행에 옮기는 의지가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도연명에게는 돌아가야 할 자연, 고향집 그리고 꿈에도 그리던 가족들이 있었던 것이다.
도연명의 “귀거래사”의 장점은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어체로 시를 이어간다는 것이다. 슬픔과 기쁨을 자연스럽게 감탄사 등을 구사하면서 그의 감정을 꾸미기 보다는 직설적으로 표현하고자 한다. 그는 감정이 충일하여 한행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시귀는 반복법을 이용하여 여유 있게 감정을 풀어주는 시적전략을 구사한다.
“자, 돌아가리./돌아가리/고향의 전원이 황폐해지는데 어찌 돌아가지 않으리/전원이 황폐해 지는 데 어찌 아직 돌아가지 않으리/여지껏 고귀한 정신이 육신의 노예가 되어 버렸구나./정신이 육체의 노예가 되어버렸다 한들/어찌 슬퍼하여 서러워만 하리./어찌 혼자 걱정하고 슬퍼만 하리/이미 지난 일은 탓해야 소용이 없으리./지난 잘못을 탓해야 돌이킬 수 없으니/앞으로 바른 길을 추구하는 것이 옳으리./미래의 일은 아직 추구할 수 있으리/사실 인생길을 잘못 들어 헤매었지만, 아직 그리 멀지 가지는 않았어라/진정 길을 헤매었지만 아직 멀리 가진 않았어라/이제 깨달아 바른 길을 찾았고, 지난날 벼슬살이가 그릇됨을 깨달았도다./이제야 오늘이 맞고 어제가 틀렸음을 깨달았도다”
관직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가는 도연명의 마음은 환희에 가득하다. 빵과 육체적 쾌락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의 정신을 방치했던 억압적 삶에서 탈출하는 해방감이 여실히 재현된다. 그는 마치 어린 아이가 소풍을 가는 양 타고 가는 배의 모양을 천진난만하게 표현한다. 고향으로 가는 시인의 마음처럼 배도 경쾌하게 흔들흔들 나아간다고 노래한다.
시인의 마음을 아는 지 바람도 한들한들 불어온다. 희미한 여명 아래 멀리 고향집이 보인다. 드디어 고향집이 가까이 다가오자 한 순간이라도 빨리 가려고 뛰어가는 도연명! 머슴아이가 달려와 시인을 반기고 어린 자식들이 집 앞에서 손을 흔든다. 잡초가 무성한 길을 지나 고향집에 들어서니 정원에는 소나무와 국화가 꿋꿋하게 자라고 있다. 시인은 어린 자식의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선다. 꿈에 그리던 안식처에 돌아온 시인은 그의 기쁨을 주체할 수 없는 황홀경에 빠지고 만다.
그 순간 귀향을 한 그의 기분을 알아주는지 향긋한 냄새가 진동한다. 그것은 바로 그가 즐기는 술의 향기였다. 시인은 술이 담긴 술동이를 그의 귀향을 축하하기 위한 것으로 인식한다. 그는 가족이 술상을 차리기 까지 기다릴 수 없다.
그는 서슴없이 술동이를 당겨와 스스로 술잔에 따라 마시기 시작한다. 한 잔의 술을 마신 도연명은 뜰의 나무를 바라보며 행복한 웃음을 터뜨린다. 이 순간 여기가 무릉도원이 아닐까 생각했을 것이다.
무릉도원이란 대단한 별세계가 아니리라. 탐욕이 가득한 문명세계의 억압을 떠나 무욕의 자연 속에서 술에 취해 황홀경에 빠지는 곳이 아닐까. 그곳이 아무리 누추해도 시인에게 편안함을 주는 고향집이 더욱 적격이리라. 시인의 이러한 도교적 관점을 노래하는 “귀거래사” 이장의 시귀가 그의 무릉도원을 적확하게 재현한다고 본다.
어린아이 손을 잡고 방으로 들어서니
언제 빚었을까 항아리엔 향기로운 술이 가득하네,
방안에는 술이 가득 찬 술 항아리가 놓여 있네
술 단지 끌어와 스스로 술잔에 따라 마시고
술 단지 끌어와 스스로 술잔에 따라 마시고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며 웃음을 짓네.
뜰의 나뭇가지 바라보니 한없이 기쁘네
남쪽 창가에 기대니 의기가 한없이 양양해지나니,
남쪽 창가에 몸을 기대니 의기가 한없이 양양해지나니
겨우 무릎 하나 들어가는 작은 집도 얼마나 편안한가.
이 누옥에서 오히려 편안함을 느끼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