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옛날이여~

김원하의 취중진담

아! 옛날이여~

“이고 진 저 늙은이 짐 풀어 나를 주오/ 나는 젊었거늘 돌이라도 무거울까/ 늙기도 서럽거늘 짐조차 어이 지실까.”

조선 선조 때 송강(松江) 정철(鄭澈)이 강원도 관찰사로 있으면서 백성들을 위해 지었다는 훈민가(訓民歌) 중의 하나다. 옛날에도 늙는 것을 서럽다고 표현한 것 같다.

36살의 이준석이 국민의 힘 당 대표가 되면서 나이 먹은 사람들은 어떻게 처신을 해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하소연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것 같다.

이미 퇴직자들이 가정에서 대접 받지 못한 것은 옛날 얘기가 되었는데, 이제는 멀쩡한 직장에서조차 꼰대소리를 들어야 하니 직장에 나가는 걸음이 무겁다는 것이다.

세상 돌아가는 것이 하도 빨라서 어제가 옛날이 되고 있는 세상이다. 직장에서 나이 먹은 선배가 후배를 다그치는 것이 아니라 후배눈치를 보며 사는 세상이 되었다.

어디다 대놓고 푸념을 한단 말인가. 혼술이라도 마시며 서유석이 불렀다는 ‘너 늙어 봤냐, 나는 젊어 봤단다. 이제부터 이 순간부터 나는 새 출발이다. 삼십 년을 일하다가 직장에서 튕겨 나와 길거리로 내몰렸다. 사람들은 나를 보고 백수라 부르지….’

가수 서유석 씨가 2015년 작사 작곡하고 노래까지 부른 노래가 어쩜 요즘 중늙은이들 마음을 대변하고 있을까.

하기야 우리나라도 65세 이상 고령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20% 이상인 초고령사회 진입을 코앞에 두고(통계청 예상 2026년)있으니 서유석 씨 자신의 연령과도 무관치 않아 보인다. 자신이 처한 환경이 노랫말이 되지는 않았을까.

요즘 감히 젊은이들 앞에서 “라떼(나 때의 신조어)는 말야”하며 훈계조로 말을 했다간 천상 꼰대소리 듣기 안성맞춤이다.

십 수 년 전만 해도 선배한테서 무수히 듣던 “나 때는 말이야”를 한번 써 먹고 싶은데 그도 하기 힘들다니 억울하지 않는가. 세월이 너무 빠르다.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가수 이선희를 소환하는 수밖에 없다.

<아! 옛날이여~>

이젠 내 곁을 떠나간 아쉬운 그대이기에/ 마음속의 그대를 못 잊어 그려본다<…중략…>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올 수 없나, 그날/ 아니야, 이제는 잊어야지/ 아름다운 사연들/ 구름 속에 묻으리/ 모두 다 꿈이라고…. <1985년 송수욱 작사, 송주호 작곡, 이선희 노래>

이런 넋두리를 하는 것은 젊음이 너무 부럽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물불가리지 않고 덤벼드는 불나방 같은 용기가 부럽고, 풋풋한 싱그러움이 그리워서다.

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상상도 못했던 젊은이가 그것도 국회의원 배지를 한 번도 달아보지 못한 이준석이 야당대표에 당선되고 나서 벌어지는 일련의 일들이 충격적이면서 신선하다. 당장 여당과 청와대가 이준석 대표 시늉을 내고 있는 것으로 봐서 이준석의 당대표 선출은 성공작이랄 수 있지 않을까.

그렇지만 이 대표가 넘어야 할 시련은 산적해 있다. 당 내에 계파적 이해득실을 따지는 의원들이 산적해 있다. 국가와 국민 또는 당을 위하기보다는 자신의 영달(榮達)을 위해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을 어떻게 이끌고 갈 것인가. 뿐인가 틈새만 보이면 여당은 더욱 틈을 벌리려 들 것이고, 작은 실수라도 보이면 이를 침소봉대(針小棒大)하려 들 것이다.

국민의 힘 당내에서는 서서히 이준석의 메기효과(catfish effect)가 보이는 듯하다. 당 대표가 지명할 수 있는 당 대변인을 ‘토론 배틀’로 선출하자 그 열기가 남녀 트롯 선출처럼 관심을 집중시켰다.

당 원로들은 ‘이러다간 진짜로 시험 봐서 국회의원 후보 뽑는 것 아냐’ 하는 걱정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지금까지 뒷짐 지고 헛기침만 해 대던 사람들도 이러다간 다음 선거에서 물 먹는 것 아닌가 하는 노파심이 엿보인다. 야당에서 대선에 뛰어들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메기효과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그러나 사람이 살아가는 세계에서는 때론 지식보다 지혜가 필요할 때가 많다.

아무리 하찮아 보일지라도 저마다 장기나 장점을 지니고 있음을 아는 것도 중요하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노마지지(老馬之智)’란 말이 나오는 이유를 들어 볼 필요가 있다.

사회 각계각층에서 불고 있는 신선한 바람이 자칫 태풍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바란다. 젊은 세대들의 외침도 중요하지만 장년들의 절규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뒤돌아보면 지금의 노인들도 젊었을 때는 불나방처럼 물불가리지 않고 모든 일에 덤벼들었던 때가 있었다.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이준석 돌풍에 온통 세상인심이 노장년들을 식충 취급하며 몰아세운다.”며 “노인들도 당당하자. 주눅 들지 말고 오히려 변화와 쇄신을 혁명적으로 앞장 서 이끌어 가자.”고 했다.

지금의 노인들이 젊었을 때는 만날 청춘이지 늙는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젊은이’ 소리를 듣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검은 머리에 서리 내리고, 가파른 계단만 봐도 겁부터 먹게 된다. 인생은 누구나 늙는다는 것을 이제사 깨달은 것 같다.

이선희 씨 노래 한 곡조 뽑아 봐요. 아! 있잖아요. ‘아! 옛날이여~’

<본지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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