溫故知新: 박록담의 복원전통주 스토리텔링(7)
<산가요록>의 ‘過夏白酒’
<온주법>의 ‘과하점미주’
과하백주(過夏白酒)의 특징 및 술빚는 법
‘과하백주(過夏白酒)’는 “여름을 지내도록 변하지 않는 탁주”라는 뜻의 주품명이다. 1450년대 출간된 것으로 알려진 <山家要錄>에 처음 등장하는데, 다른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과하백주’는 특히 “여름을 지내도록 변하지 않는 데다 하얀 술 빛깔이 아름답다.”고 하는 것을 특징으로 꼽을 수 있는데,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사실에 기인한다.
‘과하백주’는 누룩을 곱게 찧어 찌꺼기(밀기울)를 없앤 흰누룩과 함께 밀가루를 함께 넣어 빚는 데다, 밑에 사용되는 찹쌀 양의 10배인 10말의 멥쌀고두밥을 덧술로 사용한다는 점에서 우선 술 빛깔이 밝을 수밖에 없다.
또한 덧술에 사용되는 흰누룩도 그 양을 알 수 없으나, 밑술에 사용되는 누룩의 비율보다 많지 않은 양을 사용하는 것이 2양주를 비롯한 중양주의 주방문이라는 사실을 고려하면, 덧술 쌀 10말에 대하여 흰누룩의 양은 2되 5홉~3되를 넘지 않을 것으로 여겨진다.
특히 ‘과하백주’에 사용되는 양조용수의 양도 찹쌀 1말을 가루로 빻았을 때, 일반적인 죽을 쑬 수 있는 3말이 고작인 까닭에 술 빛깔은 더욱 희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과하주가 아닌, 발효주인 탁주로서 ‘과하백주’가 여름을 지낼 수 있게 된 배경은 어디에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과하백주’의 주방문을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었다.
따라서 그 이유를 찾고자 직접 ‘과하백주’를 빚어볼 수밖에 없었는데, 그 비밀은 다름 아니었다. ‘과하백주’의 덧술 주방문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알 수 있듯, 고두밥을 두 차례 물을 뿌려가며 무르게 쪄 낸 후, 주자에 올려 3일간 차게 식히는데, 3일 후의 고두밥은 부패되어 쉰 냄새가 진동하게 된다. 고두밥을 인위적으로 부패시켜 술을 빚는다는 사실은 ‘감향주’ 등 몇몇 주품에서도 목격되는데, 여기에 그 비밀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과하백주’는 복숭아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에 빚기 시작하므로, 날씨는 점차 따뜻해지는 시기인데다 고두밥을 다른 술보다 물을 많이 뿌려 찌고, 자연 상태의 주자에 담아 3일을 지내게 되면 부패가 촉진되기 때문이다.
결론을 말하자면, ‘과하백주’처럼 부패된 고두밥을 사용하여 빚는 술은 자연적으로 당화가 빨라지게 되고, 당화 속도가 발효 속도보다 빨리 진행되면 발효는 억지되는 상태가 되기 마련인데, 양조용수의 양이 적고 서늘한 곳에서 발효시키게 되므로, 발효는 전체적으로 늦어지지만 정상적으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발효주인 ‘과하백주’가 여름철에도 산패하지 않고 정상적인 술이 될 수 있는 이유라고 할 수 있으며, 또 다른 배경에는 밑술과 덧술에 2차례 사용되는 밀가루의 역할이 크다는 사실 또한 간과할 수 없다.
그리고 덧술에 사용되는 누룩 양이 언급되어 있지 않은데, 그 양을 2되 5홉으로 산정하게 된 배경은, 밑술에 사용된 누룩의 양을 초과하지 않는 법칙에 따르는 한편으로, ‘과하백주’의 발효기간이 2개월 정도 된다고 하는 사실에서 최소량을 사용해야 한다는 사실에 있음을 밝혀둔다.
<산가요록>은 지금으로부터 600여 년 전의 양주기술을 기록한 문헌이다. 따라서 ‘과하백주’를 통하여 지금처럼 냉장고나 저온저장고와 같은 시설이 없었던 조선시대의 양주기술이 어느 수준에 이르렀는지를 살필 수 있는데, 현대의 양주기술과 비교하여 오히려 기술적 측면에서 앞서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현실은, ‘과하백주’와 같은 고급 주품은 찾아볼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수백 년을 이어 온 몇 안 되는 전통민속주(傳統民俗酒)는 국적도 없는 ‘싸구려’ 막걸리와 와인, 사케에 밀려 그 위상을 찾기 어렵게 되어가고 있어, 우리 전통주의 미래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야할 지 그저 막막하기만 하다.
過夏白酒 <山家要錄> 쌀 11말 빚이
술재료
밑술:찹쌀 1말, 흰누룩가루 2되 5홉, 밀가루 7홉, 끓는 물 (3말)
덧술:멥쌀 10말, 흰누룩 (2되 5홉), 밀가루 3홉
술 빚는 법
밑술:① 복숭아꽃이 필 때 찹쌀 1말을 씻어(백세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뒤,) 고운 가루로 빻는다.② 쌀가루에 끓는 물 (3말)을 붓고, 주걱으로 고루 개어 죽(범벅)을 쑨 뒤, 넓은 그릇 여러 개에 나눠 담고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③누룩을 (분쇄하여 가는체에 쳐서) 거친 찌꺼기(기울)를 제거한 흰누룩가루 2되 5홉, 밀가루 7홉을 넣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④ 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1일간 발효시킨다.
덧술:①밑술 빚은 다음 날 멥쌀 10말을 (백세하여) 물에 담가 불렸다가, 다시 씻어 건져서 (물기를 뺀 뒤,) 시루에 안쳐 고두밥을 짓는다.②고두밥을 찔 때 2차례 찬물을 뿌려 밥처럼 무르게 쪄졌으면 시루에서 퍼내고, 주자에 담고 3일 동안 차게 식기를 기다린다.③ 고두밥에 밑술과 흰누룩 (2되 5홉~3되)을 한데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④ 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서늘한 곳에서 30일 가량) 발효시킨다.⑤4월 15일에 새로 만든 바가지로 술독을 열어 술 위를 휘젓고, 다시 덮어 두었다가 8~9일 또는 10일 간격으로 거듭 술 위를 휘저어 놓는다.⑥ 복숭아꽃이 필 때 술을 빚기 시작하여 50~60일만 인 5월 15일에 채주하여 마신다.
▴방문에 덧술에 사용되는 흰누룩의 양을 알 수 없다. 또 말미에 “7~8월이 되어도 그 맛이 특히 좋다. 비록 8월(여름)이 지나더라도 맛이 변하지 않고, 흰색이 아주 보기 좋다. 또 술을 뒤섞을 때 침전물이 없는 것이 귀하다. 염색공을 삼간다. 만약 많이 술을 빚으려면 복숭아꽃이 피려 할 때와 반쯤 피었을 때, 또 무성하게 피었을 때로 3번에 나누어 술을 빚는다.”고 했는데, 본 방문을 보면 2양주라는 사실과 관련하여, 3양주법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덧술의 쌀 양을 등분하여 사용하고 덧술에 물도 추가되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 있으나, 확실하지는 않다.
<원문> 米十一斗. 桃花開時 粘米一斗 洗浸細末. 湯水和 作粥待冷. 去滓白匊末二升五合, 眞末七合 和入. 翌日. 白米十斗 洗浸 兩度熟蒸. 時以冷水洒之. 蒸如飯出 置槽中 待冷. 三日. 本酒盡出 白菊和合 入瓮. 四月望時 始以新瓢 入瓮. 麾於酒上 每八九日 或十日. 一麾下之. 五月望時 待熟始用. 七八月 其味尤好. 雖八月不改 白色甚佳. 又洗時 以無石爲貴 深忌染人. 若欲多造 則桃花欲開半開盛開時 分三運 釀之.
과하점미주의 특징 및 술빚는 법
<醞酒法>의 ‘과하점미주’라는 주품명은 다른 문헌에서는 목격되지 않는다. 따라서 ‘과하점미주’에 대한 기록은 <醞酒法>이란 문헌이 유일하다고 할 수 있으나, 주방문을 놓고 이를 분석하여 보면, ‘과하점미주’는 ‘과하주(過夏酒)’의 다른 이름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醞酒法>의 ‘과하점미주’와 동일하거나 유사한 주방문을 <林園十六志>를 비롯하여 <農政會要>, <朝鮮無雙新式料理製法> 등 여러 문헌의 ‘과하주’ 주방문에서 찾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과하점미주’의 주방문에서 보아 알 수 있듯, 찹쌀고두밥을 비롯한 누룩, 밀가루와 함께 소주를 한데 섞고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는 사실이다. <林園十六志>를 비롯한 다른 문헌의 ‘과하주’에서는 고두밥 등 주원료를 한데 섞어 빚은 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친 후, 소주를 술밑 위에 부어주되 젓지 않는 것과는 다름 방법이라고 할 수 있는데, ‘과하점미주’에서는 양조용수가 사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과하점미주’는 별도의 양조용수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사실도 일반 ‘과하주’와 차별화 된다고 할 수 있는데, 이와 매우 유사한 주품이 또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林園十六志>의 ‘왜미림주’가 그것이다. ‘왜미림주’는 “찹쌀 3되를 물에 하룻밤 담갔다가 고두밥을 쪄서 식힌 후 누룩 2되, 소주 1말을 섞어 빚는다. 7일마다 1번씩 저어 주고 3주째 되는 날 술을 거른다. 술맛이 달아 부녀자들도 좋아하고 술지게미도 달아서 천민이 과자로 대신 이용한다.”고 하였으므로, 밀가루만 사용되지 않았을 뿐, ‘과하점미주’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과하점미주’가 일반적인 ‘과하주’와 또 다른 점은 무엇일까? 다시 말하면 <林園十六志>를 비롯한 다른 문헌의 ‘과하주’에서도 주원료는 찹쌀이라는 사실이다. 그런데도 <醞酒法>에서는 “고두밥이 익었으면, 퍼서 뜨거운 기운이 나가게 식혀 누룩 물에 넣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은 후, 차게 식기를 기다려 술독에 담아 안치고, 준비한 중품 소주 1대야를 넣어 20일간 발효시킨다.”고 하는 ‘과하점미주’와 유사한 방문의 ‘과하주’를 수록하고 있으면서도 굳이 본 방문은 차별화하여 ‘과하점미주’로 명명하게 되었을까 하는 의문이 남는다.
따라서 ‘과하점미주’가 일반 ‘과하주’와 다른 점을 찾기에 이르렀는데, ‘과하점미주’는 다른 ‘과하주’에서는 볼 수 없는 방법으로, 주원료에 밀가루를 사용한다는 결론에서 그 차이점을 찾기에 이른다.
그러면, 찹쌀과 밀가루, 소주의 상관관계는 무엇일까? 찹쌀과 밀가루, 소주의 상관관계를 입증해야 ‘과하점미주’라는 주품명의 등장 배경, 나아가 ‘과하주’와 ‘과하점미주’의 차이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주지하다시피 전통 양주에서 밀가루는 ‘진말(眞末)’리라고도 하며, 고급 중양주에 주로 사용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밀가루를 사용하지 않을 경우, 산패하는 경향이 있으므로, ‘진면국’ 또는 ‘분국’, ‘백국’ 등을 사용하는 것으로 대체하게 되는데, 이는 유기산의 생성을 도와 잡균의 증식을 억제코자 하는데 있다.
그러나 유기산 생성이 과다하게 되면, 술의 산도가 높아져 신맛을 주게 되는데, ‘과하점미주’처럼 찹쌀로 술을 빚을 때, 양조용수를 사용하지 않거나 적은 양의 양조용수를 사용하는 주품의 경우, 지나친 감미로 인해 구미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고, 단맛이 강하게 나타나지 않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때 밀가루 등을 사용하여 유기산으로 인한 산미(酸味)를 부여하게 되면, 찹쌀술의 감미가 들쩍지근하게 느껴지지 않고 산뜻하면서도 시원한 단맛을 즐길 수 있게 된다.
필자가 찾은, 조선시대 고문헌 <온주법>에 수록된 ‘과하점미주’의 비법은 이러하다.
과하점미주 <蘊酒法>
술재료
찹쌀 1말, 누룩가루 3홉, 밀가루 3홉, 소주 16복자
술 빚는 법:① 찹쌀이나 멥쌀 1말로 술을 빚고, 익으면 증류하여 소주 16복자를 받아낸다.
②찹쌀 1말을 백세하여 물에 담가 하룻밤 불렸다가, 다시 씻어 헹궈서 건져낸다(물기를 뺀다).③ 불린 찹쌀을 시루에 안쳐 고두밥을 짓되, 고두밥이 익었으면 퍼내고 급하게 차게 식힌다.④고두밥에 누룩가루 3홉과 밀가루 3홉, 소주 16복자를 한데 합하고, 고루 버무려 술밑을 빚는다.⑤술밑을 술독에 담아 안치고, 예의 방법대로 하여( 20일간) 발효시킨다.⑥ 술독을 열어 보아 술이 많이 익어 술맛이 나면, 주대에 짜 채주한다.
▴방문 말미에 “맛이 감렬하니 더울 때 먹으면 맛이 다니라.”고 하여, ‘과하점미주’ 역시 ‘과하주(過夏酒)’의 한 가지로, 여름철에 빚어 마시는 술임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