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 게르에서 마유주를 빚다

몽골 게르에서 마유주를 빚다

 

글·사진 허시명(막걸리학교 교장)

 

 

몽골 초원에서 자라는 야생마, 타히
마유주를 맛보려고 몽골을 찾아갔다. 말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말 젖이 있고, 마유주가 있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말 젖에도 등급이 있어서, 초원의 풀이 좋은 지역의 말 젖이 좋다고 했다. 그리고 말 젖을 제대로 짜려면 6월에 들어서야 하고, 그 말 젖을 발효시킨 마유주 맛이 제대로 돌려면, 몽골 최대 행사인 나담 축제가 있는 7월 중순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마유주를 즐기는 시기도 10월이면 끝이 난다고 했다.

몽골 울란바타르 공항은 한국의 지방 도시의 공항 같았다. 야트막한 공항 건물이 한 동 있고, 앞으로 활주로, 뒤로는 도시로 빠져들어 가는 길이 있었다. 공항에 내려 시내로 들어가는데, 길이 막히면 10분 거리가 1시간도 걸린다고 안내인은 말했다. 울란바타르 도시가 팽창하면서, 출퇴근 시간이면 교통난이 심하다고 했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우리가 찾아갈 곳을 안내인과 함께 점검했다. 울란바타르와 인접한 지역인 돌강아이막 지역의 마유주 평판이 좋아, 그곳으로 가기로 했다.

 초원위의 게르, 1년에 5번 정도 이동한다다음날 돌강아이막을 향해 출발했다. 찻길은 초원 위에 긴 띠를 하나 얹어 놓은 것처럼 간결했다. 길 양옆으로 초원이요, 앞으로도 초원이었다. 멀리 야트막한 산줄기들이 보이긴 하지만, 평지나 다름없는 구릉들이 풀처럼 키를 낮추고 있었다. 우리 일행이 찾아간 곳은 번지수도 없는 유목민의 천막집 게르였다. 이정표가 없어 부근 도시에서 주인집의 딸을 만나서, 그 딸의 안내를 받아 게르를 찾아갔다. 마침 딸도 방학이 되어서, 기숙사에서 한 학기를 보내고서 오랜만에 게르를 찾아가는 길이기도 했다. 게르는 1년에 5번 정도 옮기는데, 때로 방학 때 집을 찾아가면 당혹스럽게도 집이 없기도 한다고 했다.

차는 찻길도 없는 초원 위를 마구잡이로 달렸다. 렌터카 운전사는 직업 군인 운전병으로 일한 전력 때문인지, 무척 전투적으로 차를 몰았다. 초원은 아무렇게 달려도 길이 되고, 돌부리를 만날 일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어보였다. 유목민의 딸은 멀리 초원 위에 흰 점처럼 떠있는 게르를 바라보더니, 집이 가까워져 왔음을 알렸다. 게르 앞에 식구들이 나와 있다는 말까지 했다. 내 눈에는 물방울만한 게르만 보일 뿐인데도, 딸은 게르 옆의 사람까지 보고 있었다. 한국인과 몽골인이 비슷하게 생겼다지만, 분명하게 다른 것 하나는 시력이다. 우리는 2.0이면 최고의 시력이지만, 몽골인들은 5.0이거나 더 좋은 이들은 6.0 시력이 나온다. 그 시력이면 얼마나 멀리 떨어진 사물을 분간하는지 종잡기 어려웠는데, 운전기사는 아스라이 먼 산 위의 매 한 마리가 떠있다는 말로 우리를 다시 놀라게 했다. 나로서는 망원경을 대지 않고서는 가늠해볼 수 없는 거리의 사물이었다.

게르안에서 아이락을 빚고 있다마유주의 제조하는 과정을 보기 위해서 게르에서 나흘을 지냈다. 아침에 일찍 소젖을 짜고, 말 젖을 짜는 것으로 유목민의 하루는 시작되었다. 남자는 양과 소와 말을 몰고 살피느라, 소젖을 짜는 데는 관여하지 않았다. 다만 말 젖을 짤 때는 남자의 손이 필요했다. 소는 유순하고, 젖도 크기 때문에 젖을 짜는 것이 편하다. 하지만 말은 훨씬 예민하고, 젖도 작아서인지 망아지를 옆에 붙여두고 마치 망아지가 그 젖을 먹는 것처럼 위장한 상태에서 젖을 짰다. 이때 남자의 역할은 망아지를 어미말 옆에 잘 붙잡고 있는 것이었다.

유목민 안주인은 말 젖이 소젖보다도 훨씬 좋다고 했다. 소젖은 한 마리에서 3리터를 채취한다면, 말 젖은 1리터도 못되게 채취하여 소젖보다 귀했다. 말은 젖을 생산하는 쪽으로 진화되지 않았다. 젖소는 있지만, 젖말이 없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소젖은 한번 끓이는 과정을 거친 뒤에 먹어야 되지만, 말 젖은 그대로 먹어도 탈이 안 난다고 했다. 땅에 누워 자는 양이나 소는 젖병이 나기 쉽지만, 말은 서서 자기 때문에 젖병이 없다고 했다.

말 젖으로 발효를 시킬 수 있는 것처럼, 소젖으로도 발효를 시킬 수 있다. 40도 안팎의 온도로 소젖을 미지근하게 한 뒤에 게르의 한 구석에 놓아두면, 요플레처럼 묵직해진다. 발효된 우유를 이곳에서는 타락이라고 불렀다. 타락은 우리에게는 궁궐에서 왕이 먹었던 우유죽으로 통한다. 우유를 발효시킨 타락이 고려시대 몽골 침략기에 들어와, 그 형태만 비슷한 되직한 죽으로 진화해 온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유목민들은 게르 안의 화로 위가 곧 부엌이었다. 출입문 한켠으로 부엌살림의 도구가 놓여있지만,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단출했다. 안주인의 부엌 일중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소젖과 말 젖을 짜 와서 이를 가공 처리하는 것이었다. 이 일은 매일 반복적으로 이뤄졌다. 물은 그릇을 씻는 정도의 적은 양만을 사용했다. 물이 귀해서 게르 안에서 세수를 하겠다는 것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나는 준비해간 물티슈로 얼굴을 닦는 것으로 세수를 대신해야 했다.

마유주를 만드는 것은 가족 모두의 일이었다. 마유주를 빚을 때에는, 이미 발효된 마유주에 말 젖을 덧보태는 형태로 빚었다. 술을 안전하게 빚을 때에, 밑술을 빚고, 거기에 덧술을 하는 형태처럼, 늘 밑술에 해당하는 마유주가 있었다. 안주인은 마유주를 얻으려면, 막대로 3천 번은 저어야 한다고 했다. 마유주통에 막대를 꽂아두고, 게르를 드나들 때마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저어줘야 한다. 그런데 식구 중에서 가장 부지런히 가장 자주 그 막대를 저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은 이제 갓 초등학교에 입학한 막내아들이었다. 마유주는 막내의 몫! 이라고 식구들이 말했다.

마유주는 뜻 그대로 해석하자면 말 젖으로 알코올 발효를 시킨 술이다. 실제 알코올 발효가 이뤄져서 2~3%의 알코올이 생성된다고 하는데, 실제 마유주를 마셔보면 알코올 기운을 느끼기 어렵다. 약간 새콤한 맛이 도는 담백한 요구르트라고 할까? 발효된 유제품인데, 신맛을 얻기 위해서 만드는 유목민의 음료로 여겨졌다. 몽골 말로는 마유주를 아이락이라고 부른다. 타락이 소젖으로 만든 유제품이듯이, 아이락은 말 젖으로 만든 유제품 정도로 여겨졌다. 아이락이 마유주로 번역되면서, 한자 문화권의 사람들이 이를 술로 받아들이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술의 기운을 감지하기 어려웠다. 유목민의 생활 습관에서도 그것이 술이 아니라, 건강한 음료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아이락은 어른아이 구분하지 않고 모두 마신다. 아이락을 마시면 감기에 걸리지 않는다고 해서 아이들에게도 마시게 한다. 알코올 기운보다는 식욕이 돋우는 신맛을 얻기 위해 아이락을 만든다는 생각이 내게는 들 뿐이었다.

그런데 마유주를 만들 때에 왜 3천 번 이상이나 저어줄까? 울란바타르의 역사박물관에 들렀을 때에 마유주를 해설하는 학예사는 1만5천 번을 저어야 좋은 마유주를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마유주를 빚는 전통적인 용기는 말가죽으로 만든 큰 자루였다. 가죽 자루에 말 젖을 넣고, 그 자루를 말 등에 걸고 초원을 달리면 저절로 완성되는 것이 마유주였다. 지금은 사람 손과 막대의 힘을 빌지만, 말 등에 싣고 달리면 천 걸음이면 천 번을 젓는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실제 되직하게 발효되고 있는 마유주를 저으면서 1분에 몇 번을 저을 수 있나 헤아려보았다. 1초에 한번 젓기가 어려웠다. 열심히 저어서 1분에 40~50번 정도 저을 수 있었는데, 1시간을 저으면 2천4백번이었고, 2시간을 꼬박 저어야 5천 번이었다. 안주인은 2시간을 저어주어야 한다고 했다. 젓는 이유에 대해서는 안주인과 긴 대화를 할 수 없었다. 그들은 어머니의 어머니 대부터 해오던 일이라, 그렇게 해야만 아이락이 되는 줄을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아이락을 젓는 소년
아이락을 많이 젓는 이유는 첫 번째 공기 접촉을 원활하게 하기 위함일 것이다. 술을 빚을 때 초기에는 많이 저어준다. 알코올 발효는 혐기성이라 공기접촉을 차단하지만, 초기에는 효모의 활성화를 위해서 공기접촉을 시킨다. 그런데 효모의 활성화치고는 아이락은 지나치게 많이 젓는다. 아이락은 그냥 방치하면 금방 위에 막이 형성되어 버린다. 막이 끼면 그 위에 다른 잡균이 낄 우려도 높아지기 때문에, 그 막을 제거해주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저어주는 것 같다. 또 다른 중요한 이유 하나는 말 젖에는 지방이 많이 들어있는데, 그 지방의 조직을 깨주기 위해서 많이 젓는 것으로 보인다. 당이 되고 알코올이 되는 탄수화물 성분은 유제품 속에는 적은 반면, 알코올 발효에 도움 되지 않는 지방과 단백질이 많기 때문에 많이 저어줌으로써 발효를 돕는 것으로 여겨진다.

 몽골의 길을 가다보면 만나는 이정표, 오보 어디서 날아왔는지 알 수 없는 초원의 풀처럼 살아가는 유목민의 삶 속에, 풀씨처럼 작게 깃들어있는 것이 아이락이다. 그 아이락은 유목민의 삶이 끝나는 그날까지 함께 할 것이다. 물보다 더 풍부한 유제품을 데우고, 끓이고, 졸이고, 말리고, 휘젓고, 발효시키는 과정 속에 아이락은 들어있다. 고소하고 감칠맛 나는 유제품과 고기들 속에서, 신맛과 단맛이 돌면서 약간의 알코올 기운 들어있는 아이락은 유목민들이 포기할 수 없는 음료다. 액체 상태의 유제품을 가장 오래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기도 해서, 아이락은 초원과 게르와 유목민들과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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