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가교로서의 술
박정근(윌더니스 문학 발행인, 소설가, 시인, 극작가)
인생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많은 선각자들은 인생에 대해 나름의 철학을 펼치며 민중들을 계도하려고 노력하였다. 마치 그들 마음대로 삶을 만들어갈 수 있는 연출자처럼 떠들어대기도 한다. 인간의 구원이 각양각색의 현란한 말장난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 양 추론하기에 바쁘다. 하지만 자연은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그저 단순한 순환을 보여줄 뿐이다. 계절에 따라서 추위와 더위가 교차하며 바뀐다는 것이다.
도연명은 인생과 세계에 대해서 결코 미화하지 않는다. 날씨가 바뀌는 것과 인생의 생로병사의 운명은 같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은 정확한 실존적 깨달음이 아닐 수 없다. 어떠한 철학가나 문인도 이 원칙에서 벗어날 재간은 없으리라. 그렇다면 어떻게 도연명은 이토록 무미건조한 실존주의적 삶을 극복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저녁 나절에 마시는 한 잔의 술이라고 “음주”라는 시에서 토로하고 있다.
寒暑有代謝, 추위와 더위는 오고가고
人道每如玆. 인생의 길도 항상 이와 같으니
達人解其會, 달관한 자는 그 이치를 아나니
逝將不復疑. 다시는 의심하지 않으리
忽與一樽酒, 다만 한 단지의 술을 빚어
日夕歡相持. 저녁마다 즐겁게 마실 뿐이노라
이 시에서 도연명은 단순하지만 변할 수 없는 인생의 실존주의적 깨달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는 술을 마시면서도 고통을 잊기 위한 진통제로 술을 인식한다. 하지만 엄격한 현실과 운명에 대해서 슬퍼하거나 염세적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 현실을 인정하고 낙관적으로 살아가려는 태도가 돋보인다.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은 바로 저녁상에서 마시는 술인 것이다.
도연명이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었던 것은 술이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술을 이용해서 이웃과 따뜻한 교제를 즐겼다. 술은 그야말로 이웃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주는 가교였던 것이다. 이웃들이 만나면 서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며 술을 마셨다고 밝혔다. 술에 취한 이웃들은 그 즐거움을 간직한 채 집으로 돌아갔던 것이다. 시인은 이웃들이 마음을 열어놓고 서로 통합하고 조화를 이루려는 것으로 (유시상의 증시에 감사하며<酬丁柴桑>)에서 노래하고 있다.
放歡一遇, 만나면 마음껏 즐거워하고
旣醉還休. 취하면 돌아가 쉬었습니다.
實欣心期, 마음 맞는 게 진실로 기뻐
方從我遊. 나와 교유하시는 것이지요.
술은 각박한 현실과 운명을 긍정적으로 바꿔놓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한다. 술을 좋아하는 친구는 마음이 선하여 덕행을 베품에 있어서 힘을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시인이 좋은 술을 얻으면 친구를 초대하여 기꺼이 함께 술을 즐기고자 한다. 그들은 술을 마시고 함께 취하고 즐거운 분위기에서 세상 이야기를 하고 시도 짓는다.
각박한 세상에서 마음을 터놓고 아름다운 대화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어찌 귀한 존재가 아니겠는가. 게다가 그를 보면 저절로 시가 우러나오니 새로운 시를 지을 수 있는 것이다. 도연명은 이런 좋은 친구를 하루라도 만나지 않으면 견딜 수 없다고 느꼈다. 그는 (방참군의 증시에 답하여<答龐參軍>)에서 술과 친구의 관계에 대해서 이렇게 노래했다.
伊余懷人, 내가 그리워하던 사람이 있으니
欣德孜孜. 그는 덕행을 좋아하고 부지런히 실천하네.
我有旨酒, 나에게 좋은 술이 있을 때면
與汝樂之. 그대와 함께 기꺼이 술을 즐기네.
乃陳好言, 좋은 이야기를 나누고
乃著新詩. 새로운 시를 지을 수 있으니
一日不見, 하루라도 보지 못하면
如何不思. 어찌 그립지 않겠는가
이 시에서 도연명이 노래하고 있는 것은 술의 긍정적 역할이다. 술은 마음 맞는 사람과 상호간의 마음을 연결시켜주는 가교라고 본다. 술이 마시는 것을 죄악이라고 주장하는 극단적인 종교인들과 매우 대조적인 태도를 발견할 수 있다, 좋은 친구와 마시는 적당한 술은 우리들의 엔돌핀을 샘솟게 하고 우울한 현실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익한 식품이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하지만 무엇이든지 지나치면 좋지 않다. 아무리 좋은 술이라도 적절하게 마실 줄 아는 중용의 덕목이야말로 술꾼들이 유념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