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어도 공짜술 좋아하지 마라

김원하의 취중진담

맛있어도 공짜술 좋아하지 마라

어떻게 술을 마실 것인가. 주머니 사정이 좋지 않던 젊은 날, 특히 학생 신분이던 시절에는 부모님에게 책 산다고 돈 받아서 술 마시고, 그도 저도 어려울 때는 책이나 시계를 술집에 맡기고 술 마시던 때도 있었다. 지금 젊은이들은 돈 없으면 카드 긋고 마시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라떼는 그랬다.

필자 세대 때는 누구랄 것 없이 가난했다. 그러나 술은 마시고 싶었다. 그래서 작당해서 낸 아이디어가 매월 당수(黨首, 酒黨이니까)를 뽑아서 당수가 되면 주석에 참석하더라도 뿜빠이(더치페이)는 면해주기로 하자는 것. 모두가 OK.

당수를 정하는 방법은 주당이니까 술 마시는 방법으로 정했는데, 2홉들이 소주병(당시 30도짜리, 360ml)을 병나발 불어서 술이 가장 적게 남은 사람을 당수로 정하기로 했다. 병나발을 불어본 사람들은 알겠지만 대접 같은데 부어서 마시기는 쉽지만 병 째 마시기는 힘들다.

아쉽게도 필자는 한 번도 당수가 되지 못했다. 당시 9명의 친구 가운데 당수가 되었던 친구를 비롯, 서너 명은 벌써 저세상사람이 되었으니 참으로 세상은 무상하다. 꼭 술 때문만은 아닌데….

그 때의 친구들이 지금 만나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술을 사양한다. 한 잔이라도 더 마시려고 기를 쓰던 것이 엊그제 같건만 왜 이리 세월이 빠른가.

풋술을 마시던 젊은 시절에 누가 술 사준다고 하면 많이 마시는 것이 잘 마시는 것으로 착각(?)하고 오는 술잔 거부 못하고 마셨다. 그러다보면 꽐라되기 십상. 숙취에 머리 싸매고 다시는 술 안 먹는다고 다짐을 한다. 그러면서 한 나절을 보내다 보면 석양이 떨어질 때쯤 누가 술 먹자는 사람 없나 두리번거린다. 그게 주당들의 하루였다.

우리나라 지명에 술 주(酒)자가 들어간 곳이 더러 있는데 대개는 설화이겠지만 그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이 강원도 영월에 있는 주천강(酒泉江)이다.

술 나오는 샘이 있어 주천강이라 불렸다니 주당치고 한 번쯤은 가봐야 되는 것 아닌가. 막상 가보니 옛날 어느 욕심쟁이가 한꺼번에 많은 술을 얻기 위해 파 보다가 망가졌다는 이야기만 전해 내려온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지난여름 코로나가 대 유행을 해도 백신 맞겠다는 사람들이 많지 않자 미국의 바이든 대통령은 백악관 연설에서 “백신 맞고 맥주 한 잔”하자며 백신 맞기를 독려했다. 어떻게 하든가에 접종률을 70%까지 끌어 올려야 하는 입장에선 궁여지책으로 공짜 술을 내걸었다.

버드와이저와 스텔라 아르투와 등을 생산하는 안호이저부시는 미국이 ‘접종률 70%’ 목표를 달성하면 모든 국민에게 맥주를 무료로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부러운 것. 우리나라엔 공짜 술 안줘도 서로 백신 맞겠다고 팔소매를 걷어 올리는 판인데 괜히 손해 보는 느낌이 든다.

생전 처음 미국으로 여행을 갔을 때다. 단거리 비행과는 달리 기내식 후 맥주, 와인, 양주까지 서비스로 주는데 마다할 처지가 못 됐다. 때 마침 동행한 일행이 보통 술꾼이 아니다 보니 스튜어디스의 눈치도 보지 않고 추가 추가를 연발했다가 담요도 덥지 않은 상태에서 잠이 들어 버렸다. 이 때문에 급체가 와서 죽을 고생을 했다. 공짜 술의 대가를 톡톡히 치른 셈이다.

최근 KBO는 야구계 위기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레전드 선수들과 야구계 인사가 선수들에게 전하는 충고의 메시지가 담긴 캠페인 영상을 제작했다고 밝혔다.

KBO가 제작한 첫 번째 영상에 등장한 홍성흔은 후배들에게 뼈아픈 한마디를 남겼다. “공짜 술 좋아하다가 패가망신합니다.” 이 말에 굳이 토를 달 필요는 없을 듯싶다.

자기돈 내고 마시든 공짜 술을 마시든 술은 자고로 적당히 마셔야 약주(藥酒)가 되는 것이지 지나치게 마시면 독주(毒酒)가 된다.

다산 정약용이 유배지에서 두 아들에게 보낸 편지와 교훈 중에서 이런 대목이 나온다.

“참으로 술맛이란 입술을 적시는 데 있는 것이다. 소가 물을 마시듯 마시는 사람들은 입술이나 혀는 적시지도 않고 곧바로 목구멍으로 넘어가니 무슨 맛이 있겠느냐? 술의 정취는 살짝 취하는데 있는 것이다. 얼굴빛이 붉은 귀신같고 구토를 해대고 잠에 곯아떨어지는 자들이야 무슨 정취가 있겠느냐? 요컨대 술 마시기를 좋아하는 자들은 대부분 폭사하게 된다. 술독이 오장육부에 스며들어 하루아침에 썩기 시작하면 온 몸이 망가지고 만다. 이것이 바로 크게 두려워할 일이다. 나라를 망하게 하고 가정을 파탄 내는 잘못된 행동은 모두 술로 말미암아 비롯된다.”

주당들이 새겨들어야 할 교훈이 아니겠는가. 과거 선거철 시골 장날엔 공짜 막걸리도 많다만…. 하긴 막걸리 얻어먹고 표 찍어 줄일 1없는데 막걸리 타령은 그만하라고요. 예예 그만하죠.

<삶과술 발행인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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