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의 계절에 절실한 것

정치의 계절에 절실한 것

임재철 칼럼니스트

단풍 구경도 못 했는데, 어느새 연말연시로 가는 시절의 찬바람 씽씽 부는 겨울이다. 어른들에겐 계절의 순환이야 새삼스러운 것도 없는 시간 지나가는 현상일 뿐이지만, 내년 3월이면 대선이고 그야말로 시끄러운 정치의 계절이다.

혹자는 또 ‘정치’ 이야기냐고 투덜거릴 사람도 있겠지만, 인간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정치 아니고 우리를 잘 살게 해 줄 어떤 일이 있을까. 세상만사가 정치와 얽혀 있어, 정치가 잘되고, 선정이 베풀어질 때에만 사람은 편하게 살아갈 수 있고, 역사는 발전해왔던 것이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었다. 그래서 동양의 고전인 유교 경전은 논의의 중심이 정치에 있었고, 정치와 경제를 통해서 요순시대를 복원하자는 것이 학문과 사상의 핵심적 가치였음을 부인할 수 없다.

그래서 이런 때야 말로 제발 우리 모두가 정치적 담론에 마음을 집중시켜야 할 것 같다. 어떤 정당을 지지할 것이며, 어떤 인물을 이 나라지도자로 선택할 것인가를 만나는 사람마다 토론하고 논쟁을 벌여야 하는 이유다. 지금처럼 망가진 정치를 그냥 두고 볼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때에 다시 코로나 확진자의 엄청난 증가추세로 인해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을 추진하던 정부가 전국 사적모임 인원을 다시 제한하기에 이르렀고, 국내 방역상황악화에 더해 ‘오미크론’ 변이의 지역사회 확산을 우려해 또 록다운(Lockdown)에 가깝게 유턴 조치를 시행하게 돼 담론이 쉽지 않아 보인다.

신종감염증 대유행과 함께하는 일상의 회복이 가능하기는 한 것인지 불안하고 암담한 심정이다. 이렇게 세상이 혼란스럽고 빈부의 격차는 갈수록 늘어나 양극화는 가속화되고, 나라가 편안하고 국민들이 안심하고 살아갈 세상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때문에 모든 것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사회 구성원 전체가 지혜를 모으고 역할을 나누어 산적한 문제들을 해결해 나가기 위해서는, 지도자나 관계 당국이 리더십을 발휘하여 정책을 입안하고 효과적으로 집행하는 ‘정치’의 진정한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다. 그런데 우리 눈에 들어오는 대선 정치판의 모습은 의제도 없고, 무엇이 진실인지 알 수 없는, 결론 없는 의혹과 비방들뿐이다.

지금이 실로 어떠한 때인가? 아슬아슬하고 위태로운 형세가 이미 백척간두(百尺竿頭)와 같은 지경에 이르렀다. 바둑돌을 쌓아 올리고 계란을 포개 놓았다는 말로도 이 위태로움을 비유하기에 부족하다. 따라서 참신하고 좋은 대선 후보가 이 나라 정치를 담당하여 선정을 베풀어 줄 것을 기대하면서 좋은 선거를 치러야 하겠다. 정치가 국민의 눈물을 닦아주고, 눈물을 흘리지 않게 하는 것이 중요하기에 그렇다.

우리가 간단히 주변을 봐도 장사는 안 되고, 취직도 안 되고, 미래는 불안하고, 그런데 정치는 겉돌고, 약자는 기댈 곳이 없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는 가운데 경제적 손실은 눈덩이처럼 커지고 있다. 서울연구원의 정책리포트에 따르면 2020년 서울 음식점업의 매출은 전년 대비 13.6% 감소했으며, 사회적 거리두기 시행 기간 27.6%까지 감소했다고 한다. 올해 들어 사회적 거리두기가 더 강화되었고 코로나 2년차에 접어들면서 손실이 누적 가중되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2021년의 지표는 더 심각한 수위에 이를 것이다.

그러니까 위기 시에는 정치가 문제라는 얘기다. 주권자인 국민이 정당과 후보에게 표를 주고 국민을 대표하게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글 같은 세상에 모든 걸 맡겨놓지 말고 강자와 약자 간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달라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정치의 존재 이유가 아니겠는가.

적폐를 청산해서 나라다운 나라를 만들고, 공평하고 청렴한 세상과 나라로 바꿔 달라던 촛불혁명의 외침이 아직 살아있는데 왜 이렇게 부패가 사라지지 않을까. 이런 글을 쓰는 필자의 마음도 왜 그렇게 정치를 논하는지도 한편으로는 알 길이 없지만, 참으로 대단하게 발전한 대한민국, 부정비리불공정만 제대로 바로잡으면 살만한 나라가 될 것임에 분명하다는 생각이다.

말하자면 힘없고 약한 백성들을 온순한 양(羊)에 비교하고, 무도한 강자들을 승냥이나 호랑이에 비교하여 승냥이나 호랑이의 피해를 제거하여 양들이 편안하게 살게 해주는 일이 지도자나 관료들의 기본적인 임무다. 이것이 사회적·경제적 약자들에 대한 배려인지는 모르겠으나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면서 어떤 후보가 우리의 귀가 번쩍 뜨이게 하는 말을 했다. “특권과 반칙에 기반을 둔 강자의 욕망을 제지시키고 약자의 삶을 보듬는 ‘억강부약’의 정치로 모두 함께 잘 사는 대동 세상을 향해 가야 한다.”라는 내용이었다.

오늘날, 우리는 당파와 진영논리에 갇혀, 정의, 공정, 진리 모두가 깡그리 매몰되고 있는 세상에 살면서, 역사적 경험으로도 그런 경우가 거의 없는 형편이었으니, 안타까운 생각을 버릴 수가 없다. 그래서 다산은 그의 뛰어난 논문 ‘원정(原政)’이라는 글에서, “정치란 바르게 해주는 일이요, 우리 백성들이 고르게 먹고 살게 해주는 일이다(政也者 正也 均吾民也)”라고 말하여 정치란 어떻게 하는 것인가를 밝혔다. 바르게(正) 해주고 고르게(均) 해주는 것이 정치라는 간단명료한 해답을 내놓은 것이다.

그런 차원에서 정말 배를 곯아본 사람이 배고픈 사람의 마음을 알고, 걸인이나 배고픈 사람은 목마른 말이 냇가로 기운차게 달려가 허겁지겁 먹으려 드는 기상이 있는 것처럼 처절하게 어렵던 시절을 보내며 거칠게 살아본 사람이라야 위기와 절망의 시대에 그런 위기와 절망을 극복해낼 지도자로서의 자격을 지니게 될 것이다. 또 배신한 사람은 반드시 또 배신하게 돼 있다.

그렇다면, 오늘의 현실에서 다음 대통령 선거에서 어떤 사람이 우리의 지도자로서의 자격이 있는가를 판별하기 위해서 걸인이나 배고픈 시련을 겪은 사람, 목마른 말처럼 냇가를 찾아가본 사람, 정상적인 교육을 받지 않고도 거칠고 억센 성품을 잘 조절해내는 사람을 고르면 되리라.

그러므로 나라다운 나라가 되기를 그렇게도 갈망하는 국민들의 여망에 부응하기 위해서, 국민에게 어떻게 하면 필요한 것을 하게 할까 고민하는데 시간과 노력을 할애하는 지도자의 모습을 보고 싶다.

이제 우리 국민들이 해야 할 일이 따로 있다. 그들이 하는 말에만 귀를 기울일 것이 아니라 했던 말을 실천할 방법이 치밀하게 거론된 경우라야 실천이 가능함을 예견할 수 있기 때문에, 구호에만 그치는 공약은 절대로 믿지 말아야 한다. 최고 통치자이기에 더욱 그렇다. 즉, 언행이 일치해서, 공약으로 내건 말들이 실제 행동으로 실천될 때에만 말의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을 고르는 일에 게으르지 말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까지 국민들이 멍청하여 쑥대밭이 된 한국정치를 잘 모르기보다는 한국정치가 멍청하게 돌아가기에 가까이하질 않았을 뿐이라는 것을 확실히 보여줘야 한다.

삶은 정치이고, 나날에서 벌어지는 만남들이나 수많은 사람 사이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다 정치다. 따라서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되고, 나라의 온 역량이 투여될 수 있도록 정치가 작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이번에 치르는 대선도 그렇거니와 이 땅에 일어나고 있는 일들에 대해 두 눈 크게 뜨고 깨어 있어야 한다. 무심하기만 해선 진정 정치가 제자리를 찾고,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나라가 되기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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