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위기와 감염병 시대정신에 맞는 술 산업정책(Ⅱ)

주류산업과 정책 이야기(30)

기후위기와 감염병 시대정신에 맞는 술 산업정책(Ⅱ)

조성기(趙聖基,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원주한살림, 이사장

살림농산, 대표이사

아우르연구소, 대표연구원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한국할랄산업연구원, 공동원장

정부는 근자에 들어 ‘규제 샌드박스’를 설치해서 술 자동판매기 금지를 해체하고, 서울의 도매상이 부산이든 제주도든 어디든 가서 술을 팔 수 있게 했다. 지역별 종합주류도매업의 면허장수 규제는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되었다.

극한 경쟁상태로 들어간 중소 도매상들의 경영난은 점차 더 확장되었다. 전통적 경로정책도 변하고 있다. 주류 이동경로의 삼단계 원칙도 사라질 조짐이다. 생산, 도매, 소매의 주류이동 경로규제가 해체되는 것을 의미한다. 소매에 이어 도매에 대한 정부의 통제가 사라지고 판매자유화가 더 촉진 될 전망이다.

술 산업정책의 기준이 ‘기술’과 ‘생산성’이었던 것이다. 술이 ‘일반재화’와 다름이 없어지고 있는 것이다. 건강이 기준이 아니라면 이제는 이산화탄소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일자리’와 ‘기술혁신’을 기준으로 규제정책을 결정하는 것이 옳을까.

최근 맥주와 탁주의 과세 기준을 알코올 량으로 하는 종량세로 바꾸었다. 그로인해 주세규제의 원칙이 애매해진 셈이다. 종량세는 전통적으로 높은 도수 술에 더 많은 주세를 매기는 건강세였다. 이제 그 빌미를 버리고 그 빌미의 원천을 ‘건강’에서 ‘산업력 제고’로 바꾼 것이다. 이제 그 ‘셈’의 기준을 또 바꾸어야 하는 상황이 도래한 것은 아니겠는가.

정책당국자들이 술을 보는 관점이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선지 전가의 보도였던 주류면허 마저도 사라질 조짐이 보인다. 집에서 제조하는 제조기 혁신이 있었다. 드론이 술을 배달하면 유통도 사라질 수 있다. 바를 설치해서 술집을 집에 차린다. 도매에서 소매로 가는 경로 말고도 집이나 소매에서 도매로 술이 이동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기술혁신이 그것들을 가능하게 하고 있다. 소매면허는 애초에 없었다. 의제면허이자 신고제다. 통신판매 자유나 전국을 휘어잡은 대형 물류업체의 주류유통도 성큼 다가와 있다. 온라인 플랫폼이 초대형화 되어가면서 모든 것이 바뀌고 있다. 음주문화의 변화도 물론이다.

이제 과연 새 시대에 마지막 술 정책의 도구로 남아 작동할 주세정책의 기준은 무엇이 선택되어야 할까?

우리나라의 술 정책은 어디로 방향을 잡아야 할까? 우리의 상황에 맞춰 소위 시대정신에 정부의 개입정책이 일치하고 있는 것일까? 과거사를 더 살펴보자. 언젠가 “옛날에 ‘규제완화론’과 ‘규제 강화론’이 있었다.”라고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올 것만 같다.

규제완화론에 반하는 규제 강화론자들은 통상 보건, 경찰 당국이나 관련학계였다. 환경론자들로 바뀌게 될 전망이 언제쯤 나올까. 그 또한 과거사가 될 날도 있을 것이다.

보건관련자들이 청소년, 임신여성 등을 이유로 건강교과서를 경전처럼 들고 규제를 외쳤다. 동조하는 반응이 크지 않아도 했었다. 파출소의 주취난동을 경험하거나 음주운전단속 책임을 가진 경찰, 청소년들의 음주 폐해를 경험한 교사들이 동조했다. 시민단체는 언제부터인지 술 문제를 적극적으로 문제시하는 활동에서 보기 힘들어졌다. 건강문제나 사회적 이유로 규제를 강화하자고 해도 큰 지지는 없었다. 과연 환경문제도 그렇게 될 것인가?

앞서 살펴본 대로 ‘생산성론’이외에 규제완화론의 밑바닥에는 ‘문화론’이 동침하고 있었다. 정책당국자들은 ‘일자리와 소비자의 효용확대, 그리고 기술과 효율의 신’에 대해 무한 신뢰를 보내고 있었다. 아직도 그렇다. 감염병의 창궐로 세월이 하수상하고, 디지털 기술의 개발속도가 무한대로 솟구치고 있으니 눈앞의 ‘안정’이 제일이다. 모든 것이 불안정하니 당연한 일일 수 있다. 사실 술로 인한 사고나 병은 한해에 수십조원의 피해액이 있어도 나와 가족의 문제가 아니거나 또 해결하면 그만인 질환이다. 문제가 사라지고 나면 죽은 자는 말이 없다.

정책의 대상인 술 문제의 근본적 정체에 대해 끝없이 탐구하고 동의를 얻어내고 정책적 대안을 요구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책당국자들의 수장이 정치가들이기 때문에 더 그렇다.

몇몇 선각자들은 문제의 근간을 파고드는 실속 있는 정책을 원한다.

하지만 성사시키기는 쉽지 않다. “건강을 해치고 청소년에 해로운 ‘술’에 대해 성장정책을 백주에 펴는 것은 선진국답지 못해요!”하고 외쳐도 “맞아. 그래. 강한 규제를 해야 해!”하는 동조세력을 얻기는 쉽지 않았다.

“수제맥주를 더 생산하면 청년일자리가 많이 늘어난다.”고 주장하면 맥주 시설규제를 풀고, 과세 정책을 바꾸자고 하게 되었다. 오히려 그 일이 쉬웠다. 현 정권의 초기의 일이었다. 과거 정부에서도 그랬다. ‘막걸리 진흥정책’에 모두가 박수를 보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전통막걸리도 많이 개발되었지만 수입 원료가 봇물처럼 늘었다. 국산 원료로 만든 막걸리가 늘어나는 것 보다는 대부분 수입원료 막걸리로 시장이 채워졌다. 막걸리 수요도 일시적으로 폭증했고 곧 추락해서 일정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술의 품질을 높이고 술을 유통 상 불편을 없애자고 하는 정책적 주장이 틀리다고 할 수는 없다. 그런데 그 ‘정책대상이 술’이라는 데에 ‘고민한 흔적이 없다’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주류유통 등 각종 규제철폐가 소비자의 효용제고를 이유로 주장되는 것은 의아한 일이다. 정책의 추진기준은 일자리, 소비자 효용, 기술혁신 등에 더 두어지는 것이 술에 대해서라면 “과연 그것이 선진국에서 해야 할 일까?”하고 의문을 제기하고 토의해야 했다.

우리의 음주문화와 술의 역사도 정책을 해석하는 일에 중요한 참고사항이다. 상고사 때부터 우리 민족의 사회적 유전자 속에 술에 대한 친화성이 진하게 스며있다. 술 권하고 마시고 싸우고 다음날 화해하는 상황이 공존하는 문화 속에 오랫동안 젖어 있었던 것이다. 문화유전자 문제는 사실 어쩌기 쉽지 않은 문제다. 역사가 오래된 국가들은 대체로 술을 마시며 소통하는 자리에 친화적인 음주문화를 가지고 있다. 폴란드, 이탈리아, 러시아. 프랑스 등은 유명한 음주 친화적 문화를 보유하고 있다. 우리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

그 분위기 속에서 ‘규제 완화’의 대세에 정국당국자들도 합류했다고 보면 틀리지 않을 것이다. 보건당국의 고위당국자가 학술논문이나 세계보건기구의 연차보고서를 보고 알코올 통제와 강력한 규제를 주장하지만 막상 본인은 집에 돌아가 독한 술을 한잔 마시고 TV를 시청할 수 있다. 친구들과 만나면 폭탄주를 만들어 마시며 즐거워하는 관료들과 검찰, 군인, 스트레스에 싸인 직장인들이 비일비재하다. 머리 따로 몸 따로 작동하는 것이다. 문화유전자는 그래서 무섭다.

술 정책으로 규제완화론이 득세하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규제강화론은 ‘절주(금주)주의자’들과 ‘폐해감축론자’들 대결에서 절주주의자들이 승리하면서 채택된다. 절주주의자들은 의료보건전공 정책가들이나 종교지도자들이 많다. 그들은 술이 암을 발생시키는 ‘1급 발암물질’임을 강조한다. 한해에 6조원-15조원으로 추계되는 사회적 폐해를 강조한다. 태아알코올증후군 유병률이 높다 하고, 청소년의 뇌 성장을 치명적이라는 주장을 하고 있다. 술을 마시면 신이 분노한다고 한다. 그 증거들을 다수 제시하고 주장한다.

규제강화론이 일반적으로 정책화 되는 곳은 미국 등 극히 일부의 선진국가나 사우디아라비아, 이란 등의 이슬람국가들이다. 종교적 신념이나 정치적 이유가 분명하지 않으면 오랜 역사를 가진 술을 원칙적으로 금지하는 정책을 펴기 쉽지 않다. 공원음주에 대해 벌금을 대폭 부과하고, 주류유통 상 금지 사항도 많다. 제조, 도매면허와 설비 공간 규제 등을 강하게 제시한다. 소매에는 주류전문점을 두어 독한 술은 일반 슈퍼마켓에서 팔지 못하게 제도화 한다. 청소년 음주금지는 말할 것도 없다.

미국은 음주금지연령도 21세를 기준으로 통제한다. 물론 이슬람은 시공간에 대한 술제조 판매 모두 전면 금지다. 미국의 늦은 밤 밤거리를 걸을 때 술집이 열린 곳을 찾기 어렵다. 우리나라나 일본과는 상황이 다르다. 미국에서 일정 지역의 도매업자가 면허권이 없는 타 지역으로 술을 이동시킬 수 없다. 그 경우는 일본도 같다. 그들을 빗대어 보면 우리나라가 도매면허권 따로 이동판매권 따로 운영하는 것이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편리성 기준이 규제의 기준을 압도한 경우인데 정책당국자의 실수였거나 장책기준의 부재로 인한 무리수로 해석할 수밖에 없다.

그런 저런 이유로 우리나라는 사실상 ‘폐해 감축론(Harm Reduction)’의 입장에 서 있다. 그렇게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규제의 경우도 의미가 적은 ‘경고표시’문구를 술병에 하고 있고 다른 부문의 규제는 사실상 ‘솜방망이’다. 이 정도면 규제가 거의 없다고 봐야 할지도 모른다. 옥외광고 금지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 옥외 술 광고가 없는 술집을 보기란 어려운 일일 것이다. 감염병 시대를 제외하고는 늦은 밤 음주행렬이 일반적이다. 사회적 거리두기를 일부 풀고 ‘위드 코로나’를 내걸자마자 술집에서 수십 명이 ‘건배’를 외친다.

주인은 “이러 시지들 마세요. 벌금 300만원 제가 물게 됩니다.”하고 외친다. 그 뿐이다. “당신들의 건강을 위해 이러지 마세요.”하고 건배를 말리는 게 아니다.

다만 길거리 음주운전 통제가 어느 정도 강할 뿐 경찰서 현장에서는 만취 자들에게 경찰관이 곤혹을 치른다. 알코올에 대한 통제는 사실상 형식적이라고 보는 게 옳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와의 정책적 세미나 행사나 알코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건당국의 ‘파랑새플랜(2006년 시작)’은 멀리 날아가 버린 파랑새 일뿐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되지 않게 되기를 바라지만 말이다.

15년의 세월동안 그들의 정책이 크지 진전이 없는 이유는 국가적 술정책기준을 분명히 하지 않고 시시때때로 각개전투를 해 온 술 정책 당국들의 정책역량 때문일 것이다.

각종 제조 현장에서는 “지금도 규제가 세세하게 많아요”하고 규제완화를 계속 더 주장한다. 각자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만이 중요하다는 생각들뿐이라는 해석이 가능해진다.

최근의 이슈 중 하나는 통신판매 분야 규제 완화다. 맥주보이에게 판매를 허용하거나 음식배달에도 술판매량 병행 제한 기준이 있지만 사실상 가정 술 배달도 허용되었다. 미국에서 도매업 면허장 하나를 더 낼 때 지역사회가 적극 개입하고 찬반의사를 분명히 표시해야 하는 장면은 우리와는 다른 세상의 일이다. 우버잇(Uber eat)의 술배달은 주문할 때 뿐 아니라 술을 수령할 때 사진이 명기된 신분증을 반드시 확인한다. 심부름하는 청소년이 받더라도 바로 반품이다. 우리보다 상당히 빡빡하다. 20년 전 제기되었던 전문주류소매점 면허논의는 이제 다시 구경하기 없을 것 같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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