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南台祐 교수의 특별기고
술의 신 디오니소스(Dionysos) 신화 이야기(23)

제우스는 자그레우스를 후계자로 삼을 계획이었다. 하지만 자그레우스는 자신의 후계자로 삼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있었다. 바로 부인 헤라의 질투를 잠재워야 하였다. 제우스의 바람끼로 태어난 자식들이 마치 통과의례처럼 겪어야만 하는 과정이 바로 헤라의 질투와 복수였다. 그 산이 바로 복수와 질투를 극복하는 것이다. 이러한 철저한 질투와 복수극은 제우스가 그를 후계자로 삼으려는 복심을 훔쳤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기가 낳은 자식이 아닌 남의 배에서 나온 자식을 후계자로 삼겠다는 것에 대해 여느 여인치고 얌전히 있었겠는가?
자그레우스가 태어나자 제우스는 헤라의 질투를 피하기 위해 아폴론과 쿠레테스에게 맡겨 파르나소스의 숲속 동굴에서 키우게 했다. 제우스가 만신이듯이 헤라 또한 그만한 권력을 가진 제우스의 아내였다. 아무리 꼭꼭 숨겼다지만 헤라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헤라는 남성 티탄족인 티타네스를 시켜 자그레우스를 잡아오도록 명령했다. 그 아버지의 그 아들이라고 했던가? 자그레우스의 변신술도 아버지 못지않았다. 자그레우스는 사자, 뱀, 호랑이, 황소 등으로 변신하며 헤라의 질투를 모면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아무리 신이라지만 자그레우스는 아이에 불과했다. 티타네스가 선물로 준 거울의 신기함에 빠져 아이처럼 즐거워하다 티타네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그가 변신술에 사용한 동물들은 후에 장성해서 그의 상징성으로 진화한다.
자그레우스를 붙잡은 티타네스는 그를 갈기갈기 찢어 일부는 날로 일부는 익혀서 삼켜버렸다. 그나마 자그레우스의 남은 유해는 아폴론이 모아서 델포이 근처에 묻어주었다. 자신의 후계자로 삼으려 했던 제우스는 자그레우스를 그냥 보낼 수는 없었다. 제우스는 자그레우스를 살려 내기로 결심하고 자그레우스의 심장을 자신의 또 다른 연인 세멜레에게 먹였다. 이렇게 해서 태어난 신이 바로 디오니소스였다.
제우스와 자그레우스의 심장을 먹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디오니소스를 ‘두 번째 디오니소스’라고 불렀다. 자연스럽게 죽기 전 자그레우스는 ‘첫 번째 디오니소스’가 되었다. 그렇다면 제우스와 세멜레 사이에서 태어난 신화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한편 자그레우스의 심장은 세멜레가 아닌 제우스 자신이 직접 먹고 세멜레와 결합해 디오니소스를 낳았다고 한다.
자그레우스는 오르페우스교(Orphism, Orphicism)의 신으로 위와 같은 자그레우스에 관한 전설은 오르페우스 비교의 교리에 속한다. 즉 오르페우스교에서는 자그레우스와 디오니소스를 동일시했다고 한다. 한편 오르페우스교에서는 음악의 신 오르페우스를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의 환생이라고 믿었다. 반대로 자그레우스 신화를 처음 언급했던 그리스 비극작가 아이스킬로스는 자그레우스를 ‘지하의 제우스’라고 부르며 지하세계의 신 하데스와 동일시하기도 했다.
오르페우스에 의한 것으로 여겨지는 신화는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에 모범된 계보적인 신화시에서 말해진 것이다. 이 신화는 근동 제국의 신화의 영향을 받았을 가능성도 있다. 오르페우스교에 특징적인 인간의 본질의 기원을 말하는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제우스와 페르세포네의 아들이며 자그레우스의 영혼의 현신인 디오니소스는 티탄족에 의해 살해되어 그 몸을 데쳐졌다. 하지만 헤르메스가 자그레우스의 심장을 빼앗아 돌려주고 화난 제우스가 티탄족에 번개를 퍼부었다. 그 결과 디오니소스의 몸의 재와 티탄의 몸의 재가 서로 섞여 그 재로부터 죄 깊은 인류가 태어났다.
그 때문에 디오니소스적 요소로부터 발하는 영혼이 신성을 가지는 것에도 불구하고 티탄적 소질로부터 발한 육체가 영혼을 구속하게 되었다. 즉 인간의 영혼은 ‘재생의 윤회(인과응보의 바퀴)’에 묶인 인생으로 반복해 되돌려지는 것이다.
디오니소스의 심장은 한때 제우스의 다리에 꿰매였다. 그 후 제우스는, 죽음을 면할 수 없는 인간의 여성인 세멜레의 모태에, 다시 태어난 디오니소스를 임신시켰다. 이러한 이야기에 관련된 많은 상세가, 이하의 고전 문헌에서 산발적으로 인용 언급되고 있다.
명계(하데스)를 왕래한 전설적인 시인 오르페우스를 개조로 보고 있다. 또, 겨울마다 명계에 내려 봄이 되면 지상으로 돌아오는 페르세포네, 같은 명계를 왕래한 디오니소스 혹은 바쿠스도 숭배되었다. 그 역사적 기원은 기원전 6세기, 또는, 적어도 기원전 5세기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엘레우시스 신비 가르침과 같이, 오르페우스교는 내세의 우위를 약속했다.
기원전 6세기경에 그리스에서 번성한 오르페우스교는 오르피즘(Orphism)이라고도 하며, 오르페우스를 믿는 일종의 종교이다. 미트라종교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학자들은 생각한다. 영혼은 신으로부터 나오며 소멸하지 않는다는 믿음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순수함을 간직해야 함을 의미했다. 오염된 영혼을 정화시키고, 인간을 신의 위치로 상승시키며, 영원불멸의 내세를 보장해준 것으로 인식하였다.
‘오르페우스교’는 오르페우스를 교조로 하는 고대 그리스 밀의 종교라고도 하여 기원전 6세기경 디오니소스 숭배에서 독립해 형성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인간의 생은 한 번의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윤회 전생하여 죄를 씻을 수 있으며, 오르페우스의 밀의 행위와 금욕 고행을 통하여 신적인 생명으로 승화한다고 믿었다.
운명과 신의 개입이 알리바이를 강조한다. 이른바 ‘오르페우스의 추종자’들은 의식적 열렬한 신봉자였으며 윤회의 형태를 믿었고, 아이러니컬한 일이지만 특히 디오니소스 신에게 헌신적이었다. 그들의 의식에는 옛날 메나드스(미친 여자들)가 그들의 가상의 주인을 찢어 죽인 것과 마찬가지로 짐승들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는 애용이 포함되어 있다.

일반적인 고대 그리스 종교와 비교해, 오르페우스교의 특징으로 여겨지는 점은 다음과 같다.
인간의 영혼은 신성 및 불사성을 가짐에도 불구하고, 윤회전생(슬픔의 고리)에 의해 육체적 삶을 반복하는 운명을 지고 있다는 교의.
‘슬픔의 고리’로부터의 최종적인 해탈, 그리고 신들과의 교감을 목적으로 하고, 비의 적인 통과의례(입신의식) 및 금욕적 도덕률을 정하고 있던 점.
생전에 범한 특정의 죄에 대해, 사후의 벌칙을 경고한 점.
교의가 신과 인류의 기원에 관한 신성한 서적에 근거하고 있는 점.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애절한 사랑 이야기
그런데 오르페우스교에 들어있는 오르페우스(Orpheus)에 대한 신화가 존재한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Eurydice)의 사랑 이야기는 비극적이다. 익히 아는 바와 같이 오르페우스는 님프 에우리디케와 사랑에 빠져 결혼한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에우리디케는 산책을 나갔다가 자신에게 치근대는 양치기 아리스타이오스를 급히 피해 도망치다 뱀에게 물려 죽는다.
오르페우스가 그녀를 애도하는 곡을 하자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오르페우스는 아내를 이승으로 다시 데려오겠다고 결심하고 저승으로 내려간다. 오르페우스는 저승의 문을 지키는 수문장 케르베로스를 음악으로 울려서 복종시키고 저승의 신인 명계(冥界)의 왕 하데스와 그의 아내인 명계의 여왕 페르세포네에게 아내를 돌려줄 것을 애원한다.
오르페우스의 연주를 듣고 하데스와 페르세포네는 물론 복수의 여신 네메시스까지 눈물을 흘린다. 페르세포네는 에우리디케가 그의 뒤를 따라갈 것이라고 약속하면서 그 대신 이승으로 나가기 전까지 절대로 뒤를 돌아보지 말라고 이른다. 오르페우스는 약속을 지켜 지상으로 나가는 출구까지 뒤를 돌아보지 않고 올라간다.
그러나 출구 바로 앞에서 오르페우스는 약속을 잊고 에우리디케가 잘 따라왔는지 뒤를 잠깐 돌아보게 된다. 그로 인해 에우리디케는 다시 저승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 부분, 오르페우스가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 에 대한 의문과 해석이 분분하다. 두 번째로 아내를 잃은 오르페우스는 7일 동안 식음을 전폐하고 비탄에 젖는다.

이후에 오르페우스는 지상에서 여성들과의 접촉을 피하면서 소년들과 살면서 오르페우스교를 전파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디오니소스가 트라키아를 방문했을 때, 오르페우스는 새로운 신을 존경하지 않고 단지 헬리오스(오르페우스는 이 신을 아폴론이라고 불렀다)가 가장 위대한 신이라고 말한다. 이에 화난 디오니소스는 마케도니아의 데이온에서 마이나스(Mainas, 광란하는 여자)들에게 오르페우스를 덮치게 해 마이나스들은 오르페우스를 여덟 조각으로 찢어 죽인다. 또는 마이나스(Maenads)들이 분노한 이유는 오르페우스가 여성을 거부했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마이나스들은 오르페우스의 목을 헤브로스 강에 던진다. 그러나 목은 노래를 부르면서 강을 흘러 바다에 나가 레스보스 섬 해안에 당도한다. 중세와 근대 유럽에서 오르페우스의 죽음을 동성애자에게 떨어진 천벌의 예로 간주한다. 주민들은 예를 갖추어 오르페우스의 머리를 묻었고 그 후 레스보스 섬은 오르페우스의 가호에 의해서 많은 문인을 배출하게 되었다. 또 뮤즈들은 그의 리라를 하늘에 안치한다. 이러한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의 신화는 예술 작품에서 무한한 상상력의 원천이 되며, 해석자의 시각에 따라 각각 다른 모습으로 변형되기도 한다.
오르페우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등장인물 가운데 최고의 음악가이자 시인이다. 오르페우스는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에 앞서 고대 세계에서 이미 ‘음악의 아버지’로 추앙을 받았다. 오르페우스는 ‘음악의 신’ 아폴론에게 선물 받은 현악기의 일종인 리라를 다루는 솜씨가 탁월했는데, 그가 리라를 타며 노래를 부르면 신과 인간은 물론 만물이 감동했다. 동물들과 초목들, 심지어 무생물인 돌멩이까지 자신의 존재를 잊을 정도로 매료되었던 것이다. 오르페우스의 이러한 천부적인 재능은 그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았다. 오르페우스의 어머니는 아홉 명의 무사이 여신 중 한 명인 칼리오페(Calliope)이다.
티탄(거인) 신족들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올림포스가 안정을 찾자 제우스는 신들의 나라와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후대에 노래와 기록으로 남겨야겠다는 생각에 기억의 여신 므네모시네(Mnemosyne)를 찾아가 아흐레 밤을 동침한다. 그로부터 열 달이 지나 므네모시네는 아홉 자매를 낳았는데, 이들이 바로 기억을 통해서 신들의 나라와 인간 세상의 온갖 문예와 학문 분야를 담당하게 되는 무사이(Mousai, 단수는 Mousa) 여신들이다. 이 여신들을 영어로는 ‘뮤즈(Muse)’라 하고, ‘Music과 Museum’도 여기서 파생된 단어들이다.
무사이 여신들은 음악뿐 아니라 각자 시, 무용, 역사, 수학, 천문학, 비극과 희극 등을 맡아보았는데, 말하자면 음악과 문학, 과학과 인문학의 원조라 하겠다. 즉 학예전반을 관장하는 학예의 신이다. 무사이 아홉 자매 중 칼리오페는 가장 격이 높았고 현악기와 서사시를 관장했다. 벌핀치(Thomas Bunfinch)의 <그리스로마신화(Bulfinch’s Greek and Roman Mythology)>에서는 아폴론과 칼리오페 사이에서 오르페우스가 태어났다고 했는데, 이는 ‘음악의 신’ 아폴론과 ‘음악의 아버지’ 오르페우스 사이에 연결고리를 만들고자 근대에 지어낸 이야기이다. 오르페우스는 전 그리스에서 음악성이 가장 뛰어난 트라키아의 왕 오이아그로스와 칼리오페 사이에 태어난 아들이라는 점에 고대의 모든 전승이 일치한다.
오르페우스가 트라키아의 산과 들을 노닐며 달콤한 노래를 부를 때면 세상 만물이 넋을 잃고 들었다. 야수들조차 흉포함을 갈무리하고 그에게 다가왔고, 초목들은 아름다운 선율을 더 잘 듣고자 줄기와 가지를 기울였다. 강은 자신보다 더 운율이 넘치는 그의 음악을 듣고자 흐르는 것을 멈추었고, 그가 리라로 건드린 바위는 자신만의 단단한 성질을 버렸다.
17세기경 북유럽 지역의 화가들은, 오르페우스가 동물과 나무와 바위에 둘러싸여 리라를 연주하는 모습을 주요 소재로 삼았는데, 플랑드르 바로크 화가 세바스티안 브랑스(Sebastian Vrancx)가 그린 <오르페우스와 동물들>을 보자. 손으로 뜯는 리라가 아니라 활로 켜는 바이올린 모양의 악기를 연주하는 오르페우스 주위에 온갖 동물들이 모여 있다. 맹수인 사자와 표범은 포효를 멈추고 천상의 음악에 취해 있다. 맹금인 독수리는 날기를 그만두고 얌전히 땅 위에 발을 딛고 음악을 경청하고 있다.

이 그림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화면 왼쪽에 보이는 이마 한가운데에 뿔이 달린 말 비슷한 짐승이다. 상상 속의 동물 유니콘이다. 일각수(一角獸)라고도 불리는 유니콘은 실상 그리스 신화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지고지순한 상서로운 동물로 고대 그리스부터 민담으로 전해지다가 중세에 들어와 유니콘을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서 생각하게 되었다. 처녀에게 순종하는 유니콘은 성모 마리아를 통해 사람으로 태어난 예수를 가리킨다. 그런데 오르페우스가 등장하는 그림에 엉뚱하게도 유니콘을 그려 넣은 것은 무엇 때문일까? 기독교적 상징을 떠나 그만큼 오르페우스의 음악이 만물을 순종시키는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고자 한 화가의 의도가 아닐까.
세이렌(Seiren)들은 여자의 얼굴에 새의 몸을 한 님프이다. 세이렌들의 노래는 도저히 저항할 수 없을 정도로 마력적이어서 그녀들이 사는 바위섬을 지나는 선원들은 난파되어 목숨을 잃거나 바다에 뛰어들어 자살하고 마는데, 그런 그녀들이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는 데 딱 두 번 실패한 적이 있다. 트로이 전쟁을 마치고 귀국하던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몸을 돛대에 묶고 세이렌의 유혹을 이겨낸 이야기는 잘 알려져 있고 많은 미술 작품으로도 그려졌다.

오르페우스 또한 세이렌들의 유혹을 벗어난, 아니 그들을 굴복시킨 일이 있다. 그는 황금 양털을 찾아 떠나는 이아손의 아르고호 원정대(Argonautes)에 합류했다. 힘이 약해 노를 젓지는 않았지만 노잡이들을 위해 박자를 맞추어 주는 정조수 역할을 맡았다. 폭풍이 일 때는 그의 노래로 파도를 가라앉혔다. 이윽고 세이렌들이 사는 바위섬을 지날 때 달콤한 유혹의 노래가 들려왔다. 오르페우스가 벌떡 일어나 세이렌들의 노래보다 더 감미로운 노래로 맞대응하자 이에 굴복을 당한 세이렌들은 모욕감을 이기지 못하고 바다에 몸을 던져 바위가 되었다.
<다음호 계속>
남태우 교수
▴문학박사/중앙대학교 명예교수▴전남대 교수▴중앙대학교 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도서관협회장▴대통령소속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
◇ 필자 남태우 교수 경력:▴전남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문헌정보학과 교수▴중앙대학교 중앙도서관장▴중앙대학교 교무처장▴중앙대학교 문과대학장▴한국정보관리학회장▴한국오픈엑세스포럼회장▴한국 문헌정보학교수협의회장▴대통령소속 도서관정보정책위원회 위원▴한국도서관협회장▴중앙대학교 명예교수(현재)▴현재 건전한 음주문화 선도자로 활동하고 있음
◇ 음주관련 저작리스트:▴비틀거리는 술잔, 휘청거리는 술꾼이야기(1998)▴주당별곡
(1999)▴술술술, 주당들의 풍류세계(2001)▴알코올의 야누스적 문화(2002)▴음주의 유혹, 금주의 미혹(2005)▴주당들의 명정과 풍류(2007)▴홀 수배 음주법의 의식과 허식(2009)▴술잔의 미학과 해학(2013)▴은자의 명정과 청담세계(20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