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류산업과 정책 이야기(31)
기후위기와 감염병 시대정신에 맞는 술 산업정책(Ⅲ)
조성기(趙聖基, Surnggie Cho, PhD. of Economics. MPH.)
원주한살림, 이사장
살림농산, 대표이사
아우르연구소, 대표연구원
한국대학생알코올문제예방협회, 회장
한국할랄산업연구원, 공동원장
이제 확실히 남아있는 정부의 규제 도구 중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은 주세정책으로 보인다. 그러니 시대정신이 바뀌어 술을 통해서도 무엇인가 이루려면 정책당국은 “무엇을 대상으로, 무엇을 기준으로 ‘주세정책’을 펼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것이다.
과거를 돌아보면 주류에 대한 과세는 술 제조업자들이 인식하기에 가장 무섭고 강한 규제수단이었다. 세무서 천장의 색깔이나 모습을 주류제조자들이 모른다는 소문이다. 고개를 숙이고 세무서를 출입했기 때문이다. 요즘도 주세정책은 술생산자들에게 큰 부담이면서도 힘이다.
그 주세정책은 기후위기의 시대에 어떻게 제안되어야 할까?
어떤 술 제조자가 ‘주세율을 0으로 하자는 주장’을 한다면 “미친 짓이야!”라고 정책당국에서 반응할 것이다. 이제 국내 원료를 사용하는 술에 주세를 부과하지 말자는 주장을 할 때가 왔다.
대상은 이제 주종과 도수가 아니라 원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전에도 0세율을 전통주에 부과하자고 주장하는 이들은 간혹 있었다. 그 주장은 전통문화를 살리자는 주장으로 들렸다. 그래선지 설득력이 적었다.
그런데 사실상 0세율이 존재하는 곳은 세상에 많다. 특히 유럽으로 가보자. 유럽의 술은 남쪽이 와인벨트, 중서부는 맥주벨트, 동북부는 보드카벨트로 알려져 있다. 그 이유는 해당 술이 그 지역에 많기 때문이다.
와인, 보리 등을 재배하는 농업이 그 지역에서 주도적 산업이다. 즉 맥주나 와인을 ‘0세율’로 관리하는 이유는 농부들의 민생을 감안한 정책인 것이다. 건강이 아니라 ‘농업’에 대한 지원책이다. 즉 술 정책은 그 사회가 공감하고 동의하는, 이야기가 담긴 이유 있는 지원책이다. 21세기에 우리나라가 술 정책으로 지원해야할 대상은 누구일까. ‘그 술이 주도주가 되도록 정책의 방향을 선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 이야기를 걸어보자.
주류 과세, 주세정책의 본격적 시작은 일제강점기부터다. 주세정책은 1909년 일제에 외교권을 강탈당한 시기에 시작되었다. 초기의 주세정책은 영세주막과 주조업의 몰락을 가져왔다. 높은 수준의 주세를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전쟁비용조달’에 혈안이 된 일제가 과세가 용이한 대형 주류기업들을 기르는 정책을 선택한다. 일제는 당시 술이 돈이 되는 재화라는 것을 분명히 알았던 것 같다.
해방이후에도 과세정책은 꾸준히 정부조달 대책으로 추진되었다. 그 때는 산업다운 산업이 없었기 때문에 주류산업의 주세가 ‘국가를 운영’하는 데 중요한 구실을 했다. 내국세의 상당한 비중을 주세가 차지했다. 건강도 아니고 농업발전 민생도 아니고 국가를 유지하는 근간이 주세가 되는 상황이었던 것이다.
근자에 들어 다른 산업이 발전하자 내국세 대비 주세비중이 이제 단지 1.2%에 불과하게 줄었다. 금액은 3조원 수준이지만 비중이 극히 줄어든 것이다.
주류과세는 기획재정당국의 세금 관심사에서 배제되는 경향이 커졌다. 국가운영은 이제 주세에서 나오는 게 아니다. 그러면 주세는 무엇을 목표로 관리해야 할까? 그 개념이 사라지고 술은 국가재정을 다루는 부문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산업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것이 분명해진다.
오히려 정부당국자들에게 술산업은 청년 일자리 창출이나 소매 음식 숙박업 등 의 가치제고를 통한 경기부양의 파급효과를 낳는 분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정책관이 순식간에 변화한 셈이다. 하지만 금융위기, 신자유주의의 몰락, 저성장사회의 장기화 등 어려운 조건이 되면서 술 정책의 결정기준이 사실 그렇게 바뀌는 것이 현실이었다. 누가 뭐라기 어려운 상황이 지속된 것이었다.
그렇지만 술 산업과 주류관련 종사자나 전문연구자들이 그 사실을 인지한 순간 깜짝 놀라게 된다. 하지만 “정황상 당연한 일이 아닌가?”라고도 생각할 수 있기 때문에 숙의가 필요하다.
사실 상당수 국가들도 술산업의 진흥을 괘념치 않고 이거저것 따지지 않고 반긴다. 인지상정이다. 하지만 각국의 정책당국에서는 공식적으로는 술이 ‘문제를 낳는 물질’이라고 인지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나 환경문제에 대응하기 위한 역할을 강조하는 게 일반적이다. ‘산업진흥’을 정책목표로 명시적으로 표방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글로벌 네트워크가 강조되고 있고, 소위 정책에는 어떤 노멀한 표준(Normal Standard)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진국일수록 그 경향성은 매우 강하다. 한국도 선진국 대열에 들어섰고 그 표준을 등한시 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다만 그 대응이 형식적인 측면이 강했다는 정황이 강해 걱정이 된다. 건강도 그랬다면 기후문제에 대해서도 “또 그렇게 되지 않을까?”하는 우려가 인다는 것이다.
최근 술 정책은 환경문제와 직접적 관련성이 크다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고 있다. 아니 그래야 선진국 한국의 정체성에 맞다. 과거 정책당국자들이 주세정책을 ‘기후에너지세과’에서 담당하게 한 것은 과연 선진적 혜안이었다. 규제 산업으로서의 주류산업은 ‘진흥’의 대상이 아니라 ‘기후에너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추구해야 할 산업이 된 것이다.
그 정책수단이 바로 주세정책이고 주종이 아닌 이산화탄소 배출을 최소화 할 수 있는 술을 주도주로 지원해야 하는 주장이 힘을 받을 수 있게 되고 있다.
2020년 1월에 시작되어 거의 2년간 진행되고 있는 코로나 19사태는 이미 정부와 국민들의 인식을 크게 바꿨다. 일대 사회문화적 전환기다. 한마디로 술 정책도 이제는 기후위기에 대한 대응정책으로서의 역할을 하게 되어야 한다. 반대할 이는 없을 것이다. 다만 그 변화가 느릴 것이다. 한 걸음 한걸음 진행되어야 한다. 이에 추가적으로 진행된 바이러스 감염병의 확산과 만연은 그와 동시에 국민건강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을 더 높였다.
이른바 환경과 건강이 실제로 정부 주류규제 정책의 중핵으로 작동해야만 하는 시대가 변한 것이다. 여기에 문화는 덤이다. 한국문화가 글로벌 사회로 확장되어갈 때 음주문화, 한국술이 음식문화로서 역할을 가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 시대정신을 담은 술이 ‘에너지 절약을 최대한 해내는 술’이 아닐까. 이동성이 적은 술은 소비자가 마시는 지역의 술이다. 그 지역에서 원료를 생산하고 그 원료로 제조하고 유통하는 술이다. ‘오래된 미래’를 추구하는 방식과도 같다.
모든 것이 지구적 차원에서 열려있는 세상에서 수출입을 자유롭게 하고 ‘비교우위론’이 작동하는 ‘무역이론’에 의거 작동하던 시대는 이제 과거다. 중상주의와 자유무역의 세상이 저물고 있다는 것이다. 적어도 술에 관한 한 ‘지역주 시대’로 가도록 주세정책을 펴야 하고 ‘술은 수입하지 말고 그 지역에 가서 마시라!’고 외쳐야 옳지 않겠는가. 21세기에 무슨 ‘헛소리’인가?”라고 반문할 수 있지만 시대가 변한 것이다.
재론하자면 ‘술은 일반재화와 다른 물질’이다. 그에 반대하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이다. 그것을 인정하는 것이 ‘선진국민’의 임무가 된다. 지역의 술을 재사용가능한 예쁜 유리병에 담아 팔자. 포장도 친환경적으로 되는 것이다. 지역원료의 사용은 농업의 발전과도 관련성이 크다. 위기의 농업을 구제하는 대책 중 하나가 지역주 우대 정책이다. 최근 ‘요소수 사태’를 계기로 본다면 지역농업의 소멸은 식량위기를 가져올 큰 문제가 될 수도 있는 일이다. “건강에 유익한 술은 어떤 술인가?”하는 논의가 꾸준히 있어왔다. 건강한 술이 특정 주종이나 주류라면 정확하게 틀린 답이었다. 정답은 ‘이른바 적당한 음주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해로운 음주란 무엇인가?” “도수가 독한 술일까? 약한 술일까?” 역시 주종이나 명칭, 브랜드를 그 답으로 제시하는 일은 사실 무의미하다. “해로운 술은 과음한 술이다.” 과음이 질병을 유발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명주를 마셔도 과음은 건강을 해친다. 가장 환경에 도움이 되는 술은 뭘까? 지역주다. 정답이 바뀌어 이제는 해로운 술이 ‘멀리서 온 원료로 만든 술’이 되는 때가 도래한 것이다.
환경과 건강을 결합하면 “지역주를 친환경 유리병에 담아 ‘적정량’을 마시는 것”이 목표가 된다. 지역주를 생산하자면 특히 초기에는 생산비용이 비싸다. 당연히 술값이 비쌀 수밖에 없다. 적정량을 마시게 될 확률이 높아지는 것이다. 그 때의 술은 ‘이로운 술’이 된다.
정부가 0세율을 지정하여 술제조에 사용하는 지역농산물의 가격을 낮추는 노력도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상대적으로 비싼 지역주는 술 소비를 줄일 것이다. 건강도 좋아지고 환경도 개선된다는 신호가 송출될 것이다. 정부로서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게 되는 것이다.
이는 반드시 지역의 원료를 사용하는 전통주만 지원의 대상이라는 것은 아니다. ‘소주’나 ‘맥주’도 지역원료를 사용한 프리미엄 소주와 맥주로 제조한다면 역시 0세율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거의 단순 전통주 지원 주장과는 차별적인 일이 된다.
<다음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