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하는 미래
임재철 칼럼니스트
사람은 앞으로 걸어간다. 시간은 미래를 향하여 흐른다. 걸어갈 미래가 불확실하면 삶이 힘들어진다. 반면 미래가 희망으로 가득하면 현재가 얼마나 어렵든지 간에 넉넉하게 이길 수 있다. 희망은 우리가 걸어가는 앞길을 밝혀주는 등불과 같다.
걸어갈 길을 희망하게 하는 그 희망은 어떻게 작동하는 것일까. 언제 우리 삶에 희망의 빛이 밝아지는 것일까. 희망이 꺼지거나 사그라지는 까닭은 무엇일까. 중요한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마음이 어쩠느냐가 관건이다. 마음에 두려움이 크면 희망의 빛은 사그라질 것이다.
2000년 하고도 22년, 임인년 새해1월이다. 코로나 일부로 우리가 걸어가는 현 세상 역시 짙은 안개가 낀 상황이다. 이런 때 더욱 희망이 필요하다. 사람은 근본적으로 희망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아마도 새해 우리의 희망은 우선 3년째 접어든 코로나에서 해방되고 싶다 하겠다.
위중하게도 3년째 세상을 지배하고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백신만 맞으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기대도 사그라지게 하고 있다. 여전히 똬리를 튼 ‘오미크론’등 신종 바이러스가 숨통을 조였다 풀었다를 반복하고 있는 코시국이다. 지긋지긋한 바이러스와의 전쟁이 언제쯤 끝날지 기약할 수 없다는 점이 사람들을 더 우울하게 한다.
그래도 먹고는 살아야 한다. 일상이 회복되고, 어린이들이 마스크 없이 마음껏 뛰놀 수 있으면 좋겠다. 자영업자 등이 더 이상 아픔을 겪지 않으며, 젊은이들이 원하는 일자리를 갖고, 빈부격차가 줄어들고, 불공정·불법·탈법과 같은 말들이 사라지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무엇보다 미래를 이야기하는 사회가 되면 좋겠다. 세계에서 가장 낮은 출산율, 일부 MZ세대의 욜로(YOLO) 행동을 걱정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러나 젊은이들을 나무랄 생각은 없다. 그들도 주어진 상황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즉, 미래에 대한 자신감의 부족에서 나타난 결과로 보이지만, 사람들의 행동은 순간순간 여러 가지 대안 중에서 선택의 연속이라 할 것이다.
누구나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것은 포기해야 한다.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포기하는 것은 현재의 희생에 대한 대가가 미래에 더 큰 형태로 다가올 것으로 기대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미래는 본질은 불확실하기 때문에 여기에는 믿음이 필요하고 희망을 가져야 하는 이유라고 본다.
올 한해는 모두가 서로를 믿는 사회가 되어 미래에 대한 희망과 자신을 가졌으면 좋겠다. 또한 누구나 당당하고 떳떳하게 희망과 꿈을 갖고 미래의 비전을 묻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러니까 꿈과 희망이 만나는 그런 사회시스템, 서로 신뢰할 수 있고, 법과 룰이 지배하는 사회임은 물론 앞서 언급했듯 미래를 위하여 현재를 희생하면서 계획을 세우고 행동이 작동하는 시간들로 채워졌으면 좋겠다.
3월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2030세대의 환심을 사려고 ‘청년이 미래다!’라며 또다시 절박하게 외치고 있다. 청년들의 희망이 깡그리 소멸 위기인 현실에서 씁쓸하기 짝이 없다. 청년은 미래이기 전에 현재다. 더욱이 청년들이 느끼는 산업 생태계는 상상 이상으로 급변하고 있고, 어떻게 보면 그들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는 현실에서 미래 세대에 대한 일면 무책임한 행태다. 왜냐하면 청년 유권자의 환심이 아니라 그들에게 희망을 주는 사회 시스템의 구축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미래를 위해 걸어가는 비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30년 넘게 기업과 단체 활동을 통해 필자가 경험하고 체득한 가장 명료한 답은 ‘독서를 통한 지혜의 축적’이다. 지금까지 항상 지식과 능력 부족을 자책하며 살아온 필자로서는 그동안 수많은 기업인들이나 지식인들을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만나왔지만 그들은 지성의 크기와 깊이가 남달랐다.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는 시대에 변방의 미아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는 미래를 향한 그야말로 생존의 방법으로 책을 읽어야 한다. 사람과 시대, 세상을 통찰하는 저자의 머리와 가슴이 담긴 책 속에서 자신의 미래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하나 더. 행복은 궁극적으로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온다는 것이다. 특히 필자처럼 나이 들면 돈이나 성공에 대한 관심이 줄어들고 가까운 이들과의 관계에 관심이 쏠리면서 가족 혹은 친구와의 관계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이 커진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을 깨닫게 된다.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 미래로 한 치도 어김없이 흐르면서 변한다. 그리고 시간과 함께 공간, 인간, 사물, 현상이 존재하고, 시간의 변화와 함께 모든 것이 변한다. 그래서 미래는 여전히 추상적이다. 손에 잘 잡히지 않는다. 하지만 미래는 우리에게 곧 다가올 현재이고, 우리가 곧 살아갈 현재라고 표현된다. 미래를 이렇게 바라보면 좀 더 생생하게 느껴진다. 애써 노력하지 않음에도.
E.H 카는 역사를 과거와 현재의 대화라고 했다. 역사를 통해 현재에 유익한 과거의 지혜를 배운다. 마찬가지로 더 나은 내일을 위해서는 현재와 미래의 능동적인 대화가 필요하다. 세상과 나를 파악하는 지피지기, 미래 비전과 목표 설정, 미래를 준비하는 습관 만들기와 역량 개발이 그런 자신만의 방식으로 미래를 좀 더 생생하게 보이게 하고 느끼면서, 새해에는 우리 모두가 자신이 원하는 미래를 차근차근 만들어가기를 희망한다.
일면 추상적인 미래 이야기가 길었다. 우리는 친구를 만나면 그저 반갑다. 미래에 대한 기대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화기애애하게 대화를 나누며 마음껏 웃다 보면 스트레스가 날아간다. 피는 물보다 진하지만 술은 피보다 진하다는 조크가 나오는 배경이다. 멀리 사는 형제나 자녀보다 자주 만나 술잔 기울이며 허심탄회하게 속을 나누는 친구사이가 더 끈끈하다는 말이 더 정확하겠다.
말하자면 친구는 현대인의 생존을 위해서도 필수이다. 노년에 꼭 필요한 것으로 건강, 돈, 할 일 그리고 친구가 꼽힌다. 그 네 가지가 없어서 겪는 고통을 노년의 4고(苦)라고 한다. 돈 없어 힘든 빈고(貧苦), 건강 잃어 생긴 병고(病苦), 주변에 사람이 없어 겪는 고독고(孤獨苦), 할 일이 없는 무위고(無爲苦)이다.
친구가 있으면 고독을 면하고 할 일이 생기며 건강에 도움이 된다. 즉 좋은 친구들을 넉넉하게 만들어두면 노년에 그만한 복이 없는 것이다.
이뿐이겠는가? 어떤 것이 진실이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를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이때에 우리는 낙관적인 미래보다는 비관적인 미래가 더욱 가까운 듯하다. 이 또한 모를 일이다. 인생을 살다보면 때로는 고난과 좌절을 맛보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리 큰 시련이 닥쳐와도 우리는 열심히 일하면 의외의 결과가 나올 수 있음을 수많은 경험을 통해 접해왔다.
우리의 인생에서 오늘은 어제와 같을 수 없다. 오늘이 어제와 같다면 성장할 수 없다. 때문에 매일 새로운 방식으로 더 낳은 인생을 살아야 한다. 어제의 구습을 버리고 앞으로 한걸음 더 나아가려는 마음이 미래로 나아가는 비결이기 때문이다. 미래를 걱정하기 보다는 ‘WHY’에서 한 걸음씩 나아가며, 지금 해야 할 일에 집중하고, 목표는 높게 잡고 현실에 충실하며, 오늘 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는 그런 우직함이 꿈을 이루는 가장 빠른 길이 다는 것이다. 어느 작가의 말처럼 “가파를지언정, 미래는 더 높고 푸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