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의 장면에 나타나는 도연명의 술의 의미
박정근(윌더니스문학 발행인, 소설가, 시인, 극작가, 연출가)
인간은 만나면 헤어지는 것이 운명으로 여긴다. 이것은 인생이란 어느 한 순간도 어느 한 장소에만 머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사성어에 회자정리(會者定離)라고 사람이 만나면 반듯이 헤어진다고 진술하고 있지 않은가. 그런데 헤어지는 순간에 인간이 느끼는 감정은 서운하고 슬픈 쪽으로 기울게 마련이다. 매일 만나서 정담을 나누던 지인이 갑자기 떠나서 다시 그런 시간을 공유하지 못한다는 것은 매우 서운할 수밖에 없으리라.
어릴 적 옆집에서 살던 외갓집 누나가 시집을 가던 날이 생각난다. 수많은 동네 사람들이 마을 어귀에 나와 꽃가마를 타고 떠나는 누나를 향해 손을 흔들며 축복을 해주었다. 축복을 해주던 동네사람들이나 떠나는 누나 모두 눈물을 흘리며 이별의 정을 나누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어른들의 마음속에 이십여 년 살아온 동네를 떠나는 누나를 더 이상 볼 수 없다는 서운한 감정이 솟아나왔으리라. 누나 또한 결혼을 하여 사랑하는 매형과 결합하는 기쁨이 컸겠지만 정든 동네 사람들과 정을 나눌 수 없다는 아쉬움이 눈물로 재현되었다고 본다. 이렇듯 인간에게 석별의 순간은 매우 특별한 감정을 자아내는 것이다.
도연명은〈형가를 노래하며〉에서 관직에서 떠나 함께 지내던 친구들과 이별을 해야 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자신을 태우고 갈 하얀 말도 이별을 슬퍼하는지 먼 길을 떠날 채비를 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의 슬픔을 대신하여 울부짖는다.
그뿐만이 아니라 도연명을 떠나보내는 지기들도 이별의 슬픔에 흥분을 제어하지 못하고 있다. 주위의 들뜬 분위기가 시인에게도 전염되어 머리칼이 곤두서고 마음이 가라앉지 않는다. 아마도 핏줄이 솟아올라 졸라맨 갓끈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이 시는 이별의 현장에 있는 시인이 당면하고 있는 감정을 사실적으로 재현하고 있다고 본다.
하얀 준마가 큰 길에서 크게 울고
모두들 격양되어 나를 전송하니
머리칼이 곤두서 관이 솟아오르며
혈기가 맹렬하게 갓끈을 찌르네
도연명은 이 시에서 이별의 아픔을 재현하기 위해 인간의 슬픔에 감염된 하얀 준마의 울음 소리를 시 속에 적고 있다. 동시에 동네 사람들의 보편적으로 슬픔으로 격앙되어 있었다고 노래한다. 사실 말이 인간의 이별의 슬픔을 어떻게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을까.
하지만 도연명은 시인이 느끼는 슬픔을 하얀 준마마저 공감하여 슬픔을 나타내고 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그는 시인 자신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함으로써 시인이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가를 독자로 하여금 느끼게 한다. 머리칼이 곤두섰다는 것은 극단적인 두려움이나 슬픔을 나타낸다. 그 영향을 받은 혈기가 도드라져 얼굴에 맨 갓끈이 아플 정도로 흥분했다고 고백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음주가의 시인 도연명은 슬픈 이별의 장면에 드디어 술을 등장시킨다. 인간은 기쁘든지 슬프든지 어떤 중요한 의식을 진행할 때는 그 감정을 술에 담아 전달하고 공유한다. 그 만큼 술은 인간의 삶과 떼어낼 수 없는 음식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술을 함께 나눈 참여자의 모임에는 음악이 저절로 뒤따른다. 술이 흥을 돋우거나 감정을 고양시키는 효과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음악은 인간의 감정을 가장 직접적으로 재현하는 예술이라고 본다. 도연명은 이별의 장면을 술과 노래가 등장하는 시로 노래하고자 한다.
역수가에서 한 잔 술을 마시며 떠나보낼 때
수많은 재사들이 자리에 둘러앉았고
고정리가 축으로 슬픈 곡 연주하자
송의는 목청을 돋우어 노래를 불렀네
원래 술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을 위해 서로의 마음을 소통하고 결의를 표명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시인은 떠나는 그를 위하여 친구들과 술을 얼큰하게 마시는 자리에서 한 친구는 슬픈 곡을 연주하고 다른 친구는 이별의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그리고 있다. 이런 정경은 시인에게만 특별히 구상되었다고 볼 수 없다. 인간 사회에서 너무 흔히 발견할 수 있는 모습들이다.
결국 도연명은 술을 사랑하는 애주가이지만 술에 대해 특별한 의미를 두지 않는다. 술은 일상적인 요소이고 인간다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친숙한 음식이라고 본다. 그래서 그는 항상 술을 곁에 두고 즐기면서 살았다. 그래서 그의 삶의 모든 경우에 술이 등장하게 된다. 그래서 그는 항상 술에 대한 시를 쓰게 되었으리라. 술에 대한 도연명의 이런 태도가 그를 최고의 음주시인의 반열에 올려놓게 된 것이다.
사진 : 가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