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돈의 酒馬看山
물과 불의 오묘한 조화
우리말에서 중요 단어들은 한 자로 되어 있다. 해와 달, 별이 그렇고 집, 옷, 밥, 길 등등….술도 인간사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라 한 글자로 되어있는데, 물, 불, 술이 이어져 있어서 흥미롭다. 즉 술은 ㅁ과 ㅂ을 지나 ㅅ에서 새로운 모습으로 물과 불을 이어간다. 언어학자들에 따르면 원래 술의 고어가 수블이었고 수블이 변해서 술이 되었다고 한다.
수가 물이고 블이 불이면 물과 불이 합해져서 술이 된 것이다. 같은 물의 성질을 띠더라도 물속에 불이 녹아있는 것이 바로 술이다. 즉 불을 담고 있는 물이 술이다. 물과 불은 오행(五行) 상 상극이지만 술로써 하나의 몸을 이루고 서로 갈등하면서 상생하는 것이다. 상극의 물질이 서로 상생하는 참으로 아이러니컬한 상황을 보여주는 셈이다.
씨알 사상을 널리 떨친 고 함석헌 선생의 스승인 다석 유영모 선생도 “물을 부리는 것이 불이다. 불을 다스리는 것이 물이다. 물과 불은 서로 작용한다”고 했다. 물과 불이 어울려 작용하는 게 술이다. 흙과 불이 어울리면 도자기가 되고 물과 불이 어울리면 술이 된다. 그러나 오행에서 술처럼 상생과 상극이 함께 하기는 쉽지 않다.
물은 마시면 몸속의 수분을 보충해 준다. 반면 술을 많이 마시면 오히려 목이 말라서 물을 더 찾게 된다. 거의 다 물의 성질을 가지고 있는 술이 몸속의 수분을 부족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이는 불의 성질이 물을 태우기 때문이다. 물이면서도 그냥 물이 아니라 마시게 되면 가슴이 뜨거워지게도 하고 속에서 불이 일어나기도 하는 술.
적당히 마시게 되면 체내순환을 원활히 하고 건강에도 도움이 되지만, 과음하면 술 속의 불이 물을 태워 없애고 몸까지 태우게 된다.
술이 불이 되게 하면 탈이 난다. 몸속에, 마음속에 앙금으로 남아 있던 찌꺼기들이 우르르 터져 나온다. 그야말로 거대한 불덩이들이 화산 분출하듯….
다석의 말처럼 불을 다스리는 게 물이니, 이때는 수기를 보충해야 한다. 술이 과하다 싶을 때는 얼른 찬물 한 사발을 들이켜야 한다. 그래서 불이 사그라지지 않을지라도 거푸 물로 다스릴 일이다.
물과 불의 조화를 알고 그 이치를 깨달으면 주성(酒聖)의 반열에 설 수 있다. 술을 안다는 것은 오행의 반을 아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 신비하고 오묘한 상생과 상극의 진리를 술을 통해서도 깨우칠 수 있는 것이다. 책상머리에서 씨름하거나 뛰어난 현자를 만난다고 답을 찾기는 어려운 노릇이다. 그만한 시행착오 속에서 여물어가고 익어가는 것이다. 인생살이처럼 알 듯 말 듯 하면서 저절로 체화되기 때문이다.
술은 누구에게나 곁에 있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괴로울 때도 마음 변치 않고 늘 곁에 있는 친구이기도 하다. 세상 이치까지 일깨워주는 고마운 존재다. 그러면서도 스스로를 태우거나 패가망신하게 하기도 한다. 물처럼 이로울 수도, 불처럼 해로울 수도 있는 두 얼굴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명정(酩酊) 40년의 수주 변영로나 시선(詩仙) 이태백을 굳이 들먹이지 않더라도, 명정의 길을 걷는 사람들은 무수히 많다. 물과 불의 길을 걸었던 이들도 많다. 삶 자체가 술을 떼어 놓고는 얘기가 되지 않는다.
이들의 물과 불의 노래를 짚어보고 물과 불이 서로 의지하여 세상을 이끌어나가는 모습을 되돌아 보려한다. 오늘 내가 남긴 발자취는 후세들에게 이정표가 되리라는 서산대사의 한시 <답설>처럼, 앞선 이들의 물과 불의 발자취를 주마간산(走馬看山) 식으로 더듬어 볼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는 다시금 우리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전해질 수도 있을 것이다.
글쓴이 김상돈:물과 불을 넘나들면서 명정 40년을 살았고, 언론계와 국회 당, 공기업 임원 등을 두루 거친 뒤 지금은 사단법인 4월회 사무총장과 전국자동차검사정비사업조합연합회 전무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