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자희자양 노영희 대표
함평에 나비만 있나, 아니다. 自喜香도 있다
삼성그룹 신년 만찬주로 올라온 바로 그 술
“술이 아닙니다.음식입니다”
“막걸리가 아닙니다.자희향 입니다”
전남 함평은 나비의 고장이다. 함평이라고 하면 어디쯤에 있는 지역인가 골똘히 생각하다가도 나비를 이야기하면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수년 전만해도 함평은 이렇다 할 볼거리가 많은 지역은 아니었다. 그랬던 함평이 봄이면 나비를 보기 위해, 가을이면 국화를 보기 위해 나비처럼 벌처럼 모여드는 곳이 되었다. 특히 매년 5월에 개최되는 함평나비대축제는 전국 축제의 꽃이 되었고, 금년에는 ‘2014 대한민국 명가명품 대상’에서 지역축제특화부문 대상을 수상을 거머쥘 만큼 이제 함평은 명실 공히 나비의 고장이 되었다.
그런데 함평에 나비 못지않은 명성을 얻을 만한 명주가 익어가고 있어 나비가 몰려오듯 전국의 애주가들이 몰려들 것 같다.
이름하여 ‘자희향(自喜香)’이다. ‘자희향’이란 뜻은 저절로 향기가 난다는 의미인데 그 향기는 벌써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 퍼져나가고 있다.
일례로 2012년 ‘한·중 경제 리더스 포럼 공식만찬주’를 시작으로 2013년에는 ‘한·중·일 문화장관회담 공식만찬주’로 자희향이 선정되었고, 2014년에는 드디어 삼성그룹 신년 만찬회 만찬주로 자희향을 채택한 것이 언론에까지 나올 정도였다. 대한민국 최고의 삼성그룹에서 그 많은 술을 제치고 ‘자희향’을 신년 건배주로 사용했을 정도라는 것은 세간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 바람에 ‘자희향’은 유명세를 톡톡히 타고 있다.
또 전 세계 바이어들이 모인 서울국제식품대전의 오찬 건배주로 자희향 국화주가 그 향기를 뽐냈다. 와인에 길들여진 입맛에서 우리의 전통주를 맛본 이들은 ‘원더풀, 원더풀’을 외쳤다. 이쯤 되면 ‘자희향’은 국내뿐만 아니라 세계 최고의 명품주 대열에 오를 날도 머지않아 보인다.
함평에 나비 못지않은 또 하나의 명품이 나온다
‘자희향’은 전남 함평군 신광면 삼덕리에 위치한 (유)自喜自釀이란 술도가에서 빚는 전통주다. 술빚는 이는 이 회사 노영희 대표다.
회사 이름인 자희자양(自喜自釀)은 ‘스스로 술빚기를 즐긴다’는 뜻이 담겨 있다. 이 회사 대표인 노영희 사장의 명함에도 ‘술빚는이 노영희라고 쓰여 있다. 술을 만드는 게 아니라 빚어내고, 스스로 술빚기를 즐기면 결국 최고의 술을 빚을 수 있다는 신념에서 그리하고 있다는 것이다.자희자양에서는 ‘자희향 국화주’와 ‘자희향 탁주’를 빚어낸다. 탁주는 막걸리고 국화주는 청주다. 하지만 여느 술도가에서 빚는 막걸리나 청주 같으면 만찬주 선정에 각별한 신경을 쓰는 삼성그룹 같은데서 만찬주로 쓰겠는가.
자희자양 주조장의 외모는 그저 그렇다. 화려 하지도 그렇다고 지저분하지도 않다. 그저 시골에 있는 양조장 모습 그대로다.
그런데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풍겨 나오는 그 향긋한 술 냄새는 여느 술도가에서 맡던 향과는 전혀 다르다. 또 보통은 술을 빚고 숙성시키는데 대부분 스테인리스 탱크를 사용하고 있는데 반해 이곳에서는 오지항아리에 술을 담그고 숙성시킨다. 아마 전국에서 유일하지 않나 싶다.
오지항아리에 술을 빚고 숙성시키다
자희향은 2008 전주전통주대향연 국선생선발대회에서 청주 국선생 수상을 시작으로 2014남도전통술품평회에서 탁주부분 장려상, 남도전통술 품평회에서는 2011년 이래 4년 연속 약주부문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호남 지방의 쟁쟁한 술도가를 제치고 노영희씨의 자희향이 인정받는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그 이유는 원료나 제조 방법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자희향의 기본 재료는 일반 쌀이 아니라 함평에서 생산하고 도정된 찹쌀이다. 또 숙성기간도 완전히 다르다. 자희향 탁주의 숙성기간은 3개월 정도인데, 이는 일반 막걸리 보다 최소 6배 이상 더 긴 시간이 필요하다.
숙성 방식도 전통방식 그대로다. 입국(개량누룩)을 사용하지 않고 전통누룩을 이용한 자연 그대로의 방식을 추구하면서 작업방식도 완전 수작업이다. 요즘 같은 초 스피드 시대에 답답하리 만큼 100% 전통방식을 고집하는 이유에 대해 노 대표는 “그래야만 좋은 술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는 간단한 대답이지만 오지항아리에 술을 담그고 숙성된 술을 퍼내려면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그래도 전통을 고집하겠단다.
자희향의 이런 고집은 우리 술의 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전통주를 고급술로 알리겠다는 목적의식에서 출발한다. 자희향 탁주와 일반 막걸리의 가장 큰 차이는 일반 막걸리가 대중주를 지향하고 있는데 반해 자희향 탁주는 ‘우리 막걸리의 명품화’를 콘셉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 막걸리는 1천5백 원에서 3천 원 정도에 판매되고 있지만, 자희향 탁주는 1만2천원이다. 무려 4~8배 가까이 높은 가격이다. 자희향의 숙성기간과 제조공정을 생각하면 높은 가격이 아니지만 일반 막걸리와 비교하면 높은 가격이다.
용기도 일반 페트병이 아니고 유리병을 사용하고 있다. 노영희 대표가 자희향 탁주를 만들기 시작할 때만 해도 유리병에 담아서 파는 막걸리가 없었다. 오랜 숙성을 거쳐서 탄산가스로 인한 폭발의 우려가 없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자희향 탁주가 유리병을 고집하는 데는 그 만큼 품질에 자신이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막걸리가 세계의 주류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선 고급화가 필수라는 소신도 크게 작용했다. 그러한 자희향의 고집이 소비자들에게 통했는지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자희향을 찾는 고객이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일반 막걸리에 비해 8배 정도 비싸도 팔린다노영희 대표는 자희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이다. 박록담 선생 제자로 10여년 공부하면서 품게 된 철학은 “본디 우리 전통주는 술을 잘 빚으면 저절로 그 술에서 향기가 난다”는 것을 깨달아 전통 방식대로 술을 빚어 “자희향이 걸쭉하면서도 단맛과 함께 특유의 향을 내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자희향의 근본은 박록담 선생이 재현 한 조선시대 대표 전통술 중의 하나인 ‘석탄향주(惜呑香酒)’다. 아낄 ‘석(惜)’자에 삼킬 ‘탄(呑)’자를 사용한다. 맛과 향이 너무 좋아 ‘차마 마시기 아깝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술에 관심이 적은 사람들은 ‘석탄향주’라면 무슨 석탄(石炭)으로 술을 빚느냐고 하지 않나 석탄향주를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미움 같다고 한다.
그러나 이 석탄향주야 말로 진정한 우리의 전통주다. 전통주에서 향이 나는 것은 오랜 시간 술이 익어가면서 자연스럽게 나는 향이지 첨가물을 섞어서 그런 것은 절대 아니다.
자희자양을 이끌고 있는 노영희 대표는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전남도립대에서 약선식품가공과를 졸업한 평범한 주부였다. 그러다가 2010년에 한국벤처정보대학원대학교에서 전통주리더과정을 2011년에는 한국벤처농업대학에서 농촌관광경영과를 수료했다. 이처럼 전통주와 접목될 수 있는 관광분야까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2년 전통주 연구가 박록담 씨가 운영하는 (사)한국전통주연구소에서 10여 년 동안 전통주를 공부하고 강사과정까지 공부를 한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노영희 대표는 말한다.
“요리에 관심이 많아 전통요리를 공부하다보니 음식의 마지막 완성은 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조금씩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레 술에 심취하게 됐습니다. 지난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전통주 빚기에 미쳤지요”노 대표는 왜 고가 술에 관심을 갖게 됐는지에 대해 “처음 술 빚기를 시작할 때부터 틈새시장을 찾았습니다. 저가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였고, 자본이 영세한 업체 입장에서 기존의 업체와 똑같이 할 수는 없었지요. 그래서 찾은 게 고급화 전략이었습니다. 일부에서 발생하는 트림이나 머리 아픔 등을 해소하고, 서양의 와인처럼 향을 즐길 수 있는 술을 빚어내고자 했습니다. 마시기보다는 즐기는 술,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좋을 술을 빚어 세계인의 입맛도 사로잡고 좋은 술을 빚는 양조장을 대대손손 물려주는 것이 자희자양이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전통주의 고가 정책은 아직 갈길 멀어
노 대표는 이러한 전통주 가격을 정당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기 시작했고 독일과 오스트리아를 견학하면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그곳에서는 농가에서 생산한 과일로 술을 빚고 갤러리를 조성해 홍보와 판매를 하고 있었다.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함평의 양조장을 개방하고 술 빚는 과정을 탐방객들에게 보여주기 시작했다. 4년 전부터는 체험장을 마련해 체험과 시음, 견학 등을 결합한 관광상품을 운영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점점 소비자들이 전통주 가격에 대한 타당성을 인식하게 됐고 자연스럽게 판매로도 이어지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현재 판매되고 있는 자희향 제품은 3가지 종류로 자희향 국화주(15%,500ml), 자희향 탁주(12%,500ml), 자희향 나비생탁주(8%,500ml)가 있다.
자희향 국화주는 15도 도수에 어울리지 않게 부드럽고 순하다. 와인 잔에 따랐을 때 노란빛이 매력적이고 자연스러운 단맛이 일품이다. 너무 순해서 알코올 느낌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데 마시면 천천히 취하는 술이다.
노 대표를 따라 들어간 숙성실은 장관이다. 올 추석을 겨냥해서 담근 자희향 항아리들이 가득하다. 빚은 지 오래 된 항아리들이 내 뿜는 술 향기가 마시지 않아도 취기가 돌 정도다. 기자는 취재고 뭐고 술 항아리에 용대 박아 놓고 늘어지게 퍼마시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았다. 저장고와 숙성실에 가득한 한 항아리에는 약 240병정도의 양이 들어있단다. 항아리마다 발효시킨 날짜, 숙성시킨 날짜 그리고 온도 등을 적어놓고 하루에 네 번씩 체크를 한다고 한다.
숙성실을 돌아보면서 노 대표의 말처럼 우리도 열심히 잘 만하면 우리 전통주도 고급 명품 술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노 대표는 단순히 술을 빚어 파는데 그치지 않고 자희자양을 전통주 체험의 명소로 키우고 싶다고 한다. 국내 관광객 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이 한국의 전통주를 빚는 곳을 찾기 위해 함평의 자희자양 전통주체험장을 방문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는 다도체험처럼 주도체험도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은 게다. ‘향음주례’를 몸소 체험하여 술로 인한 폐해를 막아 보자는 취지라고 했다.
이런 생각이야 말로 바로 ‘自喜香’이다. ‘스스로 향기를 즐기는 것은 술 맛 뿐 아니라 술이 갖고 있는 정신세계’이기 때문은 아닐까.
<함평에서 김원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