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all news 일송정 언저리 한걸음 한걸음

일송정 언저리 한걸음 한걸음

일송정 주변

 

일송정 언저리 한걸음 한걸음

 

임재철 칼럼니스트

 

임재철

‘연변이 좋아서 연변에 살리라’ 그렇게 먼 옛날 아는 이 없는 이국 땅, 아니, 일찍이 고구려 땅인 이곳에 순정을 붙였을 거다. 만주와 간도로 불리던 이 땅에 서러운 세월의 잿더미를 묻으며 삶을 살고 지고 걸었을 것이다. 인생에는 헛된 길도 없고, 헛된 고생도 없다. 15년만에 연변 땅을 찾으며 필자에게 스친 생각의 일부분이다.

일주일 동안 주로 들러 본 곳은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중심도시 연길(延吉)을 중심으로 일송정(一松亭)과 용정(龍井), 도문(图们) 등지이다. 그동안 이 곳을 여행하면서 백두산 천지를 두번이나 올랐지만, 모두 실패한 필자로서는 아예 생각을 거두고 연길 주변 여행을 하기로 마음먹었고, 일정이 허락하면 광개토대왕릉 등 고구려 유적이 있는 지안에도 가볼 요량이었다.

 

윤동주가 태어난 옛 간도, 항일운동과 관련된 역사적 장소인 지금의 중국 연변자치주에 나그네의 발걸음이 닿으니 우선 우리와의 연관이 특별하게 다가왔다. 게다가 지금까지의 경험과 습득한 강한 흡인력으로 인해 절로 긴 호흡이 연발됐다. 연길에 도착해서 하루 쉰 다음 도문으로 향했다.

고속도로를 따라 1시간여 달리니 작은 도시인 도문시의 중·조 국경의 접경지에 이른다. 아~, 북한땅이 지척이라! 불안한 눈빛, 떨리는 가슴 앞에 누런 두만강이 유유히 흘러가고 있다.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왼쪽은 중국 도문, 오른쪽은 북한의 남양시다. 북한과 중국을 가르는 경계, 아주 가깝게 허황한 건물이 보인다. 손에 잡힐 듯한 저편의 북한 남양 마을을 하염없이 바라보니 묘한 침묵이 인다.

도문시에서

그 ‘눈물 젖은 두만강’에서 옛 철교 부근까지 보트를 타고 흐르는 물에 손을 적시니 대조적인 세상에 머리도 혼란하고 마음도 아린다. 잠시 머문 자리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강 하나를 사이에 둔 두 세계, 누군가는 여기가 세계의 끝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같은 하늘 아래 산천을 응시하는 필자에게 건네진 화두는 분단의 아픔과 평화의 소중함, 그리고 분단이 만든 장벽이 허물어지기를 바라는 희망이었다.

정작 묵직한 역사의 흐름 앞에서 북-중은 여객열차가 다시 달리고, 항공기도 다시 날고 양국이 인적·물적 왕래를 활성화하고 있지만, 한반도 정세는 아직 온기가 없으니 그런 주목으로 옮겨진 것 같다. 마음을 다 잡고 G331국도를 따라 용정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은 한참 북한과 중국의 국경을 따라 가는데 중국 쪽에는 끝없이 옥수수밭 전경이 펼쳐진다.

 

어느새 두만강 물줄기의 하나인 해란강 기슭의 용정 ‘비암산풍경구’에 발길이 멈춰서 전동차를 타고 ‘일송정’에 오른다. 원래 이 산 정상에 독야청청 소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 바, 그 모양이 돌기둥에 푸른 청기와를 얹은 정자를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 바로 일송정. 국민가곡 <선구자>에 나오는 ‘일송정 푸른 솔’이 바로 그 소나무. 말하자면 중국 북간도지역 항일운동의 정신적 고향이자 독립운동의 성지로 추앙받던 일송정 아니던가.

일송정 주변

때문에 당시의 일송정은 일제강점기 때인 1938년에 일제에 의해 고사됐다. 현재 있는 소나무는 1991년에 연변정부와 한국정부가 옛 자리에 다시 심은 것이다. 어떻든 나라를 잃은 민족의 눈물과 독립의 의지, 그리고 다시 일어서려는 한민족의 혼이 서려 있는 중요한 유적지다. 그렇지만 일송정을 오르는 길 옆에는 ‘동북항일연군 곤고견지시기(东北抗日联军 困苦坚持时期)’라는 검은 비문이 서 있다.

또 일송정의 정자가 위치한 정상 바로 밑의 표지석에도 ‘동북항련유지 일송정(东北抗联遗址 一松亭)’이라고 붉게 새겨져 있다. 이는 ‘동북항일연군’의 유적지라는 의미. 조금 더 들어가보면 우리 독립군의 항일 역사보다는 중국 중심의 항일운동사를 부각시키려는 의도로 읽혀져 적막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그렇듯 일송정에 서서 정자를 바라보면 소나무 끝에 머무는 얘기들이 난파되지만, 용정 일대의 만주벌판이 한눈에 보이고, 넓은 들판은 싱그럽고 해란강은 말없이 흐르고 있다.

일송정에서 바라본 용정 시내 및 해란강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고 한 단재 신채호 선생의 말을 절감하며, 이는 여전히 현재도 유효할 뿐만 아니라 과거 일송정의 위대한 정신의 역사가 지금도 면면히 흐르고 있고, 절규의 ‘선구자’가 심장을 찢고 있음을 애써 긍정적으로 생각해 봤다.

된장술

구름이 날아가고 뜨거운 바람이 얼굴을 스친다. 19세기 간도로 이주한 조선인들이 개척한 땅 용정, 윤동주를 만나러 갔다. 일제강점기에 많은 우리 민족이 열심히 일하고 가족을 돌보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초개같이 목숨을 버렸던 곳, 이 땅 명동촌이라는 곳에서 윤동주는 1917년 태어났다. (1945년 2월16일, 일본 후쿠오카형무소에서 사망).

이곳에서 복원된 윤동주 생가를 답사할 때에는 감개의 무량보다는 가슴이 아파왔다. 더욱이 이곳의 안내판도 ‘중국 조선족 유명시인’으로 돼 있다. 두 눈을 감고 고개를 떨군 필자의 내면은 깊이 침잠했다.

특히 어릴 적부터 시인 윤동주를 좋아하는 필자로서는 그가 살던 집에서 ‘서시’ 등 그가 쓴 아름다운 시를 읽으며 회상하는 감정이란 한마디로 표현하기 힘든, 그러니까 마음을 흔드는 감화가 끊임없이 아른거렸다.

이번 여행길에 오르며 연변 음식에 중국술을 곁들인다는 생각은 당연히 심중에 품고 있었다. 여러 술좌석에서 그동안 언론에 어필되었던 ‘홍범도술’이라고 불리는 ‘된장술(醬露)’등 바이주나 조선족전통맥주를 하루가 멀게 맛보았지만, 정신이 번쩍 든 것은 지난 세월 동안 연길도 많이 변했다는 사실.

죽는날 까지 하늘을 우러러 .. 윤동주의 서시 시비

특히 연변대학교 앞 번화가 등 거의 모든 공간이 중국인들에게 한국식 김치와 한식요리 등 다채로운 한류를 체험할 수 있는 관광지로 문전성시다.

경계에 서있다

돌아오는 길에 대국 아열대의 햇살이 뜨거웠다. 한편으로는 뿌듯한 여행이었다. 예전의 경우 백두산, 아니면 해란강골프장에 눈멀었던 필자인지라 도심 민가, 수상시장 등 연길의 일상 문화를 살펴보았고, 대표 별미인 연길냉면, 그리고 훠궈 등을 맛보며 풋풋한 해란강 주변의 촌마을도 견문했다. 세월은 소리 없이 흐르지만, 자투리 시간을 아껴서 여행을 가고 책을 읽으며 더 끄적어야겠다.

LEAVE A REPLY

Please enter your comment!
Please enter your name he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