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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골군자와 무치부인의 에로스적 암투(2)

남태우(南台祐)

중앙대학교 명예교수/ 풍류와 음주 칼럼니스트)

 

남태우 교수

청주대 인문학자이자 민속학자 김영진(金榮振)은 육담 유형(試案)을, Ⅰ. 신화적 육담(성기 이야기·성교 이야기), Ⅱ. 전설적 육담(지명 이야기·성씨 이야기), Ⅲ. 본격적 육담(성기 이야기·성교 이야기·수음 이야기·口淫한 이야기·獸姦한 이야기·獸性 본 이야기·교미 본 이야기), Ⅳ. 부차적 육담(受禍이야기·錯音이야기·이의동음 육담·이상 발음 육담·격언 이야기·수수께끼 이야기·씨름말 이야기), Ⅴ. 우화적 육담(야수이야기·飛禽이야기·魚龜이야기)로 구분하였다. 이는 육담이 태생적 측면에 따라 분류한 것으로 보인다. 김영진의 분류에 따르면 육담은 단순한 음담패설을 넘어, 인간의 본능적 욕구와 사회적 해학을 담고 있는 구비문학의 한 갈래로 정의된다.

 

이와 달리 중앙대 민속학자 김종대는 성 이야기의 유형을 부부간의 성생활이나 갈등을 다룬 ‘부부 관련담’, 사돈간의 성적 관계를 소재로 한 ‘사돈 교체담’, 성지식을 가르치거나 성에 대한 호기심을 다룬 ‘성교육담’, 성기를 비유하거나 은유적으로 묘사한 ‘여성기(女性器)/남성기 주제담’ 등으로 대별하였는데, 그는 민속학적 측면에서 분석한 것이다. 이야기의 성격에 다른 구분법이라고 하겠다. 품격이 낮고 투박하지만 인간의 본원적인 성적 욕구를 드러내고 금기를 위반함으로써 얻는 웃음과 해학이 핵심이다.

육담의 형식은 사람, 장소, 때, 상황 그리고 행위 등에 따라 특성화시킬 수 있다. 그는 육담을 단순한 음담패설이 아니라 민중들이 성을 어떻게 즐기고, 억압된 성의식을 어떻게 표출했는지 분석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음담(淫談) 또는 육담이라 하는데, 육담이란 말보다는 음담이란 말이 널리 사용되며, 이 밖에도 외담(猥談), 외설(猥褻)이란 말도 혼용되기도 한다. 외설 은 인간의 성적 욕망을 자극하거나 흥분시키는 행위, 그림, 글, 영상 등의 표현이나 대상을 말한다. 사전적 의미로는 남녀 간의 ‘추잡하고 음란한 행위’를 뜻하며, 예술이나 출판 분야에서는 표현의 자유와 법적 규제(음란성) 사이에서 자주 논쟁이 되는 개념이다. 외담(猥談)은 성적인 내용이나 외설스러운 이야기를 뜻하는 한자어다. 일본어 ‘わいだん(와이단)’에서 유래한 말로, 주로 남성들이 술자리 등에서 성적인 농담이나 경험담을 주고받는 ‘음담패설(淫談悖說)’을 의미하며, 과거에는 ‘와이담’이라고도 불렀다.

 

조선 시대의 ‘음담패설’을 일컫는 말로, 여기서 ‘육(肉)’은 살, 즉 남녀의 성기를 의미하여 말 그대로 ‘고기 이야기’ 또는 살과 살이 부딪히는 이야기라는 의미를 가진다. 고기얘기/쌍담은 육담(肉談)은 성적 결합에 관한 이야기로, 구전으로 내려오는 음담패설을 뜻하며 일부 지역이나 맥락에서 ‘고기 이야기’라고 불리기도 한다.

한편 음탕한 이야기를 중국에서는 ‘황담(荒談-淫談-肉談/ 남녀시생위황(男女始生爲荒)에 어원을 둔다)’이라 하는데, 이를 한자 그대로 풀이하면 ‘거칠 황(荒)’에 ‘말씀 담(談)’을 써서, 거칠고 황당한 이야기나 이치에 맞지 않는 터무니없는 말을 의미한다. ‘터무니없고 허황된 말’ 또는 ‘거짓으로 꾸며낸 이야기’를 뜻한다. 중국 연변 조선족들은 육담을 ‘고기얘기’ 또는 ‘쌍담’이라 한다. 이때의 고기는 ‘육’을 유머러스하게 번역한 것인데, 고기는 다름아닌 ‘몸’을 뜻한다. 몸은 원초적이고 본능적 욕망이다. 성(性)을 이야기하는 음담패설이 ‘고기 이야기’인 이유다. 고기라는 말에 담긴 욕정적인 속살의 부딪침, 에로틱한 섹스를 감각적으로 느낄 수 있는 이야기다. 속살은 성기를, 살을 섞는다는 관용어는 성관계를 일컫는다.

 

고기와 성적인 의미가 연결되는 것은 서양에서도 마찬가지다. 고기를 뜻하는 라틴어 ‘caro’에서 유래한 단어 ‘carnal’도 성적인, 육욕적인이라는 뜻이 있다. Carnal은 영적이거나 정신적인 것과 대비되는 육체적, 성적인 의미를 가진다. 프랑스의 향수 브랜드 프레데릭 말(Frédéric Malle)의 ‘카넬 플라워(Carnal Flower)’를 굳이 번역하자면, ‘육욕의 꽃’ ‘욕정의 꽃’ 정도가 되겠다. ‘Carnal’은 육욕/색욕이라는 뜻으로, ‘Carnal Flower’는 ‘육욕의 꽃’이라는 육욕적인 상표명을 브랜드로 내걸고 있다. 드라마틱한 관능적 화려함을 가진 자연의 튜버로즈(Tuberose)와 가장 가까운 향을 지닌다. ‘카넬 플라워’는 마이클 니콜스(Mike Nichols) 감독의 두 남자의 20년에 걸친 애정관과 성적 콤플렉스, 관계의 파국을 냉소적으로 그린 코미디 드라마 <애정과 욕망(Carnal Knowledge, 1971)>이라는 영화의 아카데미상에 12번 후보로 오른 잭 니콜슨(Jack Nicholson)과 열연한 캔디스 버겐(Candice Bergen)에게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향수라는데, 영화의 평을 보면 ‘애정과 욕망- 그 종말에 관한 씁쓸한 보고서(Affection and Desire: A Bitter Report on Their End)’라니, 향의 느낌이 어떨지 조금은 짐작이 된다.

‘Carnal’은 영어로 육체적인, 성적인, 육욕적인이라는 뜻을 가진 형용사다. 주로 신체적이고 물리적인 욕구(특히 성적인 욕망)와 관련된 것을 의미하며, 격식 있는 표현이나 법률 용어(예: carnal knowledge/육체적 관계)에서 자주 쓰인다. 주로 성교를 의미하는 고어이거나 법률적인 완곡어법으로, 한국어로는 ‘육체적 관계’ 또는 ‘성관계’로 번역된다. ‘살(flesh)’을 의미하는 라틴어 ‘carn-’에서 유래하여, 영혼보다는 몸과 관련된 것, 세속적인 것을 의미한다. 육체적인 것을 뜻하는 ‘carnal’과 성행위를 완곡하게 표현한 성경적 용법의 ‘know/knew’에서 유래했다. 성경에서 ‘알다(know)’라는 동사가 성관계를 맺는다는 의미의 완곡한 표현으로 쓰인 데서 비롯되었다. 즉, 누군가를 육체적으로 ‘깊이 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Carnal desires/육체적 욕망, Carnal pleasures/ 육체적 쾌락 등이 있다.

뉴햄프셔 대학 러시아학 및 인문학 교수 로널드 르블랑(Ronald D. LeBlanc)의 저서 <음식과 성(Slavic Sins of the Flesh: Food, Sex, and Carnal Appetite in Nineteenth-century Russian Fiction, 2012)>에서 19세기 러시아 문학의 두 거장을 중심으로 음식과 성적 욕망, 죄의식의 관계를 분석한 문화비평서다. 르블랑은 식욕과 성욕이 사회적·심리적 차원에서 어떻게 연결되는지 탐구하며, 문학 속 인물의 식습관을 통해 인물의 심리와 사회적 가치를 해석한다. 이 흥미로운 연구에서 르블랑은 톨스토이, 도스토옙스키 등 19세기 러시아 작가들의 작품에서 쾌락과 권력의 상징으로서 음식의 역할을 탐구한다.

도스토옙스키와 톨스토이 작품에서 ‘음식’과 ‘성’의 대조적 묘사를 통해 두 작가의 세계관 차이를 드러낸다. 고기(Carnal)의 이중성이 드러나는데, 르블랑은 고기를 먹는 행위가 성교로 얻는 육체적 쾌락(Carnal desire)과 음식인 고기(Meat)를 동시에 의미한다고 분석하였다. 고기(肉/carnal)의 의미에 대해 “성교로 얻는 육체적 쾌락을 가리키는 동시에 음식으로 섭취하는 고기를 가리킬 수 있다”고 쓰고 있다. 피가 흐르는 붉은 고기는 오랫동안 신화나 전통을 통해 성욕, 정욕, 에너지, 힘 등의 상징으로 여겨졌다. 고기를 먹음으로써 그 힘과 에너지가 먹는 사람에게 전달된다는 믿음은 고대 원시 부족사회뿐 아니라 현대에 이르기까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이 책에서 ‘음식’과 함께 작품 분석의 중심으로 삼는 키워드는 ‘성(sex)’이다. ‘음식’과 ‘성’은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개체 유지를 위한 음식 섭취, 종족 보존을 위한 생식 행위)로, 식욕과 성욕은 사회적·문화적·생물학적으로 밀접히 연결되어 있다. 식욕과 성욕을 이성에 의해 통제되어야 하는 비천한 ‘욕망’으로 보았던 고대 그리스와 중세를 거쳐 현대의 프로이트와 정신분석에 이르기까지 성욕과 식욕은 동일선상에 놓여 왔으며, 일상생활이나 문학작품에서도 성적 행위는 흔히 먹는 행위로 표현되어 왔다.

 

자본주의적 경쟁과 먹어치우는 존재로서의 인간으로 인식한 도스토옙스키 대표작들에서 나타나는 먹는 행위와 성적 행위를 분석하고 있다. 고기는 폭력적으로 공격하고 소비해야 할 것으로 다루어지며, 이와 목구멍처럼 음식물을 씹어 삼키는 기관에 독자들의 관심을 집중시킨다. 마찬가지로 성교라는 신체적 행동은 에로틱한 체험보다는 폭력적인 행위로, 상호간의 성행위보다는 성폭력으로 이해되는 경우가 많다. 관능적 인간에서 금욕주의로 본 톨스토이의 작품 속 인물들은 도스토옙스키의 작품에서와는 달리 ‘먹어 치우기’보다는 ‘맛을 보는’ 경향을 지닌 것으로 분석된다. 톨스토이의 작품 속 남성 인물들은 감각적 즐거움 때문에 음식과 성에 탐닉하는 경향이 있으며, 톨스토이 작품 속에서 여자와 음식은 남성을 유혹하고, 정신적 실현으로만 성취 가능한 영혼의 만족 대신 일시적인 육체적 감각의 희열만을 제공하는 상징으로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육담은 동서고금의 의미는 같다.

일본에서는 ‘외담(外談)’이라고 하는데, 이는 공식적이거나 정석적인 내용이 아닌, 밖에서 들은 이야기, 야사(野史), 혹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다듬은 이야기를 뜻한다. 문맥에 따라 다음과 같은 의미로 사용된다. 일반적으로 공식적인 ‘내담(內談)’에 상대되는 말로, 밖으로 도는 이야기나 흥미 위주의 이야기에 주로 쓰이는 용어다. 근대 문헌에서 ‘담총(談叢/ 비판적 논설)’에 대립하여, 비공식적인 이야기나 해외 풍속기사 등을 다루는 장르로 사용되었다.

 

()과 살이 부딪히는 이야기

 

‘육(肉)’은 고기를 뜻하며, 인간의 본능적인 성생활이나 신체 부위를 노골적이거나 재치 있게 표현한 말장난(언어유희)의 성격을 띤다. 육담의 일반적 형식은 ‘이야기형-설화’이지만, ‘수수께끼형-육담’도 많이 유통되고 있다. ‘수수께끼형-육담’은 화자가 청자에게 질문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으나, 이는 서사적 진행에 묘미를 더하는 문학적 장치일 뿐이다. 구비문학으로서 연행의 묘미를 실감케 하기 위해서는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해나가기 보다는 청자를 이야기 속에 끌어들이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수수께끼형은 그런 구연상의 기법이라 하겠다.

수수께끼 형과는 취향이 다른 ‘문답형-육담’도 있다. ‘문답형 육담(肉談)’은 성(性)적인 소재나 외설적인 내용(육담)을 두 사람 이상이 서로 질문하고 대답하는 대화 형식으로 풀어내는 구비문학 및 설화의 한 유형이다.

예를 들면, 조선 시대의 문인 송강 정철과 기생 진옥이 주고받은 시조가 문답형 육담의 대표적인 예로 꼽힌다. 정철이 진옥(眞玉, 진짜 옥)이라는 이름을 활용해 성적인 비유가 담긴 질문을 던지자, 진옥 역시 정철(鄭澈, 철이 철철 넘침)의 이름을 받아치며 재치 있는 답변을 남긴 일화가 유명하다. 대화의 묘미를 살리고 청자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고안된 구비문학적 연행 기법이다. 어느 날, 두 사람이 술상을 마주하고 앉았다. 거나해진 송강이 입을 열었다. “진옥아, 내가 한 수 읊을 테니, 너는 그 노래에 화답을 해야 한다.” “예, 부르시옵소서.” “할 수 있겠느냐? 지체해서는 안 되느니라.” “……….” 진옥은 말없이 거문고의 줄을 고른다. 정철은 목청을 가다듬어 읊는다.

 

玉이 옥이라커늘

반옥(반玉)만 너겨떠니

이제야 보아하니

진옥(眞玉)일시 젹실(的實)하다

내게 살송곳 잇던니

뚜러 볼가 하노라 .

(정철(鄭澈) 근악槿樂) 391)

 

정철의 노래가 끝나자 거문고에 손을 올린 채로 진옥이 지체없이 받는다.

 

철(鐵)이 철(鐵)이라커늘

섭철(섭鐵)만 녀겨떠니

이제야 보아하니

정철(正鐵)일시 분명하다.

내게 골풀무 잇던니

뇌겨 볼가 하노라.

(진옥(眞玉) 근악槿樂) 392)

 

정철은 놀랐다. 정말 놀랐다. 진옥의 즉석에서의 화창은 자타가 조선 제일의 문인이라고 칭송하는 당대의 대문장가 정철을 완전히 탄복시키고도 남았다. 송강의 시조에 자자구구 대구 형식으로 서슴없이 불러대는 진옥, 그녀는 정녕 뛰어난 시인이었다. 두 사람의 은유적 표현 역시 뛰어난다. ‘반옥’은 진짜 옥이 아니라 사람이 만든 모조 옥(玉), ‘진옥(眞玉)’은 ‘참玉’을 뜻하면서, 기생 ‘진옥(眞玉)의 이름’을 가리키는 것이며, ‘살송곳’은 ‘살(肉)송곳’으로 남자의 성기를 은유하고 있는데, 진옥은 쉽게 그 뜻을 알아낸 것이다. 알아냈을 뿐만 아니라 한 술 더 뜬다. ‘반옥’에 대해서 ‘섭철(鐵)’, ‘진옥(眞玉)’에 대해서 ‘정철(正鐵)’, ‘살송곳’에 대해서 ‘골풀무’의 대(對)는 놀라운 기지와 재치와 해학이다.

‘섭철(鍱鐵)’은 잡것이 섞인 순수하지 못한 쇠요, ‘정철(正鐵)’은 잡것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쇠를 뜻하면서, ‘송강 정철(鄭澈)의 이름’을 가리키는 것이며, ‘골풀무’는 ‘불을 피우는데 바람을 불어 넣는 풀무’인데 ‘남자를 녹여내는 여자의 성기(性器)’를 은유하고 있는 것이다. 이만하면 필설이 부끄러울 만치 문자 그대로 뛰어난 명기(名妓)이다. 위 시와는 다른 버전도 전한다.

 

옥(玉)을

옥(玉)이라커든

형산백옥(荊山白玉)만

여겻더니 다시보니

자옥(紫玉)일시

적실(的實)하다

맛참이 활비비 잇더니

뚜러 볼가 하노라

(옥이(玉伊) 병가(甁歌) 545)

 

철(鐵)을

철(鐵)이라커든

무쇠석철(錫鐵)만

여겻더니

다시보니

정철(鄭澈)일시

적실(的實)하다

맛참애

골풀모 잇더니

녹여 볼가 하노라

(철이(鐵伊) 병가(甁歌) 546)

 

형산박옥(荊山璞玉)은 중국 형산(荊山)에서 나는 박옥(璞玉/ 껍질에 싸인 옥)이라는 뜻으로, ‘재능이 있는 인재’나 ‘가치 있는 보물’을 비유하는 말이다. 중국 형산에서 캐낸 다듬어지지 않은 원석인 박옥(璞玉)을 뜻한다. 겉보기에는 평범한 돌과 같아 가치를 알기 어렵지만, 깎고 갈면 천하의 명옥이 된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 때문에 ‘아직 빛을 보지 못한 숨은 인재’나 ‘내면에 위대한 잠재력을 품은 사람’을 비유하는 말로 사용된다. 춘추전국시대 초나라의 변화(卞和)라는 사람이 형산에서 발견한 원석에서 유래했다. 겉모습만 보고 옥을 알아보지 못한 왕들에 의해 변화는 두 발뒤꿈치가 모두 잘리는 끔찍한 형벌을 받았다. 초나라의 군주인 려왕(厲王, 분모)과 무왕((武王)은 이 원석을 알아보지 못하고 변화를 사기꾼으로 몰아 양다리를 자르는 형벌을 내렸다. 진정한 가치를 알아본 문왕에 의해 마침내 보석으로 깎여 세상에 드러났다. 세 번째 왕인 문왕에 이르러서야 원석을 깎아내 천하의 명옥인 ‘화씨지벽(和氏之璧)’을 발견하게 된다.

 

병가(甁歌)는 병와(甁窩) 이형상(李衡祥, 1653~1733)이 편찬한 가집인 <병와가곡집(甁窩歌曲集)>을 지칭하는 말이다. 조선 후기 가객들이 시조를 노래하기 위해 가사와 곡조를 정리한 노래책 중 하나이다. 병가에는 각각 옥이(玉伊)와 철이(鐵伊)라는 이름으로 올려져 있는데, 재미있는 것은 서로 반대의 위치에 서 있다는 것이다. 즉 옥이라는 이름의 여인이 자신을 옥이라고 하면서 종장에서는 남성의 성기를 은유하는 활비비로 뚫겠다는 엉뚱한 모순적인 표현을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철이라는 남자도 종장에서 여성의 성기를 은유하는 골풀모로 녹이겠다는 모순을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어찌 이런 간단한 이치를 몰랐으랴.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경우를 상정해 볼 수 있다. 그 첫째는 이들이 단순히 재미를 더 하기 위하여 서로 이름만을 남자와 여자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즉 옥이라는 사람은 실제로 남자인 정철이고, 철이라는 사람은 여자로 진옥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작자가 이름 그대로 철이(鐵伊)라고 보면 여기서 ‘철(鐵)’은 작자 자신의 이름과 일치하여 중의적으로 쓰였음을 알 수 있다. 곧 송강이 작자 자신을 스스로 ‘섭철’이 아닌 ‘정철’이라 하여 은근히 자신의 지조와 절개를 과시하면서, 누군가가 자신을 뜨거운 사랑으로 녹여 주기를 바라는 의도를 알 수 있다.

 

작자가 진옥(眞玉)이라 한다면, 먼저, 진옥이 정철을 만난 후 노재상과의 인연을 기리 살리고자 자신의 이름을 철이(鐵伊)라고 스스로 고쳤는데, 작자가 다른 이름 철이라고 보면 여기서 철(鐵)은 남성을 비유했다고 볼 수 있다. 곧 ‘섭철’은 행실이 좋지 못하여 평이 나쁜 남성을, ‘정철’은 행실이 돈독하고 인덕이 높은 남성을 지칭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자신의 젊고, 아름답고, 뜨거운 가슴으로 인덕과 교양을 겸비한 이런 남성과 함께 사랑을 나누겠다는 심정을 헤아려 볼 수 있다.

그 두 번째는 좀 더 종교적이라고 할 수 있는 영역에서 이런 은유를 쓴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즉 남성의 성기는 비록 남성의 몸에 붙어 있지만, 여성의 만족을 위하여 있는 것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여성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여성의 그것도 남자를 만족시키기 위한 것이므로 비록 여성의 몸에 붙어 있지만, 사용권자는 바로 남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의미로 보았을 때 옥이라는 여자는 남자 몸에 있는 여자의 것 활비비로 바로 여자인 옥이

자신이 가지고 있는 남자의 것인 골풀모를 뚫어보도록 하겠다는 소리를 하고 있는 것이다. 남자인 철이의 노래도 같은 이치로 살펴보면 이해가 될 수 있으리라. 누가 이들의 시를 들어 추잡한 시정잡배의 오입질 노래라고 폄훼할 수 있을까……. 아니 누가 평소 흠모하던 노 정객이자 대 문장가인 송강을 향한 사랑스런 여자의 육체와 정신의 합일을 이루는 행위를 숭고하지 않다고 말하는가?

 

칩다 네품에 드자

벼개 업다 네팔 베자

입에 바람든다

네혀 믈고 잠을 드자

밤중만 믈미러 오거든

네배 탈가 하노라

(무명씨)

 

이날 밤에 송강과 진옥은 뜨겁게 뜨겁게 정염을 불태웠다. 송강의 살송곳이 진옥의 골풀무 속에서 완전히 녹아져 갔는지, 아니면 송강의 살 송곳이 견디어 냈는지는 모를 일이다. 그보다도 당시에 용광로가 없었기에 골풀무라는 표현을 썼을 뿐 실제로는 진옥의 젊고도 뜨거운 육체는 용광로보다 더 뜨겁게 활활 타올랐을 수도 있었을 것이지만, 나이 쉰여섯이 되어 젊은 시절의 용력을 지니지 못할 수밖에 없는 노 재상 송강의 건강을 무엇보다 염려했던 진옥이 노 재상에게 여직 남아있는 태울 가슴이 마저 고스란히 타도록 부드럽게 골풀무의 불살을 조절했으리라. 육담적 수작에서 가히 일품이라 하겠다.

선조 25년 임진왜란을 계기로 그 해 5월 적소 생활에서 풀려 다시 관로에 나가게 되었을 때 마지막 송강을 보내는 자리에서 진옥은 아쉬움을 이렇게 읊었다고 한다. “人間此夜離情多/ 이밤 우리 이별 너무 아쉬워, 落月滄茫入遠波/ 달은 멀리 저 물결 속으로 지고, 借問今宵何處宿/ 묻고 싶어요, 이밤 어디서 주무시는지, 旅窓空聽雲鴻過/ 구름 속 날아가는 기러기 울음에 잠못이루시리 당신은.” 일부 자료에서는 기생 진옥이 송강 정철과 이별하며 읊었다고 하거나, 이옥봉의 시로 전해지기도 하는 등 작가에 대한 이설이 있으나, 대체로 여류 문인의 애틋한 이별 정서를 담은 한시로 유명하다.

헤어짐의 슬픔과 떠나는 사람에 대한 걱정, 외로움을 표현한 시다. ‘人間此夜離情多/ 이밤 우리 이별 너무 아쉬워)’는 조선시대 여류 시인인 이옥봉(玉峯 李淑媛) 또는 유한당(幽閒堂) 홍원주(洪原周)의 시 <송별(送別)>에 등장하는 첫 구절로 알려져 있다. 이옥봉(李玉峯, ?~1592)은 조선 선조 때의 유명한 여류 시인으로, 옥천 군수 이봉의 서녀로 태어나 서른 살 무렵 조원(趙瑗)의 소실이 되었다. 이별의 슬픔과 규방의 한을 섬세하게 표현한 시로 유명하며, 대표작으로는 <규정(閨情)>이 있다. 남편 조원이 ‘시는 체면을 깎는다’며, 시를 쓰지 말라 하여 절필했으나, 억울하게 도둑으로 몰린 이웃을 돕기 위해 시를 지었다가 남편에게 버림받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平生離恨成身病/ 평생 이별의 한이 병이 되니, 酒不能療藥不治/ 술로도 약으로도 다스리지 못하네. 衾裏泣如氷下水/ 이불 속 눈물 얼음장 밑을 흐르는 물과 같으니, 日夜長流人不知/ 밤낮을 흘려도 그 뉘가 알아주나”

이옥봉은 쫓겨난 후 <몽혼> 같은 시를 지으며 조원을 그리워했고, 결국 시를 온몸에 감은 채 바다에 투신했다. 그로부터 약 40년 후, 조원의 손자가 명나라 사신으로 갔을 때, 명나라 관리가 그에게 이옥봉을 아느냐고 물었다. 조원의 손자는 그녀가 할아버지의 첩이었으나 생사를 알지 못한다고 대답했다. 그 관리가 말하길, “40여 년 전 바다에 시신이 떠내려왔는데, 기름먹인 종이를 몸에 감고 있었다. 그 종이를 풀어보니 좋은 시들이 가득 쓰여 있었고, 시인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그 시들을 모아 시집을 만들었고, 명나라에서 매우 유명하고 인기가 높다. 조선에서 왔다기에 그 시인을 아는지 물어본 것이다.”라고 했다. 조원의 손자는 조선으로 돌아올 때 그 시집을 갖고 와서, 그제야 조선에서도 이옥봉의 시가 인정받고 유명해지게 되었다는 서사가 전해지기도 한다.

옥봉의 시 몽혼(夢魂)은 평안도 지역의 서도민요 명창들의 가사에 많이 애송됐다. 즐겨 애송된 내용은 ‘사람의 넋이 흔적을 남기며 다닐 수 있다면, 수천수만 번 님 계신 곳을 들락거려 그 돌길이 닳아서 모래가 되 었을 것이다’라는 구절이다. 허 균은 “맑고 굳세어서 얼굴 단장이나 하는 아녀자의 투가 아니다”라고 했고, 신흠(申欽)은 “근래 여인의 작품으로는 옥봉 이씨가 제일이다. 고금에 시인 가운데 이렇게 표현한 자는 아직 없었다.”라고 격찬했다. 홍만종은 “옥봉 이씨를 조선의 여류 시인이라 일컫는다.”라고 적었다. 또한 조원의 친구인 윤국형은 “시를 읊고 생각하는 동안에 부채로 입술을 가리기도 하는데, 그 목소리가 맑고 처절해서 이 세상 사람 같지 않다.”라고 했다.

 

다음으로 흔한 형식이 동음이의어(同音異義語)를 이용한 ‘언어유희형(言語遊戱型)–육담’이다. 위의 시조도 ‘진옥’과 ‘정철’이라는 동음이의어를 구사한 언어유희형으로 볼 수 있고, 아래와 같은 현대의 예도 흔히 볼 수 있다. 다정한 암수 두 마리의 말이 있었는데, 어느날 암말이 죽고 말았다. 상심한 숫말은 슬픈 표정으로 길을 걷고 있었는데, 저 앞에서 걸어오는 숫말이 왜 그렇게 슬픈 표정을 짓고 있냐고 물으니까 숫말이 ‘할 말이 없어.’ 그러면서 지나갔다. 계속 가다 보니까 저 앞에 말이 무리지어 있었다. 그래서 그 숫말은 ‘할 말이 많군.’이라고 했다. 또 길을 가는데, 이번에는 정말 예쁜 암말 한 마리가 있었다. 그러자 그 숫말은 ‘아까 한 말은 말도 아니다.’ 했다. 이처럼 웃음을 통해 풍자와 해학을 전달하는 민담이나 이야기로, 주로 재치 있는 언어유희, 역설적 상황, 인물의 어리석음 등을 통해 웃음을 유발하며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거나 인간의 본성을 조명한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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