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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향 초등동창

고향

 

고향 초등동창

임재철 칼럼니스트

 

 

임재철 “동창은 천륜이다. 하늘이 맺어준 인연을 사람이 해치거나 끊지 못한다.”라는 글을 지인의 페북에서 봤다. 이른바 동창선언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동창은 삶의 스승이면서 놀이 동무이고 만나면 편하고 즐겁다는 얘기다. 살아온 날과 살아갈 날사이에서 분명 어린 시절의 기억 때문에 고향을 특히 사랑하고 친구들을 사무치게 그리워하는 게 아닐까.

“오매, 거시기, 자네 잘 지낸가.”

마지막으로 만난 지 1년이 지난 친구들의 인사다. 서글프지만 공식적으로는 일 년에 한 번 만나는 친구들이 다시 모여 반갑게 안부를 나누고, 가슴이 뜨거워지고 그러면서 다시금 고향의 따스함을 느끼며, 어린 깨복쟁이 시절을 추억하고 함께 시간을 나눈다. 산과 물이 좋은 곳에서 특별한 음식을 즐기고 술을 마신다. 그중에는 평소 전화 한 통화도 없는 친구도 있지만, 그저 반갑다. 한 동네 소꿉친구라서 말이다.

 

가엾게도 옛 고향은 타향이 되었다기보다는 자취가 사라진 무거운 실향이 되었다. 지금은 타향이 고향으로 변했다. 한구석은 아리고 아프다. 고향은 아련한 추억이다. 하지만 어찌 동자 시절이 그립지 않겠는가. “어야 그 술 좀 여기 따라 봐라이” 하며 술을 받던 한 명의 친구는 먼 길을 떠났다. 그렇듯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우습고 때로는 가슴 찡한 이야기들이 있다. 살다 보면 가끔은 고향 생각을 잃어버릴 때도 있지만, 방랑길에서 신랄한 글을 쓰는 필자로서는 오히려 지적 부족함에 더 고통스럽고 진한 눈물만 앞선다.

지금 친구들이 가장 많이 그리워하는 것은 무엇일까? 세월은 조용한 펜이라고 했듯 인생의 긴 두루마리에 천천히 친구들의 그리운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늘 어릴 때 느꼈던 시절이 길다. 친구는 오래된 친구가 좋고 옷은 새 옷이 좋은 것처럼 가까이서 평생을 지내온 터라 가장 아름다운 풍경은 멀리 있는 게 아니라 평화와 건강이고, 가장 소중한 재물은 金銀이 아니라 동행임을 안다. 그 때문에 모두 안전하게 지내며, 평생 동급생과 고향의 정감이 계속 이어졌으면 한다.

아, 세월! 저만큼 젊음과 많은 것을 데려가고 세상이 다 무상하지만, 친구들의 지혜는 강해지고 마음은 더 풍요롭다. 모두가 머리에 흰 눈이 내렸지만, 그 친숙한 미소와 진실은 그대로다. 만나는 때마다 함께 웃고 떠들고 삶을 느끼는, 마치 천륜과 고향은 그 무상의 진리가 비켜 가는 것 같다. 고향이 무얼까. 지금은 가물가물한 기억들을 간신히 챙겨야 하는 형편이지만, 그 그리움은 늙지 않고 있다. 우리가 살았던 고향 땅은 꿈속까지도 내내 그 주위를 맴돌며, 어디에 가든 어디에 살든 늘 그곳을 그리며 살아간다.

고향정

신영복의 <나무야 나무야>에서는 “내가 고향에 돌아와 맨 처음 느낀 것은 사람은 먼저 그 산천을 닮는다는 발견이었습니다. 어린 시절의 산천이 바로 자신의 정서적 모태가 되고 있다는 깨달음이었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말하자면 우리가 살아가는 건 그 고향의 정기와 기운을 받아 항상 보호받고 있는 그 땅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작곡가 쇼팽은 고향 폴란드를 떠날 때 담아온 병 속의 흙을 죽을 때까지 안고 살 았고, 죽어서 그의 몸은 파리에 묻혔지만, 심장은 바르샤바로 귀향했다. 그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깊이 알 수 없지만, 고향은 모든 사람을 더 가까이 끌어들이고 그 유대는 국경을 넘나들며 연결하는 마력이 있다는 생각이다.

고향 호박꽃

필자 역시 고향은 마음속에서 어느 비경보다 가장 아름다운 풍경을 지니고 있다. 수많은 길을 걸었지만, 마음은 언제나 고향에 있다. 고향 산천. 수십 년 전 울엄마가 필자를 낳을 때 흘린 핏자국이 있고, 지금도 우리 조상이 묻혀 있는 ‘피가 흐르는 땅’. 너무 그립다. 이글거리는 보고 싶은 얼굴들. 집 근처라도 가보려고 애쓰는 실향민들의 마음이 와 닿는다. 그래서 고향 동창 모임을 바쁘게 달려가는 것이고, 생애 가장 아름다운 곳의 심령과 이야기를 나누며 술잔을 기울이는 것 같다.

고향

인생은 세상에 있고 시간은 언제나 소리 없이 흐른다. 그러나 여정은 아직 길다. 우리 친구들의 세상이 예전 고향의 푸른 들판에 서 있듯 든든하고 사랑과 우정을 공유하며, 몸서리나도록 기다리는 다음 만남을 기약하듯 삶의 조각들이 일상을 더 알차게 하고, 만남이 계속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가는 길에 어떤 친구는 떠나고 어떤 친구는 남아 있을 수 있지만, 한 걸음씩 인생의 물결을 따라 나아가며 세월을 즐겨야 한다.

 

그리고 친구여! 우리는 결국 늙어가고 불완전할 수 있지만 건강해야 하고, 가난할 수 있지만, 행복해야 하고, 무거운 바람과 비가 오더라도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오래오래 서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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