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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가 언젠가

김원하의 취중진담

 

언제가 언젠가

 

 

데면데면한 친구를 길거리에서 우연히 만났다. “잘 지냈어, 별일 없지…”같은 인사치레가 끝나면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야! 언제 만나서 밥 한번 먹자” “그래 연락할게” 같은 말들을 하고 헤어진다.

“밥 먹자”라거나 “연락할게”라고 말한 사람의 진실은 1도 없을 것 같다. 그저 인사치레다. 그런데 만약에 면(面)을 트고 지내는 외국인과 만났을 때 “우리 언제 밥 한번 먹자”라고 했다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어느 글에선가 이런 말을 들은 외국인은 “밥 먹자”라는 연락이 오기를 학수고대하며 기다렸다고 한다. 그런 외국인이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려면 한국살이를 몇 년은 더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한국어로 “‘언제’는 오지 않는다”라는 것을 알게 되면 당신은 이미 반은 한국인이 되어 있는 상태다.

우리가 유독 “언제 밥 먹자”라는 말을 자주 사용하는 데는 우리의 정서와 무관치 않아 보인다. 우리의 정서로 밥을 같이 먹는 사이는 식구라는 뜻이 강하기 때문이다. 사실 데면데면한 사이라도 밥을 같이 먹고 나면 친숙(親熟)도가 확 달라진다.

밥도 그럴진대 술이라면 친숙도가 급 상승한다. 처음 만난 사람끼리(비즈니스 관계라도) 몇 순배 술잔이 돌고 나면 만난 지 몇 시간도 되지 않아 금세 형님 아우 하며 술잔을 부딪친다.

필자가 젊은 날 기자 생활을 할 때다. “우리 언제 술 한잔하자”는 말을 참 많이 들었다. 그런데 유독 어느 회사 대표가 만날 때마다 “언제 술 한잔하자”는 말을 입버릇처럼 했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람과는 지금껏 막걸리 한잔해본 적이 없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흔하게 사용하는 말 ‘언제’는 의문사, 대명사 혹은 부사로 사용하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 보면 과거 시점으로 “언제 그 일을 했는지 기억이 안 난다.” 일 테고, 미래 시점으로는 “언제 회의가 시작될 예정인가요?”라든가, 막연한 시점으로 “언제 한 번 술 한잔 하자” 같은 말이다.

미래적 의미로 사용하는 ‘언제’는 막연한 말이지 특별한 의미가 없는 말이라는 것이 공통적 견해다. 화자(話者)가 별 의미 없이 내뱉는 말 ‘언제’는 될 수 있으면 지양(止揚)해야 할 말 같다.

‘언제’라고 하지 말고 1주일 혹은 10일 후처럼 명시적으로 하면 상대방도 거기에 따른 대책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지금껏 필자 역시 ‘언제’라는 말을 많이 사용해왔다. 후배들이나 친구들에게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을 하고 지키지 못하고 살다가 막상 그 친구를 만나면 멋쩍어하지도 않는 나를 보고 놀란다.

그래서 될 수 있으면 ‘언제’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내주’라든가 ‘다음 달 초’처럼 명시적으로 약속(?)을 잡는다. 그래야 마음이 편하다. 현대인들이 사회를 살다 보면 언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1주일 정도의 기간을 정하고 나서 디텔한 약속을 잡는다.

다산 정약용이 1801년 강진에 유배 와서 처음 묵은 곳이 사의재(四宜齋)다. 사의재는 이곳 주막집(동문매반가) 주인 할머니의 배려로 골방 하나를 거처로 삼은 다산이 몸과 마음을 새롭게 다잡았다고 한다.

사의재는 정약용이 교육과 학문연구에 헌신키로 다짐하면서 붙인 이름으로 ‘네 가지를 올바로 하는 이가 거처하는 집’이라는 뜻으로 ‘생각(思)’과 ‘용모(貌)’와 ‘언어(言)’와 ‘행동(動)’, 이 네 가지를 바로 하도록 자신을 경계했다고 한다.

유배 생활을 하면서도 이처럼 올바르게 살려고 노렸했는데 우리는 자유를 누리면서 이런 몸가짐으로 살려는 노력은 생각이나 해봤을까.

필자의 생각으론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말은 면피성 발언이 십중팔구다. ‘언제’가 ‘언제인지’는 누구도 모른다.

만약에 국회의원이나 더 높은 직책의 공직자가 언제 밥 한번 먹자고 하면 바로 “언제요?”라고 되물어 보자. 바로 답이 나오면 그 사람은 꽤 괜찮은 공직자다.

그동안 우리는 공직자를 뽑는 선거를 치르면서 숱하게 많은 공약(公約)을 들어왔다. 그러나 그 공약이 공약(空約)이 되어 버린 것 역시 숱하게 보아왔다. 소시민들이 하는 “언제 밥 한번 먹자”라는 식의 공약이 잘 이루어지는지 눈을 크게 뜨고 살펴 볼때다. 6·3 지자체 선거에서 당선된 단체장들이 얼마나 약속을 잘 지키는지를 ….

<삶과술>발행인 t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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